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82)
낭선기환담-281화(282/600)
낭선기환담 – 281화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추령교의 도사들을 모두 제압하고 교주의 화령을 고문하여 정보를 빼낸 귀음나찰과 천범은 취오산 정상에서 멀거니 앵로를 내려 보고 있었다.
“앵두 년에게 용뇌를 준 것은 과한 처사가 아니었나 해서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주던 너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지금은 어찌되던 한 배를 타게 됐으니 그 정도는 물어봐도 되잖아요?”
천범은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그녀를 흘기다 고개를 돌렸다.
“받은 게 있으니 돌려주는 것뿐.”
그뿐이다.
애초에 용뇌 정도는 천범에게 그리 대단한 물건이 아니다.
사월제항으로 얼마든지 숫자를 늘릴 수 있었고, 그는 이미 예전에 복용한 적도 있기에 딱히 쓸모가 없는 계륵 같은 물건이기도 했다.
앵두. 아니, 후고파 장문인 후고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연이겠으나, 그녀에게 미미하지만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 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다.
“그녀의 원수가 당신이라지만, 당신 또한 그녀의 문파에 원한을 지녔기에 멸문시킨 것 아니었습니까?”
그 또한 맞다.
동해의 삼대해족과 싸우며 피폐해진 몸으로 동국의 육대문파 중 하나인 후고파와 연이 있었다.
‘연이란 것이 악연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천범이 용뇌까지 쥐어줄 이유가 없기는 했다.
귀음나찰은 이상하게 그 부분을 집요하게 캐물었고, 천범은 그녀의 이상한 부분에 집착하는 면모에 치를 떨다가 답했다.
“시험해보고 싶어졌을 뿐이다.”
“시험이요?”
“악연이 길연(吉緣)이 될 수도 있다면, 그 고리를 끊어내는 것도 한 번쯤은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천범은 칠백 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동국의 육대 문파를 모조리 멸문시키는 것에 큰 의미는 없었다.
먼저 자신을 해하려 했던 것은 그들이고, 그로인해 되갚아 준 것뿐이다. 그러니 앵두에게 갖고 있는 감정 또한 죄책감과 같은 감정이 아니다.
다른 불과 같은 감정 또한 아니나, 일말의 동정심 정도는 있었다.
그래서 시험해 본 것이다.
‘그녀가 과연, 내가 준 기연과 함께 복수의 고리를 끊어내고 화신파로 가게 될 것인지, 아니면 그 모두를 포기하고 복수의 길을 걷게 될 것인지.’
어찌될지는 오직 하늘만이 아리라.
“그건 그렇고, 뭐 쓸 만한 정보가 있었나.”
“예, 취령교 교주놈 머릿속을 뒤집어보니 재미난 소식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귀음나찰은 현재 한 손으로 교주의 머리통을 쥐고 있었는데, 그 위에 교주와 똑닮은 화령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귀음나찰이라는 별호가 허명은 아닌지 화령 고문에는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듯 했다.
“유정 놈을 지원하는 문파는 이곳뿐만이 아니라 마도 지역 여러 곳에 나뉘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곳 모두 아버지가 쥐고 있는 곳이니 예상 못할 일은 아니지요.”
“역시 그런가.”
이곳 한곳만 있을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예운이 유정을 은밀히 도와주고 있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군.’
이렇게 된다면 일단은 그냥 말만도로 쳐들어가는 게 나아 보였다.
놈의 팔다리를 자른다 해도 이리 무수히 많다면 팔다리를 자를 동안, 머리가 너무 커져버린다.
‘차라리….’
지금 당장 말만도로 향해 놈을 저지하고 후에 선도문들과 포위하여 완전하게 놈을 잡는 게 나을 듯하다.
혹시라도 분혼으로 도망치기라도 하면 후환을 두게 되는 것이니….
“이렇게 하시는건 어떻습니까.”
귀음나찰은 교주의 화령을 집어삼키고는 부르르 몸을 떨다 말했다.
“계책이 있나.”
“일단 말만도로 가시죠.”
“그 후에는?”
말만도로 가는 건 어렵지 않다.
혹시 모를 예운의 농간이 있을까 염려되어 확실히 하려는 것이다.
“유정의 휘하에 있는 마도문을 없애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수가 이리 많다면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을 오래 끌어서 저희에게 좋을 게 하나 없기 때문이죠. 선도문의 세력이 마도 근처에 도착할 때도 되었으니 이제 슬슬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난 말만도로 가라?”
“그렇지요. 당신을 막을 사람은 마도에서도 단 한 사람뿐이니까요.”
귀강문의 지선.
예운을 말하는 것이리라.
천범은 잠시 고민했다.
귀음나찰과는 화령의 서약까지 맺은 사이이니 이제 그녀는 자신을 배신할 수 없는 몸.
그녀라면 화령을 희생해서라도 기괴한 짓을 벌일 것 같기는 하지만, 예후가 품은 예운의 원한은 한 치의 거짓도 없다.
그러나 그만큼 그녀의 머릿속에는 유정보다는 예운이 우선적이다.
그렇다 보니 천범은 그 나름대로 다르게 머리를 굴려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천범도 마땅한 전략은 없었다.
더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기도 했고, 이제는 슬슬 이 긴 싸움에 종지부를 찍기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나.’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리해야겠군.”
“어쩌시겠습니까.”
“말만도로 간다.”
* * *
한달 뒤.
북해의 얼음이 둥둥 떠다디는 바다 위에 자리잡은 섬, 말만도.
주변에는 불길한 운무들이 가득 끼어 있었고, 괴이한 악취와 함께 꺼려지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전에는 푸른 초목으로 융성하여 신성하기까지 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악귀라도 나올 듯 불길해진 그곳에 당도한 사내가 있었으니.
“구역질이 다 나오네. 이제는 정말로 완전히 마도의 길로 돌아섰군.”
바로 천범이었다.
“준비를 하고 온 것은 저희뿐만이 아니었네요. 저쪽도 긁어모을 수 있는 놈들은 죄다 긁어왔나 봅니다.”
“그렇군.”
천범의 적안이 번득이자, 운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마사의 기척이 눈에 들어왔다.
도선부터 태선까지 어마어마한 수.
단단히 준비를 한 듯 했다.
“숫자라면 우리도 밀리지 않지.”
천범이 뒤를 돌자, 그 뒤에는 여러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월, 아미, 탈, 천자, 수월, 화신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파의 도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을 가릴 정도의 대군.
그들 모두가 천범의 이름 아래 대동단결하였으니, 하늘의 군세라 칭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였다.
천범은 그들 모두를 눈에 새겨넣고자 살펴보다 미간을 좁혔다.
“네가 여기 왜 있느냐.”
그의 눈이 웬 여인을 향해 있었는데 백산파 도포를 입은 자였다.
생전 처음 보는 생김새를 지녔으나 천범의 눈은 단번에 그녀를 꿰뚫듯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천유 네가 왜 있느냐 물었다!”
그제야 안색이 파리해진 여인이 옅은 연기와 함께 본래의 어린 모습을 취하며 천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천유의 앞을 만호가 가로막고 고개를 조아렸다.
“다 소인의 잘못입니다. 아기씨의 마음에 못 이겨 제가 모셔왔습니다.
벌하려거든 부디 이 쉰내의 목을 쳐 벌하여 주시옵소서!!”
“장문, 저 또한 동의했으니 그리 화내지 마십시오. 천유는 훌륭한 도의 길을 거닐고 있는 육사입니다.
그 힘은 동년배를 월등히 뛰어넘고, 영명을 바라보고 있으니 분명 전장에서도 큰 도움이 되겠죠.”
만호는 물론, 만삼까지 그리 말하니 더 무어라 할 수 없었다.
“천유.”
“네, 넵!”
“넌 아직 어리다. 벌써부터 이런 전장에 뛰어들 필요는 없어.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다면 가거라.”
등을 돌린 채 그리 말하자 천유는 제 품에서 창을 꺼내 무장했다.
“아버님께서는 저보다 어릴 적부터 익히 백산을 터로 하여 많은 전장을 헤쳐 오셨다 들었습니다. 저 또한 그와 같은 길을 거닐어 대도를 나아갈 것이니 부디 헤아려주세요!!”
“…고집불통인 건 누굴 닮은 건지.”
“육귀를 닮은 거겠죠!”
누군가 하니 소망이었다.
그녀 또한 이번 전장에 참가하기로 한 모양이다.
지선을 눈앞에 둔 여인이고 의외로 강한 신통을 지닌 태선이다.
이번 전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네는 백산파도 아닌데 이번 전장에는 왜 낀 건가?”
“두루두루 볼일이 있어서요.”
그리 말하며 일월문 장문을 쏘아보는 걸보니 케케묵은 원한을 이번 기회에 어찌 풀어볼 생각인 모양이다.
“그리고 앞으로 백산에서 지낼 건데 저도 한 몫 거들어야 눌러 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자못 뻔뻔한 말이었으나 천범은 그 뻔뻔함이 그리 싫지 않았다.
“그럼 가볼까.”
시간 끌 필요도 없다.
단번에 정리할 것이니.
후우우웅!!
천범의 주위에서 굉장한 광풍이 휘몰아쳤다.
동시에 그의 손등이 벌어지고 수분법목에서 불천불벽의 자색 뇌전이 하늘을 불길하게 물들였다.
쿠르르릉!!
우렛소리가 사방을 적시고 그의 손에서 한줄기 벼락이 된 불천불벽이 하늘의 먹구름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아앙!!
귀가 먹먹할 정도의 우레 소리와 함께 하늘에 던져진 벼락이 다시금 수천 다발의 자색 벼락으로 변했다.
“크아아아악!!”
동시에 여러 비명소리가 곡소리처럼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 한 번의 벼락으로 인해 말만도에 자리한 마사 수천을 단번에 절명시켜버린 것이다.
그의 무시무시한 위용에 마도문은 사기를 잃었고, 선도문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가자.”
이내 천범이 한 발을 내딛었다.
그와 동시에 뿔피리가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돌격하라!!”
천범이 사라지고, 전장은 선도와 마도의 격렬한 싸움으로 번졌다.
새하얀 갑주로 무장한 선도문.
새까만 갑주를 입은 마도문.
마치 바둑의 흑돌과 백돌이 싸우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죽여라!!”
말만도 인근으로 축지한 천범을 향해 마사들 여럿이 포위했다.
“꺼져라.”
그가 손을 휘젓자 광풍이 휘몰아치고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끄아아악!!”
“처, 천범이다 저놈이 천범이야!”
달아나려 했으나 그리 보내줄 리 만무하다. 천범은 마치 마실을 나온 것마냥 유유자적 말만도로 날아가며 주변에 있는 기척을 모조리 도륙했다.
불천불벽의 뇌조와 합환호환검이 있으니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의 신식은 최대 반경 천 리까지 감지가 가능하다.
그 주변에 도사리는 마기의 기척을 모조리 도륙할 뿐이니 뒷짐 지고 있어도 저절로 길이 열렸다.
그렇게 반 시진을 날아갔을까.
말만도 끝자락에 도착한 천범은 잠시 가만히 멈춰섰다.
이내 손가락에 무형의 검기를 만들어내 튕기자 허공이 일렁이며 보이지 않는 결계가 갈라졌다.
“같잖은 수를.”
피식 비웃으며 결계 안으로 들어서자 이내 달라진 풍경이 내비쳤다.
마기가 뒤섞인 탁한 운무가 아닌, 선경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봉우리 하나와 그 위에 자리한 노인들 몇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여유롭기 그지없던 천범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잘 오셨소 천 선사.”
그들은 총 네 명으로 그도 처음 보는 지선들이었기 때문이다.
“저희끼리 뭐 그리 경계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리 와 앉으시지요.”
주변엔 온통 수풀과 꽃으로 이루어져 있어 향기가 그득했다.
그들은 봉우리 끝자락에 있었는데, 지선 하나가 석장으로 지면을 찍자 돌연 나무 기둥이 솟아나더니 절로 정자가 만들어졌다.
천범은 잠시 눈가를 좁히다 서슴없이 그들의 앞에 섰다.
“절 따르는 자들이 전장 속에서 목숨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용건이 있다면 빨리 말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 급할 것이 있습니까. 본래 하늘 아래의 생명은 모두 살고 죽어가는 것이 섭리이자 운명이지요.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허나 우리까지 그 섭리에 뒤섞여 행동할 이유는 하나 없지.”
“천 선사도 그리 급할 이유가 하나 없지 않습니까. 여유를 찾으시지요.”
말이 통하지 않을 듯 하다.
예운과 함께 나타난 것만 봐도 왜 자신의 앞을 막는지 알 듯했다.
“절 막으실 겁니까.”
“천 선사. 그대는 너무 많은 살생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인계의 정점에 선 자가 그리 혼란을 부추겨서야 아니 될 일이지요. 속세를 떠나, 이제는 등선의 길을 거니셔야 하지 않겠소.”
그러자 천범은 입을 다물었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지선과 영원의 힘은 마음만 먹으면 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힘을 지닌 규격 외의 존재들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혼란을 부추기고 다닌다면 인계가 큰 실의에 빠지게 될 터.
그러니 모두 알아서 자중하고 등선을 위하기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냈던 문파도 뒤로하고 오직 등선을 위하여 살아간다.
“그리고 예 선사에게 들었습니다.
천 선사는 완경과 팽조선사를 그 손으로 죽였다 하더군요. 물론,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하늘에 오를 자가 같은 지선을 죽였다는 점은 저희들로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
“그러니 저희는 백산파 장문 천범의 살생을 막을 명분이 있소!!”
쿵. 쿵. 쿵. 쿵.
지선들이 하나씩 들고 있던 석장이 지면을 찍자 디디고 있던 땅이 갈라지고 두툼한 나무줄기가 솟아나 천범의 몸을 구렁이처럼 조였다.
“죽이진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시오.”
“우리는 단순히 천범 자네의 살생을 막을 뿐이니!”
“내가 평생을 수행해온 목신통입니다. 제 봉인술은 환망도 극찬할 정도이니 잠시만 머리를 식히시지요.”
그 말대로 천범을 꽁꽁 묶은 목신통은 예사롭지 않았다.
매끄러운 표면은 마치 뱀과 같았고, 은근히 풍기는 목향은 몸에 힘을 풀리게 만들었다.
천범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지랄하네.”
쩌적, 쩌저저저적!!
“아, 아니!!”
콰앙!!
지선의 목신통이 쩌적 갈라지고 이내 터져나갔다.
폭연 속에서 유유히 먼지를 털어 낸 천범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개소리는 저승에 가서나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