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07)
낭선기환담-206화(207/600)
낭선기환담 – 206화
“빨리! 더 빨리 날아라!!”
“보채지 마라! 아무것도 안하고 업혀 있는 주제에 말이 많다!!”
재빠르게 나아가는 빛줄기 하나에서 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는 소녀의 것이고, 하나는 사내의 것이었는데 그들은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한 음성이었다.
“오자마자 육귀놈은 어디가고 웬 모기 새끼들이 죽일 듯 쫓아오는 게야!”
둘의 정체는 염천시문에서 붉은 사막으로 건너온 구귀와 십귀였다.
오자마자 육귀는 잠깐 다녀오겠다며 사라졌고, 둘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건축물 하나를 발견했다.
단번에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그곳을 뒤지게 되었다.
운이 좋다며 자화자찬하던 것도 잠시뿐, 무슨 기관을 건드렸는지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모기 떼 수백 마리가 나타난 것이었다.
“염병할! 그러게 내가 아무거나 막 만지면 안 된다고 했잖나!”
“네놈도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며 다 부수자고 했잖아!”
은근히 하는 짓이 닮아 있는 둘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는 아니었다.
“육귀만 있었어도 저런 것들은 기냥 청염으로 불살랐을 것을… 쯧.”
곁에 있으면 조금 껄끄러웠으나 막상 없으니 이렇게 아쉬웠다.
“흥, 그걸 못하는 네놈을 탓해야지 다른 놈이 없음을 아쉬워해서 뭐가 남겠느냐! 차라리 네가 자랑하는 몸뚱이로 저놈들을 다 깔아뭉개라!”
“말도 안되는 소리! 저 모기떼는 딱 보아도 평범한 모기떼가 아니다. 내 팔뚝을 봐라! 금강불괴와 맞먹는 내 피부가 놈들의 주둥이에 뚫려 피를 빨아 먹힌 게 보이지 않느냐?”
십귀가 소매를 걷어 보이자, 왼손이 오른손과 달리 얇아져 있었고, 피가 사라졌는지 조금 하얗게 변해 있었다.
피 속에 담긴 정혈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말해봐야 입만 아플 터.
지금은 버틸 만한 수준이나, 여기서 더 피를 빼앗겼다가는 그의 수행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빼앗긴다면!
“더 까불다간 목숨이 두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테니 도망만이 살 길이다!”
“끄응….”
신경질적으로 두피를 벅벅 긁은 구귀는 뒤를 힐긋거렸다.
지금 구귀는 십귀의 등에 업힌 채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점점 모기떼와 거리가 좁혀지는 것 같았다.
참으로 기괴한 모기떼였다.
날개는 옥으로 만들어진 듯 영롱한 빛을 띠었으나 생김새와 피로 가득 찬 붉은 배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한 외형이다.
크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것부터, 사람보다 커다란 녀석이 한 무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도통 어떻게 된 놈들인지….”
쯧 혀를 찬 구귀가 골똘히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본래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지만 생각이란 걸 해야 할 때였다.
“백충서방에 저런 영충들이 있지는 않았던가?”
구귀가 산군이 가끔 꺼내보던 백충서방을 떠올리고 말했다.
그가 키우는 영충 또한 신통이 남달라 인상 깊게 남은 기억이었다.
“백충서방은 나도 한 번 본적이 있으나 저런 모기떼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내 피부를 뚫을 정도라면 진즉 마지막 탈각을 이루고 탈형을 해도 시원찮았을 것인데 그렇지도 않으니 선계의 선충인 건 아닌지 의심중이다!”
모기떼들은 주둥이가 날카로워 단번에 십귀의 몸을 뚫고 피를 빨아들일 정도로 빠르고 날렵했다.
그리고 십귀의 주먹을 기이한 신통으로 무리지어 막아내고는 했다.
그런 신통을 지닌 모기떼다.
한데 탈형을 이루지도 않았고, 그 기운을 종잡을 수 없으니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손톱을 물어 뜯으며 고뇌하던 구귀는 이내 결심했다는 듯 십귀의 어깨를 턱! 치며 말했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났나?”
“당연하지. 내가 누구더냐, 십해만척의 아홉 번째 좌를 맡고 있는 구귀. 까망호리님이시다!”
“알았으니 빨리 방도나 말해봐라!”
“홍연은 항상 내게 그리 말했다.”
갑자기 홍연?
뭔가 이상했으나 십귀는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어렵거나 힘에 부치면 스스럼없이 말해도 좋다고. 그렇기에 난 항상 어렵다고, 힘들다고 했으나 홍연은 들어준다고 했지 쉬게 해준다고 한 적은 없다며 채찍질하기만 했다.”
“…그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거냐.”
“말은 끝까지 들어라! 홍연은 도와주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다른 놈이라면 우리를 도와줄지도 모른다! 지금 저기! 사막 한가운데를 홀로 걷고 있는 저놈 말이다!!”
“뭣? 정말인가?”
고개를 내리니, 구귀 말대로 어느 사내가 홀로 사막을 횡단 중이다.
“인간이잖나!”
하지만 그는 인간.
도사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어찌 십해만척의 귀왕이 인간 도사에게 도움을 구할까!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였다.
“인간? 저놈이 인간이더냐?”
하지만 구귀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 아닌 거 같은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헛!”
돌연 막대한 기운의 폭풍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으윽!!”
사방을 짓누르는 기운이 잠시간 몸을 압박하고, 그 직후,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모르던 십귀와 구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자연스레 고개를 올려 보니, 그 위에는 거대한 오색의 거검이 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우, 우와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내려꽂힌 거검이 사막 한가운데를 찔러버리고, 그 여파에 모래폭풍이 생겨나 일대가 폭연에 휩싸였다.
당연히 십귀와 구귀는 폭풍 속에 휘말려 바닥으로 곤두박질 쳐졌고, 모래 속에 파묻혔다.
장대한 모래폭풍 속에서 의식이 끊어지기 전, 등 뒤에 검을 멘 사내가 유유히 사라지는걸 보고서야 구귀는 정신을 잃었다.
구귀와 십귀는 그렇게 모래 속에 파묻혀 모습을 감췄다.
* * *
“진담이십니까?”
정신을 놓아버린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발언이었다.
이곳에 흉수가 봉인되어 있다면 그 흉수를 받들어 기연을 얻자니! 그게 대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곳에 봉인되어 있을 정도라면 그 힘은 물론이요, 성정 또한 괴팍하기 짝이 없을 터!
애초에 대화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신선에 버금가는 것이 있을 터인데 하계의 수도자들과 어디 말을 섞기라도 하겠는가!
“진담이네. 난 보물보다는 차라리 상계의 연줄을 만들어두고 싶군.”
가히 경악스러운 내용이었다.
모여 있던 몇몇 마도인들이 웅성거리고 불천 또한 조용해졌다.
“예 형. 형님은 혹시….”
불천이 예운을 보며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자 예운은 가만히 있다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럴 수 있겠어요. 설사, 정말로 흉수가 잠들었다고 해도 그 정도 성의를 보인다면야….”
향노의 눈이 가늘어졌다.
성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이곳에는 현재 자신들 말고도 많은 마도인들이 모여 있다. 마곡의 삼대마두 중 하나인 향노인데 그 정도도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어쩌겠나. 빠지고 싶다면 빠져도 개의치 않겠네.
자네의 성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이해해주지 못할 것도 없어.”
예운은 십분 이해한다는 듯 다소,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 말했다.
향노는 고민했다.
마도에 몸담고,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그였으나 그렇다 해도 그는 마도의 상식이 그것을 거부했다.
아무리 마도인이 미친놈들이고, 자유로움을 추구한다고 해도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법이다.
잠시 눈을 감고 수염을 쓸어내리던 그는 이내 결단을 내렸는지 우묵하게 닫힌 입을 열었다.
“전 빠지겠습니다.”
“음… 그러도록 하게. 선택은 자유. 생각과 신념 또한 자유이니.”
예운과 불천은 아쉬워했으나 더 그를 회유하지는 않았다.
향노는 그리 말하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이내 예운이 입을 달싹이며 전음을 보냈고, 향노는 뒤를 돌아보며 예운을 보다가 혀를 쯧 찼다.
향노는 자신의 문파 제자들을 보며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절반은 이곳에 남고, 절반은 날 따라오거라.”
자질구레한 설명은 없었다.
몇몇 제자들은 향노에게 향했고, 몇몇은 불천과 귀강문으로 향했다.
향노는 그들을 보며 근심어린 얼굴을 하다 스르륵 사라졌다.
“자, 그럼 어디 유적을 파헤쳐 볼까.”
“공주, 시작해주시오!”
지솔은 잠시 침묵하다 수결을 맺고 손가락을 물어 뜯어 피를 흘렸다.
툭, 투둑.
유적 앞에서 흘려지는 피는 붉은 모래 사이로 들어가 스며들었다.
쿵.
철컥.
끼기기기기기.
철성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며 유적이 먼지를 자아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곡선을 그리며 기괴하던 유적의 위치가 바뀌었다.
하늘을 향해있던 곡선의 건축물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땅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가라앉는 유적과 달리, 가운데에는 동그란 돌을 떠올리는 기둥과 네 개의 기둥이 동시에 나왔다.
가운데에 있는 기둥에는 원형의 돌과 그 가운데에 박혀 있는 핏빛의 보석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네 개의 기둥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는데 예운과 불천은 그것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예 형! 이건 붕마기가 아닙니까!”
기둥위에 올려진 것은 거대한 무언가의 손톱이었다. 날카롭고 거칠기가 두말 할 것 없다. 불길한 붕마기의 기운이 함유되어 있어 전신이 벌써부터 떨려왔다.
“이것들도 보세요.
하나하나 하계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것이고, 이건 저도 듣도 보도 못한 물건입니다!”
식물의 뿌리.
거대한 눈알.
척추 뼈 등등.
내력을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것들이었으나, 풍기는 기운은 결코 평범치 않았다.
“이렇게 다분한 붕마기를 지닌 물건들이니 이것을 가지고 수행을 한다면 필히 손쉽게 경지를 쌓을 수 있음은 물론! 그도 아니라면 강시를 만들어도 나쁘지 않겠지!”
“맞습니다! 이 정도 물건이라면 필시 전설 속의 현탄음시(玄誕陰屍)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둘은 놓여있는 귀물들을 보며 황홀해했다.
마도인이 비승하면 선계가 아닌 붕계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
붕마기는 붕계의 신선들이 사용하는 기운인데, 그것을 하계의 수도자가 구하기가 쉽겠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
하여 이정도의 기연이니 제 아무리 수천 살을 살아온 그들이라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운과 불천은 당장에 기둥 위에 있던 물건들을 들어 올리며 살펴봤고, 틀림없는 진품임을 확인했다.
혹시라도 붕마기가 새어나갈까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히 물건들을 담기 시작했다.
무슨 식물인지 모를 뿌리는 목갑에 담아 부적을 붙였고, 눈알과 뼈와 손톱은 크기가 거대해 법문을 쏘아 기운의 손실을 막은 뒤 검은 천을 둘둘 말아 부적을 붙여두었다.
그 시간만 두 시진을 소요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물건들을 전부 봉인하고야 예운과 불천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은 않고 있었으나 무슨 말을 할지 서로가 가장 잘 알았다.
보물을 찾고 봉해두었으니 이제는 그 소유권을 가려야 할 때이다.
“그나마 정확히 넷이니 둘씩 나누면 되겠습니다.”
“이것만해도 충분한 기연인데 더 욕심 부릴 필요 있을까.”
잠시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둘은 이내 지솔을 보았다.
“한데 이상하군. 마기가 짙은 보물들이 한 가득인데 그대에게는 하등 소용없는 물건들 아닌가?”
생각해보니 그렇다.
마도를 걷는 이에게는 그 어떤 보물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지만, 마도가 아니라면 위험을 감수하고 얻을 만한 것이 아니다.
뭔가 숨기는 게 있을 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솔은 그렇지 않다는 듯 극구 부인했다.
“단서를 얻었다지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마선의 물건인줄 알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요….”
그리 말한 지솔이 빙긋 웃었다.
뜬금없이 미소 짓자 영문을 몰라 인상을 찌푸린 예운은 이내 흠칫하며 등을 돌렸다.
푸욱!!
“이, 이게 무슨… 짓인가!!”
복부를 찔린 예운이 몸을 떨며 소리쳤다. 그를 찌른 것은 불천이었다.
“죄송합니다, 예 형.
한데 어쩌겠습니까! 저 여인이 자신의 목숨을 보장해준다면 이보다 더 한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는데요! 형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전 죽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전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아요!!”
예운은 피를 토하며 불천의 어깨를 꾹 움켜잡았다.
십분 불천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 또한 운명이요, 도겁이겠지… 그래. 그동안 즐거웠네.”
“혀, 형님…!”
예운이 그리 말했을 때.
촤아악!!
불천의 목이 날아가고 피분수가 사방에 튀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극랑왕생하게나.”
길을 떠났었던 향노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