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31)
낭선기환담-230화(231/600)
낭선기환담 – 230화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곳이 어디던가.
천지원기로 뒤덮이고, 흉악한 유무운이 대기처럼 사방에 깔린 곳이다.
신선이라도 자유로히 다닐 수 없는 곳이고 길을 헤메며 나다니다 심마에 사로잡혀 죽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유무간이다.
그런곳에 신선도 아니고 일개 도사가 자리하고 있다니….
“글쎄,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면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으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유무운의 영향으로 이곳에 있으면 오랜 기억이나 묵혀두뎠던 상처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수명을 뛰어넘어 사는 도사들은 그런 감정에 잡아먹혀 마가 되기 쉬운 몸이다.
‘한데 도사가 이곳에 있다?’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도사로 위장한 다른 존재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유무간은 있으며 없는 공간이니만큼, 그 무엇인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곳이니.
‘방금 금환선향에 들어온 도사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산군과 초아는 봉이 곁에서 유무운을 흩어주니 나름 괜찮은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진작에 심마가 튀어나와 광인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 바로 유무간인데 어찌 도사가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겠는가.
“그럼 이렇게 하지.”
고민하던 봉은 봉악청화를 일으켜 그것으로 잎이 다섯장인 꽃을 만들어내며 말했다.
“이 꽃으로 점 찍어보지.”
“…예?”
“만나본다. 무시한다.”
봉은 뜬금없이 꽃잎을 뜯으며 그리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산군은 다소 어이없는 낯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게 잎이 다섯 장인 꽃을 만든 것 자체가 어찌할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나본다.
무시한다.
만나본다.
무시한다.
“만나본다. 만나봐야겠다.”
“….”
산군은 팔짱을 끼었다.
‘이상한 짓을 다 하는군.’
옥에도 티는 있는 법이라 했던가.
퍽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산군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꽃 점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게 꽃 점이기는 합니까?”
“세상에 우연은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필연뿐이니 이 또한 연이다.”
“…예.”
할말은 많았으나 굳이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판가름이 나지 않았으니 상황을 지켜봄이 옳았다.
봉은 성큼성큼 걸어가 손가락을 튕겨 푸른 기운을 쏘았다.
그러자 옅은 바람과 함께 장막이 걷히듯 유무운이 갈라졌다.
“정말 도사로군.”
봉이 놀라움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금 다른 관점이었으나 놀라운 것은 산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갈라진 유무운 사이로는 자신을 도사라 소개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 지팡이 끝에는 녹빛 등과 함께 방울이 달려 있었다.
특이하게 푸른 머리색과 목까지 내려오는 단발이 인상적이었다.
이목구비는 단아한 상이었으나 한쪽 눈 대신 기괴한 뿔이 돋아 있는 조금은 해괴한 몰골이었다.
“한데 저 모습은….”
누가보아도 평범한 도사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지닌 경지는 지선에 해당하는 듯 보였으나 인간이라기보다는 육사에 가까운 모습.
‘아니… 혼괴에 가깝겠군.’
푸른 머리칼과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단발. 그리고 얼굴 한쪽에 돋아 있는 기괴한 뿔까지.
범상치 않은 외견에 경지까지 드높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
봉이 묻자 그녀는 천천히 지팡이를 내려놓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유무간에 정처없이 떠돌아다닌 수도자입니다.”
그리 말하자 봉은 그녀를 보고 산군을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님은 아니니 자네가 차라도 대접해줌이 어떤가.”
“제가요?”
“저자는 날 찾아온 게 아니야.”
그럼 자신을 찾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저도 처음 보는….”
“자네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게야.”
그리 말한 봉은 휙 등을 돌렸다.
“아니 잠깐…!”
멈춰 세우려 했으나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산군만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가 마음대로 금제 열어줘 놓고 왜 나한테 떠맡기는 거야?’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으나 이름 모를 여인은 아직까지도 무릎을 꿇고 있는 중이다. 언제까지 저리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신이 대접해야 할 듯했다.
“일단 일어나시죠. 기왕 이리 만났으니 차라도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인은 사양하지 않고 산군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저희도 이곳에 막 자리잡은 터라 있는 게 없습니다. 대접이 소홀해도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겠습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유무간에서 어떤 대접을 바라겠습니까. 이리 대해 주시는 것만 해도 저는 족합니다.”
산군은 이내 공정강에서 탁자와 의자를 꺼낸 후, 적당한 다과와 차를 내놓았다.
초아는 옆에서 거들며 준비를 도왔는데 힐끔힐끔 여인의 얼굴에 돋아난 뿔을 훔쳐보는 듯 했다.
“자, 드시지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푸른 머리칼의 여인은 차를 한 번 마시고는 그윽한 풍미에 눈을 감고 속눈썹을 바르르 떨었다.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차인지라 흉한 꼴을 보였습니다.”
“아니요. 저희가 대접한 차를 그리 기뻐해주시는데 어찌 못볼 꼴일 까요. 개의치 마시고 천천히 즐겨 주시지요.”
“그럼….”
여인은 차와 다과를 천천히 음미하며 짙게 미소지었다.
모르긴 몰라도 꽤 오랫동안 이런 식품을 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산군은 그녀가 충분히 즐길 때까지 기다렸다 이것저것을 물었다.
고향은 어딘지, 유무간에 어찌 있는 건지, 또 어찌 살아있는 건지.
신원이 어찌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놀라운 말을 뱉어 냈는데 퍽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곤륜의… 차 장로시라고요.”
“예. 어리숙한 곤륜의 장로였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지요.”
제 문파의 치부를 말하기는 퍽 꺼려 했으나 조금 부추기자 봇물 터지듯 말을 뱉어냈다.
“곤륜의 내부는 병들어 있었습니다. 문파에 내통자가 있었던 게죠. 전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저 수행에만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힘이 부족했고, 부조리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잘못된 혼인까지 올렸지요. 처음에는 그저 팔자겠거니 살아가려 했으나 자꾸만 제 본래 정인의 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그리고 그게 화근이었다.
“점점 심마가 번졌지요.”
탁.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의 낮에는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한이 있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됐습니다. 곤륜은 둘의 세력으로 갈라져 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고, 저는 그 중심에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모습을 바랐는지도 모르죠. 제 정인을 쫓아낸 그들의 파국을 어쩌면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산군의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
“그리고 결국에는 파멸하여 곤륜은 멸문해버렸지요.
전 그러한 문파의 치부를 덮어주고자 다른 세력에 의해 그러한 것이라 위장했습니다. 저 또한 그 전투에 휘말려 깊은 내상을 입었고 저의 심마는 더 깊어졌습니다.
이 심마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제 정인을 찾아야겠다 생각하고 여행길에 떠났습니다.”
허나 그 여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상은 치료되지 않고 점점 더 심각해졌고, 심마도 크기를 키웠다.
“몸 피할 곳을 찾던 중에 불행인지 행운이지 곡공지간을 찾아냈죠.”
허나 그것이 참 애매했다.
“그 곡공지간이 설마….”
“예, 어리석게도 그때의 저는 이곳이 유무간인 줄도 모르고 들어오게 됐습니다. 바보 같지요?”
“아….”
산군과 초아가 탄식하자 푸른 여인이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었다.
“잘 어울리는 한쌍이십니다.”
“부, 부끄럽네요.”
초아가 볼을 붉혔다.
산군은 볼을 긁적이다 되물었다.
“한데 어찌….”
“살아있냐는 말씀이겠죠.”
그렇다.
유무간은 사지 멀쩡한 산군이 들어와도 힘겨운 곳이다.
그나마 봉의 힘이 있기에 덜한 것이고, 공정강에 들어가 심신을 정리할 수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힘에 겨웠을 것이다.
“운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이곳에 들어와 헤매던 중이었죠. 심마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다 몸의 변형까지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 푸른 머리칼과 뿔 또한 심마에 사로잡혔던 제 어리석음의 말로이죠.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
여인은 자신의 등 달린 지팡이를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이 보물을 얻었지요. 아마… 이곳에서 영면한 도사거나 신선의 유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지팡이를 만지자마자 유무운은 제게 어떤 영향도 끼치게 되지 않았죠. 더불어 심마의 광증 또한 가라앉았습니다.”
여인은 뿌듯한 눈으로 지팡이를 바라보다 내려놓았다.
“기연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무간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족히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을 헤매고 다녔으나 출구는 찾지 못했습니다.”
“천년을 넘게요?”
초아는 화들짝 놀라 입을 가렸다.
천년이 넘게 유무간을 헤매이며 다녔으니 차 한 잔에 그리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게 당연했다.
이제야 조금 그녀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정도 기간을 이곳에서 헤매였다니…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퍽 많은 것들을 얻어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흉수들로 인해 목숨이 위험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긴 하나, 얻은 기연이 적지 않았죠.
하여 제 비천한 자질로도 지선에 오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 말하며 여인은 자신이 유무간에서 얻은 것들을 자랑하며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초아와 산군은 내심 당황했다.
자신이 얻은 기연이요, 보물들인데 이리 경계심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 수도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허나 여인은 개의치 않는 듯 자신의 보물들을 설명하기 바빴다.
산군과 초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하나하나 살펴보며 극찬했다.
모두 하나같이 지보를 뛰어넘는 보물이었고, 하계에서는 구하래야 구할 수가 없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다리가 세 개 달린 거대 솥이었다.
“저도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유무간을 떠돌다 죽통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대부분의 것들이 전부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 신선이 이곳에 들어왔다 흘린 것이거나 그의 유품일지도 모르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솥만큼은 산군이 유심히 바라보자 푸른 머리칼의 여인도 흡족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솥만큼은 어찌 쓰이는지 알 것 같더군요. 모르긴 몰라도 연단에 쓰이는 솥으로 보였습니다. 열어보면 안에서 약향이 진득하게 배어 있거든요.”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드르륵.
뚜껑을 열어보자 그와 동시에 진득한 약초 냄새가 사방으로 풍겼다.
순간 코를 부여잡고 인상을 썼으나 그와 반대로 심장은 요동쳤다.
‘이게 봉이 말했던 그 솥인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은 더 없는 기연이다.
이 솥을 빌릴 수만 있다면 십생금어초를 연단하여 진수명화의 기회를 엿볼 수 있지 않겠는가!
산군은 그녀가 꺼내놓은 보물들을 눈여겨보다 자리에 도로 앉았다.
“차 선자. 무엇 하나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인데 거리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양치 말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산군은 찻잔을 비우고 다소 진지한 어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가 수도계에 몸 담은지 오래 됐다 자부할 수는 없으나 선자의 태도를 보아하니 하나는 알겠습니다. 혹 저희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 자랑스레 자신의 보물들을 꺼내놓을 리 없다.
바라는 것이 있으니 저리 행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차 선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의자에 앉아 고개를 주억였다.
“너무 오랜만에 수도자들을 만나 조금 흥분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고개 숙여 사과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역시.
“물론 맨입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답례로 여기 있는 것들 모두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저 차륙의 이름을 걸고요!”
“……!”
차륙?
“부디 저 대신 곤륜을 다시 세워 주시기를 염치불구하고 청합니다!”
그녀의 부탁도 부탁이었으나 산군은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으니, 바로 그녀의 이름이었다.
“차륙….”
그 이름은 산군과 하나 된 검.
살성갑검의 본래 주인, 양 사형이 빼앗긴 정인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