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48)
낭선기환담-247화(248/600)
낭선기환담 – 247화
“네? 그럼 아까는 왜….”
화가 난 듯한 모습을 보였냐는 것이다. 환망의 진위를 알았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보여준 것뿐이다. 이 정도의 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 도리어 자신 또한 있다고 말이야.”
예전과는 달리 상하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에 있다 말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 했기에….”
환망이 산군의 몸에 꽂혀있는 검 또한 언질했던 것이다.
그것이 걱정스러워 한 말인지, 아니면 은연중 압박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다.”
확실치도 않은 걸로 괜한 걱정을 하게 할 필요는 없을 터.
화운반홍 위에 있는 산군과 초아는 그 뒤로 탈명산 인근을 돌아보며 근처를 구경했다.
명산은 명산인지 근엄하게 자리잡은 영산의 크기와 영기 또한 손색이 없는 고산이었다.
그들은 한참을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장천이 보낸 시비가 도착하고 나서야 화운반홍 위에서 내려섰다.
“어땠습니까. 본래 탈에 소속된 자를 제외하고 극히 일부의 분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 바로 탈명산입니다.”
나름 자부심이 있는 듯한 어투다.
장천의 말대로 좋은 산이었다.
수도자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산은 없을 것처럼 잘 관리된 산이요, 영기 또한 가득했으니 두 말 해 무엇 하랴.
허나 평범한 수도자들과는 관점이 달라진 그는 한편으로는 이 영산 또한 신선의 혼이 녹아있다 생각하게 되어 숙연해지기도 했다.
“아무튼, 이리 만났는데 그 동안의 회포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호. 당신이 피칠갑을 하고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때 제가 얼마나 많이 놀랐는지 아십니까?”
“하하, 그건 미안하게 됐군.”
산군이라도 장천이 피칠갑을 하고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면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미안하다는 듯 말하자 장천이 히죽 웃으며 손짓했다.
“이제는 수도의 끝에 다다른 당신에게 대접하기에는 볼품없을지도 모르나 조촐하게 준비했으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대받지도 않은 손님이니 무엇을 바라겠나. 무엇을 대접하느냐보다는 내 앞에 자리한 벗이 더 중한 게지.”
화기애애하게 술잔을 나누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장천은 산군이 만성독염을 회수했을 때를 기점으로 고선으로 돌아와 오로지 수행에만 힘썼다고 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태선 중경에 올라 있었고 이제 곧 환망이 등선하면 그 뒤를 이을 것이라 했다.
산군은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품에서 적당한 선물을 꺼내 주었다.
“받을 수 없습니다.”
“받게. 그리고 이제는 그 존댓말도 좀 집어치우고.”
장천은 완곡히 사양했으나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손에 쥐어주어 돌려주지 못하게 했다.
“…이 귀한 것들을 어찌.”
장천의 손에는 각종 진귀한 영초들과 보패들이 들려 있었다.
대부분 금환선향에서 얻어낸 것들로 태선이라도 손에 쥐지 못해 안달난 것들이었다. 이곳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선초와 약방서까지 있었으니 오죽하랴.
장천은 너무 귀한 것들이라 부담스러워했으나 산군은 호탕하게 웃으며 넣어두라 권했다.
“친우에게 보잘 것 없는 걸 쥐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정도는 되어야 선물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더 듣지 않겠네. 정싫다면 내다 버리던가 하시게.”
“어찌 그러겠습니까.”
“존대좀 치우래도.”
“어, 어찌… 그럴까.”
“뭘 어찌 그래. 그냥 받으면 되지.”
장천은 퍽 난감했다.
안 그래도 지선과 동급이라는 영원 육사가 된 벗이다.
그것만으로도 어찌 대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존대도 치우라하고 이런 귀한 것도 선물이라며 덜컥 주어버리니 어찌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기뻤지만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네.
내 환망선사에 비한다면 오랜 삶을 산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대강 살아보니 알겠더군.”
“무엇을 말인가.”
“마음을 나눌 벗이란 게 그런 것보다 백배 천배는 귀하다는 걸.”
배신당할 것이 두려워 다른 이와의 관계를 아예 단절한 자들도 많은 것이 도계의 상식이다.
산군 또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그렇게 죽어가는 이들 또한 수두룩하게 보았다.
이런 세상에서 믿을 만한 벗은 천하에 자리한 기연보다 찾기가 어려운 법이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 것들보다야 우리가 맺은 관계가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니 마음 쓸 필요 없다는 것이네.”
장천을 축하하는 의미이기도 했으나 산군 나름대로의 감사이기도 했다. 그가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
장천이 나서서 자신을 구해야 한다고 했던 걸 초아에게 들었다.
지선들 앞에서 태선이 그리 나섰다는 걸 생각하면 겨우 이정도 선물은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이전에도 그러했었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검령도에서 해룡족의 장로가 그를 죽이려 했을 때에도, 장천은 환선의 위치로 영겁에게 맞섰었다.
세상 어떤 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 놓으며 벗을 지키려 하겠는가.
천금을 주어도 부족함이 당연하다.
“이것 참….”
장천은 못 당하겠다는 듯 산군의 선물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자네, 나와 형제의 술잔을 나눈 자라고 했었다지?”
“그건… 하하….”
산군을 살리기 위해 했던 거짓이다.
급한 마음에 그리 했었으나 산군이 그리 놀리니 부끄럽기도 했다.
“자네 마음을 어찌 모르겠나. 비록 우리가 의형제를 맺지는 않았으나 그 마음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니,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라 하지 않겠나.”
“대호 자네….”
“의형제를 맺어서 나쁠 건 없으나 그리한다면 형과 아우의 사이가 될 것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동등한 관계가 좋았다.
의형제를 맺을 필요는 없었다.
“하긴, 나이는 내가 더 많으니 의형제를 맺는다면….”
형은 장천이 될 것이다.
“어허, 어디 형, 아우를 논하는데 나이만 따질 수 있나. 본래 태어남에 순서는 있어도, 죽음에 순서는 없는 법이 진리이거늘.”
“맞는 말이지. 경지의 차이가 있다 해도 죽는 것에 순서는 없으니.”
술잔을 든 산군의 손이 멈췄다.
“의형제를 맺을 것도 아니지만, 맺는다고 한다면 형은 내가 됨세.”
“하하하, 그건 아니지. 자네 성정에 형은 어울리지 않지. 딱 내 아우가 어울리는 성품이 아니겠나.”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둘은 돌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싸우니 어찌 우습지 아니할까.
그렇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산군과 장천은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별 것 없는 한담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이토록 재미난 것이 없었다.
그동안 어찌 살았냐.
수행은 어찌 되어가고 있느냐.
또는 마음에 둔 여인은 있는가 하는 사내끼리 나눌 가담항설을 나누며 기분 좋게 회포를 풀었다.
즐거운 시간이지 않을 수 없었다.
초아 또한 한 자리에 있었으나 그녀는 굳이 입 열지 않고 지켜보았다.
제 서방이 친우와 떠드는 것을 보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고, 이렇게까지 각별히 장천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었기 때문이다.
‘정말 즐거우신가 보네.’
저리 호탕하게 웃고 즐기는 산군을 보는 것도 거의 처음이었다.
자신과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낭군의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우의(友誼)를 나누고 있으셨구만. 이거 참… 내가 방해한 게 아닌가 모르겠네 그려.”
방해였다.
허나 어찌 그것을 티낼까.
장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방해라니요. 다른 수도자들은 완경선사와 인사라도 한 번 하는 걸 크나큰 명예라 생각하는데요. 대호. 자네도 인사 드리게나. 자네 상처를 치료해준 장본인이신 완경선사시네.”
“아….”
그러고 보니 환망이 그랬었다.
자신에게 감사할 것이 아닌, 완경선사에게 감사를 전하라고.
초아도 오고가며 낯이 익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했다.
마지막으로 일어난 산군도 완경에게 인사하며 자리를 권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 부인과 친우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제가 한 게 있겠습니까. 그저 보잘것없는 재주 몇 개를 부려 회복에 보탬을 준 것뿐이죠, 하하하!”
완경은 비어있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술잔을 비웠다.
“술맛이 아주 좋습니다 그려.”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한데 어인 일로 찾으셨는지요.”
산군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빙글빙글 웃고 있으나 그 속내는 왜 왔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하, 죄송하게 됐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오히려 기다림을 더 참지 못하게 되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름 높은 백산파의 장문을 뵙고 깨달음을 나누고 싶기도 했습니다.”
딸깍.
술잔을 내려놓은 산군은 옅은 미소를 띠웠다.
“제가 그리 유명했는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백산파 장문이 저라는 걸 어찌 아셨습니까?”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지선들이 인계에는 몇 없다지만 그래도 저희들끼리는 연락망을 갖추고 있고, 정보통을 통해 나름대로 도계의 정황을 살피고 있으니 알고 있지요.”
지선들끼리 연락망을 갖추고 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흥미롭네요.”
“하하, 백산파 장문께서도 원하신다면 언제 한 번 소개하는 자리에 초대하리다! 천년도 되지 않아 영원에 오른 하늘에 둘도 없는 자질을 지닌 분이니 반대할 이가 어디 있겠소.”
“제가 도사가 아님에도 말입니까.”
“하하, 등선하여 속세와 연을 끊을 시기인 저희가 그런 사사로운 것에 어찌 얽매이겠나. 저희 경지가 되다 보면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두 신경 쓰지 않게 됨이 당연한데 말이오.”
산군이 영수이든 무엇이든 인계의 끝에 다다른 경지이니 인종을 초월하여 바라본다는 것 같았다.
하기사, 지선 급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등선하여 상계로 오를 날만을 기다리는데 인간이 어떻고 영수가 어떻고가 무슨 상관일까.
“게다가 저희는 슬슬 힘의 제약을 받기도 하는 시기이지 않소.”
“음….”
그 말에는 산군도 긍정했다.
힘의 제약.
산군은 깨어남과 동시에 이질적인 압박을 줄곧 느끼고 있었다.
이것을 압박이라 해야 할지 무엇이라 해야 할지 조금 애매하기도 했다.
그저.
‘좁아.’
그런 감각이었다.
비좁은 상자에 넣어진 기분이랄까.
“어쨌거나, 저희 나름대로의 교역회라 이름 붙여 간간히 거래를 하거나 깨달음을 나누기도 하니, 후일에 장문께도 내 연락을 한 번 취하리다!”
성에 차지 않는지 술잔이 아닌 술병을 벌컥 들이킨 완경은 이내 은근한 얼굴로 입을 달싹였다.
-솔직히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장문이 지닌 그 팔찌에 관해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섭니다.
산군에게만 전음을 보낸 것이다.
-팔찌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그리 답하니 완경이 히죽 웃었다.
-선력이 깃든 그 팔찌가 제게는 꼭 필요합니다.
-흠….
이리 직접적으로 팔찌를 언급하며 다가올 줄은 몰랐다.
산군이 고민하고 있자 완경은 십분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제 부탁이야 거절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한 번 들어보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려울 것 없으시지 않습니까.
듣는 것이야 어려울 게 뭐 있을까.
-좋습니다. 제 부탁을 수락하고 말고를 떠나 백산파의 위기에 한 번 도움을 줄 거라 다짐하지요.
안 그래도 백산파가 지금 곤경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가볍게 말하는 듯한 완경의 말에 대번에 산군의 미간이 좁혀졌다.
-백산파가 곤경에 처해…?
-모르셨습니까? 백산파는 지금 동해의 삼대 해족들과 전쟁을 펼치고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