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57)
낭선기환담-256화(257/600)
낭선기환담 – 256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백산파 장문은 제자를 아끼는 자라고 하지요.”
예운은 관속에 담긴 노파를 살피다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극히 평범한 자질을 지니고 있는데 환선까지 어거지로 올라왔군요.”
“…? 그걸 어찌 아십니까?”
“제 독문공법이 그런 쪽에 조금 민감해서 말입니다.”
골 장로는 의심스럽다는 듯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백산파 장문의 총애를 받아 갖은 영약과 기연들로 겨우겨우 환선이 되었다고는 하덥디다.”
“아까워라…. 이 정도의 정성을 다른 이에게 쏟았다면 환선 둘, 셋은 만들었을지도 모르는데… 한데 다 죽어가는군요. 극심한 내상과 함께 공법의 반서가 온 것 같은데… 음. 그렇군. 억지로 숨을 붙여놓았군요.”
골 장로는 바로 맞췄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다 하늘에 뜬 해를 보고는 몸을 급히 움직였다.
“이제 가봐야겠소.”
그리 말하며 관 위에 작은 손수건을 떨어뜨리자 눈 깜짝할 사이에 관이 손수건에 빨려가듯 사라졌다.
“아무튼 약조한 것 잊지 마시오.
앞으로 귀강문은 천 년 간 날 보호해 주어야 할 것이니!”
“이미 저희끼리 이야기를 다 맞춰 놓은 지 오래입니다.
귀강문과 다른 마도문은 천망도를 거쳐 동해로 출발한 지 오래이고, 동해의 해족들과 합세하여 백산을 칠 것이니 백산파 장문이 그대를 쫓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뿐일까.
전쟁이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면, 백산파 장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니 그가 걱정할 일도 없다.
“백산파 장문을 너무 쉽게 생각치 마시오. 당신이 놀라워하는 것만큼 놈이 지닌 힘은 진짜니까.”
허나 예운은 한껏 비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자, 먼저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 추적이 붙어 있을지 모르니 제가 천망도 깊숙한 지하에 숨어 지낼 곳을 마련하였습니다.”
“크흠, 감사하오.”
도포를 펄럭인 골 장로는 이내 빛줄기로 화해 하늘을 가로질렀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예운은 작게 냉소하며 놓여진 관에 엉덩 이를 걸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떡할까….”
그의 눈에는 무언가가 보이는 듯 허공 한 곳을 직시하며 중얼거렸는데, 손으로 관을 두들기는 것을 보니 무언가 고민이 있는 듯 했다.
“세상 꼴이 참 재밌게 돌아가니 나도 돌아버릴 것 같이 재밌군.”
혼자 낄낄거리던 예운은 이내 얼굴빛을 바꾸고는 눈가를 가늘게 떴다.
탓, 타탓.
빛줄기 셋이 연달아 지면에 내려서자 기다렸다는 듯 자세를 바로하고 포권했다.
“반갑습니다. 완경 선사님.”
“오오, 예운 선사 아직 시간이 이른대도 기다리고 계셨구려.”
맨 앞에 서 있는 풍만한 체형의 노인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 옆에는 여우상을 지닌 중년인이 수염을 매만지고 있었다.
“고명한 선사분들을 기다리게 할 수야 있겠습니까. 시간은 누구에게 나 소중한 것이니 응당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켰을 뿐입니다.”
겸양 떨며 인사한 그는 그들 가운데에 서 있는 청년을 보며 물었다.
“한데 이 분은….”
그 기운의 골이 장대했고, 한 눈에 보아도 만만히 볼 자가 아니었다.
은연중 흘러나오는 기의 골자가 퍽 남달라보이는 자로 태산 꼭대기에 엎드려 있는 범을 보는 듯했다.
“아, 소개가 늦었군! 이쪽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소개를 하려는 찰나.
예의 사내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백산파 장문, 범이라 합니다.”
* * *
일각 전.
하늘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빛줄기는 각각 완경과 팽조.
그리고 산군이었다.
완경이 붙여놓은 영충으로 인해 골 장로가 천망도에서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전속력을 다하여 천망도로 향하고 있었다.
“이거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 그렇지 않아도 천로등을 찾으러 갈 지선을 만나기로 약조되어 있었는데 잘 됐군. 놈을 잡고나면 범 선사도 인사 한 번 나누는 게 어떻습니까.”
“그렇지. 완경 말이 맞소. 그 자도 지선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교분을 나눈다면 범 선사께 퍽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니오.”
지선이 된 지 얼마 안 된 자.
친해져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나쁠 것 없지요. 그리 하겠습니다.”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비록 그 자가 마의 길을 걷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같은 이들에게 도의 길 중 하나일 뿐이니 혹시라도 편견을 갖고 대하시면 안 됩니다. 지선끼리의 싸움은 절대 안 되니까요!”
“편견을 가질 게 무엇 있겠습니까. 저 또한 인간도 아닌데요.”
마도라는 말에 조금 꺼림칙했으나 나쁠 것은 없어보였다.
일각 후.
“아, 그 유명한 백산파 장문이셨군요. 이것 참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귀강문의 주인께서 지선에 오르셨는지는 또 몰랐습니다.”
산군은 반갑게 악수하며 덕담을 나눴는데 겉으로는 반가워했으나 속으로는 퍽 혼란스러웠다.
귀강문의 주인인 예운은 귀음나찰을 만든, 그녀의 아비나 다름없는 놈이다. 게다가 금환선향에서도 그의 행적을 보았던 산군이다.
내심, 그가 지선이 된 내력이 의아하여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 만난 것이 참으로 반갑기는 하나, 제가 변절자를 쫓고 있는 몸이라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그러자 산군은 그의 곁에 있는 관을 발로 쿵! 찼는데, 그러자 관 뚜껑이 날아가며 그 안에 뉘어진 소녀의 외관을 한 화신이 보였다.
“이것은 제가 만든 화신으로 중상을 입은 제자와 함께 변절자 놈에게 강탈당한 것인데 어찌 예 선사의 손에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잘 벼려진 명도처럼 날카로운 기색이 풀풀 풍겼다.
한 치라도 잘못된 대답을 한다면 곧장 살수를 날릴 것 같은 분위기다.
예운은 당황스럽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내 미간을 좁혔다.
“이런… 뭔가 오해가 생긴 듯하니 제 말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리하지요.”
이내 예운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산군과 선사들은 모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이야기는 일필휘지로 그려진 그림처럼 알아듣기 쉬웠고 단숨에 그들을 납득시켰다.
“그러니까.”
예운의 말에 따르면 그는 지선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기운을 가다듬을 계기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새로운 강시나 화신체에 관련된 공법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골 장로를 알게 되었고 그와의 거래를 통해 산군의 화신을 사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수중에 있는 것을 다 털어내 제 화신을 사셨다고요….”
“예, 하! 그게 설마 범 선사의 화신일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어쩐지 화신에 녹아있는 공법의 정수가 신묘하다 했더니… 명망이 자자한 선사의 것이니 당연한 노릇이었어요.”
예운은 연신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는데 거짓인지 참인지 알 길이 없어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이거 참… 내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놈의 다리몽둥이를 분지르고 여기 서 선사를 기다렸어야 했거늘. 쯧.”
예운은 모두 자신의 모자람 때문이니 용서해 달라 청했으나 산군은 연신 그에 대한 의심을 놓지 않았다.
그의 말에 허점은 없었고 알맞지 않은 구석 없이 깔끔했다.
허나 그렇기에 더 의심스러웠다.
산군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환선향에서 예운이 제 형제들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뒤통수를 치며 죽이던 그 잔악한 모습을.
그러니 도리어 허점이 없는 것이 오히려 산군의 의심을 증폭시켰다.
뱀과 같이 교활하고 교악한 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예운일 테니.
의심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는 인물이지 않은가.
유정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아! 그럼 혹시.”
예운은 돌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심했는데, 왜 그러냐 물으니….
“놈이 관을 두 개 들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이것이고, 다른 것은 투명한 관 속에 노파가 담겨 있었습니다.
혹, 그것이….”
“제, 제자일 겁니다!”
연신 의심을 지울 수 없었으나 어쨌거나 연아가 먼저다.
“이런! 놈은 어디로 갔소?”
“멀리가지 못했을 겁니다!”
“음! 어서가세나!”
곧장 둔광을 일으키려는 찰나.
잠시 멈춘 산군은 예운을 보며 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예 선사도 거들어주시지요. 일이 복잡해졌으니 셈을 치러야 할 것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애매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만 그나마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가 지선이 됨으로서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는 위치가 됐다는 것이다.
예운이 그저 태선이었다면 화신을 그냥 가져갔겠으나, 동등한 선에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아, 물론이지요! 이리 만난 것도 다 인연인데 제가 범 선사의 화신을 눈 가리고 아웅 하듯 가로채기라도 하겠습니까. 당치도 않는 말씀이죠.”
예운도 눈치 좋게 나오자 더 무어라 할 필요가 없었다.
골 장로를 잡아 예운이 치렀다는 값을 내주고 화신을 받으면 될 일이다.
예운이 지선이 되어 나타난 것은 적잖이 놀라웠으나 그러나 저러나 연아를 찾고 놈을 처 죽여야 하는 것은 다르지 않으니.
“껄껄껄, 허나 예 선사도 놈에게 큰 값을 지불하였으니 이 화신은 내가 맡는 것이 분란을 방지하기 좋겠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나쁠 것 없다.
그리해준다면 괜한 분란이 생길 징조를 방지할 수 있으니 좋았다.
“좋습니다.”
“음, 내가 보기에도 그리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예 선사는 어떠시오.
범 선사의 일이 마무리되면 어차피 들어가는 김에 천로등을 찾을 길을 익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
“예, 그리하시지요!
본래 임자가 있는 물건인데 응당 그리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예운도 흔쾌히 허락하니 일사천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럼 출발하시죠.”
이내 산군을 비롯한 다른 선사들이 둔광을 뿜으며 사라졌고, 예운은 잠시 멈춰 서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준비시킨 군세는 동해를 향할 것이고 거기서 백산을 치게 될 터지.”
이미 가버린 마도의 군세는 이제 동해에 당도했을 터.
회군하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다.
“그리하면 약조는 지키겠네.”
범 선사가 없는 백산은 손으로 찌르면 푹 들어갈 순두부와도 다를 게 없는 상태이니….
“일이 재밌게 돌아간단 말이지… 그렇지 않소 부인?”
예쁘장한 괴뢰를 꺼내 낄낄 거린 예운은 이내 웃음을 감추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 * *
같은 시각.
동해에서는 검은 운무가 하늘에 짙게 깔리며 날아왔다.
“왔나.”
운무 사이에는 각양각색의 마기를 흩뿌리는 마도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최소 만 명은 되는 숫자였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사들이 나타나자 동해 삼왕은 반갑게 맞이했다.
동해의 해수면 위에 내려선 마사들 중 대표 격인 이가 앞장서 인사했는데 눈썹이 턱 끝까지 내려오고 검버섯이 잔뜩 피어있는 음침한 노인이었다.
“귀강문의 대장로 옹루라 하오.”
“연통은 미리 받았소.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인사치레를 다음으로 넘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군사는 준비되어 있습니까.”
“물론.”
이내 도총령왕이 눈짓하자 바닷물이 들썩이고 곧이어 하나둘 물 위로 수많은 해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수의 모습을 한 이들부터 인간의 모습을 한 자들까지 수천을 넘어 수만에 달하는 군사들이었다.
“아주 좋군!”
자신을 옹루라 소개한 자는 해족의 군세를 보며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흥분을 감출 수 없는지 연신 고개를 주억이던 그는 동해 삼왕을 보며 말했다.
“저희 귀강문 장문께서도 동해 삼 왕의 노고를 잊지 않을 거요.”
“노고…?”
명백히 아랫사람을 대하는 말투다.
언짢지 않을 리 없다.
허나 옹루는 아랑곳 않았다.
“우리 귀강문의 장문께서는 그 신통이 하늘에 닿아 얼마 전 지선으로의 승선을 마치셨소!
그런 귀강문과 연을 맺는 동해는 앞으로 예운님의 발아래에 선다면 천년을 평안케 될 것이니 모쪼록 이번 전쟁에 힘써주시오!”
지선이라는 말에 동해 삼왕들은 서로 바라보며 놀라워 했다.
허나 그들은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비열한 마도 놈들보다는 같은 영수인 그분이 낫겠지.”
그리 중얼거린 해총령왕과 동해 삼왕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더러운 마두들의 목을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