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22)
낭선기환담-221화(222/600)
낭선기환담 – 221화
어안이 벙벙했다.
뜬금없이 뭔가에 휩쓸린다 싶었더니 거대한 폭발과 함께 순식간에 비동 밖으로 나오게 됐다.
떠돌아다니던 많은 도사들이 일제히 자신과 탐화를 바라보니 얼떨떨하기 그지없었다.
“겨, 결계는 어찌 된 겁니까?”
“부서졌지.”
“신선이라도 해제할 수 없을 결계 아니었습니까? 해룡의 피를 이은 자가 아니고서야 절대로….”
“그건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군.”
“네? 제가 알기는 아, 설마….”
동해에 있던 시절.
탐화는 그곳에 있던 고룡들 대부분을 집어삼킨 전적이 있다.
그리고
‘해룡족 장로 지충!’
지충의 육신 또한 먹어치웠다.
자연스레 차곡차곡 탐화의 몸 속에 해룡의 피가 섞이게 된 것이다.
“운이 좋았다. 원천강을 비교적 좋게 흡수한 듯하다.
이제는 수선의 반열에 올랐으니 어찌하기는 저 하기에 달려 있겠지.”
산군은 수선으로 변한 탐화를 보며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흘러 보냈다.
자신보다 먼저 신(神)이 되어버린 복충인 탐화.
[너의 과거가 너를 살릴 것이다.]무슨 헛소린가 했더니 탐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본래 탐화는 삼귀가 지니고 있던 것을 빼앗아 정혈로 주인의식을 치러 키워냈던 영충이다.
한데 이제는 신이 되었으니 자신이 걸어둔 금제도 깨져버렸다.
탐화는 이제 자신의 복충이 아니다.
완전히 독립적인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원섭섭한 감정이 일기도 했으며 동시에 긴장되기도 했다.
구박하지는 않았으나 그리 잘해준 기억도 없다.
금제의 영향에서 벗어나 이제는 상계의 존재가 되었으니 탐화가 산군을 어찌 대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내려야 되나.’
이제는 탐화의 주인도 아니다.
수선의 머리 위에 계속 타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어째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했다.
영 모양 빠지는 모습이다.
윙윙윙윙윙!
돌연 곤충의 날갯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벌써 왔군.”
삼백 장이 넘는 탐화의 거대한 크기에도 지지 않을 규모의 붉은 운무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다.
비동을 나왔다고는 하나 아직 이곳에는 충선도, 화선도 있다.
‘당춘도 어딘가에 있을 테지.’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이들이 한가득이었다. 호리는 물론이요, 초아와 촉만의 얼굴이 드리웠다.
다른 이들이라면 홀로 알아서 하겠으나 그놈만은 그렇지 않으니 발걸음이 쉬이 떼어지지 않았다.
‘검둥이 놈은 어딜 갔는지….’
놈이 제일 걱정이었다.
* * *
같은 시각.
찬저동의 1계층에는 밤하늘을 수놓은 듯 수많은 운철들이 천장에 별처럼 내걸려 있었다.
은하수와도 같은 천장 아래에는 여인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는데 백의를 입은 노파와 백발의 여인, 그리고 꼬리가 아홉 구미호였다.
“어찌 제 앞길을 막으십니까.”
초음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대의 경지는 자신과 같은 지선급.
짐승의 흔적이 보이는 탈형의 모습이니 아마도 영원 육사인 듯 했다.
허나 구미호는 가슴이 먹먹해질 것만 같은 눈빛으로 초아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습기 가득한 그녀의 눈망울이 정처없이 흔들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애간장을 태울 정도로 서글픈 눈.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초음의 얼굴은 점차 구겨지기만 했다.
겨우겨우 신선들에게 벗어나 탈출하고 있었는데, 돌연 구미호가 나타나 자신의 앞길을 막으니 당연했다.
왜 그러냐 물어도 입도 벙긋 안 하고 무시하니 왜 안 그렇겠는가.
땅 위의 신선이라 불리는 지선이다.
이런 취급을 받고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초음이 아니었다.
“용건이 없다면 가보도록 하지요. 피차 시간 낭비는 지양하는 편이 서로 간에 좋지 않겠습니까?”
구미호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스윽.
초음의 뺨에 무언가가 닿았다.
움찔하며 몸을 멈춘 초음의 눈초리가 단번에 매섭게 변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가 살얼음판처럼 변하며 진한 한기가 피어 올랐다. 어느새 초음의 주변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는 실들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전신이 난자당해 죽을 수 있는 흑실이었다.
“지금이라도 사과한다면 그냥 보내 드리지요. 이곳에는 상계의 신선들 또한 자리하고 있으니 우리 같은 이들이 소란 피워 좋을 게 없습니다.”
허나 구미호는 무표정한 낯으로 손가락을 구부려 설치되어 있는 실을 툭 튕겼다.
대앵.
소리와 함께 수백 개의 실들이 동시에 거친 진동을 일으키며 각기다른 소음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사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기묘한 소음이었다.
“귀를 막아라! 음공이다!”
멀찍히 떨어져 있던 초아가 귀를 막았으나 구미호는 옅게 미소 지었다.
우우우우웅!
실의 진동이 갈수록 거세지고 잔상까지 일어나기 시작했다.
초음은 단숨에 축지로 빠져나가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무슨!”
공간을 넘을 수 없었다.
묘한 진동과 음공으로 인해 축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초음의 이맛살이 와락 찌푸려졌다.
“같잖은 수를!”
초음이 자신의 혀를 깨물어 정혈을 뿜었다.
펑!
소리와 함께 새하얀 한기가 사방으로 퍼지다 허공으로 모여들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초음이었으나 정혈을 소비한 탓인지 안색이 썩 좋지 못했다.
“먼저 공격했으니 죽어도 원망은 마십시다!”
초음은 화가 단단히 났는지 소매 속에서 접선 하나를 꺼내 휘둘렀다.
그러자 접선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광풍이 몰아쳤다.
후우우웅!!
그와 동시에 풍경이 뒤바뀌고 어느새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 한가운데에 자리하게 되었다.
구미호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통 속을 모르겠는 얼굴이로다.”
초음은 혀를 쯧 차며 다시 한번 접선을 펼쳐 휘둘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구미호의 지면에서 얼음 기둥들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그녀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기둥의 끝은 고드름처럼 날카로워 말뚝이나 다름없었다.
구미호는 날듯이 뛰어 기둥들을 피하고는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소매 속에서 얇은 철사 수 백 개가 튀어나왔는데 그 많은 철사들이 어찌 소매속에서 튀어나오는지 보고도 신기할 정도였다.
슈슈슉!
허나 초음은 콧방귀를 끼며 가볍게 피했고, 이내 합장하여 법문을 외웠다. 마치 불경 외우는 소리처럼 고요했으나 묵직하게 널리 퍼졌다.
쿠우우웅!!
초음의 등 뒤에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얼음인줄 알았으나 그 안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 엿보였다.
쩌적.
쩌저적 콰앙!!
얼음은 단번에 깨져나가고 그 안에 웅크리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초음의 법상허상(法像虛像)이었다.
그녀의 법상허상은 여섯 개의 팔과 함께 하나의 머리와 셋의 얼굴을 지닌 여인상이었다.
법상허상은 여섯의 손을 합장하여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러자 눈부신 광채가 등 뒤에 나타나며 둥그런 광원이 생겨 만물을 비추듯 번쩍이는 게 아닌가!
얼음으로 이루어진 법상이라 등 뒤의 광원이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네년이 어디에 누구인지는 몰라 감히 나 초음선녀의 화를 불렀으니 그 몸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호기롭게 소리친 초음이 수결을 바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자 법상허상의 손들도 수결을 바꿔들었다.
여섯 개의 손앞에는 새하얀 기운이 뭉쳐들었고, 이내 우윳빛 거울이 나타나 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죽어라!”
콰아아아아아!!
거울에서 터져 나온 광선이 구미호를 덮쳐들었다.
설산마저 붕괴시켜버리는 강력한 광선에는 구미호도 어쩔 수 없는지 무표정이 깨져 아미를 찡그렸다.
초음의 입꼬리가 양껏 올라갔다.
‘제 까짓게 까불어 봤자지!’
구미호는 금신통 육사였는지 새까만 사철을 다루어 방패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초음이 만들어낸 광선은 단번에 구미호의 방패를 부숴버렸고, 광선에 직격당한 구미호는 대찬 비명을 지르며 삽시에 소멸해 버렸다.
“뭐 이런 싱거운 년을 다 봤나.”
먼저 시비를 건 것치고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말로였다.
별 것도 아닌게 시비를 걸어대다 죽어버렸으니 더욱 그랬다.
“뭔지는 몰라도 영원으로 올라선 지 얼마 안 된 애송이 주제에 까부니 저리 죽는 게지. 진수명화하여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 착각했나 보지? 어리석은 것 같으니라고.”
초음은 쯧쯧 혀를 차고는 기운을 갈무리했다.
휘잉….
설산이었던 풍경은 사라지고 본래의 공동이 나타나 운철이 반짝였다.
초음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한 낯으로 초아를 보며 말했다.
“갈 길이 바쁘다. 어서 가자꾸나.”
허나 그녀의 말에도 초아는 귀신을 보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어서 가자니까 뭣 하느냐.”
초아는 한참이나 초음을 바라보다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당신… 죽게 생겼네요.”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초음은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이년! 지금 농지거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언제 신선이 나타날지 모르는 판국에 그런 장난질을 할 때라 보느냐!”
허나 그녀의 불호령에도 초아는 고소하다는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 처지나 보고 말하세요. 너무 오래 살아서 노망이 나셨나 봅니다.”
“그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그때였다.
대앵… 소리와 함께 초음의 눈이 번쩍 떠졌다.
“헛!! 이,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자신의 눈앞에는 죽어 사라졌던 구미호가 멀쩡히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녀의 철사에 의해 묶여져 옴짝달싹하지 못해 볼이라도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
“언제부터!!”
피를 토하듯 뱉어내는 물음에도 구미호는 담담히 답했다.
“눈이 마주친 그때부터.”
구미호의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미혼술!!”
지선을 속일 정도의 미혼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계 도사들이나 당하는 미혼술을 지선인 자신이 당할 줄이야!!
적잖이 당황했으나 초음은 이내 침착함을 유지했다.
지선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고 겪어 왔던가.
괜히 수천 살을 살아온 게 아니다.
초음은 아깝다는 듯 초아를 바라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초음은 곧장 혀를 씹어 정혈을 뿜어냈다. 혀에서 뿜어진 정혈은 순식간에 피안개를 만들어냈다.
“어딜.”
허나 그 꼴을 두고 볼 리 없었다.
구미호는 곧장 실 한 올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대앵-
소리와 함께 신묘한 진동이 얽히 고설켜 공동을 거칠게 흔들었다.
허나 구미호는 쯧 혀를 차고는 손을 휘저어 피안개를 날려버렸다.
“달아났군.”
순식간에 도망가 버렸다.
정혈을 이용한 둔술은 기묘하기가 이를 데 없어 혈둔술을 익힌 자를 죽이기는 극히 어려웠다.
그 순간에 오랜 수행으로 쌓아온 정혈을 뱉어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역시 천년을 넘게 살아온 노괴.
판단력이 게 눈 감추듯 재빨랐다.
“허나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그녀는 비소를 머금으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초아를 힐긋 바라봤다.
* * *
피안개로 변해 달아난 초음은 순식간에 비동을 벗어났다.
“이상하군, 호족과는 악연을 맺은 기억이 없는데 어째서….”
그녀의 안색은 정혈을 소비한 덕에 영력을 일부 잃었고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품을 뒤져 약병 하나를 꺼내 단약을 꿀꺽 삼키고 나서야 안색이 조금 나아졌으나 응급조치일 뿐이다.
‘적당한 곳을 찾아 정양하지 않으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겠어.’
초아도 두고 왔다.
살아남는다면 좋겠으나 구미호가 가만 놔뒀을 리는 없을 터.
콰아아앙!!
“윽!”
경천동지할 폭음과 함께 강렬한 돌풍이 사방에 몰아쳤다.
지선인 초음도 휘말릴 정도로 강력한 광풍이었다.
겨우 허공에서 중심을 잡은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놀랐다.
“오, 오룡이 아닌가, 저건!”
그리고 곁에는 붉은 운무가 함께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필시 충선이리라.
바로 몸을 내빼려던 그녀는 오룡의 머리 위에 있는 인영을 보고 눈가를 가늘게 떴다.
“흐음….”
참 신기한 놈이다.
어찌 신선들과 연이 저리도 많을까.
‘그러고 보니 초아와 저놈 사이에 뭔가가 있어 보이긴 했지.’
생전 처음 보는 여인을 구할 정도로 착해 보이는 놈도 아니었다.
필시 뭔가가 있을 터.
흠칫.
초음이 급히 뒤를 돌아봤다.
“끈질기긴….”
검은 빛줄기는 예의 구미호.
초음은 육귀와 다가오는 구미호를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구미호가 초아를 죽였다 하면 어떻게든 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