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47)
낭선기환담-246화(247/600)
낭선기환담 – 246화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산군은 제 팔을 베고 자고 있는 그녀를 깨닫고는 쓰게 웃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겨주니 배시시 웃으며 더 품으로 들어오려고 애썼다.
“깼느냐.”
“아뇨, 안 깼어요.”
히죽히죽 웃으며 저리 말하니 저도 모르게 입가가 둥글어진다.
“그럼 더 자거라.”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 하니 초아가 힘으로 그를 눌렀다.
“몸도 성치 않으시면서 어딜 가시려고요. 더 누워 계셔요.”
움직이려하니 화들짝 눈뜨며 훈계하듯 말한다.
“자그마치 1년이나 누워계셨어요. 조금 더 안정을 취하셔야죠.”
그리 말하며 허리를 감싸 안아 단단히 붙잡았다.
절대 움직이게 두지 않겠다는 듯한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산군은 코가 맞닿을 듯, 함께 누워 있는 초아를 보며 말했다.
“넌 내 앞에서만 그리 어린아이처럼 구는구나. 나이는 몇 백 살이나 먹은 할머니나 다름없으면서.”
그러자 초아의 이맛살이 단숨에 찌푸려지고 볼이 부풀었다.
“지금 그게 하나뿐인 현모양처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요즘 현모양처는 서방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막는다더냐.”
“무슨 말씀을 하셔도 막을 거예요. 오늘은 소첩과 함께 빈둥거리는 것을 목표로 하세요!”
한없이 진지하게 말하는 어투에 산군은 배꼽이 빠질 듯 웃었다.
“왜, 왜 웃으세요! 장난 아니에요!”
발끈하며 소리치더니 제 말이 진담이라는 듯 산군의 몸 위로 올라타 몸을 꽈악 껴안았다.
“오늘 하루 종일 이러고 있을 테니 어디 나가실 생각은 미리 접으세요.”
“참나….”
겉으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나 그도 싫지는 않았다.
언제나 제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는 부인이 저리 떼를 쓰며 껴안고 있는데 싫다할 사내가 어디있을까.
산군은 졌다는 듯 부인의 등을 토닥이며 함께 껴안았다.
그녀는 기분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행복한 한 때를 보내려는 차.
“안되겠구나.”
“네?”
미안하다는 듯 말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자.
산군이 몸을 일으켜 그녀를 품에 안아 침소에 앉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 잡으니 부적 한 장이 손에 들려있었다.
초아는 느끼지도 못했던 전음부다.
일부러 은밀히 전음부를 보낸 것으로 보아 그의 실력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아마도 지선 중 하나.
그 중에서도 이곳의 주인이라 불리는 탈의 대법주.
환망이 보낸 것이리라.
“1년이나 신세를 졌으니 얼굴 보고 인사는 해야 도리에 맞겠지.”
전음부를 살펴본 산군은 익숙하게 그것을 태워버리려다 흠칫했다.
‘그렇군.’
태천외양신공을 익혀 산군의 몸속에는 화정(火定)이라는 응집된 화구슬이 생겼는데, 그 때문에 그의 화신통은 몇 단계나 진일보한 상태다.
당연히 영원의 육사가 사용할 만한 화신통은 아니다.
그는 곧장 자색 뇌전으로 전음부를 태우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뭣하느냐. 집 주인에게 인사라도 드려야 하니 준비하고 오거라.”
“네? 저도요?”
“여기 내 부인이 달리 또 있나?”
“아… 다, 당장 준비하고 올게요!”
정신머리가 없는 것인지 부부로서 인사를 하러 간다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치도 못했다는 얼굴이다.
‘하긴.’
여지껏 서로 수행만하고 잠깐 함께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라 부부라 할만한 일은 딱히 한 게 없었다.
“이제는 부부다운 일도 해야겠어.”
직접적으로 산군을 위협하는 적은 죽거나 사라졌고, 하계에서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제는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그녀와 시간을 보내며 수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있자 초아가 준비를 마쳤는지 다가왔다.
“가요.”
눈처럼 새하얀 백발은 단정하게 묶어 도모잠으로 틀어 올렸고, 새하 얀 궁장은 그녀의 머리색과 같이 아름다웠다. 금색과 붉은색으로 장식된 백색 궁장은 그녀의 미모와 기품을 한껏 올려줬다.
“아이 참. 그러고 가시려고요?”
“내가 뭘.”
그러고 보니 준비하라고만 했지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보다못한 그녀가 산군의 도포를 꺼내 정리해주고 머리를 빗질해 다시금 묶어주자 한결 깔끔해졌다.
“됐나?”
“네, 이제 가요.”
누가 보면 어디 꽃놀이라도 가는 듯한 모습이다.
산군은 이리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왠지 들떠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부로서 누군가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소리가 그녀에게는 퍽 기분좋은 일인 모양이었다.
처소 밖으로 나가니 탈을 쓴 어린 시비가 그들을 마중나와 있었다.
‘이곳이 탈은 탈인 모양이군.’
단숨에 과거의 기억이 상기됐다.
고선에서의 전투와 그로 인해 죽어나간 탈의 도사들.
그리고.
그 모든 원흉도.
‘궁금하긴 해.’
아직도 잘 봉인되어 있는지.
아니면 소멸 되었는지.
“선사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법주께 안내하여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거라.”
시비는 절벽 끝에서 비행 보패를 꺼내려했으나 산군은 이내 저지했다.
“왜 그러시는지요.”
“내 것을 타고 가면 된다.”
이내 산군이 소매를 펄럭이니 그 안에서 무언가가 빙그르르 돌며 나타나 거대한 물체로 변하였다.
삼십 여장 정도 되어 보이는 삼각형의 무언가는 나타나자마자 화구름을 발산하며 모습을 드러냈는데, 산군의 복수 중 하나인 화운반홍이었다.
꾸우웅!
오랜만에 바깥에 나와 신났는지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산군의 머리맡을 선회했다. 시비는 자신과 맞먹는 복수의 기운에 화들짝 놀랐으나 이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안내해라.”
“아, 네, 넵!”
이내 시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자 의외로 아무것도 없는 봉우리로 향했다. 탈명산에서 가장 놓은 봉우리였으나 어디를 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바위와 나무 몇그루가 솟아 있는 평범한 봉우리일 뿐이었다.
화운반홍에서 내려 길을 올라가자 그 가운데에는 적당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환망의 모습이 보였다.
“오셨는가.”
그 곁에는 반가운 얼굴인 장천 또한 함께였다.
눈인사를 한 산군은 환망을 향해 포권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빚을 졌습니다.”
자신을 치료한 것에 대한 감사였다.
“빚이랄 것도 없네. 자네를 살린 것은 부법주의 뜻이었고, 그 부법주를 도운 것은 완경선사라 불리는 자이니 감사를 말할 거라면 그자에게 하세.”
“허나 그것을 허락한 것은 환망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것 말고도 감사를 전해야 할 게 있습니다.”
“무엇을 말인가.”
이전, 신검합일의 주진에 놓여 사형들과 하나되었을 때 산군은 심마가 발작하여 위험할 뻔했다.
자칫했으면 심마에게 삼켜져 자신을 잃었을지도 몰랐으나, 환망이 심어둔 금제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도움을 받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감사하지 않을 리 없다.
허나 환망은 그리 탐탁치 않은 듯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난 자네가 탈명산에 나타나 다 죽어가고 있을 때. 심히 고뇌했네.
살려야 할지 두어야 할지. 아니면…”
“죽여야 할지 말입니까.”
“그렇네.”
그러자 초아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약조를 어겼다는 것이지.”
“고선에 발 디디지 말라던 그 약조 말입니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환망은 세 가지를 당부했었다.
만성독염을 회수할 것.
고선에 다시는 발 붙이지 말 것.
제 여인을 찌를 것.
두 가지는 당부이자 염려였으나 나머지 하나는 경고였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나와의 약조를 저버린 것은 사실.”
휘이잉. 싸늘한 바람이 산군과 초아의 곁을 스치었다.
“허나 그러지 않으셨죠.”
허나 그럼에도 환망은 산군을 내치지 않았다.
“곧 탈의 대법주를 이을 제자놈의 의형제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의형제? 슬쩍 장천을 바라보니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대강 알 것 같았다.
“명확히 말하지. 난 자네가 싫네. 자네는 필히 피를 부르고 다닐 상이니 당연하지 않겠나.”
“이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틀리지 않았지. 자네의 이야기는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으로 들었지.
동쪽의 뇌선사와 그 문파들을 멸족시킨 것도 모자라 십해만척의 일원이 되어 육귀의 좌를 받았다지? 그 손에 흐를 피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될 정도로 살육을 행하지 않았나.”
“어쩔 수 없는 처사였습니다. 제가 죽이지 않으면 죽임당하는 것이 도계에 속한 자들의 숙명이니까요.”
산군으로서는 조금 억울했다.
환망은 그가 피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산군은 그리 생각지 않았다.
그는 항상 자신을 노리는 놈들에 휘말린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 오늘 감사를 말하러 왔습니다.”
“난 그 감사 받을 생각 없네.”
저리 완곡한 태도를 보이니 감사를 전하려던 그도 슬슬 열이 뻗칠 수밖에 없었다.
산군의 눈초리는 점점 차가워지고 기운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대단한 살기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쳤는지 가늠도 되지 않아.”
그리 비난한 환망이 지니고 있던 지팡이를 땅으로 툭 짚었다.
쿠웅-!
지팡이 끝에서부터 원형으로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섬뜩한 인상의 신통이었다.
초아는 한눈에 보통 신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고 뒷걸음질 쳤으나 산군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괜찮다.”
툭.
순식간에 퍼지던 잿빛의 공간은 산군이 발을 한 발 내딛자 푸른 안개로 산화되어 바람으로 흩어져버렸다. 그 모습에 환망의 눈초리가 더없이 날카로워졌다. 자신의 신통을 너무도 가볍게 없애버려 놀랍기도 했다.
‘…고작 천 년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이 정도 경지에 오른 건가.’
처음 보았을 때, 그는 고작 영결에 속하는 육사일 뿐이었다.
한데 몸도 성치 않은 상태로 이제는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퍽 감회가 새로웠다.
“…자네는 아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자네의 존재가 탈명산에서까지 피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일세.”
환망은 산군의 팔찌를 보았다.
“그러니 어찌 내가 자네의 존재를 반길 수 있겠는가.”
나름대로의 충고였다.
허나 산군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다른 이의 것을 노리는 자들이 잘못된 것이지 제 잘못은 아니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피바람의 중심에 언제나 자네가 있다는 것 또한 다르지 않은 사실이지.”
산군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빙빙 돌려 말하는 그와의 대화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원하는 것? 그런 건 없네. 등선을 준비하는 자가 무엇을 원할까.”
그의 표정은 변함없이 우묵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소한, 이곳에서 피 냄새를 뿌리지 말라 당부하는 것일세.”
산군은 한참이나 환망을 노려보다 등을 돌렸다.
그런 산군을 향해 환망은 입을 달싹이며 전음을 날렸으나, 그는 흠칫 발걸음을 멈추다 초아와 함께 한줌 연기로 변해 모습을 감추었다.
산군과 그 부인이 사라지고.
“네가 걱정할 일은 없겠구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의 신식은 나보다 더 강대하다. 지금은 기운이 많이 쇠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신통을 가볍게 막아선 것을 보니 네가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구나.”
더불어.
“백산파 또한 네가 우려할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쓸데없는 짓 말고 네 수행이나 신경 써라. 내가 등선하면 고선은 네가 지켜야 하는 것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장천은 너무 멀리 앞서간 제 벗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 * *
탈명산 위에는 난데없는 화구름이 자리 잡아 진귀한 경관을 만들었다.
“신경 쓰이세요?”
화운반홍 위에 앉아 초아와 탈명산 근처를 날아다니는 산군은 환망이 했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화나셨어요?”
같이 듣던 초아도 화딱지가 날 만한 말들을 뱉어내던 환망이다.
산군이 화나지 않을 리 없었다.
“아니. 화나지 않았다.”
하지만 산군은 전혀 화나지 않았다.
언뜻 들으면 신경 거슬리는 말만 뱉어내는 듯 했으나 속뜻은 그렇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어투가 좋지 못했으나 그는 내게 누군가 탐화를 노리고 있다 충고해준 것뿐이다. 그리고 살생을 쌓으면 쌓을수록 짙어지는 살기에 대해 경고한 것이기도 했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 않던가. 환망이 산군에게 품은 감정은 그것과 조금 닮아있는 듯 했다.
“그리고….”
환망은 마지막에 전음으로 그런 말도 했었다.
-자네 등허리가 꽂힌 검도 뽑지 못했는데 사투를 벌여서야 쓰겠나.
산군은 제 도포를 슬쩍 풀어 자신의 아물지 않은 검상을 보았다.
단령금정을 펼치자 보이는 것은.
희미한 검의 형상.
“나름대로 걱정해주는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