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15)
낭선기환담-214화(215/600)
낭선기환담 – 214화
파아아아아아!!
“당신이 말했던 게 이겁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초아를 안아든 산군은 솟구치는 물줄기들을 밟으며 물러났다.
“난리도 아니군.”
힐긋 그녀를 내려다봤으나 무어라 말을 걸지는 않았다.
초아 또한 오래간만에 만나는 지아비를 보고도 입을 꿰맨 듯 한마디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금제로군.’
허나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빛마저 숨길 수는 없었는지 습기 가득한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본다.
호수물이 튀어서 그런 것인지 그리움이 사무쳤던 것인지는 그 둘만이 알 수 있는 일이리라.
“초아 이년 뭣 하느냐!”
폭포수를 엎어놓은 듯한 광경 속에서 노쇠한 음성이 날카롭게 둘의 사이를 찔렀다.
산군의 눈이 차게 식고, 초아는 황급히 그를 밀쳐 떨어졌다.
“네놈은 누구냐.”
경계심 가득한 음성이다.
흰머리를 대충 묶어 비녀를 꽂아 두었고, 주름진 피부는 눈두덩이를 덮었으나 고약해 보이는 성질머리를 닮은 듯 인상 또한 사나웠다.
놈이 바로 빙궁에 몸담은 지선.
초음선녀이리라.
‘재밌네….’
적안이 번득이는 눈으로 초음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뭘 보고 웃는 게냐!”
호통 치자 산군은 입꼬리를 내리고 주변을 돌아보다 말했다.
“지금 통성명이나 할 시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찌 이놈을 깨웠는지는 몰라도… 살고 싶으면 서로 힘이라도 합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초음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해보았자 영겁 정도의 육사가 시건방지게 말하니 기분이 상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그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괜히 적을 늘릴 필요는 없지.’
어지간히 수상쩍은 놈이나 일단은 영겁보다는 연꽃 자체가 더 위협적인 게 사실.
“그리 자신하니 실력 좀 보아도 되겠나? 요새 귀왕들은 어중이떠중이가 많아 심히 염려되어 말이네!”
뜨끔한 사귀와 삼귀는 이를 갈고 합장하여 기운을 끌어 올렸다.
“쭈글쭈글해진 인간 노괴 주제에 감히 그 따위 말을 입에 담다니! 오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보여주지!”
삼귀와 사귀가 흥분했는지 한껏 비아냥거렸다. 초음이 지선의 영압을 드러내지 않아서인지 그녀의 경지를 확실히 모르는 모양이다.
본래 신식이 웬만큼 높지 않은 이상에야 저런 반응이 정상이긴 했다.
‘내가 조금 특이한 거지.’
곁에 있는 촉만 또한 실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그는 초음을 바라보며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촉만은 눈치를 챈 모양이다.
“하압!!”
사귀의 곁에 몽글몽글한 회색 운무가 솟아나 둥그런 은색 방패가 됐다. 그가 방패를 꺼내자 삼귀의 또 다른 머리가 순간 입을 열더니 날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는 창을 꺼냈다.
[괜찮겠는가.]봉이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되묻자 봉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듯 말했다.
[죽을 텐데.]그때였다.
촤아아아악!!
허공에 떠오른 연꽃의 촉수 중 수십 개가 단번에 뒤엉키더니 여섯 개의 거대 줄기로 변했다.
녹색 줄기는 단단하게 뒤엉켜 한눈에 보아도 그 경도가 보통의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알려주시지요.
[무엇을.]-저게 대체 무엇입니까.
[연꽃이지 않은가.]-절 바보로 아십니까. 연꽃이 움직이는 거야 그럴 수 있지요. 세상 만물 중에서 영성을 얻지 못할 것이 없으니까요. 허나 저놈이 그런 것들과 같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성을 얻었다면 필시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을 테니 어떠한 기운이든 풍겨야 하거늘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산군의 단령금정은 영기의 흐름을 보고 파악하며, 꿰뚫는 눈이다.
그런 그의 눈에도 한줌 기운 하나 비추어지지 않으니 의아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
-이걸 무어라고 해야 할지….
말하면서도 애매하다는 듯한 말투.
봉은 흥미롭다는 듯 차분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놈에게서는 아무런 감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살아있다기보다는 꼭 아무 것도 없는 놈 같다고 해야 하나….
분명 살아있음이 분명한데도 놈을 보노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흥! 별 것도 아니군!!”
쾅!
거창으로 연꽃의 촉수를 막아낸 삼귀는 곧장 그것을 튕겨내며 달려 들었다. 사귀 또한 예상보다 별 것 아닌 듯하여 방패를 들고 적극적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저 모습만 보노라면 지레 겁먹었던 게 아닌가 싶었으나, 산군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역시.’
산군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봉은 차분한 음성으로 답했다.
[그야 당연하지. 놈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리 느끼는 게 당연해.]-태어나지 않았다니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의 뜻이다.]태어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던 그였으나, 이내 상념은 깨어져버렸다.
꾸우웅!!
묘한 압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연꽃에게서 떨어지게!”
“모, 몸이 안 움직이네!”
사르륵.
거대한 연꽃은 꽃잎을 오므렸다 다시 활짝 피어났다. 꽃잎 사이로 은은한 분홍빛이 퍼져 나왔다.
“태어나지 않았다더니….”
그게 저 말이었나.
만개한 연꽃 사이로는 어느새 연분홍의 머리칼을 지닌 여인이 나타나 무료한 낯으로 주위를 살피었다.
흔치 않은 외양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잘 어울렸고, 하늘의 선녀가 아닐까 싶을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녀는 꽃잎으로 만든 듯한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녀를 보노라면 단박에 생각나는 것이 바로 연꽃이었다.
연꽃을 탈형시킨다면 저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화선(華仙)이다. 상계에서도 화선들은 좀처럼 보기가 쉽지 않다. 항상 다른 신선들에게 노려지는 팔자이니 더욱 그러하지.]“화선….”
그렇지 않을까 했으나 역시나 이곳의 연꽃 또한 신선이었다.
산군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충선까지 모자라 화선까지!
[물러나라!!]그때였다.
멍한 얼굴의 화선이 돌연 입을 모아 바람을 후- 불었다.
묘한 바람소리였다.
휘파람 소리 같기도, 동시에 웅얼거리는 노랫소리 같기도 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들어보고 싶어지는 묘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촤르륵!! 손목에 감겨 있던 탐화가 움직여 파리를 틀듯 그를 감쌌다.
콰아아앙!!
“윽!!”
탐화의 안에 있던 산군이 크나큰 충격에 얼굴을 구겼다.
“탐화!!”
휘리릭! 산군의 부름에 위주호연갑으로 변했다.
흑색갑주 한구석에 검상이 난 것처럼 깊게 패여 있자 산군은 심장이 떨어진 것처럼 철렁했다.
‘여태껏 그 무엇도 탐화의 몸에 이런 상처를 낸 적이 없었거늘….’
화선이 입으로 분 작은 바람 한 점이 한순간에 탐화를 상처 입힌 것이다. 이처럼 단단한 탐화도 이 정도인데 다른 이였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탐화, 괜찮느냐.
-아파….
쯧. 혀를 찬 산군은 곧장 수결을 맺고 법문을 외웠다.
돌연 그의 손에 푸른 기운이 넘실 거리자 상처 난 곳에 갑주를 어루만지니 스르륵 흠집 난 곳이 사라졌다.
“조금만 참아라.”
탐화를 살피고 주변을 돌아봤다.
허나 주변의 광경은 예상보다 더 처참했다.
그 광활하던 수풀을 거검으로 잘라버리기라도 했는지 반경 백리에 있던 나무들이 몽땅 잘려나갔다.
고작해야 휘파람 한번 분 것뿐인데 말이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같은 풀떼기인데 매정하네.”
태평한 말투와는 다르게 산군의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화선들은 좀처럼 볼 수 없으나 대부분이 그 어여쁜 미색 탓에 여러 놈들에게 노려지기 일쑤지.허나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 손속에 정이 없고 매섭기가 한겨울 찬바람과도 같으니 조심해야 함이 옳다.]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요.”
[어쩔 수 없다. 신선들 틈바구니에 끼어 살고 싶다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함이 옳다.]정말 자신을 살리려고 이러는 건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어째 봉의 말대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오리무중(五里霧中)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허나 그렇다고 내뺄 수도 없었다.
‘좋지 않군.’
허공의 한 방향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숨을 헐떡이는 초아와 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력이 조금 상한 듯 안색이 창백했으나 목숨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목숨에 지장이 있는 것은 초아가 아닌 삼귀였다. 삼귀는 몸이 이등분되어 상체만 남아 있었고, 사귀는 그나마 겨우 살아났으나 팔 한 짝이 잘려나가 있었다.
영수들이 제 아무리 머리만 남아도 살아남을 수는 있다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소용없는 일이다.
눈앞의 화선이 얌전히 도망치게 두겠는가? 그녀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파리 같은 존재가 바로 이곳에 있는 하계의 수도자들일 터.
당장에 죽임당해도 모자라지 않다.
“사, 사귀! 살려주게! 나, 나 좀!!”
삼귀가 잘려진 몸으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으나 사귀는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치다 숲속으로 달아났다.
일련의 상황이 순식간에 일어났으나 그 끝맺음 또한 한순간이었다.
화선이 연꽃으로 만든 듯한 소매를 들어 올리자 달아나던 사귀의 비명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선의 손아귀가 완전히 오므려졌다.
펑.
그러자 메아리치던 비명 또한 둔탁한 소음과 함께 딱 끊겨버렸다.
“…….”
죽은 것이다.
화선의 손짓 한번에!
“이, 이럴 수가….”
보고 있던 삼귀는 물론이요, 촉만과 산군까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막연하게 상대할 수 없는 존재라고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보다 더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영겁이다.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임에도 저리 허무하게 죽어나가자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산군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지면에서부터 올라와 그를 옭아매는 듯했다.
‘천양지보로도 안돼.’
일순간에 당할 것이다.
[초조해하지 마라. 초조함은 너를 잡아먹고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말은 쉽지.
마음이란 게 말처럼 그리 쉬웠다면 어찌 고민이란 걸 하고, 번뇌라는 걸 한단 말인가.
“대호 이놈! 왜, 왜 여기로 온 것 이냐! 안 그래도 죽을 둥 살 둥 바동대고 있는데 화, 화선이라니!!”
촉만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목소리가 점점 모기처럼 작아지는 걸 보니 그의 심정이 어떠한지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네가 오자고 하지 않았더냐!”
“전 그런 적 없습니다.”
오자고 한 건 봉이었지.
-화선 또한 이 비동에 속해있는 신선인 겁니까?
[맞다.]-그렇다면 충선처럼 우리를 죽이려 할 게 뻔한데 왜 온 겁니까.
지금만 해도 죽기 일보직전이다.
화선의 성격이 느긋한 건지 간을 보고 있는 건지 저 연꽃 위에서 발을 떼지 않고 있다.
괜히 움직이면 순식간에 당할 테니 발 한 자국 떼지도 못하는 상황.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그리 말하니 봉은 잠시 뜸을 들이다 소년의 모습으로 변해 나타났다.
“본래 자기와 비슷하거나 강한 것이 나타나면 경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경계심을 잘만 이용한다면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인생이다.”
산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슨 헛소린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뭔 개소립니까.”
“개소린지 아닌지는 모른다.
네 인연이 악연인지 선연인지조차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하늘을 쳐다보며 말하는 봉의 모습에 따라 고개를 들었을 때.
“왔다.”
산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런 미친!”
하늘에서는 열댓 개의 거검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