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64)
낭선기환담-263화(264/600)
낭선기환담 – 263화
콰아아앙!!
“강시주제에 앙탈이 심하구나, 하하하!!”
칠흑처럼 어두운 귀무 속에서 수천수만의 귀신들이 제각각의 모습을 지니며 움직였다.
때로는 인간이었다가 영수였다가 이도저도 아닌 무언가로 바뀌었는데, 그 모두가 강시의 손짓 한 번에 천태만상(千態萬象)처럼 펼쳐지니 마치 만귀(萬鬼)의 왕이라도 되는 듯한 모습.
그뿐일까.
귀무에 보호를 받는 듯 홀연히 사라졌다 다시금 나타나기를 반복하니 자신이 강시와 싸우는 것인지 귀신과 싸우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대단하군!”
허나 그러면 그럴수록 예운의 눈빛은 탐욕으로 물들었다.
저 정도 수준의 신통을 홀로 부리니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공법과 혼을 불어넣었기에 저런 강시가 나타난단 말인가!
백산파의 화신체를 보았을 때부터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강시까지 저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시 자체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저 대도의 보물이다.’
아홉 개의 환을 가진 대도.
이 진득한 귀무와 함께, 모든 귀신들을 다루는 능력까지 저 구환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강시술을 부리는 예운의 입장에서는 귀율도 귀율이지만 수천수만이 넘어가는 귀신을 부리는 검 또한 대단히 탐이나는 보물이었다.
구환도에 담겨있는 혼을 조금만 정련하여 하나로 만든다면 강력한 강시술을 부릴 수 있음이 뻔했다.
‘혼을 갈아 넣어 제련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보물이 될 수 있다.’
지보를 뛰어넘을 수도 있을 터!
그리만 된다면 인계에서 자신을 위협할 적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척!
“흠….”
돌연 귀무 속에서 멈춰선 예운은 재밌다는 듯 턱을 매만지다 외쳤다.
“네 능력은 물론, 구환도가 지닌 힘 또한 충분히 보았다! 하지만 네 혼이 불안정하고 상대가 지선이 둘이니 아무리 너라도 더 이상 해 봤자 승산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 터!
하니 이렇게 함이 어떻겠느냐.”
그러자 이야기를 들어볼 요량인지 귀율이 귀무 속에서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싱긋 웃은 예운은 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귀율에게 던졌다.
척. 시뻘건 부적은 퍽 기묘한 힘을 지닌 것 같았는데, 한 눈에 보아도 강력한 사기가 흘러 넘쳤다.
“스스로 이마에 붙이기만 한다면 내가 널 거두어줌은 물론, 네 너덜너덜한 혼을 하나로 섞어 내주마.”
“…개소리.”
의심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바라보자 이내 부적의 이름과 신통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귀율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미를 찌푸렸다.
“정말이다. 나는 한평생 강시술을 연마하며 지선에 오른 자다.
인계에 나보다 강시술에 탁월한 자는 얼마 없을 테지. 그런 내가 말하는 것이니 네 지금의 상태가 비정상적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얼마못가 붕괴하거나 소멸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
허나.
“만추호기거부(灣秋毫寄居不)라면 네 다 찢겨나간 혼을 채우고, 또 운이 좋다면 다시금 너도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인간.
그것이 상대에게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예운은 잘 알고 있다. 자아가 생성된 대부분의 강시는 살아 있는 것에 강한 열망을 갖는다.
지난 세월동안 강시술을 연마하며 여러 강시들을 보았던 예운이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는지 모르래야 모를 수가 없다.
“어떠하느냐. 네가 아무리 불구대천마의 흉력으로 네 혼의 부족함을 메우고 있다지만 이제 슬슬 한계에 달한 것 같은데 아닌가?”
귀율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그리고는 이내 하찮다는 듯 업신여기며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그런 귀율의 모습에 예운은 당혹스러웠다.
“흥, 인간 따위 되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도 될 일은 없을 거다.
네가 내준 만추호기거부는 확실히 혼을 규합하는 신통을 지닌 듯하지만 내게는 필요치 않은 물건이니 가져가라.”
휘리릭! 미련 없이 부적을 내던지자 예운은 어이없다는 듯 그것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네 혼의 기운이 곧 꺼져버릴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되면 네 존재가 사라지는데도 개의치 않은가?”
그러자 줄곧 냉담한 표정을 일관하던 귀율의 낯에 그늘이 생겨났다.
예운은 단번에 입가를 비틀었다.
“미련은 있다. 허나 인간은 바라지 않는다. 허면 너는 새로이 생겨난 혼이 아니라 스며든 놈이구나.”
어쩐지.
“처음부터 이상하다 했다. 손대면 깨어질 듯한 불안정한 혼을 지닌 채로 주체를 가지며 온전히 판단하고 대답하는 강시는 본래 있을 수 없지.”
다른 도사들이라면 몰라도 강시술에 조예가 깊은 예운은 알 수 있다.
본래 강시술은 살아있던 자의 혼을 쓰거나 새로이 혼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주입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데 귀율의 혼은 이상하게도 불안정하고 합일되지 못해 일부러 저런 혼으로 만든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도둑놈처럼 스며든 놈이니 본래의 혼들과 하나 되지 못했겠어. 그리했다면 너 자신을….”
태앵!! 더 듣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귀율이 구환도를 날린 것이다.
줄곧 태연자약하던 귀율의 모습이 깨지자, 예운은 금강저를 꺼내 구환도를 막아내고 히죽거렸다.
“회유가 안 된다면 할 수 없지. 힘으로 굴복시키는 수밖에.”
“저도 돕지요.”
완경 선사마저 도우니 귀율의 낯이 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쯧.”
혀를 찬 귀율이 사라지고 이내 귀무 속이 들끊으며 어마어마한 수의 귀신들이 뛰쳐나왔다.
귀무 속을 헤엄치듯 귀신들 수만 마리가 꼬리를 길게 이으며 나타나 예운과 완경에게 달려들었다.
귀율은 그 틈에서 불구대천마의 허상을 등 뒤로 깨워 흉력을 일으켜 검은 창을 날리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귀곡성이 들려오고 귀무가 뭉쳐 만들어진 만재변악귀와 그 주변을 노니는 흑룡들의 모습은 가히 대단한 신통이었다.
덕분에 천망갱도는 한바탕 난리가 났고 잔뜩 날뛰는 구환도의 귀신들로 눈뜰 새도 없이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나.
“잔재주가 통할 것 같으냐!”
퍼억!
“큭!”
아무리 귀율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지선 둘을 상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예운 혼자였다면 모를 일이나 완경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속수무책.
귀율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산군을 삼킨 덕분인지 완공을 쓰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없더라도 완경은 강력한 지선이었다.
그는 기이한 권갑을 끼고 권각술을 부렸는데 중후한 덩치와는 달리 맹호처럼 날렵하고 강력해 권갑에 귀무가 닿는 족족 힘을 잃어버렸다.
쿵쿵쿵쿵!
쓰러진 귀율을 향해 완경이 바늘을 쏘아냈는데, 양 손목과 발목에 하나씩 박힌 바늘은 이내 푸른 석장으로 변해 꿈쩍도 할 수 없이 봉해 버렸다.
“크으윽!!”
한순간에 지면에 묶여버리자 귀무는 물론 불구대천마의 허상도 연기처럼 사라져 힘을 잃었다.
짜르랑.
바닥에 널브러진 구환도를 잡아든 예운은 비릿한 미소를 흘린 채 그것을 어깨에 메고 귀율을 보았다.
“네가 무슨 미련을 지니고 그런 골로 강시의 삶을 택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는 알겠다.
네 주인이 봉인 당했는데도 달아나지 않고 지선에게 덤빈 것을 보면 생전에 백산파 놈과 무슨 관계가 있다 보아도 좋겠지.”
허나 예운에게는 그 또한 아무래도 좋을 일.
그의 손에 구환도가 잡혀 있고 귀율을 손에 넣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도움 감사드립니다, 완경 선사.”
“별일도 아닌 것을 뭘. 대의를 앞두고 자잘한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그랬을 뿐이오.”
귀율을 정리하고 빨리 완공에 봉인당한 놈을 처리하자는 말이다.
사람 좋게 미소 지은 예운은 맡겨만 달라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이내 품에서 부적을 꺼내 주술을 외우고 그것을 붙이려는 순간.
귀율의 음산한 목소리가 공동 전체가 낮게 깔렸다.
[귀태멸지신(鬼胎滅至神).]그때였다.
“흠?!”
딸랑딸랑딸랑딸랑!!
예운의 손에 들린 구환도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구환도의 환이 팅! 소리를 내며 하나씩 터져나가고, 순식간에 아홉 개의 환이 터져나가자 구환도 전체가 균열이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조짐에 예운이 구환도를 내던졌다.
쩌저적! 콰앙!!
거대한 대도가 터져나가자 그 안에는 피로 이루어진 것만 같은 예리하고 얇은 도 한 자루가 붕붕 돌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푹!
그 기현상에 완경 또한 눈가를 좁혔는데, 구환도가 변한 시뻘건 도는 귀율의 등 한가운데를 찌른 것이다.
“끄아아아아악!”
이내 귀율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귀곡성이 사방 천지에 퍼졌다.
‘강시가 자살이라도 할 셈인가.’
다소 어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허나 그건 아닌 듯 강대한 사기가 검 속에서 뿜어져 온갖 귀신들이 사자후를 내뱉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원통하고 원통한 망자의 절규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완경은 안색을 찌푸렸다.
“번거롭게 됐군.”
“크흠.”
그때였다.
폭발적인 기세와 함께 완경이 설치한 석장이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져 날아가 버리고 귀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것 참….”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귀율은 자신의 몸에 꽂힌 검을 뽑아내고 머리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다 다시금 고개를 푹 떨궜는데, 등 뒤로 불구대천마의 허상이 떠오르고 폭풍 같은 흉력이 흘러 나왔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불구대천마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흉상의 머리가 셋이 되고 팔이 여섯이 되어 삼두육비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삼두육비?”
예운과 완경은 어안이 벙벙했고 치가 떨릴 정도로 살벌한 흉력에 소름이 돋았다.
“어찌 강시 따위가 삼두육비를….”
놀랍고 황당한 얼굴이었다.
“고민하고 있을 때는 아닌 듯합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구환도에 있던 혼을 저 강시년이 전부 집어삼켜 큰 힘을 내는 것 같으니까요.”
예운은 아깝다는 듯 쯧 혀를 찼는데 그 이유는 당연했다.
한 번에 저리 많은 혼을 받아들였으니 큰 힘을 낼 수는 있어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수만에 이르는 혼들을 하나로 규합하지 못한다면 귀율은 뒤섞인 혼들과 함께 파멸할 것이 다분하다.
‘강시 주제에….’
사로잡히는 것보다는 싸우다 죽는 것을 택한 것이다.
“네년의 절개가 제법이기는 하다만 결과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예운이 두껍게 말린 족자를 펼쳐 내 싸우려는 찰나.
“헛!”
돌연 완경 선사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경악성을 내질렀다.
“무슨 일입니까.”
“아, 안… 안돼!!”
뜬금없는 절규에 예운의 낯이 이지러졌다. 돌연 무엇 때문에 저리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돌연 허공이 일렁이고 그 안에서 완공 네 마리가 온몸을 비틀며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끼이익 끼이익!!
괴로운 듯한 비명을 내지르는 완공의 모습에 예운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설마!’
쩌저적!! 콰지직!
파아앙!!
완공의 호리병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시퍼런 화염이 치솟았다.
화르륵!! 천망갱노를 가득 메울 만큼 뜨겁고 환한 불꽃.
봉악청화였다.
호리병이 터져나가고 그 안에서 불꽃과 함께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하나로 합쳐졌다.
청염이 사방에 드리우고 그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붉은 눈동자와 흑포를 펄럭이며 걷는 걸음걸이가 당찬 그.
“범!!”
백산파의 장문, 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