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60)
낭선기환담-259화(260/600)
낭선기환담 – 259화
흠칫.
“무슨 일이신가.”
돌연 발걸음을 멈춘 산군을 향해 팽조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허, 거 참 싱겁기는.”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발걸음을 옮기자 팽조 또한 그와 발맞춰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참 묘한 곳입니다.”
“아무렴, 상계의 신선이 내려준 신물인데 평범하겠는가.”
천망갱노의 안쪽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은근히 깔려 있는 운무와 함께 드문드문 보이는 진과 기둥처럼 솟아 있는 비석들이 즐비했다.
게다가 허공에는 어째서 존재하는지 알 수가 없는 석벽들이 떠다니니 보면 볼수록 의아했다.
“한데 이런 곳에 천로등이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전부 둘러보지도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네. 이곳의 공간이 얼마나 방대한지도 모르고 아직은 모르는 것투성이니 말이야.”
그 말대로다.
신식이 제한되다 보니 이곳에 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원체 어둡기에 명확히 보이지도 않았다.
허나 그렇기에 골 장로가 숨어들기에는 적절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흐음….”
거닐면 거닐수록 답답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한숨만 자꾸 나왔다.
“독 안에 든 쥐일세. 제자를 위하는 마음은 잘 알겠으나 그럴수록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나.”
“맞는 말씀입니다. 허나 독 안에 든 쥐라고 물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조금은 너그러히 봐주시지요.”
“으음… 음? 범 선사 이것 보시게.”
고개를 주억이던 팽조가 돌연 비석 하나를 찾아내 미간을 좁혔다.
“무엇이기에 그러십니까.”
산군도 한달음에 다가와 비석을 보자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알아 먹지 못할 글자가 아닌 기묘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무늬는 은은한 녹빛을 띠고 있었고 그것이 바닥까지 이어져 있기에 팽조와 산군의 시선은 천천히 바닥을 향했고 발걸음도 뒤를 따랐다.
잠시 후.
“흠….”
바닥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와 보니 막다른 곳에 다다라 있었다.
“이게 뭘까요.”
벽 끝에는 비석에서 보았던 것과 흡사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규칙적으로 새겨진 두 개의 사각형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문양이었다.
“글쎄…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중간부터 녹빛이 끊긴 것을 보면 어딘가 부서진 게 아닐까 싶은데.”
그의 말대로 녹빛은 문양 전체에 고루 돌지 않고 중간에 끊긴 것처럼 사각형의 중심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 홈이 파여 있네요.”
사각형 문양 가운데에는 홈이 파여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원래 무언가가 꽂혀 있었던 듯하다.
‘뭐가 있었던 거지.’
손을 대려는 찰나.
쿠구구궁!!
지면이 격하게 흔들리고 폭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헛.”
“놈을 찾은 모양일세! 어서 가세나!”
단숨에 둔광을 흩뿌리며 날아갔다.
석연찮은 마음에 석벽을 잠시 바라보던 산군도 이내 뒤를 따라 날아갔다.
잠시 뒤.
소리의 진원지에 도착한 산군과 팽조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현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도, 도와주시게! 커헉!!”
완경과 예운이 천망갱노의 중심지에서 예의 거대한 조각상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완경은 창을 쥔 거인 조각상과 싸우고 있었고 예운은 검을 쥔 거인과 한창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팽조가 놀라 소리치자 거인의 창을 철퇴로 막아서던 완경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소리쳤다.
“놈을 잡게! 저 거인들은 놈이 조종하고 있는 것일세!!”
완경이 눈짓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골 장로가 비릿한 미소를 풍긴 채 녹빛 돌 두 개를 허공에 띄워 놓고 있었다.
“저건….”
모양이나 크기가 앞전에 보았던 석판의 홈과 연관이 깊어 보였다.
“오랜만이오, 장문!”
“골 장로.”
오래간만에 만난 골 장로는 산군을 반기며 비웃음을 흘렸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태선에 불과한 놈이 저 거신병들을 믿고 한껏 까불고 있는 모양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내 자네를 신용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사리분간은 제대로 할 줄 아는 자로 보았거늘.”
“사리분간이 제대로 가능하니 이리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딴에 아무리 날고 기어도 지선 넷이 절 잡으러 왔다면 응당 목을 내놓아야 하지요!”
허나.
“거신병이 제 손에 있다면 사정이 조금 다른 것 아니겠소!”
“이노옴!!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겨우 그까짓 것으로 땅 위의 신선이라 불리는 지선을 당해낼 수 있을 성 싶더냐!!”
듣다 못한 팽조 선사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지 소매를 펄럭 이자 안에서 수만 마리의 영충이 나타났다.
“제아무리 신선의 손을 거친 거신병이라도 나 팽조의 금장지주(錦將蜘蛛)에 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윙윙윙윙윙!!
금빛으로 물든 날개 달린 거미 떼가 단번에 금빛으로 금장사를 뿜어내자 거신병의 움직임이 단번에 멈춰섰다.
“금장지주!!”
산군도 연이 많은 영충이었다.
애초에 지네인 탐화가 실을 뿜을 수 있게 된 것이 금장지주의 알이 변한 금장지태를 먹였기 때문이 아니던가.
만보시대에 멸종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아 산군도 그 원형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백충서방에 제4위에 올라있는 것이 바로 금장지주였지.’
제대로 키워내기만 하면 너무나 쓰임이 많다. 금장지주가 뿜어내는 실인 금장사는 금강불괴에 비할 정도로 단단하고 질겨 쓰임새가 많고, 금장지주가 낳는 알은 영약 중의 영약이지 않던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는 것이 바로 금장지주고 한 마리만 있어도 웬만한 보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강력한 영충이다.
‘성체의 금장지주가 만 마리가 넘어가게 키워냈다니….’
역시 지선은 지선이다.
성체의 금장지주가 뿜어내는 금장사는 그 무엇으로도 자를 수가 없고 불태울 수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탐화의 금장사로 그 위력을 십분 알고 있는 산군이니 저 많은 숫자의 금장지주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 날 지켜라 거신병이여!!”
골 장로도 예기치 못한 팽조의 신통에 놀랐는지 당황하고 있었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기세등등해진 팽조는 두 팔을 털 듯 휘두르며 법문을 외우고 향초를 꺼내 지면에 던졌다.
푹푹푹푹!
향초는 마치 말뚝처럼 지면에 박혀 절로 불을 뿜어 피워졌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 진을 구축했다.
“와라!!”
이내 소리치자, 만 마리의 금장지주가 팽조의 몸에 달라붙어 금빛 섬광을 뿜어냈다.
그 빛이 얼마나 강한지 순간 천망갱노의 공동 전체가 그 빛에 휩싸였을 정도였다.
이내 금빛이 사그라들자 팽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크기의 금장지주가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자리하고 있었다.
‘본선영충을 다루는 충사였었군.’
산군이 본선법패로 화란을 다루고 몸속에 배양하여 함께 강해지는 무구로 다루었듯이, 팽조 역시 영충을 본선으로 하여 주신통으로 부리는 충사였던 것이다.
간간이 부수적으로 영충을 다루는 자들은 보았으나 제대로 된 충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파파파팟!
백 장이 넘어가는 크기의 금장지주는 단번에 사방으로 금장사를 뻗쳤다. 거미줄이 형성되자 금장지주의 신형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지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신출귀몰하게 금장사를 타고 다닌다.
그 크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빠른 귀신같은 몸놀림이었다.
“그에 반해….”
골 장로는 아연실색하며 거신병들을 조종하였으나 승기는 없어 보였다.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거신병을 조종해 금장지주를 죽이려 하지만 금장사에 얽히고설켜 제대로 된 조종이 불가능했고, 빠른 속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아무리 거신병의 힘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그것을 다루는 자가 미진하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
어느새 거신병의 머리 위에 올라 있는 금장지주의 등 위로 팽조의 상반신이 돋아나 있었다.
“보, 본충합일!!”
본충합일이라는 말에 골 장로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산군 또한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본충합일은 자신의 복충과 심기 체를 하나로 합일하여 더 강력한 힘을 부릴 수 있다는, 충술의 극의에 닿은 경지이다.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군.’
본충합일을 이룬 자는 태어나길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영수가 탈형을 마치고 난 후의 모습과 흡사해진다 들었는데 팽조의 것은 영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 강력한 힘은 감히 나무랄 데가 없어 보였다.
산군 또한 탐화를 이용한 위주호연갑으로 비슷한 효과를 보일 수는 있으나 본충합일처럼 영충과 하나 되어 합쳐진 힘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난 탐화의 힘을 빌려 쓰는 것뿐.’
저리 자유자재로 부리지도 못하고 탐화와 자신의 힘을 합쳐 더 큰 힘을 내는 것도 하지 못하니 부러움이 깃든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앙!!
팽조가 금장지주의 몸으로 거신병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금장사를 흩뿌려 꼼짝도 못 하게 막아버리자 더는 움직일 수가 없는지 미동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산군이 나설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거신병 둘을 모조리 제압한 것이다.
완경은 역시라는 표정과 함께 안심하는 듯했고 예운은 그의 강력한 신통력에 놀라워했다.
“언제를 봐도 팽조 선사의 본충합일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가 애먹은 것이 무색하게도 단숨에 제압하시니 도리어 민망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칭찬에 팽조는 입꼬리를 옅게 올리고는 벌벌 떨고 있는 골 장로를 향해 다가갔다.
“범 선사. 제가 끝을 내기보다는 그대가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 떨어져 계시지 말고 이쪽으로 오시지요.”
당연한 소리다.
놈을 잡았으니 연아를 구해내어야 했고, 그 다음으로 지선들과 천로등을 찾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골 장로는 전의를 상실했는지 덜덜 떨며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고 예운과 완경도 곁으로 모였다.
“어서 놈을 심판하고 천로등을 찾으셔야지요. 놈이 제자를 숨겨놓은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어서요!”
예운이 그리 외치자 다른 이들도 긍정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서 빨리 제자를 찾아야 함이 옳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산군은 서늘한 미소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범 선사.”
팽조가 의아하여 물었으나 산군은 씁쓸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내 인계의 정점이라는 경지에 오르게 되어 모든 것이 개안한 듯 새로이 보였으나… 생각보다 변한 것이 많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 음성에는 쓰디쓴 사약을 마신 듯 씁쓸함이 감돌았고, 영고일취(榮枯一次)의 부질없음이 다분히 녹아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심상치 않은 어투에 완경 선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산군이 한 발을 내디뎠다.
“이 발을 내디딘 것처럼, 저 또한 조금은 신뢰를 담았었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답답하다는 듯 외치는 팽조의 말에 산군은 발을 구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쿵!!
휘이이이잉!!
산군이 발을 구름과 동시에 거대한 광풍이 휘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우윳빛 광채가 전신에서 뻗어 나가 사방으로 퍼지자 예운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항마신력!!”
예운이 물러서자 허공에서는 무언가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퍼져 나왔고, 동시에 여러 풍경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무릎 꿇고 있던 골 장로의 모습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동시에 금장사로 묶여 있던 거신병들과 신비했던 풍경들 모두가 풍화되듯 흩날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웅장한 두 마리의 거신병과 그 가운데에 있는 기암괴석.
그리고 그것을 지키듯 서 있는 세 명의 지선과 지면에서 뻗어 나와 있는 무수한 마귀의 손아귀들이었다.
“묻고픈 게 많지만….”
상황을 보니….
“일단은 좀 처맞으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