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39)
낭선기환담-238화(239/600)
낭선기환담 – 238화
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지면을 찌르는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의 행선지는 봉황의 깃털.
봉이었는데, 그는 차륙이 지니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더니 연신 입을 달싹이며 선문(仙文)을 외웠다.
그는 한참이나 땀을 흘리며 선문을 외우며 진을 만들었는데, 그 모두가 곧 진수명화할 산군을 위해 서였다.
몇 시진이나 선문을 외우던 봉이 숨을 토해내고 숨을 고르자 곁에 있던 초아가 입을 열었다.
“다 되셨나요?”
“다 됐다. 이 지팡이의 힘으로 근처 유무운을 모두 걷어냈다. 이곳의 천지원기가 유독 강렬하기에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그 때문에 진수명화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되었다.
영기가 없다고는 하지만, 영기 자체가 본래 천지원기의 티끌과도 같으니 더 말해 무얼 할까.
“더군다나 내가 곁에서 천지원기를 조절해줄 테니, 네 서방에게 해가 될 일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걱정 마라.”
“예.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함께 승선 준비를 한다고 했었지. 자신 있나?”
그리 묻자 초아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늘 같은 분이 제 승선을 그리도 확신하시니 저도 성공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자 봉은 옅게 미소 지으며 스르륵 고개를 돌렸다.
“오셨군.”
그들의 시선 한 곳에는 탈형의 모습으로 존재를 드러낸 소년이 있었다.
두 개의 뿔과 한 쌍의 날개를 지닌 날카로워 보이는 소년의 모습.
바로 산군이 탈형한 모습이었다.
그는 초연한 듯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왔는데, 주변에는 다섯 개의 검이 그를 보호하듯 맴돌았다.
산군은 봉과 초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한 곳을 향해서 걸었다.
진법의 중심에 되는 곳에 자리하고 가부좌를 틀자 그의 몸이 정순한 기운에 의해 두둥실 떠올랐다.
좌선한 그의 밑에 푸른 연꽃이 만개하고 그와 동시에 연꽃 모양의 만다라가 피어올라 빙그르르 돌았다.
균천오광이 사방에 비춰지자 그의 몸이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때 산군의 손아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이 함께 떠올랐다.
예의 십생금어초로 만든 선단.
십생단이었다.
십생단은 허공에서 그의 주위를 맴돌다 우윳빛 연기로 변해 산군과 검을 향해 스며들었다.
폭풍우 치기 전 고요함처럼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우우웅!
검들이 공명하듯 진동하니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콰아앙!! 그 즉시 산군의 몸에서 균천의 빛이 빛기둥으로 치솟아 하늘을 꿰뚫 듯 뻗어나갔다.
쩌적!!
하늘이 찢어지고 빛기둥은 점멸하며 사그라들었으나, 보다 강렬한 빛이 번쩍하며 하늘을 수놓았다.
우렛소리와 함께 먹구름을 유영하며 그 모습을 빛내는 존재.
천뢰의 등장이었다.
쿠르릉 콰앙!!
거대한 우렛소리와 함께 천지의 떨림이 뼈에 사무치듯 울려 퍼졌다.
전신이 떨려오는 천뢰의 우렁찬 굉음에 초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저 강인한 천뢰에는 지선으로 한 발자국 남겨둔 태선이라도 심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한시도 떼지 말고 잘 보아야 할 것이야. 등선한다면 자네도 곧 머지않은 일일 테니.”
“예….”
초아는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산군을 바라보고는 천뢰를 보았다.
하계의 도사들은 굳이 천겁을 치루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요, 하늘의 배려이자 편애라 한다.
정확한 연유는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계의 인간은 천겁을 치르지 않는다.
하계에서 천겁을 치루는 것은 오직 영수뿐이다.
그러니 초아는 당연 천겁을 치루는 제 서방이 안타깝고 애가 탔다.
인간보다 강인한 신체와 많은 수명을 지닌 것이 바로 영수이지만, 그로 인해 천겁을 치루며 생사를 오가니 무엇이 낫다 말하기 어려웠다.
하기사, 제 팔자를 정하여 태어난 자가 어디 있을까.
아무리 부당해도 난대로 살아가는 것이 결국엔 우리네 인생이거늘.
“물러서야겠구나.”
돌연 봉이 그리 말하며 뒷걸음치더니 푸른 호신막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직후.
콰아아앙!!
눈앞이 번쩍이며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나갔다.
눈으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기 짝이 없는 뇌전이었다.
초아는 어안이 벙벙하다 정신을 차리고는 산군을 찾았다.
옅게 피어오른 폭연 속에서 산군은 냉정함을 잃지 않은 채 고고히 좌선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쉴 새 없이 균천오광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머리 위에서는 다섯 개의 만다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은 모습에 한시름 놓은 초아였으나 점점 강해지는 천뢰의 강도에 입안이 바짝 말라 갔다.
“며, 몇 번이나 남은 겁니까?”
“이제 겨우 세 번째다.”
그렇다면 아직 열 번이나 남았다는 소리였다.
“예상보다 잘 버티는구나.
녀석이 하계에서 무슨 벌모세수를 받았다더니 그래서 천뢰를 잘 버텨내는 모양인 것 같다.”
백귀야뢰겁을 말하는 듯 싶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천겁을 무사히 견뎌내실 수 있겠죠?”
하지만 봉의 표정은 미묘했다.
“글쎄. 슬슬 버거워하는 걸 보면 쉽게 속단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말대로였다.
어느새 산군의 균천오광은 빛을 바랜 지 오래였다.
금세 깨어질 듯 오색의 빛이 점멸하자 산군의 낯에도 균열이 일었다. 이내 그의 오른손에는 청염이, 왼손에는 자색의 뇌전이 피어 올라 그를 보호하듯 뒤덮었으나 그것이 얼마나 천뢰를 버텨낼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왜 그러십니까?”
“천겁이 바뀌었다.”
“처, 천겁이 바뀌다니요?”
“쯧… 보면 알 것이다. 범이 더 힘들어지겠구나. 이런….”
그때였다.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우렛소리가 잠잠해지고 먹구름이 한 점으로 모여들어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빛이 반짝였는데 그것이 천천히 낙하했다.
손톱만 한 작은 빛.
그것이 떨어져 내리자 초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는데 하지만 이후에 나타난 광경을 보고는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빛이 산군의 머리 위로 떨어진 순간, 천뢰가 내려쳐도 눈을 뜨지 않았던 그가 눈을 번쩍뜨며 두 팔을 교차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앙!!
쩌저저저저적!!
천지가 쩌렁쩌렁 울릴 굉음과 함께 산군이 앉아 있던 지면이 거미줄처럼 쩌적 갈라져 폭발했다.
폭연은 뭉게뭉게 피어나 사방으로 풍겨져 나왔고 그 안에 자리하고 있을 산군의 기침 소리가 들려 왔다.
“컥, 크윽!”
툭, 투둑.
단순한 기침 소리가 아니었다.
함께 들려온 것은 코끝을 찌르는 혈향과 피를 토하는 소리였다.
“서…!”
단숨에 달려가려 했으나 봉이 막아섰다.
“자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그의 진수명화를 방해할 셈인가.”
꾸드득.
주먹을 힘껏 말아쥐었으나 봉의 말대로다. 지금 그에게 다가간다는 것 자체가 방해나 다름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저 그를 믿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또 온다.”
“저, 저게 대체 무엇입니까?”
“빗방울로 보이는군.”
“네?”
얼토당토않은 말에 샌 소리를 낸 그녀가 유심히 빛을 보았다.
믿기지 않았으나 정녕 봉의 말대로 작은 빛은 빗방울이었다.
손톱만 한 작은 빛방울이었으나 그 또한 천겁의 한 종류였다.
“오행의 겁 중 하나인 수겁(水怯)일 뿐이다.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겁인데… 이례적인 일이군.”
덕분에 산군의 진수명화가 더 어려워졌다.
하필이면 수겁.
화신통을 주로 수행한 산군으로서는 다른 것보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겁이었다.
“고통스러울 테지.”
허나 견디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이리되면 빨리 십생단으로 전생을 보는 수밖에 없겠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신의 전생. 그리고 검들의 전생이 그의 진수명화에 도움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수겁의 빗방울은 작디 작은 빛을 머금고, 산군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크아아아아아!!
본신으로 변한 포효소리와 함께.
쩌저저저적! 콰앙!!
다시 한번 지반이 갈라지며 짙은 모래바람이 피어올랐다.
* * *
한쪽은 새하얗고.
한쪽은 새까만 공간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까맣고 왼쪽은 하얗다.
나는 그곳에 한 다리씩 걸쳐 놓으며 앞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때로는 흰 곳으로.
때로는 검은 곳으로.
허나 그래도 결국에는 원점.
다시 중심으로 돌아와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걷고 걷다 보니 주홍빛의 빛무리들이 여기저기 두둥실 떠올랐다.
아이 주먹만 한 빛무리는 자세히 보면 안에 무언가가 비춰 보였다.
‘나잖아.’
그것은 범이였다.
정확히는 산군의 과거.
금환선향.
수월문.
용천.
백산.
검령도.
고선.
천요동.
일월.
그리고 다시.
“백산.”
걷는 것인지 이것들이 오는 것인지도 모르게, 자신이 행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몰려왔다.
점점 더 뒤로.
점점 더 깊게.
점점 더.
“과거로.”
그때였다.
쿠웅!
돌연 바닥이 꺼져버리며 깊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연스레 고개를 올렸을 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이었고 정신 차려 보니 산군의 앞에는 그리운 이들의 인영이 드리우고 있었다.
“사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잡아 일으켜주는 화봉. 그리고 곁에서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강룡이 있었다.
얼떨결에 화봉이 이끄는 대로 조금 걷자 그곳에는 양소팽과 차륙도 있었고 홍경과 화란도 함께였다.
참으로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허나 그러므로 이곳이 어디인지, 지금까지 본 것들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제 덕분이네.”
“사제가 아니라면 줄곧 이 검 안에 갇혀 잠들어 있었을 게야.”
“사제의 검이 되는 것도 나름 마음 편했지만… 우리들은 방해니까.”
꼭 어디론가 떠날 사람들처럼 말하고 있었다.
산군은 그 진의를 단번에 눈치채고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눈으로 보았다.
“가시는 겁니까. 이제 만났는데요.”
하고픈 말도.
해야 할 말도 아직 많이 남았거늘.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는데 어딜 간다는 말일까.
“우린 사제의 검이었네.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양소팽.
“허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이 당연하지.”
홍경.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질 테니 아쉬워할 필요 있겠는가.”
강룡.
“환생이 있다는 사실을 십생단을 통해 알았으니 무서울 것도 없네.”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얻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사형들의 얼굴이 편안해보인다는 것뿐.
“우리의 인연이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
그들은 화란을 바라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그들끼리 이야기를 마친 듯했다.
“사제의 선택이 항상 옳기를.”
“사제의 앞길이 창창하기를.”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를.”
양소팽의 곁에 있는 차륙도.
“슬퍼하지 않기를.”
마지막 남은 화봉은 산군과 화란을 힐긋이고는 짓궂게 말했다.
“사제의 여복이 조금 줄어들기를.”
그 직후.
사형들의 몸은 티끌로 허물어져 화란의 손에 검으로 변화했다.
안에 담긴 혼은 유유히 산군의 곁을 노니다 저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군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만 보다 고개를 돌려 화란을 보았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사형들의 검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의미 모를 미소만 짓고 있는 화란은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보시겠습니까.”
무엇을 말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전생.
그것을 놓고 간 것이리라.
“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안 볼 수가 없겠군.”
이내 산군은 화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직후.
화란이 먼지로 변해 산군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산군의 머리가 다섯이 되는 듯 묘하게 잔상을 일으키다 다시 하나가 되는 순간.
“아….”
멍한 듯 보이는 산군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이내 손아귀를 펼친 그는 다섯의 검을 불러냈다.
만극일검.
단허망검.
살성갑검.
골화척검.
혈영난검.
만극일검을 중심으로 나머지 검들이 순간 조각조각으로 흩어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러다 한순간.
콰아앙!!
강렬한 광풍과 함께 하나로 합쳐지자 균천오광과 함께 눈부신 빛을 발하는 보검으로 탈바꿈되었다.
“균천보화….”
이것이 바로 진정한 균천.
진정한 보화이리라.
아름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은연중 풍기는 기세는 그조차 서늘한 예기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려울 게 무엇일까.
이 검은 다름 아닌 화란이고, 사형들이 남긴 검이니.
무서울 것은 하나 없었다.
이내 하나 된 균천보화를 건드리자 푸른 기운으로 변해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쿠구구국구구궁!!
이내 산군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며 오색의 빛이 찬란하게 사방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 * *
콰아아아앙!!
“크윽, 아직 멀었습니까?”
“아직이다.”
계속되는 수겁의 난에 지면은 초박살이 나고 폭연은 사방을 뒤덮을 듯 피어올라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그 속에서는 범의 울음 소리만이 날카롭게 들려오고 있었다.
죽어도 골백번은 죽었을 겁의 강도에 초아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동안 줄곧 이런 것을….’
겪어왔단 말인가.
가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영수라서 버티는 것인지, 아니면 특별한 것인지는 몰라도 도저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의 시련이 아니었다.
그냥 죽으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초아는 원망스럽게 하늘을 바라보다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이리 두다간 제 서방을 눈앞에서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뭐하는 것이야!”
“이러다 제 서방님 죽겠습니다!!”
봉의 저지를 뿌리치고 달린 초아는 한참을 폭연 속을 가르고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멈춰 서자 보이는 것은.
“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채로 딱딱한 나무가 되어버린 범.
진명수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