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12)
낭선기환담-211화(212/600)
낭선기환담 – 211화
흠칫.
대사막의 허물어진 유적 근처.
피로 물든 붉은 사막에 홀로 서 있는 온몸에 피칠갑을 한 사내.
충선이 날개를 부르르 떨었다.
“별일이군. 이곳에 날 제외한 다른 수선(修仙)은 없어야 되는데….”
쿠구구구구구구구궁.
발밑에서부터 거대한 진동이 느껴지는 걸 보니 보통 신통이 아니다.
중얼거리던 충선은 고개를 돌려 납작 엎드려 있는 사내를 보았다.
사내의 목은 신기하게도 잘려 있었으나 절단면에서는 피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괴뢰인지 화신인지 모를 괴상한 걸 만들어냈더군.
덕분에 죽여도 죽인 것이 아니니 네 말대로 해보거라.”
그러자 잘려나간 목이 홀로 두둥실 떠올라 몸에 붙더니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어 보인 예운은 곧장 빛줄기로 화해 하늘을 가르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충선은 손아귀를 펼쳐 푸른 불꽃의 깃털을 꺼냈다.
“온전치도 않은 깃털 조각이 이 정도의 정순한 선천원기(先天元氣)를 지녔다니… 역시 신수는 신수군!
미약하다지만 이 정도의 선천원기라면 잃어버렸던 선력을 복구하고도 남을 정도다. 하물며 갈라진 다른 깃털을 모두 모은다면….”
선천원기란 선천적으로 몸속에 천지원기를 타고난 신을 뜻한다.
선천원기를 타고난 자는 핏줄의 영험함이 아니고서야 손에 꼽을 정도이며 대개의 신선들은 후천적으로 천지원기를 받아들여 수행한다.
“한데 이상하군. 내가 그동안 이곳에 왔었을 때는 한줌 선기를 느껴본 적이 없는데 왜 이제서야….”
고개가 절로 기울어질 일이었으나 중요한 건 자신의 손에 신수의 깃털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충선은 한참이나 깃털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다 스르륵 사라졌다.
* * *
쿠구구구구구궁.
거대한 폭발의 진동에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인영이 일어났다.
“퉤, 퉤퉷! 푸우우우!!”
고양이가 먼지를 털듯 털어댄 인영은 구귀였는데,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갸웃했다.
“여긴 어디야….”
보이는 것은 자신과 함께 떨어진 듯한 모래알과 수풀이 빽빽한 밀림.
“모기 놈들한테 쫓기다가….”
스윽 고개를 위로 올리니 천장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는데, 모래알과 찢겨진 덩굴의 흔적으로 보아 그곳에서부터 떨어진 듯했다.
“사막 지하가 밀림이라… 영 개떡 같은 장소구만?”
천장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줄기들이 땅과 나무에 엮여져 있고, 한치 앞을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수풀과 덩굴이 우거져 어지러운 공간이었다.
“구귀, 일어났으면 발 치워라.”
“우와아아아악!!”
화들짝 놀라 펄쩍 뛴 구귀가 자신의 발밑에서 시체처럼 엎드려 있는 십귀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씹귀!!”
“십귀다.”
“거, 거기서 뭘 하는 게냐? 홍연이 세상에는 이상한 놈들이 많으니 한 놈 빼고는 조심하라고 했다.
네놈도 그런 이상한 놈인 게냐?”
“헛소리를! 지금 내 상태를 보고도 그런 개소리가 나오는… 으윽.”
“뭐냐, 어디 아프냐?”
왜 저러나 싶어 모래 더미를 치우고 끄집어 내보자 코끝을 찌르는 혈향이 가득이었다.
“너….”
“재수가 없었다.”
십귀는 그 말만을 마치며 힘겹게 나무 기둥에 몸을 뉘었다.
그의 몸 상태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몸의 상반신과 다리 한 짝이 날아가 있었다.
구귀는 암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혹시… 날 지키다 그런 것이냐?”
십귀는 그런 구귀를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널 지킬 이유가 어딨나. 앞서 말했던 대로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러냐? 그럼 얼른 죽어라. 그간의 정이 있으니 네 고향에 묻어주마.”
“흥! 이까짓 걸로 죽을까 보냐! 난 십해만척의 십귀다! 이 정도 상처로는 나 십귀를 죽이지 못해! 난 이가 상처로 죽는 게 아니다. 내가 지닌 수명이 다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허나 큰소리치는 것과는 달리 십귀는 연신 몸을 떨고 있었다.
“신탈할 테냐? 새로운 몸을 찾는 것 정도라면 도와줄 수 있다.”
화령을 옮겨 다른 이의 몸을 빼앗는다면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신체의 훼손이 심하다고는 하나, 영겁을 이룬 영수의 신체다.
적절한 조취를 취하며 정양한다면 허무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소용없다.”
그러나 십귀는 체념한 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화령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로인해 신탈을 이룰 수도 없을 뿐더러 몸을 회복할 수단과 기력도 없다.
애초에 화령을 회복할 방법이 없으니 말 다 한 셈이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큰소리친 것은 괜한 자존심을 부린 것이었나 보다.
“그럼….”
“그나마 윤회할 수 있는 기운 정도는 남았으니 하늘의 굴레에 돌아가 새 인생을 점지 받는 게 낫다.”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소리.
구귀는 저도 모르게 뒷짐 지며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정말 방도가 없…느냐.”
“없다. 있으면 진즉에 썼겠지 뭣 하러 네놈과 한담이나 나누고 있을까.”
그도 그렇다.
구귀는 침음성을 흘리다 입을 벙긋거리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네놈이 신경 쓸 필요 없다. 내 재수가 없었던 일이고, 이 또한 내게 내려진 도겁이며 천명이니 그리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있을 필요 없다.”
“누, 누가 똥마려운 강아지라는 게 냐! 네놈이 죽든 말든 나 구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아암!”
구귀는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꼈다.
그러나 십귀의 회한 가득한 얼굴에 아미를 찌푸리며 물었다.
“해서… 남길 말은 있느냐.”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한다지만 모두 헛소리지. 내 혼은 살아남아 윤회한다고 할지언정, 내가 이룩한 것들과 기억 또한 하나 없는데 어찌 살아있다 할 수 있을까.”
십귀는 아련한 눈으로 구귀를 바라보며 길게 숨을 뱉었다.
“죽을 때가 되니 네 처지가 나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구귀.”
“…뭐냐.”
“한 가지 부탁 좀 들어줘라.”
“뻔뻔하긴… 들어보마.”
십귀는 씨익 웃으며 주먹을 건넸다.
“육귀 놈 면상에 주먹 한 번만 때려 넣어줘라. 영 재수가 없었으니.”
뜬금없는 소리였다.
죽기 직전의 유언이 고작 그러한 것이라니…
허나 구귀는 나름 십귀답다고 생각하며 주먹을 맞부딪쳤다.
“그 정도야 간단하지!”
서로 시시덕거리고 있자 십귀의 몸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탈형을 갖출 힘도 없어진 것이다.
“때가 됐군.”
십귀는 거대한 거북이로 변모했다.
희미해져가는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맑고 잔잔했다. 십귀는 진중한 얼굴로 구귀를 향해 첨언했다.
[기억을 찾아라. 지금의 너는 죽어 있는 것과 다를 것 없다. 반드시 기억을 찾아서 그렇게 해서….]십귀는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
[시간이 된다면, 기회가 된다면… 날 이리 만든 놈을 때려줘라.]스르륵.
휘날리는 모래먼지 속에서 구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기억만 찾으면 못 해줄 것도 없지. 내가 누구더냐! 적뇌주랑이 주인으로 모시는 자이자, 홍해를 다스리는 귀수들의 수장이며 아홉 번째 귀왕의 좌를 차지한 구귀이다!”
구귀는 주먹을 높게 올리며 외쳤다.
“기억만… 기억만 찾는다면 내 주먹을 버틸 자가 없을 것이요, 내 발 아래에 깔리지 않을 자가 없을 터!
재수 없는 육귀놈이나 더불어 네놈을 그리 만든 미친놈 또한 다 쓸어버릴 테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그러니….
“편히 잠들거라.”
* * *
후두둑.
모래를 털어내던 산군은 주변 풍경을 둘러보다 헛웃음을 삼켰다.
‘개판이군.’
한순간이었다.
그 한순간에 천장은 물론, 천리 밖의 나무와 수풀들이 원형으로 쓰러지거나 터져나갔다.
가히 어마어마한 파괴력이다.
“어쨌든 살았네.”
일단의 급한 불은 껐다.
충선의 모기떼는 가히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산군이 자랑하는 봉악청화는 물론, 불천불벽 또한 그 좁쌀만 한 모기들한테는 일절 통하지 않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웬만한 태선은 산군의 주먹 한방을 막지 못해 피떡이 되기 일쑤고, 같은 귀왕들이라 해도 한수조차 버티기가 힘든 자들이 대부분이다.
강력하다 자부하던 신통들이 고작 모기들한테 통하지 아니하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구나.]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어쨌는지 봉이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그것보다 방금은 뭘 한 겁니까. 법칙이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저 아이가 펼친 신통은 인과 척의 법칙이 깃들어 있었다. 잠깐 건드려서 그 크기를 키운 것뿐, 다른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어디 있나 찾아보니 촉만은 나무 사이에 끼어 매달려 있었다.
커다란 폭발력에 정신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안 그래도 삼취옥화를 연화시키고 정혈을 크게 소비한터라 깨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듯 했다.
“그렇게 대단한 신통입니까.”
[상계에서는 그리 대단타 할 수 없으나 하계의 수도자가 펼치기에는 대단하다 말할 수 있었지.]봉황의 분혼인 그가 말하는 것이니 거짓은 없으리라.
[법칙의 묘리는 대개 천지원기를 다루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인데, 저 아이는 그것을 자신이 아닌 화신으로 대체하여 받아들이고 다시 내뿜었다. 미미하고 볼품없지만 법칙의 발끝에 닿았다 할 수 있으니 충분히 대단했노라 말하는 것이다.]“그렇습니까.”
산군은 조금 심통난 얼굴로 촉만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저 또한 법칙의 힘을 쓸 수는 없습니까? 사월제항을 이용한다면….”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다.
[할 수 없다.]“어째섭니까.”
[저 아이는 특수한 수련법으로 체질 자체를 바꾼 듯 보였다. 그렇기에 목숨을 걸고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큰 내상을 입거나 영락하거나… 그도 아니면 화령이 썩어 소멸했을 거다.]“…….”
삼취옥화라는 것이 대체 어떻게 된 공법이기에 티끌이라도 법칙의 묘리를 다룰 수 있는 걸까.
산군은 그게 신경 쓰였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삼취옥화의 공법을 파헤쳐 그 속에 담긴 묘리를 얻어낼 수 있다면….
‘나 또한….’
말이 없자 봉은 예의 고저가 없는 음성으로 경고했다.
[큰 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한 순간에 거대한 힘에 매료되지 마라.힘이란 것은 다루는 것이지 잡아먹히는 것이 아닐지니….]
머쓱한 산군이 팔짱을 끼우자 봉이 깃털에서 소년으로 변했다.
“그보다는 이게 우선이다.”
“뭐가 말입니까.”
봉은 소년의 외양으로 나무에 매달린 촉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촉만의 가슴께에 손을 집어넣어 뒤적거렸다.
“뭘 하는 겁니까.”
아무리 촉만이 본래 사내였다고는 해도 지금은 여성의 몸이다.
정신을 잃은 아녀자의 몸을 뒤적거리는 꼴이 보기 좋을 리 없었다.
산군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봉은 아랑곳 않고 손을 빼냈다.
“찾았다.”
봉의 손에는 그가 잠들어 있었던 고서와 쏙 닮은 서책이 들려 있었다.
산군의 눈가가 좁혀졌다.
“설마….”
화르륵.
서책이 불타 버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이내 커다란 깃털과 푸른 불꽃이 넘실거리며 나타난 노인이었다.
[때가 됐군.]“그렇다.”
갑자기 나타난 노인은 별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자 봉이 작게 입을 벌려 노인의 형상을 빨아들이고 깃털마저 단번에 삼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조금 놀랐으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뉘어져 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나 봅니다.”
그걸 어찌 촉만이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산군의 물음에도 봉은 집중하는 듯 눈을 감고 허공에 좌선했다.
둘의 기운이 합쳐지는 것이니 무언가 득 될 게 있을까 싶어 조용히 바라봤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눈앞에 있음에도 귀신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보다 더….’
자연에 섞이듯 고요했다.
산군은 그 모습을 보며 알 듯 말 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감정이었다. 이게 깨달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는 그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게 신….’
자연과 동화되어 세상을 초탈한 듯한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