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56)

낭선기환담-255화(256/600)

낭선기환담 – 255화

“그게 정말입니까?”

“하하, 내 범 선사에게 거짓을 고해 무슨 득이 있다고 그러겠습니까.”

다행인 일이다.

완경선사가 아니었다면 연아와 화신을 찾으려 사방 천지를 들쑤시고 다녔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됐다면 일이 퍽 복잡해졌을 터.

아무리 영원에 올라 신식의 반경이 넓어졌어도 마음 먹고 숨은 태선을 찾는 데는 시일이 걸린다.

“이 빚은 톡톡히 갚겠습니다.”

“하하, 빚이랄 게 있습니까. 앞으로 한 배를 타게 될지도 모르는데요.”

“그럴 수는 없지요. 경황이 없어 손님 대접도 제대로 못했는데 어물쩍 넘어갈 수야 있겠습니까.”

천로등 탓에 자신을 도우는 것이지만 그렇다해도 계산은 확실히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제 비록 수중에 보잘 것 없는 물건들뿐이지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한 번 말씀해보세요. 무엇이든 완경선사께 쥐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완경은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리며 기분 좋게 미소를 흘렸는데, 이내 그의 입에서 영 생각치 못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제가 잠시 백산에 찾아와 둘러보니 희귀한 핏줄을 지닌 아이를 보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응명천충의 피를 지닌 혼아의 아이더군요.”

은근한 어조로 말하자 산군의 낯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제가 거둔 백산의 제자입니다.”

“그걸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본래 응명천충이 희귀하다고는 해도 저희 같은 늙은이들이 구하지 못할 영충은 아니지요… 저 또한 이전에 응명천충을 지니고 있던 적이 있습니다. 혈계신통은 참으로 현묘하여 제 얕은 그릇을 넓혀주기도 하였죠.”

빙빙 돌려 말하고 있으나 응명천충의 혼아는 처음 보았다는 소리다.

영충과 달리 혼아는 인간의 몸을 지니고 있고, 성교로 인한 신통의 발현이 가능하다 알려져 있어 탐구심이 들끓은 모양이다.

“완경선사께서는 지금 제 제자를 내팔라는 말씀이십니까.”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산군이 직설적으로 찌르자 완경은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제 어찌 백산의 제자를 내달라 하겠습니까.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그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 아이의 신통을 살펴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입니다.

선사가 걱정하는 일은 일절 없을 테니 안심하셔도 될 듯 합니다.”

응명천충의 혼아들은 혈계신통이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다른 이를 살릴 수 있다 보니 욕심을 내는 줄 알았으나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산군은 잠시 고민하다 그 정도는 제자들에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흔쾌히 허락했다.

완경선사는 지선에 오른 인물이니 그와 접점을 만들어 둔다면 그 아이들에게 큰 복이 될지도 모를 일.

모로봐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산군이 버젓이 있는 백산에서 제자에게 손을 대는 우를 범할 자도 아니다. 애초에 그런 어리석은 자였다면 골 장로에게 영충을 붙이지도 않았을 거다.

“그럼, 이야기 나누세요.”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초아는 자리를 비켰고, 산군은 완경에게 차를 내주며 골 장로의 위치를 캐물었다.

“놈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완경은 품에서지도 한 장을 꺼내어 백산에서 북쪽 방향의 해안에 자리한 기이하게 생긴 섬 하나를 손으로 짚었다.

“이곳에 멈추어 있군요.”

“이곳은….”

“촉산의 관리 하에 있는 섬으로, 그 옛날 촉명천녀가 등선한 곳이라 전해지는 천망도(天葬島)입니다.”

* * *

그날 밤.

“이게 그 명령서연(命靈栖蓮)인가.”

“예, 장문님. 연 장로의 분혼이 담겨 있는 꽃으로 만 리 밖에서도 그 생사를 알 수 있다 전해지고 있지요.”

자신의 분혼을 씨에 심어두면 명령서연이 자라나는데, 이 꽃은 신기하게도 분혼의 주인이 죽으면 시들고, 살아있으면 그 혼에 있는 기를 양분으로 삼아 평생 피어 있는다 하는 흔치 않은 영화(靈華)였다.

산군도 이야기를 들어보기만 했지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길게 자라난 줄기 위로 연꽃이 천천히 움직이며 만개했다.

옅은 주홍빛을 띠는 연꽃은 은은한 빛을 자아내 따뜻한 감상을 주었다.

“이게 연아의 명령서연이란 거군.”

연아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꽤 큰 값을 지불해 명령서연의 씨를 사놓았습니다. 장문께서도 한 녀석 심어놓고 가주시겠습니까.”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닌, 명화가 하는 말이니 퍽 애잔하게 들려왔다.

명화가 건네는 씨앗을 받아 자신의 분혼을 심어 건넸다.

명화는 건네받은 씨앗을 준비된 곳에 놓고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치 불경을 외우는 듯한 높낮이가 없는 주술이 외워지고 씨를 놓았던 장소에서 싹이 돋고, 그 싹은 줄 기가 되어 봉오리를 맺었다.

잠시 후.

명령서연이 활짝 피어난 연꽃으로 변해 환한 빛을 발산했다.

허나 연아의 것과는 다르게 산군의 것은 새하얀 백련이었는데, 이것을 묻자 명화는 두 손을 공손히 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명령서연은 피고 짐으로써 생사를 가릴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신통으로는 경지의 고하를 알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본래 혼에 민감한 영화이니 정순한 혼일수록 색이 하얗게 된다더군요.”

본래 수도는 심기체를 단련하는 것이고 그 끝에는 합일을 이루고 혼의 정순함을 담금질하기 마련이다.

명령서연은 자신이 품은 혼의 일부로 피어나 그 색에까지 영향을 받는 영화인 듯했다.

“신기하군.”

“예, 저도 듣기만 들었지 이처럼 새하얀 순백의 색은 처음 봅니다.”

이리 새하얗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보았는지 연신 신기해하다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장문께서는 영원에 발을 디디신 것이 아닌지요….”

“네 말이 맞다.”

“역시!! 가, 감축 드리옵니다.”

“고맙구나. 내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만 마치면 큰 잔치를 열어 나의 경지를 밝히고 전쟁을 끝내려 했다.”

“그렇지요! 장문께서 영원에 오르셨다면 누가 감히 백산을 넘보겠습니까!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자신보다 더 기뻐하는 명화를 보니 썩 기분이 좋았다.

흡족한 얼굴로 명화를 바라보던 산군의 낯이 씁쓸하게 바뀌었다.

“명칠이라 했던가. 참한 여인으로 자랐더구나.”

“참하다니요. 아직 세상물정도 제대로 헤아릴 줄 모르는 철부지입니다.”

하나 남은 자식이다.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닐 터.

허나 산군은 그를 위해서라도 그 걱정에 짐을 덜어줘야 했다.

“잘 돌봐야겠더구나. 그 아이 속에 심마의 싹이 자라고 있음을 보았다.”

“!!”

돌연 명화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변하다 무너져 내렸다.

“그렇…습니까.”

“형제들이 전부 죽고 크게 상심하였다 들었다. 부모 마음이야 하겠냐만은 그 아이 또한 다르지 않았겠지.”

“그렇군요… 부모가 되어 제 속을 챙기기만 바빴지, 하나 남은 자식이 어찌 살고 있을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 그리 배워나가는 것 아니겠나. 자네도 부모 노릇을 두 번 세 번 해 본 게 아닐 테니 당연하겠지.”

본래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맞닥뜨리는 것은 언제나 처음의 연속이요, 불편하기도 어렵기도 하여 실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편해지기 마련이지 않던가.

부모의 도리 또한 그와 다를 것 없을 테니 배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비록 내 자식은 없으나 백산의 제자가 다 내 자식이요, 내가 그놈들 애비이니 어려운 일 있으면 기탄 없이 내게 말해보거라.”

그러자 명화는 산군을 보고 눈을 꿈뻑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는데, 왜 그리 보나 물으려 하자 애매하게 웃는 얼굴로 아무것도 아니라 하였다.

“싱겁기는.”

그렇게 명화가 물러나자 산군은 발길 닿는 대로 백산을 거닐다 부상당한 제자들을 돌보고 있는 자를 보았다. 먼발치서 연신 정신없이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는 이는 그의 부인이자 백산의 어머니인 초아였다.

“복조부를 더 가져오너라!”

“옙, 사모님!”

숨넘어가는 제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가만히 보고 있던 산군은 이내 자신의 공정강을 열어 젖혔다.

“그들에게 쓰시오.”

그의 공정강에서 값비싼 영초부터 시작해 구하기도 힘든 선단들이 막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귀한 것들을 전부 말입니까?”

부상자를 돌보던 제자가 그리 묻자 산군은 엄한 표정으로 꾸짖었다.

“백산의 제자에게 어찌 값싼 것을 내줄 수 있겠느냐. 너희들이 모두 훗날 백산을 지킬 기둥이 될 지인데!”

“서방님….”

“백산을 위하다 다친 이들이니 절대 죽이지 말고 살려내시오.”

그리 말하고는 다시 한번 일렀다.

“잘 알아들었느냐.”

“알겠습니다!!”

고개를 주억인 그는 물러나며 잠시 그녀를 기다렸다.

일각이 조금 지났을까.

“가시는 겁니까.”

환자를 돌보다 나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제자가 잡혀있으니 가야지.”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마주잡은 두 손이 그를 보내기 싫은 것인지 자꾸 꼼지락 거린다.

“어째 저희는 항상 떨어져 있기만 하니 무슨 팔자인지 모르겠습니다.”

여인네의 귀여운 투정에 웃지 않을 사내가 어디 있을까.

입꼬리가 올라간 산군은 초아의 뺨을 어루만지다 볼을 꼬집었다.

“이번 일을 마무리하면 그때는 함께 세상 구경이나 해보자꾸나.”

“세상 구경이요?”

“여러 좋은 곳도 많으니 함께 돌아다니자는 것이다.”

등선하여 상계로 올라가게 된다면 인계로 다시 내려올 기회도 없을 테니 이참에 여유를 가지고 나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초아를 만나고 나서부터 줄곧 숨 가쁘게 달려왔던 산군이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을 때도 됐다.

“진심이시죠?”

“그럼.”

“약속하신 거예요?”

끄덕거리자 세상 더 없이 행복하게 웃으며 그의 품에 안긴다.

“그리 좋으냐.”

“그럼요!”

“네가 좋으니 나도 좋구나.”

온기를 느끼던 둘은 이내 다시 떨어지며 다시금 작별을 고했다.

이내 산군이 화운반홍을 불러 화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초아는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보다 제 볼을 두들이고는 환자들을 살피러 돌아갔다.

* * *

천망도 인근의 작은 섬.

어느 노인과 사내가 은밀한 만남을 이루고 있었다.

노인은 백산의 장로인 골 장로였고, 사내는 귀강문의 주인 예운이었다.

“약조한 대로 화신을 가져왔소. 내 그대와의 약조를 지켰으나 그대 또한 나와의 약조를 이행해야 할 게요.”

“우리 마도 놈들은 선도 놈들이랑은 달리 약조는 반드시 지킵니다.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테니 심려 놓으시지요.”

그리 말하는 예운은 골 장로의 옆에 놓인 관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관에 꿀을 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저리 바라보는 것을 보니 얼마나 백산의 화신을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게 그리 대단한 겁니까?”

어이가 없어 묻자 예운이 돌연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당연하지요. 마도에 입문해 강시술에 대가라 불리는 저도 이 정도의 화신체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완전히 새로 만든 것도 아니고, 영겁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화신이라뇨!”

본래라면 만들기도 극히 어렵고 들이는 정성과 시간에 비해 그 결과물이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말로다.

화신이란 것이 원래 그러하다.

애초에 다른 이의 몸에 자신의 화령을 집어넣는다는 말은, 맞지 않는 신을 신는 것과 다름 없는 일.

그러니 본래는 자신의 신체중 일부를 잘라 그것을 오래토록 연화시켜 화신체로 만드는 것이 정석이다.

그래야 화령을 담아도 반발이 일어나지 않고 반서당하지 않을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상식이다.

“허나 어찌 했는지 자신의 화령을 쓴 것도 아니고 그 구조를 살펴보자면 놀랍지 않은 게 없습니다!

백산파 장문의 신통이 정말 하늘에 닿아 있다 보아도 무방할 정도지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는 화신을 여럿 만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화신을 만드는 일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던 골 장로는 대부분의 말이 와 닿지 않았지만, 이 화신에 담긴 정수가 대단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거라면 제 부인을 화신으로 만들어 이전처럼 생기 있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음… 그거야 난 모르겠고, 약조하신 물건이나 먼저 주십시오.”

“아,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여기 있습니다. 거래는 신속하게 하는 것이 좋은 법이지요.”

공정강 하나를 건넨 예운은 골 장로가 물건을 확인하고 만족스레 웃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그 안에는 많은 양의 영초와 재물은 물론, 오래되어 보이는 고서도 함께였는데 골 장로는 물건을 확인하고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확실하군. 좋은 거래였소.”

“아,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것 말입니까?”

골 장로의 곁에는 투명한 관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안에는 다 죽어 가는 노파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저도 제 목숨은 중해서 말입니다.”

“그 말씀은….”

“인질이지요, 인질. 백산파 장문이 돌아와도 이년 하나면 절대로 저를 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