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53)
낭선기환담-252화(253/600)
낭선기환담 – 252화
“하아, 하아… 후우-”
턱 끝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아낸 초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천양지보인 혜연회검과 고구천우의 위력은 단연 발군이었다.
누구도 어쩌지 못한 해룡족의 비승선을 단번에 부숴버렸다.
천양지보가 지닌 위력에 대해서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하지만 영력의 소비가 극심해….’
백요보련의 혼아혈인 초아는 보통의 도사보다 많은 영력.
즉, 법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렇다 해도 단번에 삼분의이나 되는 기운이 순식간에 빨려나갔다.
조금만 긴장을 놓았다면 그대로 혼절했을 것이다.
“큭.”
털썩 무릎을 꿇고 확장된 기혈을 진정시키자 백산파 제자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산비님!!”
자신보다 더 초췌한 만삼과 그의 제자 명칠이었다.
“괜찮습니다.”
겨우 그들의 부축에 몸을 일으킨 초아는 제 손에 놓인 천양지보들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서방님은 어찌 이런 물건들을 그리 손쉽게 다루셨지?’
생각할수록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가 남들보다 배나 많은 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천양지보를 직접 사용해보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양지보를 그리 쉽게 다루지 않았을 테니….
‘서방님은 천양지보를 영명 때부터 제대로 사용하셨다고 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초아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백산파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녀가 이루어낸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일검으로 하늘을 가르고, 한 번의 신통으로 비승선 열댓 척을 쥐어 터트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 애를 써도 어쩌지 못하던 걸 눈 깜짝할 사이에 해내니 당연했다.
제자들은 무한한 박탈감이 들기도 했으나 일단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더 의의를 두기 시작했다.
“산비라면 우리 장문님의 반려되시는 분이 아니신가!”
그리 한마디씩 뱉어 보자 어느새 그녀는 제자들에게 사모라 불리게 되고 있었다.
“산비… 아니, 사모님. 사모님이 이곳에 오셨다는 말씀은….”
만삼이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희망 어린 눈으로 그리 물었다.
“예, 장문께서는 동쪽으로 향하셨고 저는 북쪽으로 왔습니다.”
“아아…!”
순간 만호는 물론이요 제자들의 얼굴빛이 활짝 펴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없던 힘이 생겨났다.
백산파의 장문이 오셨다.
그 말 한 마디에 그들은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감정을 느꼈다.
“이제 살았다. 이제 살았어!!”
“꼼짝 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구세주나 다름 없는 그녀의 등장에 백산파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그 뿐일까.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백산의 주인이 왔다는데 기쁘지 않을 리 없다.
백산파의 제자들 대부분이 예전 그의 모습과 위용을 기억하고 있다.
혈혈단신으로 육동의 문파들을 섬멸하고 뇌선사를 꺾었던 그 모습은 제자들의 뇌리에 기억된 지 오래다.
그런 강력한 신통이 자자한 산군의 이름값을 듣고 백산파에 귀의한 제자 또한 수백이 넘어갔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허나… 그와 반대로 방곡의 사기는 한없이 추락했다.
삽시에 일월문 장로가 절명하고 비승선 전부가 떨어진 홍시마냥 터져버렸으니 그런 상황에 어찌 사기를 드높일 수 있겠는가.
당연한 말로라 할 수 있다.
“다 죽어가던 놈들이…!”
천자문 대장로는 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고, 다른 문파의 대장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해룡족이 비승선 모두가 개박살이 난 것을 알면 저희는 막대한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공동파 장문이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빚더미에 앉기도 전에 죽게 생겼는데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당 대장로의 말씀이 옳소.”
빚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는 지금 살아남는 것이 문제였다.
“제 아무리 현천선녀라도 저희가 합공한다면 어쩌지 못할 겁니다. 천양지보를 부린다고는 하나 그 대가로 막대한 법력을 사용했으니 우리에게도 승산은 있습니다!”
백산파 제자들은 모두 지칠 대로 지쳤고 그 수도 반쪽이 난 지 오래다.
그들의 희망인 현천선녀 초아는 비승선을 파괴하느라 법력을 많이 소비했으니 승산이 보이기도 했다.
방곡의 도사 수는 그리 줄지 않았고 태선들의 법력은 그대로였다.
머릿수로 보나 다른 것으로 보나 얼핏 보면 승산이 있어보였다.
허나, 무당파 대장로는 근심어린 낯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전… 손 떼겠습니다.”
“우릴 배신하겠다는 소리요?”
“아닙니다.”
“그게 배신이 아니고 무엇이요! 전장 한복판에서 도망치겠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당신의 행동은 곧 무당파의 입장과 같소!”
날카롭게 말하자 무당파 대장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그대들은 비승선 하나라도 파괴할 수 있습니까?”
“그, 그것은….”
“아무리 지쳤다고 해도 현천선녀의 손에는 우리들을 참살시킬 지보가 쥐어져 있습니다. 섣불리 움직여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군요.”
“허나 여인 하나와 다 죽어가는 놈들일 뿐입니다. 대장로께서 과대평가를 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누가 과대를 하고, 누가 과소를 하는지는 곧 알게 되겠지요. 어쨌거나 전 손 놓고 있을 테니 알아서들 하시지요. 어차피 여인 하나일 뿐이니 그대들이 알아서 하실 수 있겠지요.”
“흥, 후회하지 마시오!”
“저년을 잡으면 천양지보가 손에 들어오는데 마다하다니, 오래 살아 머리가 굳으셨나보오 하하하!!”
무당파 대장로는 허허 웃으며 뒷짐지며 뒤로 물러났고, 천자문과 공동파만이 앞으로 나섰다.
“어디 한 번 놀아볼까!”
잠시 뒤.
촤악!
그녀의 투명한 검신에는 붉은 핏물이 뿌려졌다.
눈밭 위에 흩뿌려진 혈흔은 피어날 수 없는 꽃과 같았다.
“더 하시겠습니까.”
그녀의 주변에는 새하얀 눈밭 위에 혈흔이 난자했고, 얼음으로 만들어진 빙화(氷花)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초아가 만들어낸 빙화는 다른 이의 피를 머금고 시뻘겋게 물들어 얼핏 아름답기까지 했다.
허나 그 빙화 아래에는 장미의 가시같은 창 수천 개가 솟아올라 토막 난 몸뚱이들 수백이 꿰어져 있었다.
“…무당파는 이번 일에서 손 떼었소. 백산파에 무운을 빌겠소이다.”
“그러시지요.”
차디찬 낯빛으로 답하는 초아의 모습은 선녀가 아니라 귀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피로 물든 눈밭에서도 그녀만큼은 새하얀 차림새 그대로였으니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다.
태선들과의 싸움에서 그녀는 천양지보를 쓰지도 않았다.
구태여 쓰지 않고서도 태선 둘을 능히 상대하니 가히 현천선녀라는 별호를 지닌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꽃들은 처음에는 그저 투명했으나 피를 머금자 은은하게 빛나며 그 아름다움을 더했다.
그러나 이 빙화는 일대에 무차별 적으로 솟아나 도사들을 단숨에 도륙하여 찢거나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런 신통이기에 방곡의 두 태선 또한 순간의 방심으로 다리가 얼고 몸이 꼬챙이처럼 찔려 단숨에 절명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태선이 그리 쉽게 당했는데 다른 도사들은 어떻겠는가.
그녀의 한기에 닿은 것만으로도 두 발이 얼고, 지면에서 솟구치는 빙창에 찔려 죽기 바빴다.
무당파로 돌아가려던 그는 이내 등을 돌려 그녀가 만든 풍경을 다시 눈에 담고는 물었다.
“승산이 있다 보십니까.”
백산의 앞날을 두고 묻는 것이다.
동해의 해족들과 방곡, 그리고 잡다한 문파들과 마도문도 얽혀 있다.
가히 세상 전부가 백산의 적이라 봐도 무방하니 묻는 것이다.
지금은 승리하였어도 태선 수십 명이 몰려든다면 백산은 멸문지화를 피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당연합니다.”
허나 그녀는 확답했다.
“어찌 속단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그야 당연하지요.”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 낭군께서 화가 나셨으니까요.”
* * *
동해 어느 깊숙한 곳.
헐레벌떡 들어온 태선 하나가 어느 여인에게 납작 엎드리고 있었다.
그는 산군이 자신이 왔음을 전하라 했던 해룡족 장로였다.
그 앞에 있는 여인은 당연히 악연으로 단단히 묶인 지솔이다.
“그게 사실인가.”
“소인이 어찌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전부 사실이옵니다!!”
잠시 말이 없던 여인은 쯧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예상보다 빨리 왔군.”
“예, 예상보다라 하신다면….”
“놈이 오기 전에 끝내려 했다만 일이 그리 됐다면 어쩔 수 없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사내의 낯빛에 희색이 돌았다.
허나 그와는 반대로 여인의 낯빛에는 암운이 드리웠다.
“단 한 번의 뇌신통으로 수백의 동족들을 죽여버렸다라.”
믿기 어려운 일이다.
상황을 들어보면 한 곳에 뭉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전역에 걸쳐 다 방면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육사들을 모조리 뇌신통으로 죽여 버렸다니….
‘설마 영원이 된 것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아무리 원천강을 얻었다 해도 이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녹여내 영원으로 올랐을 리가 없다.
원천강의 막대한 기운을 녹여내는 것만으로도 수천 년의 세월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
“놈이 온 것이냐.”
그때 그녀의 뒤편에서 멀끔한 사내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는 그녀의 오라비인 지도.
그 또한 산군과 악연이 질긴 자다.
“예, 그런 듯 합니다.”
“내가 가겠다.”
“놈은 극히 위험합니다. 오라버니 혼자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요.”
“600년 전, 놈에게 당한 치욕과 원통함에 곡기를 끊고 수행에만 매진했다. 놈만 죽일 수 있다면 무엇인들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놈에게 죽은 해족의 숫자만 천에 넘어간다. 그리고 죽어버린 동생들의 한 또한 풀어야 함이 옳다.”
약 600년 전.
동해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산군을 기억하는 해족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지도의 동생들처럼 죽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그는 잊을 수 없었다.
그날의 치욕을.
그날의 아픔을 어찌 잊겠는가.
“단 한 놈에게 해족 수백이 죽고, 해룡의 혈통이 죽었는데 어찌!!”
잊겠느냔 말이다.
“비록 지금은 네게 밀려나, 무늬만 왕자인 몸이지만, 놈에 관해서는 내 억지를 조금 부려야겠다.”
지도는 털썩 지솔에게 무릎을 꿇으며 간곡히 청했다.
“오라버니….”
“부디, 네 오라비들의 원한을 갚게 해다오.”
그 자존심 높은 지도가 이리 무릎을 꿇고 청할 줄은 몰랐다.
왕위를 두고 다투었던 사이라고는 해도 같은 혈육인 것은 다르지 않으니 그녀도 내심 그리 해주고 싶었다.
‘허나 그놈은….’
방심할 수 없는 놈이다.
잡았다 싶으면 놓치고, 죽었다 싶으면 살아있음을 알린 놈이다.
금환선향에서 보지 않았던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금제 속에서도 놈은 오룡을 타고 빠져나왔다.
그런 예측할 수 없는 놈이니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꼼꼼히 살펴 전력을 다해 죽여야만 했다.
“솔아. 부탁한다.”
허나 저리 간곡하니 그녀 또한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그리 부탁할 것 있나.]흠칫!
“누구냐!!”
앙칼지게 소리치자 기둥 뒤편에서 한 인영이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흑포를 입고 있는 적안의 사내.
“내 직접 왔으니 부탁할 것 없다.”
산군이었다.
“어떻게 네놈이!!”
해룡족의 용궁은 천혜의 요새다.
해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음은 물론, 선조가 만들어 둔 지리적 이점과 진법이 맞물려 함부로 찾아낼 수도 없으며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 바로 해룡의 용궁이다.
“내가 왜 네놈을 살려뒀겠느냐.”
“설마…!”
산군은 해룡족 장로에게 손을 뻗자 작은 빛덩이 하나가 돌아왔다.
“금제!”
어느새 장로의 몸속에 금제를 심어두었던 것이다.
“말도 안돼!”
“믿든지 말든지 상관없지만 해룡족은 손님 대접을 이리 하나? 아주 엉망이야 엉망.
그리 대단타 어쨌다 말이 많더니 손님 대접 하나 제대로 못하는 걸 보면 수준이 참 알 만해. 그치?”
“이노옴!!”
쿠구구구궁!!
콰아앙!!
용궁 한켠에 박살나고 그 위로 거대한 해룡이 솟아올랐다.
몸 절반에 걸쳐 거대한 상흔이 있는 해룡으로, 지도의 본신이었다.
[네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제 발로 이곳까지 온 자만이 네 명줄을 앗아가게 됐구나!!] [무엇하느냐! 놈을 포위해라!]똑같이 해룡으로 변한 해룡족이 속속들이 모여들어 그를 포위했다.
[지상이면 몰라도 해수 속이라면 네놈은 독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지.]해족이 왜 해족이겠는가.
바다 속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이곳을 터전으로 살다 간다.
그렇기에 바다는 그들의 집이며 터전이고, 어느 곳보다 더 힘을 온전히 부릴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드디어 600년 전의 원한을 풀 수 있게 됐으니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600년 전… 아, 그런 일도 있었지. 네놈은 그때 살아난 놈인가 보군. 지 머시기라고 했던가.”
[같잖은 도발이군. 그리해도 네놈이 죽은 목숨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도발은 무슨.”
어이없다는 듯 웃자 지도와 해룡 들의 살기가 더욱 거세졌다.
단숨에 수백의 해룡들이 모여 그를 포위하자 누구라도 겁먹을 살기가 진흙처럼 무겁게 내려섰다.
허나 산군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는 뒷짐을 쥐었다.
“해족과의 원한을 이제는 끊어낼 때가 되긴 되었지.”
순간 웃음기를 거둔 산군이 해룡을 바라보며 손아귀를 펼쳤다.
“죽거라.”
촤악!!
순간 공간을 찢고 날아 들어온 양날의 검이 해룡을 베었다.
[캬아악!!]단숨에 해룡들의 몸이 두 동강 나 떨어져 내렸고, 그와 동시에 산군의 몸이 자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바다 속이라 더 아플 거야. 능력 있으면 피해 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