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52)
낭선기환담-251화(252/600)
낭선기환담 – 251화
같은 시각.
백산으로 북쪽.
그곳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산턱에는 수많은 도사들이 가부좌를 틀고 주술을 외우고 있었다.
그들은 백산파의 제자들이었는데, 중심에는 만삼과 그의 수제자 명칠이도 함께였다.
“명칠아. 그리 산만하게 굴지 말고 얌전히 있거라.”
명칠이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가부좌를 틀면서도 계속 이를 빠득 빠득 갈고 있었다.
그 이유야 뻔했다.
백산파 제자들 앞에는 주둔해 있는 방곡의 도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장 앞에서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형제들의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습니까!”
“그렇다해도 어쩔 수 없다.
현 상황에 함부로 전면전에 나섰다가는 멸문을 피하지 못할 게다.”
적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많은 세력이 동참했는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좋지 못한 판단이다.
북쪽을 굳건히 지켜야 그나마 희망이라도 생기지 않겠는가.
지금의 백산은 멀쩡한 태선 하나가 없는 실정이니 말이다.
‘그 분만 계셨어도 이리 궁핍하게 굴지는 않았을 것을.’
허나 그리워한 다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문파 꼴이 이리된 것은 모두 자신들의 실책이나 다름없으니, 부끄러워서라도 그럴 면목이 없다.
“그나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버티는 것뿐이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장문을 기다리는 것 말입니까.”
“이놈! 백산파를 세운 장문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동자승의 모습을 한 만삼이 크게 호통을 쳤으나 명칠이는 콧방귀를 끼며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본래 버릇이 없기는 했지만 형제들이 모두 죽어버리자 이제는 모든 것에 부정적인 감정을 담는 듯했다. 만삼은 그것이 퍽 딱하면서도 어찌 잡아주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저도 압니다. 아무것도 없던 백산을 여기까지 키우신 분이시지요. 제 아비와 어미의 은인이시자 사부님의 은사님이라는 잘 압니다.”
허나 명칠은 불만이었다.
“한데 어찌 백산을 이리 내팽개치고 돌아다니기만 하신 답니까. 백산은 항상 뒷전이고 제 안위를 챙기기 바빠 싸돌아다니시는 분 아닙니까!”
“이놈이!!”
짜악-!
명칠의 뺨을 때린 만삼은 볼을 덜덜 떨며 으름장을 놓았다.
“네 아무리 천방지축에 명화의 하나 남은 자식이라지만, 그러해도 장문을 욕하는 것은 내 참아줄 수 없다!
네 형제들이 그리된 것은 나 또한 가슴 아픈 일이다만 그것이 어찌 그분의 탓이라고 할 수 있느냐!”
“애초에 장문께서 자리를 지키셨다면 우리가 이리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제 형제들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죽어버릴 일은 없었을 겁니다!!”
진득하게 피어난 살기어린 눈동자에는 죽어버린 이들에 대한 비통함이 짙게 묻어 있었다.
어린 제자의 눈에 새겨진 참담함에 만삼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항상 철없던 녀석이 저리 목청을 드세우며 슬퍼하는데 스승인 자신이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백년이 넘게 그녀를 제자로 두고 있는 만삼이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때였다.
돌연 하늘이 어두워지며 새하얀 운무가 짙게 내리깔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만삼이 소리치자 제자들 중 하나가 달려와 답했다.
“놈들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미간을 좁히고 정면을 바라보니 저 멀리에서 용머리를 달고 있는 비승선(飛昇船) 열댓 개가 위용을 부리며 빠른 속도로 날아들고 있었다.
“저건….”
“장로님, 해룡족의 비승선입니다!”
“해룡족이 방곡에게까지 비승선을 넘겨줬었을 줄이야…!”
해룡족의 비승선은 신단수로 만들어진, 온갖 신통을 막아내는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모두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가 진법의 유지에 힘쓰도록 해라!”
“사부님!”
“괜찮다. 이곳은 산세가 두텁고 안 개가 짙어 수성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을 전략적 요충지다.
거기다 내 독문 진법까지 대규모로 발동시키고 있으니 잠시간 시간을 끄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본래 만년동자삼으로서 목신통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삼이다.
허나 만삼은 영명.
고작 시간을 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그마치 신단수로 만든 해룡족의 비승선이니 그 위력이 어떠할까.
북쪽에 자리한 백산파 제자들은 고작 이천 남짓이고, 그 경지 또한 대부분이 영결과 영화.
즉, 비선과 도선이 대부분.
‘시간을 끌어야 한다. 장문님의 화신체가 조금이라도 회복할 시간을 우리가 벌어야 해.’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산군이 남긴 화신체뿐이다.
비록 중상을 입기는 했으나 갖은 영약들을 모아 치료하고 있으니 그가 병상을 털고 일어난다면 이 전쟁 또한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따르거라!!”
“존명!!”
만삼을 필두로 수백의 제자들이 비승선을 향해 뛰어들었다.
“합!”
두 팔을 물결처럼 휘두르며 각자의 보패들을 휘두르니 물고기 떼와 같은 무구들이 하늘을 날아 비승선에 부딪쳤다.
보패들은 불을 뿜는가 하면 벼락을 내려쳐 강력한 신통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럴 수가…!!”
비승선에는 오색빛이 어른거리며 그들의 보패를 가볍게 막아냈다.
“저희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만 장로님!”
허나 그것이면 다행일까.
비승선의 오색장막 한 부분이 일렁이더니 백산파 제자들이 내보였던 신통들이 한데 합쳐져 튀어나왔다.
“피, 피해라!!”
콰아아아앙!!
“이런!”
비승선이 공격을 흡수하고 다시 그것을 쏘아낸 것이다.
제 신통에 직격된 제자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추락했고, 겨우 막아 낸 만삼은 원통함에 주먹을 말아 쥐었다.
‘비승선 하나도 떨어뜨릴 수 없단 말이던가….’
비록 전부는 무리더라도 하나 정도라면 부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헛된 희망이었다.
“꺄아악!!”
비승선에 더해 방곡의 도사들이 뛰어들어 난전이 펼쳐지자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비승선에 힘입어 사기가 올라간 적들의 무용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젠장!”
만삼이 단검으로 제 손목을 그어 내 핏물을 땅으로 떨어뜨렸다.
이내 사방이 은은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만삼의 피부는 메마른 나무처럼 비척해지기 시작했다.
동자승의 모습에서 단숨에 노인처럼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본 명칠은 안쓰러움을 금치 못했다.
“사부님!”
“지켜야 한다. 백산은! 우리의, 그리고 그분의 고향이다!!”
이내 만삼이 수결을 맺으니 그의 몸이 땅 밑으로 가라앉으며 완전히 사라졌고, 이내 지면에서 거대한 원목들이 서로 엉켜들어 수백의 나무들로 변해 하늘높이 치솟았다.
거목(巨木)들은 모두 각자 다른 꽃과 열매를 지니고 있었는데, 꽃에서는 기이한 꽃가루가 풍겨지고 열매는 땅으로 떨어져 새싹을 피웠다.
기이한 신통이었다.
백산의 제자들은 그 거목의 뒤에서 숨죽이고 있었으며, 방곡 놈들은 신중한 낯으로 점점 진격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컥!!”
방곡 도사 놈 하나가 제 목을 부여잡고 지면으로 추락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떨어져 내렸는데, 비승선에 올라탄 고위 도사가 단번에 이변을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독이다! 모두 방독(防毒)하라!”
소리치자 독공에 대비를 했었는지 방곡 도사들 모두 품에서 부적을 꺼내 제 몸에 척! 붙였다.
그러자 한결 나아진 얼굴로 비틀비틀 거릴 뿐 떨어지진 않았다.
“진격하라!!”
다시금 비승선이 움직이고 적군이 몰아치듯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둔광이 번쩍이자 지면에서부터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도사들의 발목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푸화악!!
폭발하듯 지면이 터져 나오고 그 안에서는 짐승의 아가리와 같은 꽃이 튀어나와 도사들을 잡아챘다.
“지금이다! 공격해라!!”
때를 잡은 명칠이 제자들을 향해 소리치자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방곡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들의 수가 워낙 많고, 비승선의 공격이 매서웠으나 만삼의 독문진법.
만객영진(萬䘔英鎭)에 의해 승기는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았다.
그들의 전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치열해졌고, 잔혹해졌다.
온몸에 피칠갑을 하며 싸우는 상태가 이틀 동안 지속되었다.
허나 그 전장에도 결국 끝은 왔다.
만삼의 만객영진이 기운을 다하고 영기의 부족함으로 소멸하자 승기는 방곡으로 기울었다.
비승선의 힘은 도저히 그들이 당해낼 재간이 되지 못했고, 만삼마저 영기가 바닥나자 어찌할 수 없었다.
“이게 고작 영명 육사가 만들어낸 신통이었단 말인가… 정말 놀랍군.”
비승선에서 전황을 살피던 천자문의 장로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영수가 아니라 도사였다면 벌써 태선에 올랐을지도 모를 자질입니다.”
“정말 그랬겠어.”
그들은 매우 놀라워하며 만삼의 자질을 칭찬했다.
애초에 영수는 인간보다 높은 수명을 갖는 대신 수행의 속도도 느리고 천겁을 받으며 죽는 경우가 허다하니 저리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겨우 영명에 불과한 자의 독문진법이 신단수로 만든 비승선을 탄 방곡의 대군을 잠시나마 막아낸 것이니 당연한 처사였다.
“쯧쯧, 아깝다 아까워.”
혀를 찬 일월문 장로와 천자문 장로는 남아있는 백산파를 보았다.
이천이었던 백산파 제자들은 그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지 오래다.
천여 명도 남지 않은 그들의 대부분은 큰 부상을 입어 죽어가고 있었고 나머지는 포박당해 피눈물을 흘리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부터 영수와 인간이 버무려진 문파 따위가 그리 있어서야 도계의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이 당연했지.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이리 됐을 것이니 너무 원망치 말고 다음 생에는 부디 인간으로 태어나거라.”
일월문 장로가 고개를 주억이자 수천의 도사들이 묶여 있는 백산파 제자들을 향해 보패를 겨누었다.
“죽여라.”
도사들의 보패가 백산 도사들의 목을 치려는 순간.
츠즈즈즈즈즛.
땅 밑이 새하얗게 얼어붙어 전역으로 삽시에 퍼져나갔다.
“흡!”
방곡의 장로들은 순간 뒤로 물러나 한기를 튕겨냈으나 저계 도사들은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휘이잉.
매서운 찬바람과 함께 어느새 하늘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녹음진 초목이 전부 얼어붙어 버렸다.
자박자박.
얼어붙은 숲속에서는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는데, 이상하게 눈보라가 몰아쳤음에도 그 발소리만은 유난히 귓속을 파고들듯 들려왔다.
“누구냐!!”
일월문 장로가 소리치자 이내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백발을 길게 기른 여인이었다.
그녀는 한 손에는 검 없는 검집을 들고 있었고, 곁에는 작은 불빛을 유지하는 소가 조각된 등잔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귀신같은 백발에 벽안이라면….”
“빙궁의 현천선녀가 아니신지요!!”
아름답기로는 선녀와 다를 바 없고 강인한 한신통 또한 현천의 하늘을 물들일 정도로 강대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현천선녀다.
그런 자가 어찌 이곳에 왔을까!
의아했으나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들의 적임을 느꼈다.
“뼛속까지 시릴 듯한 살기로다….”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살기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돌연 그녀가 손에 쥔 검집에서 현묘한 빛이 새어나오며 검 한 자루가 신기루처럼 생겨났다.
철컥.
그녀는 단숨에 검을 뽑아들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휘둘렀다.
후우우웅!!
어느새 쌓여진 눈보라와 함께 그녀의 검로에 있는 모든 것이 베어졌다.
“뭐…”
쿠구우우웅!!
대각선으로 그어진 그녀의 검격에 비승선 셋이 반 토막 나 무너졌다.
“커헉!!”
피하지 못한 일월문 장로의 상반신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가히 어마어마한 검격에 방곡의 도사들은 온몸의 털이 삐죽 섰다.
“천양지보…!!”
스르륵.
그녀의 손에 쥐어졌던 검은 재로 변해 사라지자 그리 소리친다.
“사, 산비님!!”
다 죽어가던 만삼이 피를 토하며 그리 외치며 감격에 젖었다.
“그리 불리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그리운 감상에 젖은 초아의 주위를 배회하던 소 형태의 등잔.
고구천우가 옅게 울었다.
그 직후.
쩌저저적!!
허공에 수십 개의 균열이 일어나며 마귀의 거대한 손들이 나타나 비승선을 모조리 쥐어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