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38)
낭선기환담-237화(238/600)
낭선기환담 – 237화
후우웅.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공정강에서 거친 바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연못은 파문을 일으키고, 영초와 나무들은 바람 앞에 잎새를 떨궜다.
“…일 났군.”
절벽에 꽂혀 있던 보패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듯 격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한걸음에 달려나온 초아도 놀란 눈으로 산군을 바라봤다.
그녀가 바라본 모습은, 산군의 검을 차륙이 잡아 비틀고 있는 것이었다.
“괜찮다. 들어가 있어라.”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상황임에도 산군은 애써 담담히 말했다.
그러는 중에도 차륙의 몸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검을 잡아챈 손은 검은 비늘로 단단히 덮히고 있었고, 그녀의 전신이 검게 물드는 중이었다.
마의 기운이 맹렬하게 피어오르며 어깻죽지가 솟아오르고, 눈이 있을 자리에는 뿔이 돋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마에 사로잡혀, 마귀로 변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위험할 텐데…’
심마로 인해 마귀로 변한 자들이 흔치는 않으나 전례가 없지는 않다. 태선이 심마에 취해 마귀로 변했을 때, 그를 제압하려 태선 셋이 모조리 죽임당했던 일은 도계에서도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일 중 하나다.
그렇게 위험한 것이 마귀인데, 더군다나 차륙은 지선의 몸이다.
마로 변한 그녀는 동급 지선들도 어찌하기 힘든 마귀가 되었으리라.
그럼에도 산군은 개의치 아니하니 초아로서는 애간장이 타기만 했다.
“그대가 진정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습니까. 차 선자.”
살성갑검을 잡아챈 차륙의 손에서 보랏빛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그녀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으나 왠지 모르게 슬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끄으으 아아아아악!!”
혼란스러운 건지 괴로움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산군은 자신이 겪는 일인 듯 미간을 좁히며 같이 괴로워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저리 변해 버렸으니 당연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촤르륵!
막대한 마기가 퍼져나가자 산군의 손목에 감싸있던, 탐화가 위주호연갑으로 변해 그를 보호했다.
후웅!
사방으로 뒤덮인 마기를 한 손으로 털어내자 광풍과 함께 걷혀졌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내 죄가 크구나.”
비늘 뒤덮인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는 완전한 마귀의 모습이었다.
“크크큭, 까하하하하하하하하하!!”
차륙을 잡아먹고 나타난 마귀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정신이 나간 듯 광소했다.
산군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제 손에 남아 있는 검을 보았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산군은 망설였고,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대로였다.
“고맙구나! 네놈이 괜한 짓을 해 준 덕에 이 지긋지긋한 년의 몸을 겨우 빼앗을 수 있게 됐다!”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었으나 말하는 이는 차륙이 아니었다.
“의지가 굳건한 계집이었으나 그래 봤자 정분에 빠진 년을 뒤흔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쓰며 저항했으나 꽃 본 나비가 어찌 물불을 헤아리랴!”
마귀는 퍽 신이 났는지 묻지도 않은 것들을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고는 기괴한 모습으로 산군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산해진미가 있다면 퍽 네놈을 보고 말하는 것일 터. 은연중 새어 나오는 화령의 냄새가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렇습니까.”
“허나 여물지 않은 봉오리구나.”
마귀는 퍽 아쉽다는 듯 혀를 차고는 거칠게 날개를 펄럭였다.
“네게 입은 은혜가 적지 않으니 다음을 기약하자꾸나!”
이내 사라지려던 마귀는 멈칫하며 주변을 돌아보곤 노기를 드러냈다.
“무슨 짓이냐.”
어느새 마귀의 주변에는 만여 개의 보검들이 사방에 진을 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당장에라도 쏘아질 듯 예기를 뿜어내니 단번에 마귀의 낯이 찌푸려졌다.
“그건 제가 묻고 싶습니다.”
한 발 앞으로 다가간 산군은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마귀를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언제 보내준다 말했습니까.”
“이런 건방진…! 고작해야 첫 번째 겁을 치른 육사 주제에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발톱을 드러내는구나!”
허나 산군은 한껏 냉소하며 신랄하게 맞받아쳤다.
“몇년을 살았는데 앞에 있는 게 하늘인지 시궁창인지도 모를까.”
“이노옴!!”
그때였다.
산군의 만극일검이 돌연 푸르게 불타올라 꽃잎으로 변했다.
푸른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자 마귀는 냉소를 머금고 수결을 맺었다.
“네놈이 그 갑주를 믿고 까부나 본데 그래 봤자 돼지 목에 진주일 뿐이지!
은혜를 생각해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이리 나온다면 네놈을 잡아먹고 그 갑주까지 챙겨줘야겠다!!”
말을 마친 놈의 어깨에서 돌연 팔 네 개가 튀어나와 물 흐르듯 허공을 천천히 매만졌다.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붕계에서도 아무나 볼 수 없는 마의 진수이니!”
꾸우웅!!
여섯의 팔이 각각의 허공을 움켜쥐고 단번에 몸을 비틀어버리니 공간이 찢겨지듯 비틀어졌다.
“하압!!”
콰앙!!
여섯의 팔로 합장하니 강력한 압력이 퍼져나가 산군의 꽃잎이 종이조각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눈살을 찌푸리자 마귀가 기분 나쁘게 미소 지었다.
“이것으로 끝일 거라 생각지 마라.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 네놈의 코를 대번에 꺾어줄 테니.”
허나 산군은 온데간데 없었다.
“흥, 쓸데없는 짓을!”
마귀는 코웃음을 치며 뒤를 돌았다.
그러자 어김없이 산군이 나타났다.
등 뒤에는 다섯의 만다라가 피어나 균천오광의 빛이 새어 나왔다.
마귀는 그것을 보며 조금 놀랐으나 이내 피식거렸다.
“어림없는 짓!”
그럼에도 산군이 무덤덤한 낯으로 주먹을 내지르자 마귀는 미친 듯 웃어재끼며 그의 주먹을 막아 냈다.
콰아앙!
“꺄하하하하하!! 네놈이 신통이 제법 대단키는 하나 붕계의 마선에게도 통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러나 산군은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마귀의 고개가 슬쩍 기울어졌다.
“잡힌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다.”
돌연 산군의 손을 비틀어 마귀의 손목을 잡고 팔을 뒤로 꺾었다.
뿌드득!
“윽!!”
마귀는 단번에 팔을 빼내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무슨 힘이…!’
예상보다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완력에 마귀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나머지 팔로 놈을 치려 했으나.
“귀찮은 것들부터 뜯어내야겠네.”
중얼거리는 소리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자, 잠깐!”
다급한 마음에 소리쳤으나 이미 늦은 지 오래다.
빠드득!
꾸드득! 쩌저적!! 촤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마귀의 등을 밟고 팔 한 짝과 날개 한 짝을 뜯어낸 산군은 쓰레기 버리듯 그것들을 던져냈다.
“꺼윽 끄아아아악!!”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보랏빛 핏물과 온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는 마귀의 모습에 산군은 쯧 혀를 찼다.
“하, 한낱 하계의 육사 놈이 어찌 그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냐!!”
“그건 당신이 알 바가 아니지.”
그리 말하며 한걸음 내딛자 마귀는 당황하며 손을 펼쳤다.
“거, 거래를 하자! 네놈의 힘이라면 나와 충분히 거래할 자격이 있다!”
“필요 없다.”
산군이 발을 한 번 굴렀다.
쿵.
그러자 지면에서 지네를 닮은 검은 사슬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촤르르르르륵!!
단번에 마귀의 사지를 옭아맨 사슬은 살아 움직여 놈의 몸을 천천히 갉아 먹기 시작했다.
“젠장! 이, 이까짓 꺼!! 크아아악!!”
비명에 가득찬 마귀의 외침에 산군은 담담히 답했다.
“안 될 거다. 네놈이 붕계의 마선인지 먼지였어도, 지금은 지선의 몸을 빼앗은 직후. 상선인 탐화의 사슬을 끊어낼 수는 없을 것이야.”
그리 말하고는 마귀의 뿔과 자라난 팔을 붙잡았다.
“뭐, 뭘 하려는 게냐!!”
“새로 돋아났으니 뜯어내야겠지.”
“끼야야야야약!!”
뿌드득! 촤악!! 뿔과 팔을 뽑아내자 사방에 핏물이 뿌려져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어떻게든 살아나고자 발버둥을 쳤으나 놈은 탐화의 사슬을 결코 끊어내지 못했다. 아무리 붕계의 마선이었다고는 해도 그는 지금 지선의 몸을 빼앗았을 뿐이니 오룡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젠장 내 천년의 수고가 이리…!!”
촤아아악!!
그때였다.
돌연 보랏빛 핏물이 사방으로 퍼지며 피구름이 피어났다.
그 사이로 무언가가 빛살처럼 튀어나갔는데, 육신을 버리고 달아난 마귀의 혼이었다.
[내 반드시 네놈을 찢어 죽여주마!!]달아나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산군은 냉소할 뿐 그를 뒤쫓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떠오르며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잘 처리했느냐.”
꾸벅, 고개를 주억인 이는 산군이 부리는 강시 귀율이었다.
귀율은 산군의 갑주를 힐긋 바라보고는 그림자로 화해 사라졌다.
“이제 됐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차륙의 몸에서는 마기가 재처럼 변해 떠올랐다.
마귀가 완전히 사라진 그녀의 모습은 안색이 창백할지언정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표정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빚이라 생각지는… 않을 겁니다.”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산군은 묵묵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도… 한결… 편하네요.”
줄곧 그녀를 괴롭히던 심마가 사라져서일까.
그도 아니면 끝에 다다라서일까.
창백한 안색과 다르게 그녀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힘겨우십니까….”
돌연 그리 물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가 물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군은 차분히 생각하다 있는 그대로 답했다.
“힘겨운 게 저인지, 제 안에 있는 사형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 감정의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사형의 것인지.
“힘겨워하지 마세요.”
차륙은 더듬더듬 손을 들어 올려 산군의 뺨을 어루만졌다.
“저는 죽는 게 아닙니다.”
“어찌 죽는 게 아닙니까.”
검 속에 혼을 담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죽지 않았다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죽었다 하기도 애매하죠. 죽음이란 게 그렇더군요.
결국, 제 눈앞에 없다면 모두 죽은 것이고, 느끼고 볼 수 있다면 모두 살아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게 사람이니까요.”
“궤변입니다.”
“인생이 본디 한 줌 궤변이나 다를 것 없는데 무얼 그러십니까.”
차륙은 어린아이를 달래듯 온유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꽃잎을 뜯고 또 뜯는 것을 얼마 전 보았습니다. 그 꽃잎을 뜯으며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당신이 바라는 것을 해주자고. 그것이 날 위한 일이며 모두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뜯었습니다.”
그의 말에 차륙은 싱긋 미소지었다.
“상냥하신 분이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겠죠… 결국 제 부탁을 힘겨워하시면서도 들어주려 하니까요.”
차륙은 힘없이 산군의 손등을 토닥, 토닥 토닥여줬다.
이전의 자신의 다리를 베고 누운 양소팽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산군은 조용히 검을 움켜쥐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금세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괜찮…아요.”
산군은 그녀를 찔렀다.
그리고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