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14)
낭선기환담-213화(214/600)
낭선기환담 – 213화
휘이이잉.
왠지 모르게 서늘한 바람이 산군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문득 뒤를 돌아본 그는 고개를 기울었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다 되셨습니까.”
“그래. 운이 좋았다.”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봉의 말대로 운이 좋았다.
설마 촉만이 네 개로 나뉘어진 깃털 조각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하나를 찾았으니 이제 나머지 둘만 찾으면 되는 겁니까?”
“그렇다.”
의외로 일이 순조로워 보였다.
허나 산군은 뭔가 애매한 낯으로 봉을 바라보았다.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네.’
봉이 제 조각들을 모두 찾아 완전한 하나의 깃털이 된다면. 그는 과연 어찌되는 걸까.
‘상계로 날아가려나.’
잠시 고민하던 그였으나 이내 고개를 털어버렸다.
‘아직 고민할 일은 아니지.’
그럴 시기도 아니다.
언제 충선의 선충이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시국이다.
지금은 우선 몸을 피해야 할 때.
잡념을 털어낸 산군은 바로 촉만의 궁장의 옷매무새를 수습하고 등의 혈을 눌러 뒷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영롱한 기운이 촉만의 몸으로 들어가자 그의 속눈썹이 부르르 떨었다.
“아….”
한마디 탄성을 내지르던 그는 몽롱한 얼굴로 산군을 보다가, 곁의 무표정한 봉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 하계의 불민한 후인이 상계의 선인을 뵙습니다!”
곧장 무릎을 꿇고 포권하는 게 아니던가. 산군은 자신도 저리 해야 하나 고민했으나, 그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봉이 답했다.
“예의가 바르군. 누구와는 달리.”
산군을 바라보는 봉이었으나 그는 애써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그만 출발합시다. 이곳에 있을 많은 보물들이 탐나기는 하지만 그것들 전부를 가지고 갈 수는 없을 터. 애초에 충선이 저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 몸을 사려야 할 때가 맞습니다.”
“그, 그것은 저도 동감하옵니다.”
촉만의 괴상한 말투에 산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가 말하고도 조금 이상했는지 난처한 얼굴이었다.
산군은 물끄러미 촉만을 바라보다 봉을 향해 말했다.
“봉, 당신은 충선을 상대할 수 있습니까?”
“이, 이놈! 무례한 언사다!”
“아 좀, 닥치시지요.”
“이런 개코 같은 게 어디 막말을 지껄이는 게야! 이, 이분은 네가 그리….”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거겠지.
저게 당연한 반응이요 마땅한 처사일지도 모르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지고 들 때가 아니기도 했다.
예를 보이는 것보다는 일단 살아남아야 하지 않던가.
방금만해도 충선의 선충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뻔 했으니 말이다.
“다신 안볼 사람처럼 사라지더니 살려달라며 도망쳐 온 게 누굽니까?
덕분에 저승 문턱까지 밟아보고 새로운 경험이라 아주 신선하여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염치라는 게 있었다면 입도 벙긋 못했을 텐데 말이지요.”
신랄하게 비꼬자 촉만은 할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해서, 어떻습니까. 당신도 상대하지 못한다면 저는 탈출 계획을 세울 것이고, 자신이 있다면 놈을 없애고 제 부탁도 하나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힘을 빌려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첫째는 3계층의 보물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초음선녀에게 붙잡혀 있는 초아를 구출해 내는 것.
어찌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그녀를 구할 수는 없지만 봉이 있다면 다르다.
봉황의 분혼이고, 분혼조가 갈라져 있는 조각이지만 그렇다 해도 그의 내력은 만만히 볼 수 없다.
그리 된다면야 금어초를 얻어 구귀의 기억을 되찾아주고, 골머리를 썩던 모든 일을 처리할 수도 있을 터.
“그건 힘들다.”
하지만 세상 일이 생각대로만 되던 때가 있었던가. 산군의 바람은 봉의 한마디로 인해 산산히 부서졌다.
“충선이 그렇게 강한 겁니까.”
산군의 질문에 봉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수선이지만 내가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 뭐가 문젭니까.”
그의 물음에도 봉은 침음성을 흘리기만 했는데, 잠시 기다리자 긴가민가한 얼굴로 답했다.
“충선 말고도 이곳에 존재하는 수선이 있는 듯하다. 교묘하게 기운을 숨기고 있어 몰랐으나, 내 조각을 찾아 흡수하니 느껴졌다.”
충선 하나라면 괜찮지만 다른 이가 있어 힘들다는 말이었다.
“수선? 그게 뭡니까?”
“수선(修仙). 자신을 갈고 닦으며 수행하여 더 높은 경지로 발돋움하려는 신선을 칭하는 명칭이지 무엇일까.”
아무튼.
“충선을 제외하고도 수선 하나가 더 있는 듯 하니 정면 승부를 거는 것은 옳지 않다. 애초에 지금 내 상태도 정상은 아니니… 지금 품은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아. 애초에 정상이었다면 네게 도움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 또한 그렇다.
아쉬움이 가득찼으나 어쩔 수 없다.
충선을 제외한 또 다른 수선.
그가 있기에 봉도 확실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리라.
“문제는 내 분혼 중 하나가 놈의 손에 들어간 듯 하다.”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싸움은 피할 수 없겠어.”
이맛살이 와락 찌푸려졌다.
상황이 굉장히 애매해졌다.
“깃털 조각이 다른 놈의 손에 들어갔다는 말입니까?”
“그래. 방금 전, 분혼을 흡수하며 깨달은 사실이다.”
산군의 낯이 이지러졌다.
‘봉은 놈들 중 하나와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분혼을 찾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자신은?
자신은 어찌해야 할까.
자신도 함께 싸워야 할까?
“내게 생각이 있다.”
그때, 돌연 봉이 진중한 낯으로 산군과 촉만을 불러 모았다.
“충선은 이곳에 엮여 있는 놈이니 어디라도 우리들을 쫓아와 죽이려 할 것이다. 그게 계약이고 그러기 위해 이곳에 묶인 놈이다.
그러니 너희는 날 도와 놈을 죽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 합니까.”
방금 자기 입으로 안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덫을 놓아야지.”
“덫?”
“넌 이 비동이 어떠한 연유로 인해 만들어진 곳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알았다면 진작 보물들을 가지고 달아났던지 들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런 위험한 곳인 줄 알았다면 발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 말하자 봉은 쓰게 웃으며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하나의 덫이며 사육장이며 또한 실험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큰 목적은 다른 것에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2계층에서 충선이 나타나 수도자들을 맹목적으로 죽이려 드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그렇지요.”
한데 그게 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리송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예?”
수도자들을 죽이는 이유.
“침입자를 죽이려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이었으나 봉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았나. 사육장이며 실험장이 바로 이곳이라고.”
“알기 쉽게 얘기해주십시오.”
“말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군. 천장에서부터 이어진 이 덩굴과 줄기들이 어찌 있겠느냐.”
“그 때문에 이처럼 초목이 푸르른 계층이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촉만이 말했다.
“바로 맞췄다. 그럼 다시 묻겠다. 고작 수도자들을 갈아 넣어 3계층의 자연 상태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그것도 충계의 충선을 이곳에 묶어두면서?”
봉의 물음에 산군과 촉만의 입이 벙어리처럼 꾹 다물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고작 그것을 위해?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이곳에 비동의 주인이 키우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지.”
* * *
“대체 어떤 놈인지 모르겠군.”
붉은 운무와 함께 대동하는 충선은 그리 중얼거리며 둔술을 펼쳤다.
그러자 곁에서 눈치 보던 예운이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3계층에 있는 놈들 중, 내 신경에 거슬리는 놈이 두 놈 있다. 하나는 그럭저럭 파악할 수 있으나 다른 하나는 대체 웬 놈인지 모르겠군.”
예운은 잘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냥 그러려니 하며 옅은 미소만 지었다. 이 상황 자체가 퍽 재미지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충선은 놈의 머리를 한 번 더 잘라볼까 고민하다 혀를 찼다.
“쯧, 대체 웬 놈인지 모르겠군. 삼만 년 전부터 이곳에 수선의 발길이 끊긴 지가 언제인데, 암묵적인 조약을 무시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뒷배가 확실한 놈인 건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같은 신선이라면 이야기를 잘 맞추면 되는 일 아닐는지요.”
“어리석은 소리다. 다른 때라면 모르겠으나….”
충선은 제 손에 있었던 깃털의 기운을 되새기며 말했다.
“천치가 아니고서야 이 정도 신물에 눈이 뒤집히지 않을 놈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면 상관없겠으나 만일, 봉황의 분혼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바로 알게 되겠지.”
* * *
3계층의 어느 숲속.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나뒹굴고 있는 수도자들의 시체들 사이로 한 사내와 여인이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인가.”
“제가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선사와 비슷한 오색의 기운을 쓰는 자를 익히 알고 있습니다.”
호오.
사내가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의 곁에는 하늘 높이 솟아있던 거검들이 지면에 내려 꽂혀 있었다.
그 밑으로는 수도자들의 육신이 나뒹굴었으나 누구도 그것을 신경쓰지는 않았다.
“놈은 하계의 십해만척귀 중 육귀에 속하는 자로, 푸른 화염과 자색 벼락. 그리고 오색의 기운과 수많은 검을 무구로 쓰는 자입니다.”
무릎 꿇고 공손히 답하자 눈앞의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를 바라보는 유정과 지솔은 등줄기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위압감과 기운에 절로 무릎이 땅을 끌어당기듯 붙었다.
‘하계의 인물이 아니다.’
지선이라도 이런 위압감을 뿜어낼 수는 없었다.
“기세등등한 놈들만 때려잡다 똘똘한 놈을 만나니 기분이 좋군. 쓸데 없는 살생을 저질러서 좋을 게 없으니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
허나 그의 말에 긴장을 푸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사내는 피식 웃고는 손을 휘저어 내리꽂힌 거검을 사라지게 만들고 성큼성큼 걸어 둘을 지나쳤다.
“따르거라. 놈이 이곳에 있다는 건 알고 있으나 용모파기를 모르니 네 놈이 직접 알려주어야 할 것이야.”
유정의 눈알이 스르륵 굴러갔다.
이내 입술이 둥그러지더니.
섬뜩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 * *
“이곳이다.”
초음선녀와 초아는 먼 길을 돌고 돌아 한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연꽃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주변은 둥그런 연잎이 가득이었다.
초음과 초아는 연잎을 밟아 날아가듯 연꽃으로 다가갔다.
연꽃은 이전의 구생금어초와는 다르게 닫혀 있지 않았다. 은은한 금은빛과 함께 활짝 만개한 연꽃 가운데에는 열 개의 꽃송이가 열려 있는 금어초가 피어 있었다.
“찾았다.”
십생 금어초.
그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금색과 은색의 조화로 빛나는 금어초는 가히 선초라 불릴 정도로 오묘하고도 신기한 모습이었다.
초아는 당장에 손을 뻗으려 했으나 초음이 그것을 막았다.
“함부로 손대지 마라. 선초를 아무 대비도 없이 만졌다가는 도리어 잡아먹히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신선초가 괜히 신선초라 불리는 게 아닌 건지, 엄하게 경고하는 초음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그때였다.
초아가 손을 거두려는 때.
쿠르르르륵.
소리와 함께 호수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초음과 초아가 눈을 마주치고 그와 동시에 한줌 한기로 변해 사라졌다.
촤자자작!!
그와 동시에 호수 밑에서 녹색 촉수다발이 창처럼 찔러 들어왔다.
하늘 위로 축지한 초음과 초아였으나, 안심할 수 없었다.
“성가신 것이 또 나왔군.”
초음이 혀를 차고, 소매를 펄럭이자 새하얀 사슬 여러 개가 뱀처럼 움직이며 촉수로 쇄도했다.
콰아앙!!
사슬과 촉수가 부딪쳤는데 지진이 나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비교적 가까이 있었던 탓에 초아가 여파에 휩쓸려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녹색 촉수를 그 적기를 놓치지 않았고, 여러 개의 촉수가 번개처럼 그녀를 향해 튀어나갔다.
수십 개의 촉수가 그녀의 복부와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피할 수 없어.’
보호 보패라도 꺼내려던 찰나.
초아는 느꼈다.
순간 공기가 조금 따뜻해진 것을.
화아아아아악!!
그리 느끼던 순간, 순식간에 눈앞에 푸른 화염이 치솟았고, 포근한 온기가 자신을 감쌌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나, 몇 백 년을 그리워했었던 포근함이요 온기였다.
초아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우수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적안의 사내.
산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