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55)
낭선기환담-254화(255/600)
낭선기환담 – 254화
“전쟁을… 말이십니까.”
“그래. 네 혈육이 벌인 전쟁이니 그 아비되는 자가 책임지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저희는….”
붉게 물든 바다에 떠오른 해룡들의 시체들을 보노라면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해룡족 영겁은 물론 영명과 대부분의 육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는데, 전쟁에 나갈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자네들 말마따나 인계의 끝자락에 있는 나의 화를 샀음에도 이 정도로 봐주는 게 어딘가. 팔다리 한 짝씩 잘라서 내보내는 게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는 게 좋을 게야.”
그리 말한 산군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지솔과 수면 위로 떠오른 해룡의 사체들을 보고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율.”
그러자 돌연 허공에서 웬 창백한 낯의 여인이 나타났는데, 한 손에는 새까만 대검을 들고 한 쪽만 얇은 직사각형의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산군의 강시인 귀율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동해 삼왕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운을 느끼기는커녕 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사기와 마기라니….’
그러나 나타나자마자 흉악한 기운을 발산하니 더더욱 충격이었다.
강시 주제에 자신들과 동급의 힘을 지닌 것을 보니 어찌 놀랍지 않을까.
역시 영원에 발 디딘 선사는 다루는 강시 또한 남다르다며 개안한 듯 율을 눈여겨보았다.
“먼저 가볼 테니 여기 있는 것들을 구환도에 담아 오너라.”
본래라면 탐화에게 먹으라 시키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을 뿐더러 이제는 질이 떨어지는 것을 먹으려 하지도 않으니 그리할 수 없게 됐다.
해룡족의 사체는 가죽이나 뼈 등등, 여러 부분들이 연단과 연기술에 쓰이는 고계 재료다. 영원에 오른 산군이야 그닥 쓸모가 없으나 구환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구환도는 본래 억울하게 죽임당한 짐승과 인간이 재물로 만들어진 검이었고, 안에 담긴 귀무는 시체를 잡아먹어 부릴 수 있는 보물이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지금 보아도 어찌 그런 주진이 하계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구환도는 시체를 먹으면 먹을수록 성장하는 보구였고, 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지보에 근접한 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보패란 게 본래 제련을 통해 점차 강해지는 것이다만, 이렇게 자급자족으로 성장하는 보패는 제아무리 산군이라도 듣도보도 못했다.
‘사형들 전생에 이런 비슷한 물건이 있었기는 했지.’
허나 그마저도 여러 제약이 많이 붙어 있어 제대로 사용하는 이가 적은 물건이었다. 참 재미난 놈이라며 피식 웃은 그는 이내 신기루처럼 모습이 흐려지며 사라졌다.
산군이 사라지자 한시름 놓은 동해 삼왕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귀율은 곧바로 구환도를 발 아래에 있는 해룡의 몸에 박아 넣었다.
곧바로 귀곡성이 사방천지에 메아 리치며 새까만 귀무가 그녀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흡!”
동해 삼왕들은 곧장 축지하여 달아났으나 멍하니 다리가 풀려 있던 여인은 그리하지 못했다.
“꺄아악! 아, 아버님!! 사, 살려…!”
해룡족의 공주.
지솔이었다.
“뭣 하느냐! 어서 나오거라!”
다급함 마음에 소리치자 귀무 속의 악귀들을 뿌리치고 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때.
최악!!
“아아악!!”
단숨에 그녀의 팔 한 짝이 잘려나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내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눈 속에는 귀신과도 같은 여인이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솔아!”
당장에라도 달려가려는 찰나.
다시 한번 귀율의 구환도가 단숨에 궤적을 그렸다.
푸확!!
“커헉!”
단숨에 허리가 잘려나가고 선혈이 허공에 흩날려 바다 위로 떨어졌다.
“이, 이놈!!”
격분한 그가 귀율을 공격하려는 찰나. 교총령왕과 도총령왕이 함께 그를 막아세웠다.
“무슨 짓인가! 내, 내 딸이!!”
“진정하시게.”
“이 상황에 어찌 진정을 논하나!!”
허나 그럼에도 그 둘은 해총령왕을 말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의 강시가 괜히 저리 하겠나. 저것 또한 그 분의 뜻인 게야.”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 분의 강시를 공격하는 건 있을 수 없네.”
그의 강시를 공격한다는 뜻은, 곧 싸움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
이러나 저러나 해총령왕은 제 딸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서 빨리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저 강시는 그마저도 허락치 않을 모양인가 보군. 딱하게 되었네.”
푸욱!! 확인 사살을 하는 듯 잘려 나간 상반신을 대검으로 찔러 넣은 귀율은 이내 새로운 먹잇감을 찾듯이 동해 삼왕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소름이 돋은 그들 모두 단숨에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귀율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귀무를 구환도에 다시 빨아들였다.
온갖 악귀들이 판치는 귀무가 사라지자 바다 위에 죽어있던 해룡들도, 지솔도 어느새 종적을 감췄다.
“허허…”
해룡의 사체로 산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단번에 사라지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허망한 낯으로 바라보자 귀율은 기분 좋은 듯 구환도의 검면을 손으로 퉁퉁 튕겨보았다.
그러다 힐긋 눈을 올리고 해총령왕을 바라보다 냅다 구환도를 그에게 집어 던졌다.
쇄애액!!
“하압!!”
까아아아앙!!
화들짝 놀란 해총령왕이 단숨에 거창을 꺼내 구환도를 막아냈다.
끼긱, 끼기기긱!!
휘황찬란한 불똥을 튀기고서야 겨우 구환도를 튕겨낸 해총령왕은 두 팔이 얼얼하고 덜덜 떨려왔다.
한참을 뒤로 밀려난 그는 떨리는 두 팔처럼 가슴이 요동쳤다.
‘가볍게 내던졌을 뿐인데….’
어려웠다.
비록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다.
자신이 평생을 담금질해온 본선법패마저 작은 흠집이 생겼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와 반대로 귀율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구환도를 불러들여 흡족해했다.
그리고는 이내 동해 삼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그분처럼 무르지 않다.”
섬뜩한 눈빛과 두터운 살기가 그들을 향해 내리 꽂혔다.
그녀는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허공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귀율이 사라지고 동해 삼왕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망부석처럼 치욕스러움을 견뎠다.
* * *
보름 뒤.
화운반홍위에 앉아 백산으로 향하고 있는 산군의 곁에 모습을 감춘 귀율이 내려섰다.
가만히 좌선하고 있던 그의 눈이 슬며시 떠지며 입을 열었다.
“괜한 짓을 했더구나.”
흠칫한 귀율이었으나 무시했다.
산군은 귀율이 있을 허공을 응시하며 쓰게 웃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는 이전의 기억을 되새기며 땅 밑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영수였을 때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번성한 마을들이 보였고, 근처에 나라가 하나 생긴 것인지 곳곳에 지어진 성들이 꽤 많았다.
중간중간 길가를 거니는 영수와 그 등에 타고 있는 범인들도 보였다.
도사들 또한 여럿이었다.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던 산군은 이내 백산으로 천천히 내려섰다.
“장문님!!”
백산에 내려서자 많은 이름 모를 제자들과 함께 반가운 얼굴들이 그를 반겼다.
“명화와 양화구나.”
태양화리 부부였다.
낯빛이 조금 어두웠으나 산군을 반기는 모습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줄곧 기다렸습니다.”
“내 조금 늦었다.”
산군은 명화의 손을 잡아주며 무너져 내렸을 억장을 위로했다.
그의 부인되는 양화도 마찬가지.
‘아이들을 잃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손등을 다독이고 있자니 곧이어 다른 이들도 속속들이 나타났다.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운모는 물론, 만호 또한 아픈 몸을 이끌고 나타났고 신단수를 관리하는 호접량충.
총마루도 함께였다.
“오셨어요?”
그리고 그들의 뒤로 단아하게 차려입은 초아가 싱긋 웃으며 반겼다.
‘어디 다친 곳은 없네.’
내심 걱정했었는데 다친 곳이 없는 듯하여 다행이었다.
“말씀드릴 일이 있어요.”
무어냐 물어보자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말하기를 꺼려했다.
“안으로 들지.”
“네.”
잠시 뒤.
그의 보금자리인 천호군에 세워진 누각인 천호각에 자리했다.
“무슨 일이오 부인.”
“말씀 편하게 하세요. 괜히 그리하니 저마저 어색합니다.”
“제자들도 뻔히 보고 있는데 부인에게 어찌 하대를 할까. 남들 보기에도 좋지 않으니 이참에 길을 들여 놓는 것이 좋을 게요.”
“제가 불편한걸요?”
“…그럼 편하게 하지 뭐.”
입이 댓발 나온 제 서방을 보며 쓰게 웃은 그녀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그리 뜸을 들이나.”
“그게… 북서쪽에서 돌아왔을 때 연아와 서방님 화신이 중상을 입었다 하여 바로 치료 준비를 했어요.”
애초에 그리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산군은 비교적 멀리 있는 동쪽으로.
초아는 북서쪽으로 향한 거다.
“근데 왜 그러느냐.”
“한데 제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설마….”
죽어버린 것인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중상을 입은 놈이 사라지고 없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돌아온 날에 맞춰 화신과 연아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납치라도 당한 건가?”
연아와 화신이 중상을 입은 척 했을 리도 없고 백산을 떠날 이유도 없다.
다른 누군가가 개입한 것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골 장로라고 기억 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그 자를 백산에 데려온 것이 바로 나인데.”
육동을 쓸어버릴 때 제 문파를 버리고 산군에게 붙었던 태선 노인이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박쥐같은 노인네 같았으나, 크게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이 보이진 않았기에 자리를 내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시절의 백산은 많은 제자들이 들어와 여러 혼란을 겪기도 했었고, 산군은 백산에 붙어 있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게다가 태선이 자리하는 것만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기에 그때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연아와 화신과 함께, 골 장로도 모습을 감추었다 합니다.”
“그럼 골 장로가 그들을 데리고 도망이라도 쳤다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를 의심해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흠….”
영 음습한 구석이 있는 노인네였으나 굳이 화신이라면 몰라도 연아까지 데리고 도망가야 할 이유가 무언지 추측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손님께서 서방님을 줄곧 기다리고 계시고 있습니다.”
손님이라는 말에 산군의 눈초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본문의 대소사를 알고 싶으시다면 귀의라도 하시는게 어떨는지요.”
날이 서 있는 음성으로 허공을 향해 말하자 이내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거이거, 범 선사의 신통력이 제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같은 지선이라도 제 은술을 꿰뚫어 보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완경 선사.”
후우웅!
산군에게서 불어닥치는 날카로운 바람에 완경의 눈이 부릅 떠졌다.
“살기가 더 짙어지셨습니다. 크흠,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제가 엿들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싶어 그런 것이니까요.”
“도움이요?”
휘잉.
단번에 살기가 걷히자 한시름 놓은 완경선사가 재미난 소리를 했다.
“범 선사의 요청으로 백산으로 달려왔을 때, 급하게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기운 하나를 포착했었습니다.
저희 같은 늙은이들은 세월의 야속함에 나이만 처먹다 보니 원래 그런 눈치가 조금 있지 않습니까.”
말인 즉슨.
“혹시 몰라 놈에게 영충 하나를 붙여 놓았는데… 아마도 지금 얘기하시는 놈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