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50)
낭선기환담-249화(250/600)
낭선기환담 – 249화
한달 뒤.
광활한 하늘 위에서는 돌연 화구름이 피어났고, 그 선두에서는 거대한 가오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산군의 복수인 화운반홍이었다.
“신경 쓰이세요?”
“그거야 뭐… 그렇지.”
산군과 초아는 탈명산에서 벗어나 백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의 몸은 더 이상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었고, 장천과의 회포도 풀고 등천로의 이야기도 마쳤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손에 들린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잿빛으로 이루어진 구슬.
작은 봉인구였다.
한달 전.
.
.
.
“가시는가.”
“가야지요. 언제까지 이곳에 신세를 지고 있을 수도 없고, 백산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럼 따라오시게.”
환망이 지팡이로 땅을 짚자 구축된 진법이 펼쳐졌다.
하나의 부적과도 같은 진으로 전송진으로 보였다. 공간이 일렁이며 주위의 풍경이 달라졌다. 다른 공간으로 전송된 것이다.
퍽 어두운 공간이었고, 주위에 은은한 촛불이 음침함을 드높였다.
지하에 만들어진 작은 비동으로 보이는 공간.
벽 한켠에는 장식장처럼 만들어진 석벽과 기괴하게 생긴 그릇 위에 올려져 있는 구슬들이 인상적이었다.
산군도 언젠가 한번 본적이 있는 잿빛의 구슬이었다.
“환망선사. 이건….”
“자네와도 연이 있는 물건이지.”
여러 구슬들이 놓여져 있었다.
신식을 펼쳐 대강 세어 보아도 수백에 이르는 구슬.
봉인구들이었다.
“이거로군.”
환망은 그들 중, 하나의 봉인구를 꺼내며 산군에게 건넸다.
“자네와의 악연이지 않나. 내가 지녀도 처치 곤란이니 그 연결고리를 끊던지 잇던지는 알아서 하게.”
떠넘기듯 건넨 봉인 구슬이 산군의 손에 들어왔다.
구태여 말하지 않았으나 이 구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귀음나찰.’
예후가 자리하고 있으리라.
“어찌 저에게 주십니까.”
“말하지 않았나. 자네와의 악연을 지닌 것이니 주는 거라고.”
“하지만 귀음나찰은 고선의 범인들과 도사들을 셀 수 없이 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저와의 악연이라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산군의 물음에, 환망은 피식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녀는 자네를 원했지 않은가.”
산군의 낯이 와락 찌푸려졌다.
봉인구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으나 반박할 말이 없었다.
“어찌하던 자네 마음이네.”
죽이든 살리든.
이제는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어찌 아직까지 둔 겁니까.”
멸하지 않고 이리 봉인구로 가둬 놓기만 했냐 묻는 것이다.
“나 따위가 무어라고 이들의 목숨을 함부로 거두겠는가. 본래 하늘이 있으면 땅도 있는 법이니 저들이 살고 죽음은 모두 제 팔자에 달렸겠지.”
“제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뜬금없는 소리였다.
허나 환망은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환망선사. 당신은 꼭 제게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려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틀렸습니까.”
“자네와 나의 경지가 동등하고 우위가 없는데 내 무엇을 가르칠까.”
허나 그럼에도 환망의 입가는 둥글게 변해 달라지지 않았다.
“제게 귀음나찰을 살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건 자네 마음이겠지. 그리 고민하게 됐다면 한번 생각해보게. 죽이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살려서 이롭게 쓰게 할지 말일세.”
.
.
.
“이롭게라….”
자신과 부인을 다치게 하고, 수 백 수 천의 범인들을 죽이고 고선에 만행을 저질렀던 여인이다.
그런 여인을 어찌 이롭게 쓸 수가 있단 말이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환망의 뜻을 헤아려 볼 수 없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초아에게 물었다.
그녀 또한 귀음나찰과 연이 있으니 한 번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초아는 산군의 손아귀에 있는 봉인구를 보다 간단히 답했다.
“지금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봉인되어 있으니 후일에 쓸 일이 있다면 그때 쓰면 될 것이니 지금 결론을 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귀음나찰을 어찌하는 것이야 눈을 뜨고 감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산군은 영원에 이른 육사였고, 귀음나찰 예후는 이제 전처럼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녀의 말처럼 후일에 귀음나찰을 쓸 일이 있다면 쓰면 되는 것이고, 필요가 없다면 정리를 하면 된다.
‘찝찝하군.’
허나 지니고 있는 것 자체가 묘하게 찝찝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털어내고 봉인구를 공정강에 넣었다.
문제가 생긴다 해도 이제는 그를 처리할 힘이 있으니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모르지.’
지니고 있다 보면 복이 되어줄지.
이내 산군은 초아와 함께 화운반홍을 타고 곧장 백산으로 향했다.
* * *
하늘 높이 솟아있는 새하얀 산.
백산.
그 주변에는 도사와 육사들이 한데모여 진을 이루고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오묘한 환진으로 운무가 깔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엄중한 백산 인근과는 달리 천리 밖.
해안가에서는 한창 백산의 도사들과 해족들의 전투가 연이어 벌어졌다.
콰앙!!
거대한 폭발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다채로운 신통들과 진법.
그리고 환진들이 펼쳐져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만 장로님! 동쪽 전열에서 싸우고 있는 운모 대사형이 곤경에 빠졌다고 합니다!”
“뭐야? 저쪽에 태선급 놈들이라도 나타났느냐? 어찌 운모가…!”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구나. 안 그래도 사방에서 놈들이 조여들어 점점 궁지로 몰리고 있는데… 에잇, 비켜라! 장문의 적전제자인 운모가 잘못된다면 내 장문을 뵐 면목이 없다!”
“만호 장로님! 위험합니다!”
“언제는 안 위험했느냐 나와라!”
그는 산군과 인연이 닿아 백산에서 장로직까지 역임하게 된 만호였다. 그는 백산에서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에 환선 중경에 이르게 되어 장로가 되었으나 지금만큼은 자신의 직위가 원망스러웠다.
‘육시라할.’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이 전장에서 발을 빼고 싶었으나, 백산파의 장로가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이제는 자신도 백산의 일원.
그 중에서도 고위 인사다.
삼귀나 따라다니며 기연 구걸을 했었던 예전과는 달리 팔자 한 번 제대로 피게 된 것이다.
그게 모두 백산파와 백산파의 장문 산군 때문이었으니 그 은혜가 하늘과도 같았다.
그러니 전장에서 발을 뺄 수도 없음이요, 백산파보다 더 나은 문파도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수도를 행하는 데 백산파처럼 풍족한 지원과 영기를 쉽게 내주는 곳이 또 어디 있던가.
그 덕분에 경지를 올렸던 만호이니 떠나래야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백산에 몸담고 있는 도사들 대부분이 그러하니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다.
“가자.”
“옙.”
이내 만호를 비롯한 열댓 명의 도사들이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잠시 뒤.
카앙!!
허공에서 부딪치는 여러 보패들의 철성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살기를 내뿜는 보패들이 허공에서 어우러져 대기를 찌르르르 울렸다.
그 앞에 맞서고 있는 사내는 약관에 이른 듯한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었는데, 어디 다쳤는지 얼굴이 파리하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제 포기해라.
동해의 삼대 해족은 물론, 방곡의 선도문들 또한 나서서 백산파를 뒤집으려 하는데 네놈들에게 희망이 존재하기라도 하더냐?”
이죽거리는 해족 육사의 말에 청년은 이를 갈며 화를 억눌렀다.
“대사형. 전 괜찮습니다. 그러니 사형이라도 살아주세요….”
“그게 무슨 소린가 피 사제. 우리는 백산의 제자들이 아닌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허나 저와 달리 대사형의 장문의 적전제자가 아닙니까! 저와는 목숨의 무게가 다르신 분입니다!”
저 청년이 바로 산군이 거두었던 적전제자 운모였다.
“목숨의 무게가 어디 있나! 모두 하나같이 소중한 게 목숨이네!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게나!”
해족 육사는 꼴값을 떤다는 듯한 표정으로 턱짓했다.
“그렇다 하니 고이 보내 주거라.”
“존명!”
이내 해족 육사 스물이 둥글게 포위하니 빠져나갈 방도는 없었다.
그들의 보패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네 이놈들!!”
빛줄기 열댓 개가 벼락처럼 날아와 해족 육사들에게 들이닥쳤다.
콰앙!!
“크아악!!”
해변의 모래먼지가 걷히고 보이는 것은 익숙한 뒷모습.
“만 장로님!”
만호였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말은 그리 했으나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육사들 반절이 기습에 당해 피를 뿜고 보패를 잃어 내상을 입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만호는 곧장 자신의 본선법패를 꺼내 춤사위를 벌이듯 발을 움직였다.
“내 놈들의 발을 묶을 것이니 어서 피 사질을 데리고 가게나!”
“괜찮으시겠습니까.”
“누굴 걱정하는 겐가. 나 만호는 백산파 장문님과 전설속의 검령도에서 검술을 수행한 몸이다! 고작 해족 놈들 몇으로는 어림도 없지!”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노라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 없다.
운모는 피 사제를 안아들었다.
“반드시 살아오십시오!”
“당연한 소릴! 어서 가게!”
허나 해족 무리의 대장은 어림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누가 보내준다더냐! 뭣하느냐 동해의 원수인 백산파 장문의 제자다!
모조리 죽여버려라!”
그때였다.
쿠르릉 쿠릉!!
돌연 거대한 우렛소리와 함께 하늘이 뒤덮일 듯 먹구름이 드리웠다.
“갑자기 무슨… 윽!!”
그와 동시에 거대한 영압이 사방을 지르누르자 해안가 주변의 해족 육사들의 무릎이 털썩 고꾸라졌다.
“크에엑!”
마치 하늘이 짓누르듯 거대한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토해 절명하는 자들 또한 나타났다.
갑자기 일어난 이변에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모르던 그때.
번쩍! 빛나는 자색의 뇌전이 사방으로 내려쳤다.
콰아아앙!!
한 번이 아니다.
사방으로 수백 번 내려치는 자색 벼락에 사방이 자색으로 깊게 물들었고, 그 탓에 순간 눈이 멀거나 귀가 멀어버리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자 몸이 멀쩡해졌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증발하듯 사라져버린 해족들의 잔해만 언뜻 엿보였다.
“크, 크어어억!!”
허나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해족이 하나 있었다.
그는 영겁 초경의 육사였는데 해룡족 장로직에 역임하는 자였다.
“누, 누구시온데 이, 이런 짓을…!”
피를 토하며 무릎꿇은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하자 얼이 빠져 있던 백산파 도사들 또한 고개가 올라갔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자색 뇌전이 요동치는 먹구름 속에서 유유히 내려오는 한 사내.
적안이 인상적인 한 사내였다.
그는 천천히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해족 장로의 앞에 내려서 말했다.
“놈에게 전해라. 너희들의 원수.
백산파의 장문, 범이 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