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51)
낭선기환담-250화(251/600)
낭선기환담 – 250화
“마음 변하기 전에 꺼져라.”
날카롭게 바라보는 붉은 눈.
해룡족 장로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고 부리나케 달아났다.
“이, 이게 정말….”
꿈은 아닌 걸까.
단 한 번의 일격.
그의 등장과 동시에 날벼락처럼 내려친 자색 뇌전 불천불벽에 의해 수백에 가까웠던 해족들은 모조리 재로 변해버렸다.
그야말로 한 순간이었다.
가히 뇌신이라 해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에 백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백산파 장문은 신선이나 마찬가지였다.
동쪽 해안가 주변에 있던 해족 수백을 단 일격에 세상에서 지워버렸는데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사부님!!”
그 중에서도 운모는 그의 적전제자였으니 몇 백 년만에 재회한 사부의 모습에 감격해 눈물이 핑 돌았다. 위기의 순간에 저리 나타났는데 어찌 그러하지 않으랴.
눈시울은 붉어지고 안도감과 기쁨에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백산의 적전제자! 백운모! 사부님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운모가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하자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던 백산의 제자들 수백이 모여들었다.
“인사 올리겠습니다 사부님!!”
척척척!
백산파 제자 수백이 모두 산군을 향해 인사를 올리자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白)이 쓰여진 장포를 입고 인사를 올리는 제자들의 모습은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알았으니 일어나거라. 그래, 네가 운모라고?”
“그렇습니다 사부님!”
영 부담스러운 사내가 다 되었다.
어릴 때는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곰처럼 덩치가 커다랗다.
저 덩치로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겨워 하니 부담스럽기 짝이없다.
“덩치만 컸지 속은 아직도 내 기억 속 어렸던 운모와 다른 게 없구나.”
그러자 운모가 부끄러워하고 다른 제자들이 큭큭 웃었다.
“만호.”
“예, 장문님.”
“환선으로 승선한 것은 물론, 백산을 위해 힘내주고 있었구나.”
“소인, 그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피식 웃은 산군은 이내 주변을 돌아보며 제자들을 보았다.
모두 흙투성이에 하나둘, 부상을 입고 있었는데 퍽 격렬한 전투였는지 어디 하나 멀쩡한 이가 없었다.
“동쪽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왔다. 한데 백산파가 어찌 육동과 가까운 동쪽 해안가에서 해족들과 싸우는 게냐.”
굳이 여기까지 와서 싸울 필요가 없어 보였다.
해족들이야 바다와 가까우면 운신하기도 좋고, 제 집이나 다름없는 곳이니 싸우기 더 유리할 터.
그러니 구태여 이곳에서 싸워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장문님. 장문님께서야 백산을 오래 떠나계셔서 모르시겠으나 백산파의 영역은 한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 크고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설마 이곳도 본파가 관리하는 지역인 게냐?”
“그렇습니다.”
조금 놀란 산군은 헛웃음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신식을 퍼트리자 해안가 인근 마을의 인기척들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늘.’
고작 몇 백 년 지난 것으로 이곳에 범인들이 마을을 일구고, 그로인해 도사들 또한 왕래하는 곳이 되어 백산의 땅이 된 모양이다.
“흠… 현 상황이 어떠하느냐. 이제 막 당도해 정세가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구나.”
그러자 운모는 물론, 만호와 다른 제자들 또한 낯빛이 어두워졌는데 썩 말하기를 꺼려하는 듯했다.
“괜찮으니 말해보라.”
“그것이….”
그럼에도 말하기를 주저하니 산군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놈! 어서 말하지 못할까.”
그제서야 운모가 죽을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약 백 년 전부터 전쟁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본파는 태선 두 분이 계셨고, 환선인 장로 분들도 많아 두려울 게 없었죠.”
백산파는 줄곧 탄탄대로의 길을 걷고만 있었다.
재정적으로는 신목들로 인해 부족할 것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백산파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수도자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삼대 해족과 다른 문파들의 시기와 질투를 무시했다.
“허나 그게 저희의 실수였습니다.”
만호 또한 고개를 주억이며 씩씩거리는 운모의 말을 이었다.
“북쪽 경계지역을 순찰하고 있던 명화 장로의 자제들이 기습을 당하는 일이 생겨버린 겁니다.”
“명화의 아이들이 말인가?”
“…옙.”
산군 또한 모르지 않는다.
그 아이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준 것이 바로 산군이지 않던가.
“명화 장로의 자제들이 절명하여 백산파에 큰 암운이 드리웠었지요.”
“전부 죽었단 말이냐.”
“만삼 장로가 데리고 있는 명칠 사매를 빼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명화의 아이들이 전부 죽었다니.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희는 배후를 밝혀내고자 노력했습니다. 끝내는 사건의 범인이 마도문에 속하는 마선 중 하나라는 것을 밝혔습니다만….”
“배후까지는 밝히지 못했나 보군.”
“다 저희가 부족한 탓입니다.”
절로 골머리가 아파왔다.
정확한 배후를 찾지도 못했으며, 마도문까지 얽혀든 것이라면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이 귀찮게 되어가는군.’
이렇게 뿌리 깊게 많은 이들이 연관되어 있다면 아무리 산군이라도 그들 모두를 응징할 수는 없는 법.
산군도 이제는 인계의 정점에 선 경지중 하나인 영원이다.
함부로 난리를 피우고 다녔다가는 다른 지선과 영원이 그를 막으러 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산군이라도 그것만큼은 껄끄러웠으니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뿐만이 아닙니다.
범인을 밝혀내고자 동분서주하신 연 장로와 장문의 화신께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상처를 치료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뭐? 연아가 말이냐?”
“예….”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연아는 그럴 수 있다쳐도 자신의 화신이 중상을 입었다는 말에는 산군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봉외외정을 익히고 지보에 가까운 많은 보물을 지니고 있는 화신체가 당했다는 말인가?’
화신의 몸속에 있는 수봉외외정.
일명 내산단은 몸속에 내산을 만들어 몸에 품은 수봉외외정은 영기를 부족함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천하에 또 없을 신통이다.
게다가 화신이 지니고 있는 보패들은 하나같이 지보나 다름없는 것들이다.
‘금돈신상과 뇌선사가 지녔던 보물 두 개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금돈신상은 어떤 것 이든 가둬버리는 강력한 봉인술을 지녔고 붉은 항아리는 상대의 보물과 연계된 의식을 끊어버리는 보패다. 산군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이나 인계에서는 또 없을 보물인 것인데, 그것을 지닌 화신이 당했다 하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상황이 영 좋지 않군.’
생각보다도 더 좋지 않았다.
“다른 것은 더 없느냐.”
“예, 동쪽과 북서쪽만 경계하면 되는 것이니 여느 때와 같이 그러고 있었습니다만…. 갑자기 이리 전면전을 벌인 것을 보면 북쪽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건가.”
애초에 남쪽은 적이 쉽게 드나들 수도 없는 곳이니 동쪽과 북서쪽을 지키는 것인 듯했다.
남쪽은 고선이 자리하는 곳이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서쪽도 십해만척이 자리한 땅이니 그리 걱정할 것은 없겠다만….’
그 세월 동안 백산과 가까운 홍해의 땅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니….
“단정 지을 수는 없겠구나.”
“사부님, 저희는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꼭 저희가 세상의 적이 된 것만 같아 너무 두렵습니다.”
운모는 물론, 다른 제자들 또한 마찬가지라는 듯 불안한 낯이었다.
그들 모두 산군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듯 바라보고 있으니 그의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구나.”
방곡은 물론, 삼대 해족과 마도문까지 얽혀든 것 같으니 오죽하랴.
허나 산군은 알고 있었다.
이 일을 꾸민 것은 십중팔구 유정과 해룡족의 공주 지솔이리라.
그렇다면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잘 들어라. 너희들 모두, 현시간부로 동쪽 해안가에서 철수해라.”
“예? 그, 그럼 이곳은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비록 산군의 불천불벽에 해족들 수백이 증발하기는 했다만 그렇다 해도 해족들의 숫자가 그뿐만은 아니다. 아직도 수백, 수천은 저 동해의 바다 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데 어찌 철수를 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킬 필요 없다.”
“하면….”
“지난 빚도 있으니 이참에 비린내 나는 것들 모두 지워야겠다.”
예전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었다. 이전에는 제 한 몸 살기 바쁘기도 하였고 상황도 여의치 않아 내버려뒀으나 이제는 아니다.
드디어 동해와의 악연의 고리에 끝을 볼 때가 온 것이다.
“죽여 달라 지랄 발광을 하니 어쩔 도리가 없구나. 죽여줄 수밖에.”
허나 만호와 운모는 단번에 산군의 말을 이해하고 반대했다.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희도 이곳에 남아 장문과 함께….”
“아니, 너희들은 이곳보다 북쪽으로 향해 그곳을 지켜야 한다.”
“그,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산군의 신통을 보았다 해도 동해에는 삼대 해족들 모두가 자리한 곳이다.
수천, 수만의 군세가 있을지 모르는 곳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든다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까.
다른 이도 아니고, 백산의 장문인 산군이다.
설령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려야만 할 일이었다.
“안 됩니다! 장문마저 잘못되시면 백산이 어찌 강대한 적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부, 부디,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북쪽에는 이미 사람을 보내뒀다.”
“네?”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북쪽에 사람을 보냈다면 도리어 자신들이 북쪽으로 지원을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만호와 운모는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그의 의중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믿을 만한 아이지만 그래도 내심 불안하니 너희들이 가 주거라.”
“예? 대, 대체 누구신데….”
대군이라도 보냈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고 믿을만한 아이란다.
천군만마(千軍萬馬)를 데려와도 불안한데 겨우 믿을 만한 아이라니!
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던가!
만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제자가 아둔하여 사부님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말이신지 쉽게 풀이해줄 수는 없으신지요.”
그러자 작게 입을 벌린 산군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아, 모르는 자들이 많겠구나. 나와 같이 그 아이 또한 백산을 오래토록 떠나 있었으니 말이야.”
그녀 또한 빙궁에 머문 기간이 짧지 않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렀으니 모르는 자들도 많이 있을 터.
그리 중얼거린 그는 이내 흡족한 얼굴로 그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 사모 되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