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29)
낭선기환담-228화(229/600)
낭선기환담 – 228화
그로부터 하루 뒤.
수십 개의 거들이 산군이 사라진 장소에 나타났다.
“미친놈이네 이거….”
다짜고짜 욕설을 날리는 사내는 오색의 거검을 다루는 신선.
당춘이었다.
“그렇다고 유무간에 들어가?”
말 그대로였다.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다.
“신선이라도 살아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유무간이거늘… 봉황을 믿고 있는 건가.”
쯧.
혀를 찬 당춘은 거검 위에 털썩 주저앉아 턱을 괴었다.
“허나 곤란하게 되었다.”
어찌됐든 놈을 데려가야 하는 명을 받은 이상 수행해내야 한다.
“그렇다고 유무간에 들어가는 건….”
영 껄끄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유무간이다.
“나 같은 상선(上許神仙)은 어림도 없을 것이고 그나마 향선(香散神仙)이나 원선(原型神仙)은 되어야 살아 돌아올 수 있을 테니….”
양반다리로 턱을 괴고 있던 당춘은 품에서 손거울 하나를 꺼냈다.
손거울을 은색 손수건으로 문지르자 거울 속에서 우윳빛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합!”
당춘은 곧장 수결을 맺고 손가락을 튕겨 여러 문자가 뒤섞인 듯한 글자.
선축문을 쏘았다.
그리고 잠시 뒤.
우윳빛 연기는 이내 사람의 형상을 그려냈다.
[무슨 일이냐.]날카롭고도 고고한 음성이었다.
당춘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했다.
“서른두 번째 검이 검의 주인이신 검노를 뵙습니다.”
[겉치레는 집어치워라.]“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초은 곧장 검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는 차분히 이야기를 듣다 실소를 흘렸다.
[역시 내 마지막 검이다. 보통 놈은 아니야. 허나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하하! 겨우 수도자주제에 유무간으로 뛰어들다니! 허나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것은 절대 아니겠지!]검노는 즐겁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으나 그 속은 잘 벼린 명검과도 같이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
[자칫하면 네가 죽겠구나.]흠칫.
“그게 무슨….”
[모르겠느냐? 놈은 널 유무간으로 유인하고 있는 게다. 하계로 가봤자 네게 붙잡힐 거라는 걸 아는 게지.]당춘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하계의 수도자에게 당할지도 모른다하니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누구던가.
비록, 상선에 불과한 수선이지만 그래도 상선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한 수선이다.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불만이 많은 얼굴이군. 내 말이 어디 틀리기라도 했다는 게냐.]쿠우웅.
엄중한 음성이 당춘의 귓가에 내리 꽂혔다. 잔잔한 목소리였으나 그 음성에 서린 기운은 당춘을 압박하 기에 충분했다.
“큭… 아, 아닙니다.”
[그럼 됐다. 이걸 가져가라.]고개를 드니 검노의 형상에서 은빛 실 한 오라기가 나풀나풀 떨어졌다.
그것을 받아드니 실은 작은 빛을 토하며 발광하다 작은 방울로 변했다.
[잠시 동안은 유무간의 유무운을 막아줄 것이다. 그것만 있다면 상선인 너도 살아 돌아올 수 있겠지.]딸랑-
방울을 흔들자 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신기한 방울이었다.
“반드시 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이내 검노의 형상이 흩어지며 알쏭달쏭한 말을 건넸다.
[네가 죽을지 놈이 죽을지 참으로 기대된다.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라.]휘리릭.
괴이한 말에 당춘의 미간이 좁혀졌으나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괴팍한 노인네. 언제 죽으려고 저리 헛소리만 남발하는 건지….”
기분 나쁘게 뭔가를 시험하는 듯한 어조였다. 검노의 말을 곱씹던 당춘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근데 왜 놈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상하군….”
고민하던 당춘은 이내 고개를 털어버리고 유무간 속으로 들어갔다.
* * *
한편.
먹구름은 살아 움직이듯 기괴하게 그들의 주위를 선회했고, 언제든지 집어삼킬 준비를 하는 듯했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유무간은 닥치는 대로 이곳에 들어온 자들의 목숨을 노리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럼 뭡니까.”
“유무간 속의 먹구름. 유무운은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여 심마를 부추길 뿐, 다른 것은 하지 않는다. 수도자들이 영력을 쓰다가 다치는 거야 천지원기가 그에 감응해서 그런 것이고.”
“그렇다 해도 큰일이 아닙니까. 수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심마일 텐데요.”
“심마란 무엇이냐?”
심마란 마음에 마가 끼는 것.
자신의 가장 여린 곳.
가장 아픈 곳. 안일한 곳.
그리고 가장….
“아끼는 것.”
슬쩍 고개를 돌리자 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 있었다.
“뭐 그렇다 할 수도 있겠지. 심마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가슴속에 자리한다. 유무간은 그게 조금 더 심할 뿐이다.”
말은 저리 쉽게하나 실상은 저리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다.
봉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하계의 수도자인 산군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이 유무간이라는 공간이다.
그리 말한 봉은 우뚝 걸음을 멈춰 서고 산군과 눈을 마주쳤다.
“어찌 보면 잘 됐다. 네 안에 혼잡한 것들을 조금은 정리할 계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
“….”
“너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게다.”
알고 있다.
균천보화로 하나 된 사형들의 넋을 제대로 담지 못한 반동이다.
그 탓에 감정을 자주 제어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 기회에 너는 그걸 좀 어찌 하는 것이 좋을 게다. 유무간의 위협은 내 나름대로 알아서 해줄 터이니….”
봉은 이내 산군의 팔목을 감싼 탐화를 툭 건드렸다.
촤자작!
팔찌 형태로 있던 탐화를 건드리자 순식간에 본신으로 돌아왔다.
사백 장이 넘는 크기의 오룡이 으르렁거리자 살이 다 떨렸다.
“네 주인을 지키고 싶다면 네게 이곳은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으르렁거리던 탐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돌아보다 순식간에 헤엄쳐 운무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마치 물 만난 고기마냥 신이나 헤엄치는 듯 보였다.
“놈은 아직 원천강을 전부 소화시키지 못했다. 이곳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다보면 알아서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길을 잃지는 않을까요.”
“길은 잃어도 제 주인을 놓치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라. 네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표식까지 걸어두었더구나.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습니까?”
“본래 탐의 피를 이은 것들은 성정이 포악해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
길들인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길들이는 것이 아닌 금제로 묶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데 저렇게까지 따르니 신기할 수밖에 없지. 어쨌거나 유무간은 탐화의 선조인 탐의 고향이기도 하니 지내는데 나쁠 건 없을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온갖 흉수들이 자리하고 있다 전해지는 곳이니 충분히 그럴법한 이야기였다.
“한데 네 몸속에 영충을 하나 더 키우고 있더구나.”
“예, 장충지태를 키우고 있습니다.”
“장충지태라….”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넌 네가 가진 것들을 좀 더 확실히 할 필요가 있겠구나.
본래 모자란 것보다 오히려 넘치는 것이 독이 되기 쉬운 법이니.”
“그게 무슨….”
“지금은 시기상조겠지. 일단은 가자. 유무간이 있는듯 없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그건 신선들이 떠들어댄 소리일 뿐이다.
유무간 속에도 안전한 곳은 있고, 각자의 영역 또한 존재하는 곳이니 그곳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게지요?”
“그렇다.”
끄덕인 산군은 초아와 함께 그를 따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일말의 가능성이지만 당춘이 이곳으로 자신을 찾으러 올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균천보화의 주인인 검노라는 신선이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당춘만 해도 저렇게 강한데 검노는 대체 얼마나 강할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걱정 마라. 널 검으로 만든 검노라는 작자는 올 수 없다.”
“그걸 어찌 아십니까?”
“검노라면 나 또한 들어본 적이 있는 신선이다. 진선으로 한 발자국을 남긴 수선이라 들은 기억이 있지. 하지만 그 정도 경지의 신선이라면 자신의 거처에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일 것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천겁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천겁을 강요… 받아요?”
“하늘이 시험을 치루라 강요하는 게지. 질문하는 게다. 그 신선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허나 대부분의 신선들은 그 천겁을 꺼려한다.
너무도 강력한 시험이고, 아직은 준비가 덜 됐기 때문에 그러한 게지.”
산군은 조금은 허탈한 얼굴을 했다.
“신선이 되도 천겁을 받는 겁니까?”
“당연하지. 하늘 위의 하늘인 대라천에 올라서지 않는 이상에야 신선이라도 시험받는 족속일 뿐이다.
굳이 지금 네가 알 필요는 없다. 중요한건 그 검노라는 자가 널 직접 데리러 올 수는 없을 거라는 게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요.”
초아가 슬그머니 답했다.
산군은 초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어두컴컴한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살아있는 듯한 먹구름인 유무운은 시종일관 산군의 발을 붙잡고 초아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그럴때마다 봉의 화염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유무운을 태워버렸으나 유무간 전체가 유무운으로 되어 있다 보니 한계는 있었다.
정신을 잃을 뻔 한 적도 많았으나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갔고, 경구에는 봉이 안내한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입니까?”
“이곳이라면 다른 영역권에 속해 있는 곳도 아니니 상관없을 거다.”
“한데….”
“아무것도 없네요.”
아무것도 없었다.
떠다니는 작은 암석들이 있을 뿐.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이곳이 유무간에 살아가는 다른 흉수들이 영역 밖에 있는 공간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유무간에 존재하는 천지원기와 유무운에 관한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
봉은 오히려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오로지 나만 믿고 유무간에 들어 오자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널 지켜봤다.”
뭔가 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 거라 예상하는 듯했다.
확실히 유무간에 오기는 했으나 초아와 산군의 상태는 좋지 않다.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으며 한시도 손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손가락을 꿈틀거리고, 손톱을 튕기며 딱딱 소리를 냈다.
마음이 불안한 것이다.
유무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그곳에 집착스러울 정도로 그들을 옭아매려하니 유무운의 존재가 그들의 심사를 뒤흔드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으나 그들은 극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여기서 함부로 영력을 쓰기라도 했다가는 한순간에 유무운에 집어삼켜지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을 잃을 것이다.
그렇기에 봉은 궁금했다.
자신은 상관없으나 그들에게는 더없이 위험한 곳이 유무간이다.
이런 위험한 공간에 산군은 대체 생각을 가지고 들어오자 한 것인지.
그리고 그때.
산군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봉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호박빛이 영롱한 작은 돌.
수도자나 수선들이라면 누구나 들고 다니는 공정강이었다.
의아해하던 봉은 공정강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설마…?”
산군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저와 제 아내는 그 공정강에 들어가 있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