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28)
낭선기환담-227화(228/600)
낭선기환담 – 227화
“유무간(有無間)이라니… 설마 제가 알고 있는 그 유무간이 맞습니까?”
“맞다.”
이내 초아의 낯이 찌푸려졌다.
공간과 공간 사이의 공간.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무저갱이 바로 유무간이라는 곳이다.
“정말로 실존했었다니….”
수도자들에게는 전설로만 전해지는 공간이다.
많은 이들이 이 공간에 갇혀 죽었다는 이야기는 여럿 들어보았다.
온갖 흉수들이 자리하고 있고, 칠흑 같은 어둠과 먹구름이 공존하는 곳.
영력을 사용하면 오히려 영력에 반서 당해 전신이 고통스러운 통증을 동반하는 괴상한 곳이다.
“정말로 그곳에 가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어. 날 노리는 놈은 아직 금환선향 내에 있고, 곧 날 찾으러 오겠지. 하계로 간다면 놈을 막을 방도가 없으나….”
“유무간은 다른가 보네요.”
“그렇지.”
유무간은 들어가는 방법도 알려진 바가 없으나 그곳을 나가는 법은 더 힘들다 들었다. 게다가 영기는 한줌도 없는 곳이고, 그와 반대로 온갖 기괴한 생물들과 이상 기후들로 목숨을 잃기 쉬운 곳이 바로 유무간.
곡공삼각주와 흡사한 곳이지만 이곳은 애초에 급이 다른 곳이다.
‘그러고 보니 탐과 온갖 흉수들이 태어난 곳이 유무간이라 들었는데….’
웬만큼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발 딛고 싶지 않은 곳이다.
“걱정할 것 없다. 우리들에게는 저승이나 다름 없는 곳이겠으나, 봉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초아를 향해 말하자 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틀린 소리는 아니지. 영기는 없어도 천지원기는 가득한 곳이니 신선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그들도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 바로 유무간이지만 말이야.”
“그럼 저희도 위험한 게 아닌지….”
그렇지 않게 만드는 것이 지금 봉의 역할이지 않겠는가.
봉은 조금 불편한 기색으로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자신이 힘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보니 조금 부담스러운 모양.
안 그래도 온전치 않은 몸이다.
갈라진 분혼을 하나로 모으지도 못했는데 어찌 힘을 쓰기를 원할까.
최후의 최후까지 힘을 보존하고 아끼는 것이 그가 원하는 방향일 터.
‘그건 안 되지.’
허나 그리해서는 영원토록 당춘에게 벗어날 수 없다.
금환선향도 안전하지 않고, 하계도 안전하지 않으니 산군이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유무간밖에 없다.
‘유정 놈도 유무간에서 살아 돌아왔던 전적이 있다.’
그렇다면 자신도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놈이 할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상계의 신수인 봉까지 함께하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랴.
오히려 유무간으로 당춘을 끌어들여 가둘 수만 있다면….
‘만일 놈이 죽는다면 수고를 덜게 된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 수천 년은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자신은 수행에 매진하여 힘을 기를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그 방법 말고는 당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 와 만났는데 또 헤어질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산군은 한층 현숙해진 초아를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굳혔다.
당춘이 자신을 노리는 지금.
초아와 함께하는 것은 둘 모두 위험했으나 이제 겨우 만났는데 다시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 생각하며 바라보자 초아도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긋 미소 지으며 산군의 손을 깍지 꼈다.
“그러고 보니 봉의 마지막 분혼은 하계에 있다고 하셨나요?”
“그렇다. 하계에서 내 분혼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니까.”
“그럼 제 도움이 필요하시겠군요. 봉께서 하계로 내려간다면 천칙의 압박에 제대로 힘을 쓸 수도 없으니.”
“크흠….”
안타깝게도 그 말은 사실이다.
봉과 탐화는 상계의 존재.
하계에서는 천칙의 압박에 의해 제대로 된 힘을 부릴 수조차 없다.
본래는 하계로 당도하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일인 것이다.
“제 도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그건….”
* * *
한편.
부서져 내린 암석들 사이로는 녹음진 머리칼이 언뜻 내비쳤다.
“이곳입니다!!”
허름한 복장의 도사 하나가 그리 소리치자 다른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모양의 문양이 내걸린 도포를 입고 있었다.
촉산이라고 적힌 문양이었다.
그들은 재빨리 암석들을 치워내고 한 여인을 구해냈는데, 그녀는 산군과 함께 했었던 촉산의 대사부.
촉만이었다.
“어떠신가.”
한 도사가 묻자 그녀의 맥을 검진 하던 도사가 미간을 좁혔다.
“기운이 많이 쇠하셨습니다. 안색이 새하얗고, 입술이 보랏빛인 것을 보니 정혈을 잃으신 듯합니다.”
“이런! 어서 조취를 취하지 않으면 대사부님이 쌓으신 수행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어.”
“맞습니다. 다행히 이번 여정에서 촉산이 챙긴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 귀물들과 영초들을 사용해 대사부님을 치료하고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때였다.
“으으….”
“대사부님!”
촉만이 눈을 떴다.
곧장 일어나려 했으나 머리가 핑 돌아 다시 쓰러졌다.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이곳은 어디냐.”
“금환선향 내의 한 부유섬입니다.”
“금환선향… 아… 그렇구나.”
촉만은 힘 없는 낯으로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보다 물었다.
“근데 저건 무엇이냐.”
“예?”
하늘에서는 거대한 거검 열댓 개가 대기를 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어억!”
거검이 뿜어대는 압력에 의해 도사들이 모두 철푸덕 쓰러졌다.
무릎을 꿇어 간신히 버텨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많지 않았다.
촉만은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수결을 맺어 녹색 장막을 펼쳐냈다.
“푸억!”
핏물을 뱉어낸 그녀는 촉산의 제자들을 모두 감쌌다.
“대, 대사부님!!”
“그만 멈춰주십시오! 그러다가는 영면에 드실 수도 있으십니다!”
허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촉산의 제자들은 어떻게든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함께 수결을 맺어 기운을 발산했으나 녹록치 않았다.
촉만은 거검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야 피를 한거푸 토했다.
그리고 다시 쓰러져 하늘 위의 거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놈아… 도망가라.”
* * *
흠칫.
“왜 그러세요?”
초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잊어버리고 싱긋 미소 지었다.
“이곳입니까?”
“그래. 이전에 용혈을 열었을 때 공간균열을 찾아냈었다. 그 틈을 이용해 유무간의 통로를 찾아내면 된다.”
이곳은 금환선향 내의 공간.
그 중에서도 공간이 제일 불안정하고 금환의 균열이 제일 많은 곳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크기가 맞지 않으면 몸이 동강날 수도 있는 위험한 곳.
평범한 이들이었다면 이곳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위험을 느끼고 천천히 움직였겠으나 산군은 그렇지 않았다.
거침없이 움직이며 재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봉이 알려주는 대로 날아갈 뿐이니 거칠 게 없었다.
“네 말대로다. 하계로 간다면 나는 물론, 탐화도 마음 놓고 힘을 쓰지 못한다. 하계의 존재가 아니기에 천칙에 의해 압력을 받게 되는 게지.
이제 막 수선이 된 탐화라면 천칙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산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탐화는 이제 하계의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상계의 수선인 것이다.
함부로 하계로 향할 수도 없고, 향한다면 하늘의 법칙에 의해 제 기운을 드러낼 수 없다.
탐화는 산군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듯 했으나 진정으로 위한다면 상계로 올려 보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 당춘은 어찌….”
“당춘 또한 마찬가지겠으나 필시 계면의 압력을 버려주는 보물을 지니고 있을 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난리를 치며 나다닐 수 없지.”
하계에서는 오색거검이라 불리며 마도 놈들을 쓸어버리던 놈이다.
상계의 존재가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의아했는데, 그와 관련된 보물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 보물, 봉은 없습니까?”
“알면서도 묻는구나. 내가 그런 게 있었다면 네 도움을 바라지도 않지.”
하긴, 그것도 그렇다.
“기왕 이렇게 된 김이다.
네가 나의 봉악청화를 계승했고, 나 또한 네 도움이 필요하니 이참에 유무간에 들어서 네 수행을 조금 봐 주어야겠다.”
“수행이요?”
산군의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눈썹을 끌어 올려 반문했다.
“허나 유무간은 영력을 사용하면 몸이 망가진다고 들었습니다.
수도자는 영력을 사용하면 번개에 맞은 듯한 고통이 동반되어 죽게 된다고….”
그러자 봉이 쿡쿡 웃었다.
“내 말하지 않았느냐. 유무간은 나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보이는 자에게는 보일 것이요, 보이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곳이 유무간이다.”
또 시작이다.
항상 저런 알쏭달쏭한 말로 자신을 괴롭게 하는 취미라도 있는 걸까.
“유무간은 천지영기가 없어 수도자들에게는 독이겠으나, 그와 반대로 천지원기는 엄청나 수선들에게는 바라마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전 수도자입니다. 이곳에서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아무리 천지원기가 많다고는 하나 지금의 산군에게는 무용지물.
아무런 쓸모도 없다.
가까스로 느끼기만 할 뿐, 다루지도 못하는 기운이다.
수선이 된다면 모를까 상처까지 입은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초아도 마찬가지.
“천지원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생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선충일 수도 있고, 선초일 수도 있지.”
그러자 산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천지원기가 많다는 것은….
‘선초 또한 있을 수 있다는 뜻.’
“유무간은 희귀한 선초와 선충들 또한 한가득인 곳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영면한 신선들의 수도 아름 잡을 수 없기에 기연을 얻기에는 더더욱 좋다.”
“허나 영기가 없으면 영력을 쌓기가 어려운 것 아닙니까? 그리된다면 수행을 할 수가 없을 텐데….”
수도란 곧 천지영기를 몸 안에 받아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영기를 자신의 영력으로 바꾸어 차곡차곡 쌓다가 그릇을 깨트리고 다시 맞춘다. 그로 인해 더 강한 신체와 정신력을 근간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심기체를 합일하여 신선이 되는 걸 목표로 두는 게 수도.
그것이 기본적인 상식이다.
‘허나 영기가 없는데 어찌 수행을 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영기가 없다는 건 소비한 영력을 채울 수도 없다는 소리.
그리고 수행을 쌓을 수도 없다.
선초가 어떤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는 모르겠으나 천지영기가 없다면 그릇을 깨트렸을 때 다시 합일시킬 영기가 부족할 수 있다.
그리하면 당연히 진수명화에 실패할 것이요, 진수명화에 실패하면 산군은 진명수목이 되어버릴 터.
단순한 나무로 변해 자연과 풍화되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전에 봤던 교룡의 진명수목처럼.
“천지영기가 무엇인지 잊었느냐.”
“천지영기는….”
영산.
영험한 산에서 나오는 기운.
허나 그 영기는 곧 신선이 산으로 변하며 발산된 기운이다.
말인즉슨.
“영기는 천지원기의 티끌과도 같은 기운일 뿐이다. 수도자들이 원기를 담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버텨낼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지금까지 그 둘이 다른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렇다면 상황이 다르다.
“넌 이곳에서 수행해라. 내 도움과 이곳의 천지원기라면 네 수행을 증진시키는 건 간단한 일이니!”
그리고 그때.
봉이 손이 공간을 건드렸다.
투웅.
맑은 소리와 함께 허공에 파문이 일어나 먹구름이 흘러나왔다.
먹구름은 마치 살아있는 듯 스멀스멀 공간 속에서 기어 나왔다.
산군은 그 먹구름을 보자마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온몸에 털이 삐죽 솟는 듯 했다.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저곳을 거부하고 있었다.
“막상 들어가려니 겁이 났나?”
산군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그는 초아를 슬쩍 보고는 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답했다.
“그럴 리가요.”
이내 산군 일행은 유무간의 먹구름 속으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