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21)
낭선기환담-220화(221/600)
낭선기환담 – 220화
“탐화야….”
산군은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화를 식히고 있었다. 탐화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상도 못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원천강이라는 게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았는데….’
유정과 지솔이 천년을 기약하고 돌아간 이유는 산군 때문이기도 했으나 원천강 때문이기도 했다.
산군이 원천강을 쉽게 녹여내지 못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
“근데 탐화가 먹어버렸네.”
그는 조금 고민하다 어깨를 으쓱했다. 아깝기는 하지만 솔직히 어떤 힘을 지닌 것인지도 산군은 잘 모른다.
탐화가 먹어서 이로워지는 거라면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탐화는 자신의 위주호연갑.
탐화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또한 강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탐화는 원천강을 삼켜버리고 다시 조용히 산군의 갑주로 변해 있었다.
대답도 없는 걸 보면 혼날 것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는 중이거나, 먹은 것을 소화시키려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너 다먹어라.”
어차피 탐화의 마지막 탈피를 내심 기대하던 중이었다.
어찌보면 딱 알맞은 시기다.
“원천강이 뭔지는 몰라도 놈들이 탐내던 것이니 대단한 거겠지 뭐.”
그때였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정인가.’
놈이 다시 온 건가 싶어 고개를 들어보았으나 아니었다.
“…어찌 네놈이 거기 있지?”
붉은 피부.
곤충의 날개를 지닌 사내.
충선이었다.
“그러는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분명히 수천만 리는 날려졌을 텐데.”
자못 긴장 어린 낯으로 묻자 충선이 픽 웃으며 답했다.
“어리석은 짓을 했다. 난 애초에 이곳에 묶여 있는 자다. 한데 인위적으로 날 날려 보내 봤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
자신이 모르는 강력한 금제로 이곳에 묶여 있는 듯 했다.
‘당춘 놈은 날려졌겠군.’
결계 밖으로 나간다 해도 충선과 화선 덕분에 무사히 나가기는 어려울 듯 했다.
“…원천강이 사라졌군.”
결계 안을 바라보는 충선의 눈빛은 의외로 담담했다.
“당신도 이 결계는 어쩌지 못하시나 봅니다.”
“이 결계는 해룡께서 직접 구동시킨 결계다. 그분의 피를 이었거나 그분과 같을 정도의 경지가 아니고서야 절대로 풀어낼 수 없지.”
충선이 그리 답하자 산군은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했다.
그가 결계를 파할 수 있었다면, 산군은 단번에 죽었을 것이다.
허나 결계를 없애지 못한다니 안심되면서도 정말로 천년을 갇혀 있어야 하는 건가 싶어 답답했다.
봉이 깨어나면 뭔가 방도가 있을 테지만, 언제 깨어날지 기약이 없으니 더욱 그랬다.
“살아만 남는다면 넌 정말 운이 좋은 놈이다.
우리 같은 수선들도 원천강을 얻으려면 목숨이 열개라도 부족한 임무를 완료해야만 하니까 말야.”
충선은 전과 달리 한결 편안한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임무?”
“신선들도 그 급이 있다.
저계 수선들은 원천강 같은 천지원기의 집성체를 만들어낼 능력도, 그만큼의 재력도 없으니 당연하지.
천지원기는 뭐 아무데나 널려 있는 줄 아느냐? 하늘이 내린 것이라고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라.
하늘 아래에는 자신이 하늘인 줄 아는 신선들이 널리고 널렸으니 연줄 없는 이들은 원천강은커녕 자신의 수행조차 맘 편히 할 수 없다.”
충선은 근처 기둥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로 산군은 질문하고, 충선은 답하는 형식이었다.
“나라도 무슨 죄를 지어서 이곳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주인 되시는 분과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22만 년간 이곳을 지키면 수행에 필요한 단약과 공법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 천지원기가 가득한 수행지를 이양(移讓)받기로 했기 때문이지.”
“22만년?!”
“참고 견디다 보면 눈 깜짝할 세월이지. 본래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니.”
담담히 말하는 그와는 달리 산군은 어이가 없어 혀를 내둘렀다.
자신은 천년을 갇혀 지낼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충선은 자신의 뜻으로 22만 년간 갇힌 꼴이 아닌가.
이거 참 무어라 해야 할지.
세월의 흐름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산군에게 백년쯤이 별 것 아니듯, 그 또한 그러한 것이리라.
“한데 제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어도 상관없습니까?”
“상관없다. 비밀도 아니고….”
충선은 산군을 위 아래로 훑어보다 말을 이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니.”
“…제가 왜 죽습니까.”
“그럼 어찌 살 것이냐. 네가 그곳에서 자력으로 나올 수 있을까? 봉황의 분혼이 있다고는 해도 불가하다.”
결계는 오직 해룡의 피를 이은 자.
또는 해룡과 같은 급의 신선만이 이것을 파훼할 수 있다.
“봉황의 본체라면 모를까 분혼으로는 어림도 없지. 네가 원천강으로 열심히 수행한다 해도 결계를 부수기란 요원하다는 소리다.”
머리통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했다.
“천지원기가 일제히 모이는 곳이니 수행하기는 좋을 거다.
하지만 그러해서 무엇 할까, 신선이 된다 해도 결계 하나 부수지 못해 영원히 갇혀 지내게 될 것을.”
생각해보니 그러했다.
천년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이곳에 갇혀 지내게 될 수도 있다.
‘신선은 영원한 삶을 지속하니….’
영원토록 고통 받을 수도 있는 것!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치는 마라. 같은 신세이니 내가 말동무는 되어주지. 그리고 그리 긴 세월도 아닐 거다. 주인이 오신다면 바로 죽을 테니.”
심드렁하게 말하는 어투와는 달리 그 의미가 살벌하기 그지없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구나.
등선하기도 전에 신선에게 죽을 날만 기다리는 놈은 네가 처음일 거다. 하하!”
별로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 말대로다.
‘깨어나셨습니까?’
봉이 깨어났다.
산군은 허겁지겁 그에게 물었다.
‘놈이 한 말이 사실인지요.’
-현재로서는 그렇지.
그렇다면 어째서 이곳으로 용혈을 뚫었단 말인가!!
-본래 원천강을 내가 흡수하여 천 년 정도 힘을 끌어올려 탈출할 생각이었으나 어렵게 됐다.
원천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라졌다기보다는 탐화가 먹어치워 버려서 그런 것이지만.
‘그럼 정말로 나갈 방도가 없어졌다는 겁니까?’
-머리를 좀 식혀라. 흥분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거니와 좋게 끝날 일도 안 좋게 끝내게 하는 것이 흥분이다.
넌 이곳을 나가면 제일 급선무로 해야 할 것이 네 안에 섞인 것들을 하나로 다스리는 것일 게야.
틀린 소리는 하나도 없었으나 지금은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방법이 있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하늘 아래 우연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필연뿐.
그러니 성급할 것은 없다.
네 과거가 널 살릴 것이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말하려던 산군이 흠칫 말을 멈추고 고개를 내렸다.
“탐화?”
위주호연갑.
산군을 감싸는 탐화의 갑주가 쩌적, 쩌저적 갈라지고 있었다.
화들짝 놀랐으나 이내 세 번째 탈피를 하는 것이라 깨달았다.
“…조금 이상한데.”
근데 조금 이상했다.
영충에게 세 번째 탈피란, 영겁의 진수명화와 같다. 그런고로 탈형을 이루게 되는데, 탈형을 이루는 필수 조건이라는 천겁.
천겁의 조짐이 일어나지 않는다.
천겁이란 말 그대로 하늘의 겁.
하늘의 법칙. 천칙인 것이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물릴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천겁.
하늘의 시험이자, 시련인데 이상하게도 천겁의 조짐이 없었다.
천지영기가 모여들어 영자로 변환되지도 않았고, 먹구름이 몰려들어 천뢰가 생성되지도 않았다.
그저 표면에 균열이 생기고 실낱 같은 기운만 뿜어지고 있었다.
작은 숨결처럼 들이쉬고 내쉬는 듯한 기운만이 느껴졌다.
‘원천강 때문에 뭔가….’
잘못되었을까?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탐화는 본래 탐의 후손인 탐화오공.
그런 탐화의 태생 덕에 원천강도 무리 없이 소화해낼 것이라 믿었으나 아무래도 뭔가 잘못되는 것 같았다. 산군은 자신이 무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갑주의 균열에서 오묘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가만 놔둬도 된다.
‘어째섭니까.’
-그게 순리니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더 무어라 말하려는 때.
쨍그랑!
소리와 함께 탐화의 갑주가 터져 나가고 산산조각 나 땅으로 떨어졌다.
“탐화!!”
산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위주호연갑은 탐화 그 자체다.
그런 갑주가 유리조각처럼 깨져버렸으니 산군은 심장이 뚝 떨어진 것처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봉의 말이 아니었다면 흥분을 감추지 못했으리라.
-원천강은 천지원기의 집성체이다. 자그마치 몇 만 년이나 되는 천지원기이며 그것을 모이게 한 것이 수도자들의 혼이요, 정기다.
본래 평범한 영충이었다면 먹은 즉시 몸이 버티지 못했을 것이나… 운이 좋았다. 첫째는 흐리긴 하지만 탐의 피를 이은 탓이요, 둘째는 네놈이 잘 먹여 키운 탓이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산군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다 물었다.
“그래서 지금… 탐화가 살아있기는 한 겁니까?”
-보면 알지 않느냐.
후우웅!!
거친 바람이 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지하의 공동이었으며, 강력한 결계 안이다.
한데도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잘게 조각난 탐화의 조각을 쓸어 담듯 날려 보냈다.
아니, 어루만졌다는 표현이 맞다.
바람은 탐화의 조각들을 한데 모으자 조각들은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톱만한 조각들에서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실들이 뿜어져 나왔고, 실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뿜어지는 실들은 금빛으로 이루어져 있어 은은히 빛나 아름다웠다.
뿜어진 실들은 순식간에 금빛 고치를 이루었고, 금빛 고치는 점점 그 크기를 배로 키우기 시작했다.
고치로 변한 탐화의 모습을 보노라면 진수명화가 맞는 듯했다.
하지만 진수명화가 이루어진다면 분명 탈형을 이루어야 하는 천겁이 치러질 텐데 아무 변화가 없이 조용한 게 의아했다.
그렇기에 그는 물었다.
“진수명화가 아닌 겁니까?”
-아니다.
“그럼 대체 무엇입니까.”
-…신선이 되어가는 거다.
이내 금빛 고치가 선명한 금빛을 흩뿌리며 사방을 비추기 시작했다.
고치의 크기는 점점 더 커졌으며, 결계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온 사방을 금빛으로 물들였을 때.
투둑.
고치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 *
찬저동을 나온 유정과 지솔은 금빛 고리가 사방에 수놓아져 있는 곳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그 위험한 곳을 나왔음에도 유정과 지솔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유정은 제 원수를 보고도 어쩌지 못한 제 처지에 음울했고, 지솔은 고대하던 원천강을 눈앞에 두고도 그냥 놓고 올 수 밖에 없어 그러했다.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상황이 그러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원천강이 어디 발이 달려 도망갈 것도 아니고, 육귀 또한 달아나지 못할 테니 안심이라면 안심이었다.
“아직 이틀이 남았는데 어쩌시겠습니까.”
이곳을 나갈 거냐 묻는 거였다.
찬저동 말고도 찾아보면 숨겨져 있는 기연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요. 전 돌아가겠습니다.”
하지만 지솔은 진절머리가 나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정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깊이 수긍하며 허공에 떠 있는 금빛 고리 앞으로 다가갔다.
천년 뒤에 다시금 와야 하는 곳이니만큼 마지막으로 금환선향을 돌아본 뒤 떠나려는 찰나.
콰아아아아아앙!!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묘한 파장이 퍼져 나왔다.
“뭐….”
뭔가 하고 보니 찬저동으로 향한 입구에서 길고 거대한 무언가가 암 석을 뚫고 나와 굉음을 터트렸다.
“지네? 아니… 지네라기보다는….”
지네의 갑주를 지녔으나, 생김새가 지네와는 천양지차였다.
머리에는 더듬이도 달려 있고, 뿔도 돋아 있어 용의 모습을 닮았다.
“오룡(蜈龍)인 듯합니다.”
“오룡이요? 저것이?”
“오룡 자체가 지네가 용이 됐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다를 것 없지요.”
“전설 속의 오룡을 다 보게 되다니 이번 여정이 실패만은 아니었네요.”
“근데… 오룡 위에 있는 저건….”
유정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내 지솔도 오룡의 머리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보고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둘은 이내 크게 놀랐다.
“이럴 수가!!”
오룡의 머리 위에는 얼떨떨한 낯의 산군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