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54)
낭선기환담-253화(254/600)
낭선기환담 – 253화
콰아아아앙!!
잔잔하던 동해에 갑자기 폭발하듯 해수면이 솟구쳤다.
마치 용오름과도 같은 기현상에 근처에 있던 해수들이 부리나케 도망갔고, 수행을 하고 있던 해족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알면 여기까지 왔겠나.”
처음에는 큰 폭발이 일어난 건가 했으나 아니었다. 하늘로 솟구친 물줄기가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뭉게뭉게 모여있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자색 벼락 기둥이었다.
“이, 이게 무슨… 읍!!”
그때 황망히 바라보던 해족 하나가 돌연 토혈하며 몸을 덜덜 떨었다.
“독기! 모두 피하게!”
저계 육사들은 한 호흡 들이쉰 것으로 모두 바다 속으로 빠지며 죽음을 면치 못했고, 조금 경지가 높은 이들은 죽을 둥 살 둥 겨우 겨우 날아 저 멀리 피신했다.
잠시 후.
이내 동해에서는 거대한 물체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마치 작은 섬처럼 크고 긴 것들이었다.
다름 아닌 해룡의 사체였다.
대부분이 이백 장을 넘어가는 크기요, 숫자만 해도 수백이 달해있어 동해 한켠이 피로 물들고 해룡의 시체가 산처럼 쌓일 정도였다.
그들의 시체들 위로는 한 사내가 여인의 목을 쥐어틀고 있었는데, 그가 다름 아닌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
백산의 장문 산군이었다.
“뭘 그리 놀라시나.
그대 오라비가 말한 것처럼 나와 해룡족은 600년 전부터 지울 수 없는 원한이 뼈에 사무쳐 있었어.
600년이 지나 이제 그 한을 풀어 내고 승자를 가리고 있을 뿐인데 피해자인 척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내가 나쁜 놈이 된 것 같지 않은가.”
지솔은 산군에게 목이 틀어쥔 채로 노려보며 힘겹게 말했다.
“후회할… 겁니다.”
“무슨 후회를 말인가. 그대의 일족은 내 손에 전부 죽었다. 후회는 내가 아닌 네가 하게 되겠지.
아니면 설마 이제 와서 해총령왕을 기다리나?”
“당신이 지금은 오만방자하게 굴 수 있을지 몰라도… 해총령왕께서 당도하시면 당신을 죽이고 일족의 한을 풀어주실 게 분명합니다!”
“기껏 한다는 말이 그건가.
아직도 앞뒤 분간을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군.”
대단히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자 지솔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유가 놈과 함께 백산을 친 것은 적이지만 칭찬해줄 만했다. 내 세력을 크게 꺾어두고 마지막에는 인계로 돌아온 나까지 죽일 생각이었겠지.”
나쁘지 않은 방책이었다.
“어찌했는지 몰라도 내가 만든 화신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백산의 전력은 크게 줄었을 터. 그 상태에서 감행한 전쟁과 여러 세력들을 합친 전략은 나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영원에 오르지 못하고 아직까지 영겁에 자리한 상태였다면 큰 낭패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강하다고는 해도, 지금처럼 적진에 침투해 도륙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
“기억하나?”
“뭘 말입니까.”
“약 육백 년 전, 육신을 빼앗긴 널 구했을 때. 너는 내가 천양지보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서 해룡족의 용궁으로 초대하려고 했었지.”
지솔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이제 와 그게 뭐 어쨌다고요.”
“별 건 아니고, 이제는 날 초대할 용궁도 없어져서 하는 말이다.”
까드득.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지솔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산군을 노려보다 돌연 입꼬리를 올렸다.
“절 죽인다 하더라도. 당신은 백산의 멸문을 막지는 못할 겁니다.”
“어째서지?”
“당신이 동쪽의 우리 군사들을 막았을지는 몰라도, 북쪽의 방곡놈들까지 막지는 못 했을 겁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거였나.
“지금 돌아간다 하더라도 해룡의 비승선 열네 척을 지니고 있는 그들은 백산을 함락시켰을 겁니다.
당신이 돌아갔을 때는 이미 다 무너져 재만 남았겠지요!!”
앙칼지게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 산군은 픽, 비웃음을 머금었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북쪽은 천양지보로 무장한 초아가 날아간 지 오래.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다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연락을 취해 놓았으니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절 죽인다 하더라도 당신은 동해에서 살아나가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산군은 그녀에게서 눈을 돌려 해안선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거대한 기운 셋이 동시에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동해 삼왕인가.”
확실히 여태껏 상대한 이들과는 조금 다른, 정순한 기운이었다.
“제 오라비와 장로들을 모조리 죽였어도 당신 같은 크나큰 적을 죽일 수 있다면 그 또한 득이지요!”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탓! 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져 내린 빛줄기들이 산군이 있는 해룡의 시체 위로 착지했다.
‘동해 삼왕이라….’
그 또한 적지 않은 삶을 살아오며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들어 왔다.
해룡족의 왕은 해총령왕이라 불리고, 교인족은 교총령왕, 도극경은 도총령왕이라 불리며 이 셋을 동해 삼왕이라 하며 경외시했다.
그렇기에 육지의 도사들은 물론, 영수들도 동해 삼왕이라 하면 즈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신통에 감복하는 자가 태산이었다.
“아버님!! 이 자입니다! 이 자가 저희를 도륙하고 오라비들을 모조리 죽인 해룡족의 대천지원수입니다!”
지솔은 신이 난 듯 떠들었다.
그녀에게는 벌써부터 백산파 장문의 비참한 말로가 보이는 듯했다.
다 죽어가던 얼굴은 생기가 돋았고 흥분에 홍조가 피어났다.
산군은 말없이 그녀의 목을 놓고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동해 삼왕을 앞에 둔 산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그들도 산군을 묵묵히 바라보는 상태가 침묵 속에 진행됐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 상태가 유지되자 답답함을 참지 못한 지솔이 먼저 제 아비에게 소리치려는 찰나.
“어서… 아, 아버님!!”
털썩.
해총령왕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뭐! 뭣 하시는 겁니까!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입니다! 어, 어서 일어나서 놈을 벌해주세요!!”
“닥쳐라!! 네가 지금 누구 앞이라고 그리 망발을 하는 것이냐!!”
짜악!!
난데없이 아비에게 뺨을 얻어맞은 지솔은 넋이 나간 몰골로 멍하니 아비를 바라봤다. 대체 왜 저리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해총령왕은 왕에 걸맞은 근엄함과 기개가 있고 뜻이 커 남에게 눌려 지내지 않는 사내로 척당불기(倜儻不羈)라는 말에 어울리는 자다.
그녀의 천년이 조금 넘는 인생 중, 아비가 무릎 꿇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더 믿을 수 없었고, 직시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왜 무릎을 꿇지?”
산군이 그리 묻자 해총령왕은 물론,
동해 삼왕 모두가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신통이 하늘에 닿아 등선의 날을 기다리는 분에게 어찌 경외를 품지 아니하고, 예를 다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그러자 산군의 표정이 미묘하게 비틀렸고 지솔은 경악했다.
“드, 등선이라니… 어찌 저런 자에게 등선을 입에 담을 수 있습니까!”
“네 이년! 아직도 오만함에 취해 사태의 심각성을 바라보지 못하는구나! 저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그리 말을 함부로 놀리느냐!
저분은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영원의 선사시다!!”
* * *
한편.
“흠….”
한가롭게 서찰을 읽어보던 사내는 이내 미간을 좁히고 혀를 찼다.
“예상보다 빠르군.”
사내가 읽고 있던 서찰은 전황에 대해 간략히 써져 있었는데, 내용에는 방곡의 패퇴라 적혀 있었다.
비승선의 강함은 동국을 멸망시킬 정도로 강대하기 짝이 없다.
그런 비승선 열댓 척을 북쪽으로 몰아넣고 동쪽을 건드려 전력을 분산시켰는데도 패퇴했다.
“놈의 화신을 초죽음으로 만들었는데도 이리된 것을 보면….”
백산을 지나던 어느 지선이 살려 줬을 리도 없으니 필시.
놈이 돌아온 게 틀림없다.
“온갖 강력한 신통과 천양지보까지 가지고 있는 놈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몇 백 년간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대로 금환선향에 갇혔을 거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내.
아니, 유정은 곰곰이 고심하다 온갖 부적이 붙여진 제 팔을 보며 근심 어린 낯을 하며 일어섰다.
“이제 끝을 볼 때가 오기는 왔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곁에 선 사내도 함께 일어났는데, 온몸에서 마기가 풀풀 풍기는 마선이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마도가 그리 나쁜 길이라 할 수는 없지요.
그 또한 하나의 길이니 그런 얼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소. 예운.”
“알겠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천천히 사라지는 예운의 모습을 보던 유정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악연은 악연이구나. 참으로 질긴 악연이야. 이제는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하나는 죽어야 끝나겠어.”
쯧쯧, 혀를 차던 그는 씁쓸한 낮으로 붙여진 제 팔을 바라보다 연기처럼 스르륵 모습을 감췄다.
* * *
같은 시각.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요….”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현실을 부정했다.
해총령왕은 그리 말하며 딸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자신의 부덕함이라며 용서를 구했다.
“배알도 없군. 그대 일족과 딸자식을 내가 다 죽이고 있는데도 동해 삼왕이라 불리는 자가 무릎이 그리 가벼워서야 되겠는가.”
이리 예를 취하며 나오는 것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혀를 찬 산군은 그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며 비아냥거렸다.
허나 그럼에도 해총령왕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다른 동해삼왕인 교총령왕과 도총령왕도 조금 놀라워했다.
‘천성이 불같은 자인데….’
자기 혈육들이 모두 죽고 일족이 도륙당하고 있음에도 그는 꿋꿋이 참고 무릎을 꿇었다.
‘하기사 영원(靈原)의 앞이니….’
분하고 원통할지언정 어찌하겠는가.
살기를 품어봤자 그때뿐.
곧 그에게 죽을 것이 뻔했다.
기운을 은밀히 감추고 있지만, 그 특유의 이질감을 모르지 않다.
동해 삼왕들은 고선의 지선을 만나봤기에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만일 그들이 고선의 지선을 만나 보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그에게 죽임을 당했으리라.
그의 발아래에 깔려 죽어버린 해룡족의 장로들처럼!
“제아무리 일족이 도륙당했다 해도 어찌 영원의 선사에게 감히 이빨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동해 삼왕이 그리 염원하는 경지가 바로 영원이지 않은가.
삼천 년을 넘게 살아오며 영원과 등선을 꿈꾸었으나 아직도 확실치 못한 것이 바로 영원이요, 등선이다.
하니, 당연히 영원을 이루고 진정한 선사라 불릴 자격이 있는 그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이 맞다.
“재미없군.”
그러나 산군은 맥이 빠졌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본래 그는 이참에 동해에 사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려 했다.
동해의 해족들 모두가 합심하여 백산을 쳤으니 응당 되갚아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 정도로 산군은 화가 나 있었고 그럴 능력 또한 충분히 있었다.
‘허나 저리 나오니….’
마냥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인계의 끝에 다다른 자는 산군 혼자뿐이 아니다.
고선에만 현재 셋의 지선이 있으며 세상 곳곳에 열이 채 안되지만 지선들이 숨어있다고 들었다.
정당한 사유라면 상관이 없으나 제멋대로 살육을 일삼아서는 그들에게 죽여달라 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니 자제해야만 했다.
“일부러 기운을 숨기고 있었거늘, 잘도 알아챘구나.”
“이전에 고선의 지선께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알아볼 수 있었지요.”
“그런가.”
그것과 더불어 제대로 마음 먹고 감춘 것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그들은 그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테니 방심한 탓이라 할 수 있었다.
“내 본래는 동해 삼족 모두를 멸족시키려 했으나 알아서 무릎을 꿇으니 차마 그럴 수는 없겠구나.”
슬슬 살(殺)이 쌓이는 것도 걱정해야 할 시기이다.
살이 쌓이면 그 살을 없애거나 중화할 살겁을 치러야 하니 시간적으로 큰 손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살심이 발작적으로 튀어나와 살육을 행하게 되니 모로 생각해봐도 그리하는 게 응당 맞으리라.
‘허나 그렇다고 이대로 두자니 그건 또 안 될 일이지.’
놈들과의 전쟁으로 죽어 나간 백산의 제자가 적지 않다.
자신이 없는 동안 백산을 지킨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넘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니.
“너희들이 내 대신 힘 써줘야겠다.”
“힘이라 함은….”
“뭐겠나. 당연 전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