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74)
낭선기환담-273화(274/600)
낭선기환담 – 273화
웅성웅성.
백산파 장문의 이야기를 들은 많은 문파의 중역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허나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고 합리적인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두 유정이라는 도사 때문에 이런 사달이 벌어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렇다.
도계에 혼란을 야기한 것은 모두 놈 때문이 아니던가.
이 만찬에 모인 자들 중에는 백산파와의 전쟁에 가담했던 문파들 또한 많이 있었다. 유정의 간교한 세치 혀에 참전했다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는가.
지금까지도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중이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추살문을 내린 자가 누구던가. 자그마치 백산파의 장문이며, 동시에 인계의 정점인 영원대선사 천범이다.
유정을 잡아 그의 눈에 들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수천 년은 걱정 없이 탄탄대로가 될지도 모르니마 다할 리 이유가 없다.
드르륵.
의자가 뒤로 밀리고 돌연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이 포권했다.
“일월문의 장문 소소정입니다.
저 또한 백산파 장문께서 하신 말씀에 적극 찬성합니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바로 유정이라 할 수 있으니 처단하는 것이 도계에 평화를 안겨다 줄 일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백산파 장문은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유정이 일월문에 몸담았던 것을 그도 모르지 않다.
일월문 장문이라면 더더욱 그러했을 것인데 저리 솔선수범하여 나선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과 유정은 이미 아무런 연관이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언사였다.
‘일월문이라….’
그러고 보니 그와 일월문은 참 이런저런 인연이 많은 문파였다.
처음 사월제항을 얻은 곳도 그곳이었으며, 유정을 최초로 만난 곳도 그곳이다.
그 이후에 금명지령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고, 현재는 백산파를 지키는 육령비탑 또한 일월의 것이지 않았던가.
여러모로 인연이 많은 곳이다.
‘일월의 장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들었는데… 어지간히 백산파가 겁이 났나 보군.’
일월문 장문이 저리 선언하자, 다른 문파들도 앞 다투어 일어났다.
“저희 천자문도 응당….”
“화신파는 언제나 백산의 우군….”
“아미파 또한….”
도계에서도 내로라하는 문파들은 모두 한쪽 손을 들어 유정을 추살하는 데 적극 지지하노라 맹세했다.
이후 아미파는 일월문 장문에게 유정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하지 않느냐 비난했으나, 소소정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솔선하여 추살대를 조직하고 운영할 것이라 전하며 필사의 각오를 내비추어 입을 다물게 했다.
그 뒤는 단연 일사천리.
유정의 용모파기를 두루 전하였고 주로 뇌신통을 다루며 놈의 세 치 혀를 조심하라 일렀다.
그 이후에는 만찬을 함께 나누며 타 문파의 중역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백산파 장문의 부인과 자식들 또한 거대 문파의 장문들에게 인사하며 소개하는 자리도 가졌다.
천범은 몇몇 이들을 눈여겨보며 수행상의 깨달음을 전파하기도 했으며, 잘못된 공법이나 수련을 행하는 자를 꼬집어 고치도록 했다.
어느새 만찬 자리는 천범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듣고자 정숙함을 이루었고 그는 그동안의 깨달음을 조용히 읊조리며 알려주었다.
그의 깨달음에 태선 끝자락에 있던 이들은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감탄하기도 했으며, 그 아래에 있는 이들은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깊이 깨달은 자들은 돌연 기운이 크게 정순해지며 영력이 늘기도 하였다.
그의 말 한마디가 수행상의 막힌 부분을 뻥 뚫어준 것이다.
만찬에 모인 이들 대부분은 백산파 장문에게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 필히 추살문이 내려진 유정을 잡겠노라 다짐하게 되었다.
* * *
어느덧 일주일 동안 이어졌던 마차 행렬은 사라져 있었다.
만찬 속에 피어난 깨달음의 전파는 사흘 동안 이어지게 되었으나 그마저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백산파에 모였던 대부분의 도사들은 다시 자신들의 문파로 되돌아갔다.
“남아 있는 자들은 몇이 있더냐.”
“일월문 장문과 아미파 장문. 그리고 탈의 대법주가 남아 있어요.”
천유였다.
본래는 만호가 전달해야 했으나 왜인지 모르게 천유가 자주 보였는데, 아마 만호 놈에게 떼를 써서 저리 하는 모양이다.
제 아비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 어여뻤다.
‘역시 제 어미를 닮았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나 은근히 저런 귀여운 구석이 있는 여인이 바로 요호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거 같지 않아 보이지만 속은 여리디 여린 것이 바로 요호다.
요호와 천우는 백산파를 떠나 다시 십해만척의 세력을 다스리러 갔다.
그녀의 바람은 아직 궁비호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계획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천우가 말은 잘 들으니까.’
요호도 천유보다는 천우를 데려가는 편이 더 마음 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백산파와 십해만척 둘 모두의 세력을 가지게 된다면 비원을 이루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질 테니.’
어디까지나 그녀의 바람은 복수다.
자신의 일족이 멸족한 것은 모두 고선의 탈.
그리고 탈의 환망이었으니, 아직도 복수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내심 안타까웠으나 그녀의 행동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녀를 막을 자격이 없었다.
요호의 팔자가 그리된 것에는 자신의 탓 또한 있었으니까.
‘게다가 나중 일이니….’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의 친우가 있는 동안에 탈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천이 등선을 하거나 사라진 다음의 탈을 노리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궁비호가 다시 일족을 이룰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천 년에서 이천 년 정도는 흘러야 할 테니 말이다.
“음, 그들은 지금 무엇하고 있더냐.”
“아버님의 친우이신 대법주는 지금 아미파와 일월문 장문 사이에서 곤혹을 치루고 있어요.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별 관심이 없다는 어투였다.
“때 아닌 여복이 터지셨군.”
왜인지는 모르지만 장천에게 그 둘이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천 그 친구가 인물도 나쁘지 않고 심성 또한 곧으니 남편감으로는 더할 나위 없기는 하지.”
게다가 탈의 대법주이다.
좋으면 좋지 나쁠 리가 전혀 없다.
‘대법주라….’
어느새 대법주가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장천이다.
그 의미를 천범이 모를 리 없다.
“대법주를 불러올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그는 천호각 내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가 작게 손짓하자 천호각의 대문이 덜컥 열렸다.
그곳에는 그가 찾는 탈의 대법주.
장천이 있었다.
“들어오시게.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네. 유야, 차 좀 내다오.”
“네, 알겠어요.”
천유는 차를 준비하러 자리를 피하고, 장천과 천범은 마주 앉아 미소를 지었다.
“내 정신이 없어 자네를 대접하지 못했네. 미안하군.”
“아닐세, 백산파 장문인 자네가 얼마나 바쁠지 내가 모르겠는가.”
그 또한 한 문파의 수장이다. 모를 리가 없다.
“딸아이가 참 귀엽더군.”
“아직 배울 게 많은 아이네.
제 어미를 닮아 귀여운 구석이 많지만 제 능력보다 욕심이 많은 아이라 실수가 잦은 편이지. 언젠가 자네와 연이 닿는다면 잘 좀 챙겨주시게.”
“그거야 당연하지. 자네 딸이면 내게는 조카나 다름없는데 뭘.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네를 보는 것 같아 나름 친숙하다네.”
천유는 제 딸임을 떠나 객관적으로 보아도 참 어여쁘긴 했다.
“그런가.”
“후에는 필히 사내 여럿 울릴 미인이 되겠더군. 자네와 요 부인을 쏙 빼닮았으니 인물 하나는 그리 되지 않겠는가.”
가장 친한 벗이 저리 답해주니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하는 듯했다. 후에는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부터 수행상의 곤란함을 겪는 부분이나 문파를 이끄는 데 있어 고충들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런 평범한 이야기만으로 시간을 금세 지나갔고, 오랜 회포를 푸는 것만으로도 밤이 다가왔다.
차를 나누던 손에는 어느새 술잔이 들려 있었고, 덕담을 나누던 입은 어느새 푸념이 흘러나왔다.
“본래 사내대장부에게 삼처사첩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지만 내가 부인을 둘이나 데리고 살아 보니 말이야… 부인들의 배려가 없으면 할 짓이 못 되는 일이더군.”
“그러한가?”
“자네도 지금 여복인지 여난인지… 아무튼 신중하게 하게나. 부인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만큼 불행한 것도 없으니 말이야.”
“난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네. 사부님께서는 늘 여인을 멀리하고 오직 수도만을 생각하라 하셨지. 난 아직 그 말씀을 어기고 싶지 않아.”
장천다운 말이었다.
“자네가 그리 말하면 난 뭐가 되나.”
쀼루퉁하게 말하자 장천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자네는 워낙 뛰어나지 않나. 천 년도 살지 않고 지금의 경지에 오른 것이 바로 백산파 장문의 천범인데 내가 어찌 자네처럼 살 수 있겠어.”
“크흠. 사람 참.”
그리 말하면 뭐라 답할 길이 없다.
멋쩍어하며 술잔을 기울이자 장천은 옅게 미소 지었다.
“이번 자네의 행보… 추살문을 내린 것은 끝맺음을 하기 위해서임을 모르지 않네. 뛰어난 내 벗이니 내가 대법주가 된 이유를 짐작하고 있겠지.”
“환망선사가 등선한 것 말인가.”
그 밖에는 이유가 없다.
그리고.
“자네도 준비 중이겠지.”
천범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장천의 짐작대로다.
그는 등선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르기 전, 모든 미련을 끊어내고 은원을 확실히 하여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위한 일환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첫 발판은 오랜 원수.
유정을 죽이는 것이다.
“후환을 남길 이유가 없으니까.”
그 말대로다.
그에게 유정이란 후환이다.
놈을 남기고 등선한다면, 후에 백산파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않던가. 괜한 후환을 남겨둘 이유도 없고, 놈과의 악연을 끊어내고 가야 마음의 짐 또한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그런가….”
장천은 많은 상념이 떠오른 듯 창밖의 달을 멀거니 바라봤다.
‘심란한 건가.’
안 그래도 환망이 등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데 벌써 자신의 친구가 등선 준비를 하니 적적한 것이다.
“장천. 혹, 내가 떠난 뒤 내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더 말할 것 없네. 내 목숨이 다한다 해도 도울 것이니 걱정 말게.”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범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이내 쓰게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는지, 장천은 그를 위로했다.
“대도를 향하는 사내의 앞길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런 표정 짓지 말게나. 자네는 가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앞서 나아가 길을 다져 놓는 것이라 생각하시게.”
범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술잔을 채워 넣었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 또한… 위로 올라선다면 알 수 있겠지.’
그는 항상 궁금했다.
이곳에 자신이 오게 된 경위.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상계로 비승하여 신선이 되어야 했다.
“그래도 너무 성급하지는 말게. 자네에게 시간은 충분하지 않은가.”
“알고 있네.”
범의 수명은 아직 아득히 남아있다.
영원의 수명이 만 년이나 되었으니 아직 천 년도 살지 않은 그는 아주 넉넉한 삶이 남아있었다.
그러니 급하게 등선을 준비할 이유는 없었다.
‘빠르면 천 년.’
천 년 후에는 가지 않을까 싶다.
그때 즈음이면 초아는 지선이 됐을 것이고, 백산파는 더욱더 세력을 견고히 했을 것이다.
세월 앞에 문파의 흥망성쇠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니, 그 기초를 잘 닦아 놓은 것에 만족하고 있다.
그 이후의 일이 어찌되는 이제는 그의 손을 떠난 일이리라.
“음?”
그때였다.
돌연 천호각 근처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기운을 느꼈다.
범은 눈썹을 끌어 올렸는데 퍽 익숙한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서방님.”
“무슨 일이오 부인.”
초아가 나타났다.
이리 급하게 나타난 것을 보면 필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 터.
어서 말해보라 하자 초아가 서글픈 눈매로 답했다.
“응명천충의 아이들을 기억하세요?”
기억하다마다.
응명천충의 피를 이은 혼아들을 백산파 제자로 받아들였었다.
아이들의 팔자가 딱하여 이런 저런 핑계로 받아들였었는데, 갑자기 그건 왜 말하는 걸까.
범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 아이들이 어쨌는데 그러시오.”
“아마… 그 아이들 모두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