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85)
낭선기환담-284화(285/600)
낭선기환담 – 284화
섬뜩한 파공음과 빗발치는 번쩍거림에 눈조차 뜨기 어렵다.
말만도 상공에서는 규격외의 존재들이 주먹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들이 한 번의 합을 부딪칠 때마다 일대가 크게 들썩이며 바닷물이 갈라지고 천재지변이 일어 났다.
덕분에 죽을 맛인 건 도사들이었다.
“으윽!!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너한테 걱정 받을 만큼 난 어린애가 아니야!”
운모와 천유는 한참 그 여파에 시달리며 여기저기를 방황하고 있었다.
“내 걱정할 시간에 너나… 꺄악!”
“아가씨!”
쿠과가각!!
대해가 갈라지며 터져나가듯 바닷물이 솟아오르자 천유와 운모가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휩쓸렸다.
그들뿐이 아니다.
말만도 상공에서 싸우던 마도와 선도 무리들도 다를 바 없었다.
한 번의 번쩍임.
그리고 뒤에 찾아오는 후폭풍에 휘말려 바람 앞 나뭇잎처럼 여기로 날아갔다 저기로 날려졌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으나, 지선과 영원이 뿜어내는 살기와 영압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다.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리 있는데도 이 정도이니 아마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뼈도 추스르지 못했으리라.
“괜찮느냐!!”
그때였다.
돌연 왜소한 체격의 여인이 나타나 그들을 보호했다.
오묘한 빛의 호신막을 둥글게 만들었는데 퍽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천유는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고 기쁨에 벅차 외쳤다.
“이모!!”
그녀는 어릴 적 천유를 돌봐주기도 했던 소망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저치들의 싸움에 휘말리면 허무하게 죽을지도 모르니 빠져야 할 때다.”
“응?”
“다른 장로님들과 제자들은….”
“모두 피신해있어. 실종된 자들 또한 많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너희들을 찾아서 다행이다.”
소망은 운모의 품에 안겨있는 천유를 보며 피식거렸다.
“그리도 사내 품이 좋니?”
그러자 천유는 볼이 사과처럼 붉어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냐!!”
천유는 운모의 품을 벗어나려 했으나 불천불벽을 사용한 탓에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네 아버지가 그 꼴을 보면 꽤 재미난 표정을 지으셨을 텐데 아쉽다.”
길길이 날뛸 줄 알았던 천유는 이내 심각한 낯을 지으며 물었다.
“아버지는 어떤 적이랑 싸우시는 중인 거야?”
그러자 소망의 낯 또한 찬찬히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아버지는 무척이나 강하신 분이다. 아마 천하에 또 없을 분이지.”
그러나.
“맞수라 할 적은 존재해왔고, 그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지선으로 올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듯해.
이 정도로 큰 여파가 휘몰아칠 정도로 싸우는걸 보면 네 아비도 그리 여유가 넘친다 할 수는 없겠지.”
소망의 말이 끝나자 천유는 덜컥 겁이 났다.
“아, 아버지는….”
“그래도 걱정 마.”
천유의 말을 자른 소망은 그녀를 돌아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네 아버지잖니.”
단순히 그 말뿐이었으나 천유는 왠지 모르게 안심하게 되었다.
왜 그러했는지는 모른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소망의 눈빛 탓인지 부드러운 입가 때문인지 천유는 알 길이 없었다.
* * *
“요란하게도 싸우는군.”
한편, 말만도 상공 근처에서 그들의 싸움이 닿지 않는 곳까지 피한 예운은 헛웃음을 흘리며 전황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싸움에 선도와 마도의 싸움은 흐지부지되어 소강상태가 되었다.
아니, 애초에 싸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말만도를 뒤덮을 마기와 영원의 강대한 영압의 폭풍이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중이다.
저계 도사들은 조금만 가까이가면 비행을 유지할 수 없고, 더 가까이 간다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런 와중에 하늘이 개벽하듯 커다란 굉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오니 다가가래야 다가갈 수도 없다.
“슬슬 자리를 떠볼까.”
애초에 그의 계획은 여기까지다.
승패가 어찌되건 그와는 그리 상관이 없었다.
유정이 이겨도 그만, 천범이 이겨도 그만인 상황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 둘이 싸움으로써 어느 문파라도 빈틈이 생겼다는 것이다.
“백산파 또한 마찬가지.”
너무도 강한 백산파 장문은 지선 넷이 붙어도 이기기 어려운 상대.
그런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놈을 잠잠하게 하려면 약점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함이 옳다.
“자식들도 괜찮지만, 그보다는 그가 진정으로 아끼는 것을 쥐어야겠지.”
백산파의 안주인.
현천선녀 초아를 말이다.
무서울 것 없이 날뛰는 자도 제 여인을 손에 쥐고 흔들면 어찌될까.
“애걸복걸하려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그런 백산파 장문을 자신의 발 아래에 둔다면 천하를 손에 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어찌 좋지 않을까.
천하고 나발이고 관심은 없지만 예운은 백산파 장문.
천범이 몹시도 탐났다.
“그래. 난 탐이 난 게야. 저 사내가.”
그때였다.
“어디 숨어 계시나 한참이나 찾았는데 여기 계셨군요.”
돌연 익숙한 여인네 음성이 허공에서 들려왔다.
순간 예운의 눈이 가늘어지며 묘한 미소를 띠었다.
“누군가 했더니….”
“반가우시지요? 아버님의 하나뿐인 딸 귀음나찰 예후가 왔습니다.”
예운의 표정은 한없이 차가워졌다.
“괴상한 것이랑 섞여 내 통제를 벗어나는가 싶었을 때는 나도 기뻤다.
자식의 성장을 보는 부모의 맛이란 이런 걸까하며 두근거렸지.”
예운은 그때를 생각하며 고취되는 듯했으나 이내 차게 식은 눈으로 귀음나찰을 내려다봤다.
“허나 환망에게 허무하리만치 봉인당하더군. 쓸모없는 것. 네 아비는 네게 참으로 실망했다.”
결코 제 딸을 보는 표정이 아니다.
무언가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것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런 년이 지금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건 둘 중 하나겠지. 내 목숨을 가져가려는 것이나 아니면 뭐… 네 어미를 달라는 것 정도겠지.”
“잘 아시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말은 바로 하셔야지요. 당신이 지니고 계신 것은 제 어미가 아니라 바로 제 본체이지 않습니까?”
“흥, 네깟 것은 그녀의 발끝도 못 미친다. 그나마 그녀의 일부에서 태어나 딸이라고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야.”
아니, 아니지.
“네년을 만드느라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소모한 것도 내심 아까워 진저리가 쳐질 정도다.”
예운은 이내 품에서 이빨이 빠진 도검을 꺼내들었다.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어딘가 음험한 기운의 도검이었다.
“제 발로 나타났으니 차라리 잘 됐군. 널 죽여 내 아내의 손가락을 되찾는 게 낫겠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귀음나찰은 미친 듯 광소하며 큰소리로 웃었다.
배꼽 떨어지듯 웃은 그녀는 고개를 주억였다.
“한 치도 변함이 없으셔서 참 다행입니다. 혹여나 심정의 변화가 있으셨으면 어쩔까 걱정도 했답니다?”
괜한 걱정이었다며 손사래를 친 그녀는 품에서 강시를 꺼냈다.
천범과 똑닮은 외견의 강시였다.
“그깟 걸로 지선에 오른 날 상대할 수 있으리라 믿느냐.”
“본신도 아닌 분체를 상대하는 것쯤이야 당연히 가능하지요.”
예후는 경고도 함께 덧붙였다.
“되도록 빨리 절 죽이셔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백산파 장문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요.”
* * *
범람하는 영압의 폭풍우 속.
유정과 천범은 싸우고 또 싸웠다.
때로는 주먹으로, 때로는 신통으로.
그러면 유정은 갖가지 보물로 산을 만들어 떨구고, 금빛의 벼락을 만들어내 번번이 공격을 막아냈다.
주 공법이 뇌신통이라 그런지 유정의 벼락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고, 날카로웠다.
허나 그들의 전투는 전과 달랐다.
격해진 감정으로 싸우던 용전에서와는 달리, 둘의 표정은 한없이 차분하고 심지어 감탄 또한 서려 있었다.
서로의 신통과 그 응용력.
그것을 전투로 이용하는 수단과 방법을 나누며 감탄한 것이다.
둘은 단 한마디도 나누고 있지 않았으나 입가엔 미소가 점차 번졌다.
싸운다기보다는 뭐랄까.
서로의 깨달음을 나누는 듯했다.
왜 이리 됐는지는 모른다.
처음에는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곧 서로의 공격 속에 숨어있는 깨달음과 묘리가 서로를 감탄케 했음을 인지했고,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이 지속됐는지도 모른다.
허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지속 될수록 천범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쉽구나.’
자신이 생각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말이었으나 보다 명확한 말이었다.
아쉽다.
다른 이가 들었다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을 광경이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사분오열되고 있는 중이다.
불천불벽이 벼락을 내뿜으면 유정의 금빛 벼락도 함께 비처럼 쏟아진다.
벼락들은 서로 뒤섞여 용이 승천하듯 하늘로 솟고, 낙마하듯 땅으로 꺼지는데 어찌 그렇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게 자신의 불천불벽을 저리 쉽게 막아내는 자가 인계 아래에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막 지선이 됐음에도 그의 능수능란한 신통은 한치의 거짓도 없이 천하의 굴레를 벗어났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아쉬웠다.
‘죽여야지.’
후회와 미련이 없도록.
‘죽여야지.’
자신의 오랜 원수 놈을.
“죽여야지.”
이번 생, 우리의 연이 그러하니.
죽이고 또 죽여.
그동안의 한을 풀어야지.
그리하여 부디. 다음 생에서는 오늘 죽인 횟수만큼 가까이하여 나의 벗으로 삼으리라.
‘그 옛날.’
이야기 속의 주인이었던 것처럼.
나의, 우상이었던 것처럼.
그를 대하고, 지내리라.
“그러니 끝내자.”
휘이이잉.
흐름이 바뀐 바람소리에 유정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의 앞에 자리한 천범의 외견 또한 바뀌었다.
네 장의 날개와 두 개의 뿔이 돋아나고 정갈 되지 않은 흉포한 기운이 삽시에 퍼지기 시작했다.
찌직! 쩌저적!!
천범의 곁에 자리한 공간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공간의 균열이 벌어지며, 기이하게 왜곡되어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때였다.
유정의 앞에 눈부신 빛이 나타나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찬란한 푸른 빛.
그것을 등지고 있는 자.
천범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푸른 태양이 떠올라 자리했고, 태양의 주변에는 거대한 거검들이 날개를 펼친 것 마냥 자리하여 선회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경외를 품을 정도로 신통력의 정수, 그 자체나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다.
가히 맞서기조차 두려워진다.
온몸은 떨려오고 본능이 거절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유정의 먹먹한 가슴이 들끓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자그마한 희열마저 섞여 있는 듯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나 유정의 맞수라 할 수 있지!!”
유정은 곧장 자신의 팔 한 쪽을 뽑아내 허공에 펼쳤다.
그러자 격한 마공이 펼쳐지며 그의 손이 검게 물들었다.
검게 물든 팔은 단숨에 분열하여 그의 등 뒤로 모여들었다.
등 뒤로는 여래 법상이 나타나 인자한 낯을 띠었으나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자리하지 않았다.
그곳에 유정의 팔이 붙어 자리하자 여래 법상은 단숨에 마귀 법상으로 변해 더없는 붕마의 기운이 먹구름처럼 불어나 나타났다.
척! 그러자 마귀 법상의 여러 팔들이 합장하여 불경 외우는 듯한 음울한 소리가 사방을 적시었다.
귀신의 귀곡성과 함께 먹구름 피어나듯 피어나는 불길한 붕마의 기운이 사방에 내리깔렸다.
돌연 사방에서 들려오는 불경 소리와 함께 유정의 마귀 법상의 천수관음에서 붕마기가 모여 들기 시작했다.
칠흑과도 같은 검은 붕마의 기운은 천수관음의 머리 위로 하나하나 떠올라 모여들었다.
그것은 마치 검은 태양과도 같은 크기로. 모든 걸 집어삼킬 듯한 칠흑의 태양으로 변했다.
그러자 천범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 정도는 되어야 천범의 맞수라 불릴 자격이 있지 않은가!
척.
만족스러운 웃음과 동시에 천범의 손이 그에게 뻗었다.
쿠구구구구구구!!
그리고 이내.
검은 것과 푸른 것이 만나 부딪쳐 뒤섞이며 아무것도 들리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했다.
끝없이 펼쳐진 무(無)의 공간.
그 속에 자리한 둘.
유정은 후련하게 웃었다.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
여한이 없다는 듯.
그리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금 귀가 열리기 시작할 때.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천하의 바닷물이 삽시에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천범과 끝도 없는 나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닷물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 품에서 술병을 꺼내 던졌다.
떨어진 술병은 소리 없이 가라앉아 자취를 감췄다.
그는 한참을 가만히 서서 말만도가 사라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멀거니.
오랜 기억을 더듬듯.
옛일을 떠올리듯.
그리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