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13)
낭선기환담-212화(213/600)
낭선기환담 – 212화
비동의 3계층은 밀림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수풀이 워낙 많았다.
풀과 나무가 하늘높이 솟아 천장까지 닿을 지경이었고, 계층의 천장으로부터 이어진 기괴한 줄기들이 바닥과 나무와 이어져 있는 괴상한 몰골이었다.
그 줄기들은 이상하게도 붉은 색을 띠었는데,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선명히 보일 듯 밝은 색이었다.
그 줄기를 보던 노파.
빙궁의 초음선녀는 확신을 가진 듯 입주름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역시… 2계층에서 죽어나간 놈들의 양분을 밑으로 내려온 게다. 그러니 이곳이 이리 우거진 게지.”
“덫이었다는 말입니까.”
곁에 있던 초아가 의구심을 참지 못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덫인지는 모르겠으나… 넌 2계층의 모래알을 눈여겨 본 적 있느냐?”
“예, 평범한 모래알로 보였습니다.”
그러자 초음선녀는 혀를 쯧쯧 찼다.
“모든 시작은 관찰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평범한 모래알? 그러고도 눈여겨 보았다고 할 셈이냐! 그러니 네가 아직 지선의 경지에 한 발짝도 들이밀지 못하는 것이니라!”
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초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럼 무엇입니까.”
“뼈다.”
“뼈?”
“그래. 뼈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바람을 맞고 쌓이고 쌓여 그리 거대한 사막이 되어버린 것이지.”
초아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그럼 자신들이 밟고 있었던 것이 모래알이 아니라 이곳에서 죽어나간 이들의 뼛조각이라는 게 아니던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리 죽어나간 이들을 통해 3계층은 이리 푸름이 가득한 게지.”
초음선녀는 이끼 가득 피어난 나무 사이에 피어난 꽃을 매만졌다.
이름 모를 분홍 꽃이었다.
“근처에 십생금어초가 있을 게다.”
“어찌 아십니까. 당신도 이곳은 처음 오는 것일 텐데요.”
“느껴진다.”
초음선녀는 두 팔을 벌려 녹음을 가득 들이마시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느냐. 나 또한 십생금 어초를 취하여 지선이 됐다고. 그 때문인지 확연히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초음선녀 또한 십생금어초를 취해 지선이 되었다 했다. 그렇다면 그녀 또한 전생의 기억을 보았던 걸까?
돌연 궁금해졌다.
“당신도 전생을 보았습니까.”
초음선녀가 십생금어초를 찾는 이유는 자신을 지선으로 만들기 위함.
당연히 자신이 그것을 먹을 테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로는 전생이고 윤회이고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 중 그것을 보고 느껴본 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보았다.”
초음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대번에 분위기가 바뀐 듯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무엇인지 3번의 생을 살았던 자신을 보았다.”
초음은 뒷짐 지며 수풀을 걸었다.
“첫번째 생은 퍽 다사다난했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문파의 수도자로 살며 환선까지 승선해 탄탄대로의 길을 걷고 있었으나, 한 사내와 사랑에 빠져 수행을 멀리하다 죽었다.”
멈칫.
초아의 발걸음이 멎었다.
“수명이 다된 것이었지. 그래도 썩 나쁜 삶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아이는 없었으나 한결 같이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를 탐했으니 죽을 때가 되어도 후회는 없었다. 내가 선택한 삶이요, 혼자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초음은 주먹을 말아쥐며 음산한 기운을 내풍겼다.
“허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무엇이 착각입니까.”
“내가 애정을 준 상대는 날 탐하며 쌍수공법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난 놈과 몸을 섞으며 점점 노쇠해지고 수명이 깎이며 볼품 없는 여인이 되어가고 있었지.”
초음은 바로 어제 일처럼 노기를 드러내며 살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실소를 머금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생또한 비슷했다. 태선으로 올라 한 문파의 장로가 되었으나 다른 지역의 거대문파의 압력에 의해 팔려갈 수밖에 없었다.”
“팔려가다니요….”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지. 서로간의 관계를 위하고자 처녀였던 내가 거대문파의 장문에게 첩으로 팔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초아는 할말을 잃었다.
“혼인을 치른 날 밤. 이 또한 내 운명이라며 바보 같은 나는 차라리 잘됐다며 자위했으나 놈은 내 생각보다 더 음흉하며 추잡한 놈이었다.”
벌써부터 그 다음말은 듣고 싶지 않아졌다.
“알고 보니 놈은 특수한 체질이었던 날 취하기 위해 문파에 압력을 넣은 것이었고, 본파의 장문은 그것을 알면서도 문파를 위해 날 팔아넘긴 것이었다. 후에는 별 것 없었다.
놈의 노리개가 되어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능욕받다 자결했지.”
담담히 말하고 있는 모습이라서인지 오히려 더 측은지심이 들었다.
“세번째 생도 비슷했다. 어찌어찌 또 사랑에 빠졌고,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
참으로 기구한 삶이요, 박명한 운명이었다. 어찌 저런 전생을 보고 지선으로 승선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십생금어초는 독이자 약이다.”
초음은 그리 말하며 초아를 보았다.
“네가 살아온 길 또한 비범치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네 전생 또한 만만치 않을지도 모르지.”
기구한 팔자라면 그녀 또한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편이다.
혼아혈로 태어나 이 고생 저 고생을 다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지금만 해도 백혈귀수인줄 알았으나 백요보련(白搖寶蓮)의 핏줄이라며 초음선녀에게 잡혀있는 신세다.
강력한 금제로 인해 다른 이에게 말도 못 하는 신세다. 초음의 구속을 홀로 깨뜨릴 수도 없고, 잡아먹히기 전 살을 찌우려는 듯 지선으로 만들려고 하는 중인데 어찌 기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음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지아비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었으나, 혹여나 피해가 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다.
‘이정도도 알아서 하지 못한다면…’
그의 곁에 있을 자격도 없다.
자신은 진정한 신선.
선녀가 되어 그와 함께 불로장생하여 영원을 살아갈 것이니.
“두렵느냐?”
“….”
두렵기도, 궁금하기도 했다.
“흥, 본래 윤회와 운명이란 굴레는 돌고 도는 것이니 크게 바뀌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났음에도 그 굴레에 갇혀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것이 우리네 운명이란 것이지.”
지금과 크게 다른 삶은 아니었을 테니 꿈 깨라는 말이었다.
초아는 싱숭생숭한 낯으로 길을 거닐다 돌연 주위를 살폈다.
“이것입니까?”
“그런 것 같구나.”
기구한 팔자를 들으며 거닐다 보니 어느새 깊은 숲속으로 들어왔다.
숲에는 영롱한 꽃들이 자체적으로 비취색으로 발광하고 있어 픽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냈다.
허나 그 중에서도 유달리 크고 기괴한 꽃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사람보다 더 거대한 연꽃이었다.
연꽃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 봉오리 안에는 희미하게 무언가가 비쳐보였다.
“쯧.”
혀를 찬 초음이 손을 휘젓자 굳게 닫혀 있던 봉오리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열려졌다.
끼이이이이끼기기긱!!
마치 굳게 닫힌 철문을 비틀어 여는 듯한 소리였다.
한없이 보드라워 보이는 연꽃잎이 어찌 저런 쇳소리를 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저 단단함에는 보통의 수도자조차 열지 못하여 고배를 마실 듯 했다.
쩍!
이내 연꽃이 열리고 그 안에는 작은 꽃 한 송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은빛과 금빛이 오묘하게 섞여 있었으며 피어난 한 송이 한 송이가 꼭 용의 입을 닮았다 하여 이름붙여진 꽃.
금어초였다.
“역시나… 구생(九生)이구나.”
허나 안타깝게도 십생은 아니었다.
아홉 개의 꽃이 피어있고, 하나는 아직 피어나지 못한 봉오리였다.
열 개의 꽃이 활짝 피어야 비로소 십생금어초라 할 수 있거늘.
구생금어초이니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구생은 아니 됩니까.”
초아가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아홉은 신의 수이자 완전수에 가장 가까우니만큼, 가장 불안정한 숫자이지 않더냐. 열의 생을 취해도 어찌될지 모르는 것인데 저런 것을 취하면 딱 죽기 좋겠지.”
단호히 말하자 초아도 아쉬움에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멀리에서 금어초의 기운이 느껴지니 그쪽으로 가보자.
더 깊숙하게 들어가니만큼, 완전한 십생금어초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렇다면 다행이다.
안심하는 초아의 표정을 눈여겨 본 초음의 눈가가 가늘어졌으나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혹여나 건들 생각은 말아라.”
초음은 구생금어초에 손대려는 초아를 보며 경고했다.
“어째섭니까. 구생이라도 시간을 들여 키워본다면 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않습니까.”
“괜한 짓이다.”
초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초아 또한 서릿발 같은 눈으로 노려봤으나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가자.”
그녀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숲속으로 사라지고 한 시진 후.
가쁜 숨을 들이쉬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벌레 새끼들이 뭐 이렇게… 아휴.”
소녀는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요모조모 살폈다.
한참을 경계하던 소녀는 일각이 지나서야 안심했는지 바닥에 털썩 드러누워 숨을 골랐다.
그러다 문득 금빛과 은빛의 오묘한 색을 자아내는 꽃을 발견했다.
아홉의 꽃이 피었으나 나머지 하나는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
불완전한 아홉.
“흠….”
소녀는 꽃을 바라보았다.
풍기는 분위기나 색이 보통의 영초가 아님을 직감했다.
이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느낌상 대단한 무언가였다.
머리가 좋지는 않았으나 감은 나쁘지 않다 자부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느낌으로, 몸으로 익혀냈었던 그녀다.
“이거 설마 십생머시기인가 하는 그거 아냐? 육귀 놈이 말했던 그거… 아니 아홉 개니까 아닌가?”
소녀의 정체는 바로 구귀.
3계층에 떨어져 한참을 헤매고 도사 놈들에게 도망쳐 다니다가 겨우 한적한 곳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한데 이곳에 예사롭지 않은 영초가 있으니 달아나던 것도 잊은 채 무엇에 홀린 듯 멍하니 바라봤다.
“이쁘다.”
구귀는 금어초의 외양과 향기에 취한 듯 몽롱한 얼굴로 손을 댔다.
그때였다.
구귀의 손끝이 금어초에 닿았을 때.
찬란한 금빛이 터져 나왔다.
“엇!”
흠칫하며 물러서려던 구귀였으나 금어초에서 나온 오묘한 기운이 자신을 꽉 붙들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아아악!! 뭐, 뭐야!!”
이내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오고 구귀의 영기가 전신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뿜어져 나온 게 아니다.
끌려 나온 것이다.
금어초에 의해!
“이자식이…! 이거 놔!!”
기운을 끌어내 뿌리치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강체술을 익혀 강인해진 육체 또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의 파도에 휩싸여 이리저리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돼지새끼가! 감히 누굴 잡아먹으려고 하는 게야! 난 구귀다! 한낱 풀 따위에게 잡아먹힐 그릇이…!”
소리치던 것도 잠시.
구귀는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녀가 정신을 잃자 기다렸다는 듯 벌려졌던 연꽃이 다시 움직였다.
연꽃은 서서히 금어초를 지키듯 닫히기 시작했고, 연꽃 속에 떨어진 구귀는 몽롱한 잠에 빠진 듯 은은한 빛을 뿌리는 금어초 밑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연꽃이 완전히 닫히기 전.
금어초의 마지막 봉오리가 금은빛을 뿌리며 서서히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