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46)
낭선기환담-245화(246/600)
낭선기환담 – 245화
촤아악!!
순간 퍼져나오는 새하얀 한기에 지선들은 소매를 펄럭여 호신막을 만들고 저계 도사들은 황급히 물러섰다.
“무슨 짓이냐!!”
“탈의 영산에 함부로 침입한 것도 모자라 이런 무례한 짓을…!”
환망의 곁에 있던 지선들은 앞세워 그들을 핍박했다.
허나 그들은 이내 입을 다물고 얼굴을 찡그렸는데, 그 이유는 한기가 걷히고 보이는 것이 피투성이 사내와 그를 안고 있는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사내는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얼굴이 백지장이고, 많은 양의 피를 대거 흘리고 있었다.
인간의 몸에서 저리 많은 피가 흘러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았다.
순식간에 장내가 피로 흥건해져 웅덩이가 만들어졌으니 오죽할까.
“인간이 아니군요.”
지선 중 하나가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그리 말했다.
눈치를 채고 말할 것도 없었다.
사내의 이마에는 뿔이 돋아 있었고, 그의 등에는 네 장의 날개도 있었으니 모르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현 기운은 아주 미약해졌으나 저희들과 같은 지선. 아니, 영원 육사로 보입니다.”
여인은 태선이지만.
그러자 성을 내던 이들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아무리 빈사 상태에 있더라도 영원 육사라면 함부로 혀를 놀리고 난 후의 일이 걱정되는 게 당연했으니.
“환망의 손님이라 하셨나요. 저희에게도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환망이 무어라 하려는 찰나.
인파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헐레벌떡 달려 나온 사내가 소리쳤다.
“대호!! 그리고 부인께서는…!”
날카롭게 경계하던 여인의 낯도 그의 등장과 함께 조금 누그러졌다.
“이, 이게 어찌된….”
“부법주. 아시는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저와….”
그는 산군을 한번 바라보고는 의지를 다진 듯 확실히 말했다.
“형제의 술잔을 나눈 이입니다.”
지선 둘은 순간 환망의 낯을 살피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탈의 부법주가 저리 말했다면 자신들이 나설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 직후.
탈의 부법주.
장천은 환망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제 형제를 구해주십시오!!”
허나 환망은 가만히 장천을 내려다보며 눈가를 좁혔다.
“스승님!!”
대법주가 아닌 스승님이라 말했다.
그 모습에 환망은 장천의 절박함을 깨달았다.
“정세를 알고도 그리 말하더냐.”
“형제를 살리는 것에 정세 따위가 무슨 소용이랍니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것이 피 대신 술잔을 나눈 형제의 의입니다.”
장천의 말에 환망은 영 마뜩찮다는 듯 혀를 차고는 등을 돌렸다.
“좋을 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흥미로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 지선과 함께, 환망은 모습을 감췄다.
* * *
일 년 뒤.
고선의 숨겨진 공간에 있는 영산.
탈명산(脫明山) 중턱의 한 봉우리에 자리 잡은 비동에는 여러 진법들이 항시 발동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한 사내가 누워 있었는데 상체에 자리한 많은 상처 중에서도 복부가 꿰뚫린 상처만큼은 어떤 짓을 해도 회복되지 않았다.
“벌써 1년입니다. 어째서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 걸까요.”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장천이 곁에 있던 자에게 물었다.
그는 환망과 교류하는 몇 안 되는 지선으로써 풍만한 체형의 인상 좋아 보이는 얼굴의 사내로 완경(完鏡)선사라 불리는 자였다.
이곳에 자리한 진법.
도규진(刀圭鎭)들 또한 모두 그가 만들어낸 의술용 진법이었다.
“단순한 검상으로 보이지만 상처 부위에 강력한 신통이 작용하고 있네. 그로인해 회복이 안 되는 게야.”
한마디로 저주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상처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허나 곧 깨어날 걸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치료가 전혀 되고 있지 않은데 곧 깨어날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던가.
“비정상적으로 신식이 고강하더군.”
그때였다.
돌연 도규진의 빛이 철컥 꺼지더니 그와 동시에 그의 눈꺼풀이 떠졌다.
“대호!”
장천은 한걸음에 달려갔으나 이미 그의 곁에 있었던 여인이 있었기에 잠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저, 정신이 드십니까.”
입은 단출한 말을 내뱉었으나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많은 의미를 담아두고 있었다.
“그래….”
산군은 멍한 눈으로 초아를 바라보다 뒤쪽을 바라보았다.
퍽 익숙한 얼굴이 있었기에.
“장천…인가.”
“알아보겠소.”
그러자 산군은 쓰게 웃었다.
“친우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쇠하지는 않았네.”
“전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가 싶었습니다.”
장천은 반가움이 사무치는 듯 만연에 웃음을 머금었다.
“정신을 차려서 다행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술 한 잔 나누며 회포라도 풀고 싶지만…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니 미루어야겠지요.”
장천은 그리 말하며 곁에 있던 완 경선사를 바라봤다.
“우리는 이만 물러가지요.”
완경선사 또한 동의하는 듯 고개를 주억였고, 장천은 그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물러간 뒤.
산군은 초아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내가 1년이나 누워 있었다고?”
“네. 그리고….”
산군의 복부에 난 상처는 1년 전과 비교해도 다를 게 없었다.
피가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건 큰일이다.
산군은 제 복부를 슬쩍 만져보며 미간을 좁혔다.
짐작 가는 게 조금은 있었다.
“인상 피셔요.”
초아는 깨어나자마자 많은 걸 고민하기 시작하는 산군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의 미간을 엄지로 눌렀다.
“깨어나셨다고 해도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설명해 줄 테니 지금은 좀 누워 있으세요.”
도로 눕히자 산군도 무어라 못하고 자리에 다시 누웠다.
“서방님이 쓰러지시고 봉은 유무간을 빠져나와 공간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로 오게 됐군.”
“천칙에 의해 탐화는 물론, 봉 또한 한동안은 모습을 드러낼 수조차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당춘이 지니고 있던 보물 하나를 얻어 근시일 내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거라 했었으니, 곧 나오겠죠.”
“그건 다행이군.”
하늘의 법칙에 의해 상계의 존재인 탐화와 봉은 하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힘든 것이다.
덕분에 봉은 산군의 몸속에, 탐화는 그의 손목을 감싸는 팔찌로 변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처사다.
‘그 둘만 그런 건 아닌 거 같군.’
산군은 제 안에 잠든 무언가를 느끼며 그리 생각했다.
그가 왼손을 펼쳤다.
동시에 꽃내음 가득한 보검 한 자루가 떠올랐으나, 이내 뇌전이 튀기더니 허공에 스며들듯 사라져버렸다.
“서방님, 방금 그건….”
“화란을 꺼낼 수 없게 됐구나.”
아마 복부의 상처와도 연관이 많으리라. 애초에 산군이 완전하게 이룬 균천거검(鈞天巨劍)은 하계의 존재가 다룰 수 없는 경지다.
당연히 화란 또한 잠이 들어버린 듯 함부로 꺼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었고, 하계에서는 정점의 경지에 속한 영원 육사가 바로 산군이다.
탐화와 봉.
그리고 화란이 없어도 이곳에서 그를 위협할 적은 거의 없다.
“지금은 더 쉬세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정말.”
“그래…. 알았다. 알았으니 이제 마음 놓고 부인도 쉬세요.”
부인의 손등을 어루만지자 이내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참는다.
울먹거리는 눈망울에는 눈물을 한아름 담아 흔들거렸다.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오히려 고생은 서방님이 더 많이 하셨잖아요.”
말은 그리 하지만 속앓이를 하던 게 적잖이 많았는지 터져버린 울음 보는 쉽게 잠재울 수 없었다.
“이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소매로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울먹이는 모습이 퍽 어여뻤다.
“왜 울지 않으려고 했느냐.”
“저는, 전 울기만하고 도움이 전혀 되지 않으니…까요.”
그러자 산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긴, 그건 그렇지.”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그리 말하니 초아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이내 겨우 멎어가던 눈물이 가득 고여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농이다.”
“거짓말 마세요…. 진심이시잖아요.”
“아니…. 농이라니까.”
정말 제대로 속앓이를 하기라도 한 것일까. 농이라고 해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훌쩍훌쩍 거리는 꼴을 보니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흐뭇했다.
“본래 사내는 자신의 여인과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가는 법이고 여인은 그런 사내를 위해 집을 지키고 사내를 맞이하는 게다.”
“전 싫습니다. 저는 그 전장 또한 함께 거니는 여인이 되고 싶어요.”
“그러더냐.”
“네.”
산군은 손을 들어 초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넌 그런 아이였지.”
울기만 하는가 싶어 잠시 눈을 돌리다 다시 보면 마음을 다잡고 무언가를 하던 아이였다.
그 옛날.
산군이 죽은 줄 알고 저 홀로 복수심을 불태우며 결국에는 그 대신도사를 죽이기도 했었다.
본래 그런 아이였다.
그리고.
‘그리 살다 죽는 아이였지.’
씁쓸한 낯을 하던 그는 알뜰살뜰 보살피는 초아의 손길에 노곤노곤 잠이 와 곤히 잠에 빠졌다.
* * *
한편.
“어때 보였습니까.”
자리를 벗어났던 완경선사는 다른 지선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반송장이나 다름없었지만, 눈은 맑아 보였고 흔들림 없는 기운의 정순함은 만만히 볼 게 아니었습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닌데요.”
완경선사의 곁에 있는 지선은 얼굴이 긴 여우상의 사내였는데, 팽조(烹調)라 불리는 선사였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 자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지네를 닮은 팔찌. 그걸 말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흠….”
완경은 침음성을 흘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팽조는 답답함에 술병을 벌컥벌컥 마시고 턱! 내려놓았다.
“대답할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그럴 리가요. 다만…. 저로서도 확실히 할 수가 없는 부분이라 그렇습니다. 저희 예상대로 상계의 물건을 지닌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혹여 아니라면 큰 낭패가 아닙니까.”
“그건….”
팽조가 입을 다무니 완경이 서글 서글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조금 더 기다려 보시지요. 애초에 상계의 물건이라도 어떠한 것인지, 또 무슨 신통을 지녔는지 떠볼 기회 정도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환망선사 또한 그가 지닌 팔찌에 관심을 보이는 듯 했으니까요.”
“정말입니까? 그 환망선사가?”
“예. 저희도 알아보는데 우화등선에 한없이 가까운 환망선사가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있나요.”
팽조의 낯이 도드라졌다.
“잘만 하면….”
“상계의 신선과 인연이 닿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리된다면 등선으로의 길이 불투명해 보이지만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