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72)
낭선기환담-271화(272/600)
낭선기환담 – 271화
“자네들도 내가 건넨 술잔이 독으로 보이는 건가?”
꿀꺽.
사지가 덜덜 떨렸다.
영기를 방출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살기를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한데 그것만으로 태선들을 모두 압도해버리니 믿을 수가 없었다.
영압도 아니다.
단순한 살기다.
단순한 살기만으로 좌중을 압도해버리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는 촉산파뿐만 아닌, 백산파 제자들과 그의 자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쌍둥이들은 비교적 멀리서 몰래 그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산군이 등장하자마자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공포감에 사지를 바르르 떨며 땅만 쳐다봤다.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자신들을 향한 살기도 아니고 그저, 태선을 향한 살기의 여파였다.
‘죽을 것 같아….’
머리로는 이해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 리 없다.
하지만 그의 살기에 마음 깊숙이 죽음의 대한 공포가 피어나며 언제든지 살해당할 것 같았다.
두려워 눈물이 나고 실금을 흘렸다.
아버지는 가짜도 아니었고, 절대 약하지도 않았다.
살기만으로 태선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데 어찌 약하다 할 수 있겠는가.
여아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잘못을 싹싹 빌며 제발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그때였다.
어느 순간 그의 살기가 사라졌는데 슬쩍 고개를 드니 쌍둥이들 뒤에는 어느 여인이 서 있었다.
“똑바로 지켜보거라.”
“어, 어머니….”
“너희들은 저분의 핏줄을 이었다.
하늘을 쥐락펴락하게 되실 분이시니 그 피를 이은 너희들 또한 저분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 안 될 것이다.”
요호는 아이들을 일으켰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너희들의 이름은 내가 전해야 할 것 같구나.”
“겨, 경청할게요.”
“넵!”
“너희들 이름은 천유, 천우이다.”
“천유(天柳)….”
“천우(天祐).”
“유야, 우야. 너희들은 앞으로 천씨 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천씨요?”
“그래. 네 아비의 성이 천씨니까.”
“그, 그럼 아버지 존함은….”
“범, 천범(天梵)이란다.”
* * *
‘젠장…. 어쩌다 이런….’
독이라 하면 눈이 뽑힐 테고, 그렇다고 마시자니 눈앞이 캄캄했다.
치명적인 극독인데 마시면 그대로 삼도천을 건너게 될 텐데 어떻게 마실 수 있겠는가!
촉산파 도사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었다.
“촉산의 도사들이 대접에 불만이 많아 내 직접 술을 내리는데도 마시지를 않으니… 작게는 나를 욕보이고 크게는 백산을 능멸하려 하는군.”
“겨, 결단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쿵, 대장로가 털썩 무릎 꿇으며 이마를 지면에 찍었다.
그러자 다른 장로들과 뒤따르는 제자들 또한 함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허나 그럼에도 산군은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렬한 살기가 그의 몸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왔다.
“뭐가 아니란 건가. 그 대단한 촉산파가 왔다하여 친히 술잔을 내주는데도 거절하여 날 욕보이고.
더불어 나의 백산파와 제자들까지 멸시와 능멸을 일삼아 마지막에는 나의 부인까지 능욕하는 네놈들 모습인데 대체 무엇이 아니란 말이냐!!”
천둥처럼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산군의 노호성에 수풀이 휘청이고 산새가 퍼득이며 도망쳤다.
“사, 살려…!”
“왜 술을 먹지 않더냐. 내 부인이 아니라 내가 따라주어 그렇더냐?”
턱!
풍 장로의 목을 쥐어 올린 산군은 서슬퍼런 눈빛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죄송… 죄송합… 컥!!”
“네까짓 놈이 무언데 내가 있는 백산에 행패를 부리더냐. 네 깟게 뭔데 내 부인에게 그런 망발을 해! 감히!!”
쿠우웅!! 쩌저저적!!
강렬한 영압이 사방에 퍼지며 내려앉자 지면이 갈라지고 도사들의 몸이 땅과 하나 되듯 눌러졌다.
꾸드득.
그러나 단 한 명 만큼은 그의 손에 붙잡혀 있었는데 바로 백산파 안주인을 희롱한 풍 장로였다.
“네놈이 윤회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대도 네놈을 기필코 찾아내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일 것이다. 내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라.
언제고 어느 세상에서건 나와 마주친다면 넌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목을 잡아 비틀자 놈의 낯빛이 보랏빛으로 물들며 섬뜩한 소리가 비참한 비명과 함께 메아리쳤다.
손의 악력만으로 목이 분리된 풍 장로는 가을철 나뭇잎처럼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재빠르게 달아나려는 놈의 화령 또한 산군의 손에 쥐어 터져 순식간에 명을 달리했다.
눈앞에서 촉산파 장로가 죽었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극심한 공포.
그것이 뼛속 깊숙하게 침투하자 머릿속히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으, 으… 아아아악! 난 죽기 싫어!!”
그래서일까.
정신을 놓은 듯 두려움에 떨며 소리치던 장로 하나가 소매를 털었다.
그러자 소매 속에서 청빛으로 빛나는 강력한 비검이 그를 덮쳤다.
태선의 본선법패였다.
비검에 휩쌓인 기운과 공법의 정순함이 퍽 남달라 보였다.
남아 있는 촉산의 도사들은 아연실색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었다.
후우웅!!
그러나 일말의 기대는 허무하리마치 산산조각 났다.
백산파 장문은 기습이나 다름없었던 장로의 비검을 가볍게 잡아채고 부러뜨려버렸기 때문이다.
“크억!!”
자신의 본선법패가 부러지자 피를 토하며 가슴을 움켜쥔 장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저벅저벅.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발걸음 소리에 그의 심장이 요동쳤다.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 갓 태어난 새끼 사슴마냥 털썩 털썩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산군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의 멱살을 쥐어 끌어올렸다.
비정한 눈으로 놈의 사지를 반으로 찢어내려던 그때.
“멈추시오!!”
앙칼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서 녹빛의 둔광을 뿌리며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비참한 광경에 낯빛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는데, 익히 잘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촉만 대인.’
촉만은 참담한 심정으로 자신의 제자들을 바라보다 산군을 향했다.
“괜한 짓 마시오. 이들의 행태는 도를 넘었소. 나와 백산은 물론 내 아내까지 욕보였으니 그 죗값을 달게 받게 될 거요.”
경고하듯 뱉어낸 말이었으나 촉만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무릎을 꿇었다.
“괜한 짓 마시오.”
쓸데없는 짓 말라 이르자 촉만은 고개까지 조아렸다.
“무엇 때문에 이리된 것인지 정확히 모르나, 영원에 이르신 대선사가 이리 성을 내시는 것을 보면 필히 본문의 제자들이 죄를 지은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제자들의 사부라 할 수 있는 제가 대신 죗값을 달게 받을 터이니 백산파의 대선사께서는 저 하나를 죽여 그 죄를 털어내 주십시오.”
그러자 산군은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 말하면 내 못할 줄 알고?”
“하시겠지요. 기왕 죽을 거라면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아닌 절 죽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말 한 번 잘했소. 손윗사람이라면 아랫것들의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인지상정. 그대의 말대로 하지.”
산군은 잘됐다는 듯 웃으며 촉만의 목을 잡아 올렸다.
“대, 대사부님! 안 됩니다! 대선사! 저희를! 저희를 죽여주십시오! 그분은 촉산파의 기둥이십니다!! 제발!!”
“대사부님!!”
“저, 저희를 죽여주십시오!!”
촉산의 장로들과 제자들이 모두 모여 산군을 향해 머리를 박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이마에 피가나고 목청이 터져라 외쳐대니 산군의 귀가 다 따가웠다.
산군은 자신의 손에 목이 조이고 있는 촉만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의 목이 조여지고 낯빛이 시퍼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촉만은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저리하는지 눈에 훤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쯧.”
그는 촉만을 내던졌다.
털썩.
“컥, 쿨럭쿨럭!”
“대사부님!!”
촉산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촉만을 부축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산군은 그런 촉만을 보며 날카롭게 성을 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죽어가면서도 그런 같잖은 배려를 하는가?”
자신을 죽이는 것에 괴로워하지 않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배려한 것이다.
“어째서 죽이지 않으십니까.”
시퍼렇게 멍든 목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영 꼴보기가 싫다.
“죽이는 것보다 그대를 살리는 것이 더 낫다 생각 들었다. 촉만. 그대는 촉산의 기둥이라하는 대사부라 하니 그 기둥을 꺾으면 후에 촉산이 죽음을 불사하고 백산을 귀찮게 하겠지.
하니, 난 그대의 몸에 금제를 걸어 백산의 볼모로 삼기로 했다.”
“볼모!!”
“물론 거절하지 않겠지?
그리하지 않으면 이곳에 있는 제자들은 죽을 것이고 후환을 없애기 위하여 내 직접 촉산까지 떠날 채비를 하게 될 테니 말이야.”
그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촉만의 고개숙인 모습에 산군은 눈살을 찌푸리며 촉산의 제자들을 노려보다 그의 몸에 금제를 걸었다.
“향후 천 년 간, 촉산의 대사부 촉만은 백산의 볼모로서 천리 밖으로 나다니지 못할 것이다.”
천 년이라는 말에 촉산파 제자들은 다시금 통곡했으나 촉만은 묵묵히 산군의 금제를 받아들였다.
그 뒤, 산군은 촉산파 제자들을 보며 꺼지라 명하였고, 그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백산을 떠났다.
“명화.”
“예, 장문!”
“상황을 정리하고 볼모로 잡은 촉만 대인의 거처를 정해주거라.”
“알겠습니다.”
“만삼과 만호.”
“옙, 장문!”
“예!”
“오늘 일은….”
“금구령을 내리겠습니다!!”
“아니다. 오히려 퍼트려야 한다.”
“예? 퍼트린다면….”
“내가 영원에 오름을 모르고 촉산의 제자들이 백산을 능멸했다. 허나 상황은 지금과 같지. 이 이야기가 퍼져나간다면 백산의 위상은 더욱 더 높아질 테고 앞으로 감히 우리를 노릴 문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뜻대로 하겠습니다.”
지금도 많이 늦은 편이다.
영원에 올랐으니 여러 문파를 초청해 잔치를 열 생각이었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촉산이 얽힌 일이니 소문은 발이 달린 듯 삽시에 퍼져나갈 것이고, 백산의 위명 또한 드높아질 것이다.
연이 끊겼던 문파들 또한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 들 것이고, 그리 된다면 백산의 상황은 단번에 좋아진다.
“부인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날 따라오시오.”
“알겠습니다.”
잠시 뒤.
앞장서며 길을 걷던 그는 백운봉 천호각에 들어서는 순간.
“서방님!!”
몸을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화들짝 놀란 초아는 그를 부축하고는 한 번 더 놀랐다.
그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는 들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산군은 초아에게 안기며 다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무엇이 그리 미안한지 산군은 연신 미안하다 사과했다.
“그리 미안하면 정신 좀 차리고 해주세요! 이런 몸으로 그리 무리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울컥하여 목이 메여왔으나 왠지 모르게 화를 내게 됐다.
“미안하구나….”
“미안할 것 없으니 기운 차리세요!”
초아는 산군을 침소에 눕히고 내상에 좋은 영약을 입으로 씹어 그에게 먹여주었다.
이내 옷을 벗겨 식은땀을 닦아내 주고 온몸을 주무르며 자신도 침소에 누워 포근히 안아주었다.
그러자 잠시 뒤, 조금 정신을 차린 산군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서운하지 않더냐.”
“서운했어요.”
“아프진 않더냐.”
“아팠어요….”
“내가 밉지는 않더냐.”
“밉지요. 왜 이리 미운 짓만 골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데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느냐.”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 하나 달라 지지 않았다.
오직 그를 바라볼 때의 애정 어린 눈빛 그대로였다.
“그 아이들이 저를 무어라 부르시는지 아십니까.”
“무어라 부르더냐.”
“저를… 큰어머니라고 불러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그녀는 어머니라 불러주는 아이들이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미소 짓는 얼굴이 안쓰럽기도 어여쁘기도 했다.
“제 배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서방님의 자식이 곧 제 자식이겠죠. 그 아이들이 절 큰어머니라 불러주는 이상, 저도 제 아들딸이라 생각하기로 했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산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인계의 정점에 선 영원이라도 이럴 때 제 부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제 몸이 그러하여 혹시나 서방님의 대가 끊기기라도 한다면 죽어서도 저승에서도 들 낯이 없었겠지요.
어찌보면 잘 되었다 생각합니다.”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서방님은 장차 등선하여 하늘의 주인이 되실 몸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분은 그런 분이고, 전 그런 사내의 여인이니 이 정도는 감내해야지요.”
그녀의 마음이 고맙고, 또 미안하여 그저 꼭 안아주는 것 말고는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제 여인과 함께 꼬박 잠이 들었다.
그 뒤.
백산과 촉산의 이야기는 알음알음 퍼져 도계에 흘러들어갔다.
대부분의 도사들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치부했으나 누군가 촉산의 대사부인 촉만이 백산에 있다는 걸 보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후, 몇몇 문파의 장문들 중 지선과 연이 닿아있는 이들이 백산파 장문은 영원에 오른 게 맞다고 하자 상황은 판이하게 바뀌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던 전운은 눈 녹듯 사라졌고, 생사결을 벌이던 문파들은 앞 다투어 백산파를 방문해 온갖 진귀한 선물을 보내주었다.
수많은 인파가 백산으로 몰려들었고, 그 덕분에 백산 인근의 마을과 국경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도사들은 한 번이라도 백산파 장문과 면식을 트고 싶어 안달이 난 자들이었으나, 백산파 장문은 두문불출하여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백산파 장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100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