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09)
낭선기환담-208화(209/600)
낭선기환담 – 208화
한 시진 전.
“세치 혀가 제법이더군. 자네, 내 첩이 되는 건 어떤가. 우리가 함께라면 퍽 괜찮은 그림이 될 것 같지 않은가?”
뜬금없는 소리에 지솔이 흠칫 놀라며 예운을 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모를 거라 생각지 말게.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으나, 이 꼴이 난 것 또한 자네의 세치 혀에서 나온 결과 임을 모르지 않네. 그리고 선충을 취하면 날개가 돋는다?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내가 믿을 성 싶었나?”
지솔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살고 싶으니 개소리라도 짖어봐야 했겠지. 이해하네, 나라도 그러했겠지. 도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응당 그 정도는 해주어야 하니….”
지솔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렀다.
빠르게 구르는 눈처럼 머리 또한 짱돌처럼 굴러가고 있으리라.
예운은 피식 웃으며 휘적휘적 걸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해야 되나?”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계책이 있었을 것 아닌가. 이 다음에는 어찌해야 되는 거지?”
지솔의 턱이 떨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라도 귀강문의 예운이 보여준 심계와 행동은 가히 비상식적이라고 할만 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웃음과 그의 행동이 묘한 공포심을 더 부추겼다.
“자, 말해보게. 이 다음엔 어떻게 해서 날 죽이려 했던 건지 말이야.”
“그, 그렇지 않습니다.”
“하핫, 다 알고 있네!
딱 보아도 이곳은 무언가를 봉인한 제단이고, 곁에 있던 귀물들 또한 제물이었겠지.”
그리 말한 예운은 히죽 웃으며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붙으며 물었다.
“이곳에 봉인된 흉수. 그것을 깨우는 방도를 내게 말해주게.”
지솔은 적잖이 당황한 듯 입만 벙긋거리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게.”
“거짓인 줄 알고 계셨다면, 어찌 향노를 죽이신 겁니까.”
자신의 말이 거짓인 줄 알았다면 그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충분히 자신을 매도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 단칼에 죽여 버렸을까.
향노는 정에 못 이겨 예운을 죽이려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가 향노를 죽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네. 사실 나는 향도가 날 죽이려 들려고 할 줄 알았네. 그래서 대비하고 있었지. 하지만 향노는 손을 쓰지 않더군. 그렇기에 맥이 빠져버려서 그냥 죽였네.”
“…예?”
“못 들었나? 그냥… 맥 빠져서 죽였다고 말했네. 내가 고생해서 대비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냥 넘어가면 내 수고가 안타깝지 않은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향노와 그는 적어도 몇 백 년은 호형호제하던 사이인데, 맥이 빠져서 죽여 버렸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일까.
지솔은 점점 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더욱더 두려워졌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자신의 노림수를 단번에 파악하고 도리어 그것을 이행하라 부추기니 무슨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안할 텐가? 빨리 봉인을 풀게.”
새로운 노리개를 얻기라도 한 듯 연신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이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후회의 동물이라고도 하는데 어찌 후회를 하지 않겠는가. 다만 나는 노력할 뿐이네. 그 노력의 결과를 앞서 보지 않았나. 그렇게만 살아가면 등선할 수 있는 게 도계이지.”
지솔은 그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선충의 구슬을 잡아 집어던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구슬이 깨어지자, 줄곧 잠들어 있던 누에가 꿈틀거리다 기괴한 소리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악
누에가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습하고 음울한 괴성.
“봉인구… 앞전에는 그리 말했었으나 사실 이 유적은 무언가를 봉인해 놓은 것도, 선계 신선의 무덤인 것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지?”
“비동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무언가 석연찮은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이곳은 줄곧 우리 수도자들을 시험하는 듯한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었죠.”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시험의 문.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보물들.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사막으로까지 이동시키는 전송진.
생각해보면 이곳은 줄곧 수도자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때로, 수행이었으며 탐욕이기도 했다.
“그리고 배치된 보물들과 이 유적 또한 숨기고자 한 목적으로 만든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수도자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욕망을 부추기고자 만든 덫에 불과하지요.”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누에조차.
그러한 시험의 일종.
“이런 대단한 비동을 만든 신선은 줄곧 우리를 시험하고, 시련을 내리고자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허나 실상을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지요.
이 사막의 모래가 왜 이처럼 붉은지 생각해본 적 있으십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다.
붉은 모래의 대사막이었으나, 신선이 만든 별천지의 세상이니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기연을 찾고자 들어온 이들의 피가 모래에 흠뻑 섞인 겁니다. 이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이 사막의 모래알이 됐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녀는 덧없이 웃었다.
그리고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지르는 누에를 밟아 죽였다.
그리고 그 즉시.
쿠우우우우우웅!!
거대한 기운의 압박에 사방이 찌그러지며 공간이 쩌저적! 갈라졌다.
공간의 틈새에서 보이는 것은 붉은 모기떼를 두르고 있는 곤충의 날개를 달고 있는 사내였다.
그의 거대한 살기와 흉악한 기운은 마도에 끄트머리에 있다고 하는 귀강문의 예운이라도 몸이 떨릴 정도였으며, 그 기운에 노출된 마도문의 제자들은 게거품을 물 정도였다.
정신을 잃거나 게거품을 무는 자들이 속출하고, 이내 정신줄을 놓았는지 헤실헤실 웃으며 침을 흘리는 자들 또한 많았다.
“하아… 귀찮군.”
허나 그런 반응들은 이제 질린다는 듯 붉은 사내는 심드렁한 얼굴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충선이십니까?”
사내의 외형 자체를 보노라면 충과 깊숙이 연관되어 보일 수밖에 없다. 영충 또한 영성을 얻으면 하늘로 등선하여 신선이 되니, 충선이 맞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네놈이 어찌 그걸 가지고 있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예운은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몰랐으나 충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겨 적색 기운을 쏘아냈다.
막아낼 틈도 없이 기운이 몸속을 파고든 예운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충선은 그런 그의 몸에서 서책을 꺼냈는데,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물건이 어찌 하계의 수도자 품에 있는 거지? 어이가 없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
충선은 입을 달싹이며 책을 펴내고는 이내 다시 책을 덮었다.
그러자 책이 푸른 화염에 뒤덮여 불타버리고 잠시 후 잘려진 것 같은 거대한 깃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줄곧 심드렁한 표정이었던 충선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운은 충선이 저 깃털을 매우 흡족하게 보고 있으니 단연, 진귀한 것이리라.
“있군. 잘려진 부분들이 여러 개….”
충선은 고개를 돌리며 무언가를 확인하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다.
하지만 겨우 그것으로도 예운의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제게 분부만 내리시면 그것과 닮은 것을 바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깃털이 있던 서책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잘려진 듯 뭉툭한 부분과 애매한 형태를 보노라면, 자신 말고도 저러한 것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을 터.
“뭐라? 네놈이?”
“어찌 충선에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소인이 준비한 이들을 취하고 계신다면 기꺼이 그것을 더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호오….”
충선은 예운이 준비했다는 마도문의 제자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상황판단이 퍽 빠른 놈이다.
“네놈, 오래 살겠구나.”
충선의 칭찬에 예운의 입가에 호선이 진득하게 걸렸다.
* * *
한편.
둔술을 펼치고 있는 산군은 깃털로 변해있는 봉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선계는 여섯 개의 계중 인간이 사는 경계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나타난 놈은 충계에서 현신 한 충선으로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나타나 종종 수도자들을 도살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다.좋게 말하면 이곳의 수호자이며 나쁘게 말하면 청소부지.]
상계가 여섯 개의 계로 나뉘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충계의 신선이 청소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신선이라는 자가 수도자들을 도살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신선이 어찌 그런 임무를 부여 받았다는 겁니까? 대체 누구에게요?”
[누구긴 누구겠는가. 이곳을 만든 주인이요, 지금 나타난 충선보다 더 높은 존재가 부여한 것이지.]“신선보다 더 높은 존재라니… 그런 것도 있습니까?”
[왜 없겠는가. 신선들 또한 수행을 멈출 수 없는 수선(修仙)의 존재이니 당연히 경지의 고하 또한 나뉘었지.]경지의 고하!
막연하게 신선이 되면 수행에서 벗어날 것이라 믿어왔다.
상계의 일은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어 애매하기만 했었던 그로써는 충격에 빠질 만한 답변이었다.
신선들의 경지의 고하가 나뉘어져 있다는 뜻은 그들도 수행을 일삼는다는 것이고, 수선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은 신선들 또한 위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있다는 뜻.
산군은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으나 지금은 한가롭게 문답을 주고받을 때가 아닌 듯 했다.
[기운을 숨겨라. 누군가 온다.]스르륵.
산군의 신형이 사라졌다.
여위의 능력으로 허공 속으로 스며들자 일각 뒤, 두 개의 빛줄기가 지면으로 내려섰다.
탓.
내려선 빛줄기 두 개는 백의를 펄럭이는 도사들이었다.
한 명은 허리가 굽고 주름진 노파의 모습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삿갓을 쓴 여인으로 보였는데 묘하게 그 뒷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곳 어딘가다. 분명해.”
“정말 여기가 맞습니까? 이곳은 초목이 자랄 수 없는 사막입니다. 한데 이런 곳에 어찌 선초가 자랍니까?”
산군의 몸이 경직됐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리석구나. 내가 언제 사막에서 선초가 자란다 하더냐? 겉모습만으로 판단치 말거라. 이곳이 비록 사막이지만 이 밑바닥 또한 모래알만으로 채워져 있다고 할 수는 없으니.”
푹.
노파의 발이 모래알을 파고들어가자 묘한 떨림과 함께 모래속이 폭사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내 거대한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밑바닥에는 신기하게도 나무 덩굴이 촘촘히 얽혀 있었다.
“단순한 속임수라고 해야 하나… 다른 계층이라고 해야 하나.
사막의 밑바닥은 이러한 덩굴들로 덮여 있고, 이곳을 파 밑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숲과 밀림이 나오게 된다. 우리가 찾는 십생금어초 또한 그곳에 있지!!”
“그럼 진즉에 밑으로 들어갔으면 됐을 것을 왜 이리 오래토록 사막을 돌아다닌 건지요.”
삿갓의 여인이 비아냥거리듯 말하자 노파는 혀를 쯧쯧 차며 아둔한 제자를 바라보듯 눈총을 주었다.
“밑으로 들어서면 둔술로 활공하기가 어려운 지형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괜한 수고를 할 필요는 없지.”
모르긴 몰라도 사막보다 지하에 존재한다는 밀림은 생각보다 더 어지러운 환경인 듯했다.
티격태격 말싸움을 벌이던 노파와 여인은 이내 덩굴을 파헤치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시진 후.
귀신처럼 허공에서 나타난 산군은 복잡한 눈으로 그들이 내려간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어지러운 심경을 대변하듯 그의 적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