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89)
낭선기환담-288화(289/600)
낭선기환담 – 288화
천년 후.
용전과 홍해의 남쪽에 청자라 불리는 땅이 있었다.
청자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남하하면 바다 인근에 퍽 커다란 섬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오조도(五條島)라는 이름을 가진 가장 큰 섬이 있었다.
“이곳이 맞나?”
“확실합니다.”
그 오조도에 한 중년인과 청년으로 보이는 뱀의 꼬리를 가진 이가 하늘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둘은 지선과 영원이었는데 오조도를 면밀히 살피며 긴가민가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볼품없는 섬이 정말 맞나?”
“들려오는 풍문으로는 이곳이 맞다 사료됩니다.”
작은 섬들과 가운데에 큰 섬이 가지처럼 이어져 있는 듯하여 오조도라 이름 붙여진 섬이었다.
허나 오조도는 영산도 하나 없는 평범한 섬으로 범인들이 사는 곳이다.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사는 이가 몇 없었고, 파도가 심하여 범인들의 유배지로 왕왕 사용되는 곳이었다.
“그러한 인적 드문 곳에 웬일인지 많은 도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저희가 들어온 소문과 같은 것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한 걸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오조도에 들어와 자리 잡은 자들은 모두 선비와 같은 모습을 하거나 선녀처럼 어여쁜 자들뿐이라 범인들은 말도 함부로 걸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힐끔거리는 범인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조용히 오도조에 찾아와 조용히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그들의 기이한 행각은 몇 년간 끊임없이 계속 되었다.
범인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도계에서는 퍽 재미난 소문이 퍼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도사들이 속속들이 오조도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었다.
“도계에 흐르는 풍문에 따르면 그분의 등선이 머지않았다 들었네.”
“그러하니 이곳으로 오지 않았겠습니까. 이곳은 영기가 짙지는 않지만 천지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 곳이고 그렇기에 공간의 형태 또한 안정적인 곳이지요. 어찌 이곳을 찾아냈는지는 몰라도 그분의 등선을 목도하는 것으로도 개안하게 될 것이니 이 기연을 놓칠 수는 없지요.”
도계에 흐르는 풍문은 그러했다.
백산파의 장문.
천범 선사의 등선 일이 다가왔고, 그 장소가 결정되었다고 말이다.
“허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 않나.”
“그렇기는 하지요.”
본래 등선이라 함은 은밀하게 치러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등선 자체도 그리 쉽사리 이루어 지는 게 아니지만, 그 위대한 행위에 누군가 훼방이라도 놓는다면 단 한치의 실수로 수천 년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는 일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백산파의 천 선사입니다. 그분이라면… 이런 짓도 가능하죠.”
“그것도 그렇지.”
그 이름값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도계에 몸담고 있는 그 누가 감히 천범의 등선을 방해할까.
목숨이 아깝지 않고서야 어디 그런 짓을 감행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곳을 둘러보니 오조도 중앙의 섬은 이미 강력한 금제가 펼쳐져 있어 다가가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지선들조차 범접하기 힘든 금제를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그분밖에는 없지요.”
“옳은 말이네. 우리 말고도 다른 지선분들도 있으신 걸 보니… 우리가 맞게 오기는 온 모양이야.”
“예, 그리고 별로 감출 생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더군요. 이곳에 몰려드는 도사들 중에서도 백산파의 복식을 한 자들이 꽤 많았으니까요.”
지난 천년.
세상은 많이도 바뀌었다.
새로운 문파가 세워지고 다시 사라지기도 했다.
몇 백 년간은 선도가 흥하였으나 마도가 흥하는 적도 있었고, 십해만척의 세가 가득해지는 해도 있었다.
허나 그러한 흥망성쇠에도 변치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백산파였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지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건만, 오직 백산파만큼은 천년의 세월에도 꿋꿋했다.
천하제일문.
그것만큼은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천 선사는 복도 많군. 2대 장문의 자리에 오른 자도 그 자질이나 품성이 뛰어남은 물론, 벌써 태선 후경을 노려보고 있다지?”
“그렇다고 하더군요.”
“허나 조금 의문이군. 천 선사에게는 아들도 있다 하던데 어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혼아에게 장문의 자리를 넘겨주었을까.”
“모르십니까?”
“자네는 뭔가 아는 모양이군.”
“천 선사에게는 딸도—”
그때였다.
“여기들 계셨나요.”
돌연 꾀꼬리처럼 기분 좋은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니, 소 선자가 아니십니까.”
이름 모를 지선 둘이 여선에게 포권하며 예를 취했는데, 그녀는 소녀와 같은 용모로 어딘가 깜찍한 구석이 있는 여인이었다.
“소 선자도 이곳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오조도에 있던 지선의 기운 중 하나가 선자였군요.”
소 선자는 방긋 웃으며 미소로 답하였고, 그녀의 등장에 지선들은 풍문이 거짓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녀는 천 선사가 동생처럼 아끼는 여인이자 지선이었으니 말이다.
소망.
그녀가 이곳에 있음이 곧.
천범이 이곳에 있다는 소리였다.
“소 선자가 이곳에 있다는 뜻은…”
“절 따라주시겠어요? 이미 다른 분들은 오조도의 금제 안에 계십니다.”
“오오, 그럼 도계의 다른 지선분들 또한….”
“이미 자리하고 계시지요. 아마 여러분들이 마지막일걸요?”
“따르겠습니다.”
도계의 대선사 천범의 등선을 목도할 수 있다면 어찌 따르지 않을까.
살아온 경험이 있는 터라 한 톨 의심을 지울 수는 없었으나, 천하일문의 대선사가 지선들로 흉계를 꾸밀 이유가 전혀 없다.
그의 힘은 천 년 전, 말만전투에서 이미 따를 자가 없다 정평난 지 오래이지 않던가.
그때 이미 신선에 닿았으나….
‘부인을 위해 등선을 미루었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지.’
도계 공적을 죽이고 나서는 제 부인들과 함께 천하 곳곳을 유랑하며 보기 드문 애정을 보였다고도 한다.
“그럼 가실까요?”
“아, 옙!”
꿀꺽.
침을 삼키며 소망의 뒤를 뒤따르자 곧이어 오조도의 거대한 금제가 그들의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발자국 내디뎠을 뿐인데 소망이 그들과 자신을 전부 축지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신통에 지선들은 속으로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평정심을 유지했다.
자신의 몸을 축지시키는 것은 누구나 할지라도 같은 급의, 특히 지선의 영향권에 침범하여 축지시키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하는 일이 아니다.
방금의 그 축지 한 번으로 생사가 오갈 수도 있었으니 소망과 함께한 지선들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곱상하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그녀의 신통력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금제는 하늘 끝에 닿았다는 지선과 영원이 보아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강력한 금제였다. 탐구심이 끓어올라 손을 대보려는 것도 잠시.
순간 강력한 화기가 금제에서 번득이려 하여 흠칫 손을 멈췄다.
“함부로 건들면 위험할걸요? 천 오라버니의 봉악청화로 한순간에 혼까지 멸할 정도로 뜨겁게 타오를지도 몰라요.”
그리 말한 소망은 비켜보라는 듯 금제 앞에 손을 가져가 입을 달싹였다.
이내 여러 알 수 없는 금빛 글자들이 형형히 떠오르고 이내 일대가 금빛 문자로 범람하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금제이기에 이런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단 말인가!’
자신들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을 정도로 난해하고 강력한 금제였다.
금제의 영향으로 공기가 출렁이며 운무가 걷히고 강렬한 파동이 뿜어지고 있으나, 신기하게도 산과 들은 평온하고 멀리 있는 범인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가히 신묘에 가까운 신통이었다.
‘이 금제를 견식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개안하는 기분이구나….’
그때였다.
“열려라 참깨!”
“…….”
처저저적.
철컥철컥 거리는 소음과 함께 돌연 허공에 균열이 생기고 금빛 글자로 이루어진 금제가 반으로 열렸다.
진귀한 광경이었으나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빙구미가 가득했다.
“그건….”
“아, 오라버니가 자기 금제는 꼭 이렇게 말하고 푸는 게 정석이라고 하셔서요. 이상한 곳에 집요하시다니까요.”
놀리기 위한 것으로 보였으나 그녀는 아직 깨닫지 못한 듯하다.
“아, 가시죠.”
둥글게 열려진 금제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장대하게 이루어진 공간 속에서 하늘 높이 솟아 오른 거대한 기둥들과 진법.
그리고 그 진법 바깥에 좌선하여 명상하고 있는 백산파 제자들이었다.
백의를 입은 백산파 제자들의 수가 만을 훌쩍 뛰어넘으니 그 광경만 해도 가히 장관이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노라면 진법 사이사이에 수많은 눈꽃이 피어난 듯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였다.
이 모두가 오로지 백산파 대선사의 등선을 위한 것이리라.
“아, 저기들 계시네요.”
제자들이 있는 자리를 지나 어느 산 중턱에 자리한 원탁에 자리한 많은 얼굴들이 엿보였다.
그들은 전부 지선이나 영원에 오른 자들이었다.
대부분 천범과 연을 맺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도 있었고, 명성이나 성품이 좋다 자자한 자도 있었다.
“탈의 대법주님이 아니십니까.”
“구면이지요? 반갑습니다.”
탈의 대법주 장천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촉산의 태사부라 불리는 녹발의 여인.
촉만도 함께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도계에 은밀하게 은거하는 지선과 영원들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래봤자 열 손가락도 채 되지 않았으나 이들만 있어도 충분히 인계를 뒤집고도 남았다.
“어린 나이에 지선에 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역시나 탈의 대법주에 오르신 분 다우십니다. 아직 연세가 이천도 채 되지 않으셨지요?”
“이천은 넘었습니다. 아마 천, 그 친구와 헷갈리셨나 봅니다.”
“아, 이런. 실언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지요.”
그렇다 해도 굉장히 빠른 성취였다.
그렇게 지선들이 서로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이 기회를 놓칠까 싶어 서로의 깨달음과 지닌 보물을 교환하기도 하며 인맥을 돈독히 쌓았다.
바깥에 잘 나오지 않고 수행에만 매달리는 이들이다 보니 이런 기회는 기연이나 다름이 없었다.
언제 또 천하에 있는 지선들이 한곳에 모일 날이 온단 말인가.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은 좀처럼 잘 생기지 않았다.
지선에 오른 자들이라면 다들 어딜 가도 전혀 고개 숙일 자들이 아니니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이들이 모두 모인 것 또한.
천범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다 천 선사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처럼 수행과 등선에만 매달리는 자들이 언제 또 이리 서로 얼굴을 볼 기회가 있을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육사분들이라면 몰라도 도사들은 수행은 빠를지언정 수명의 한계가 있기에 조급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주인공이 등장하셨네요.”
가만히 경청하던 소 선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자 바깥을 보았다.
그러자 지선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다했는데, 흐릿한 운무 속에서 두 여인과 함께 한 사내가 서슴없는 걸음걸이로 나타났다.
날카로운 적안이 인상적인 흑발의 사내가 바로 백산파의 대선사.
천범이었다.
천년의 세월이 지난 그는 이전보다 더욱 정순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마치 태산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안겨다 주기도 하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를 마주한 지선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소망이 말하기 전까지 그들은 천범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
눈앞에 자리하고 있으나 왠지 모르게 그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한 줌 기운을 느낄 수도 없는데 이상하게 태산을 마주한 듯 위축되니 이 기분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여긴 내 아내들이네. 인사하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범은 제 뒤를 따르는 여인을 차례대로 소개해 주었다.
하얀 머리를 단아하게 비녀로 묶어 올린 여인은 빙궁의 주인이라 불리는 현천선녀 초아.
그녀는 천범의 첫째 부인으로 몇 백 년 전 지선에 오른 자이다.
그리고 그 옆에 천범과 똑같은 적안을 지닌 여인은 십해만척귀에서 일귀의 자리를 넘겨받은 궁비호 요호이다.
아직은 영겁이지만 영수인 그녀이니 수천 년 후에는 영원에 들어설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다.
천범은 자신의 아내들을 모두 소개한 뒤, 원탁에 자리하여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내가 부른 지인들이 있기도 하고, 소문을 들어 알음알음 오게 된 자도 있을 것이야. 허나 자네들이 오게 된 것은 모두 나의 의지였다.”
그의 말은 그 소문 또한 자신이 일부러 퍼트린 것이라 말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럼….”
“보름 후, 정시. 등선할 것이네.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나의 등선호법을 맡기기 위한 것이야.”
등선호법!
“한 가지 물어도 되겠나.”
“묻게, 장천.”
“굳이 이리 할 필요가 없지 않나.”
그 말도 맞다.
소문을 낸 것이 본인이라면 지선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도계의 수도자들이 모이는 것을 의도했다는 뜻.
괜히 일을 번거롭게 만들지 말고 비밀리에 치르면 되지 않던가.
허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내 등선은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보았으면 하기 때문이네.”
“어찌 그런 위험을 자초하는가.”
“위험이 아닐세. 나의 날갯짓으로 새바람을 불게 하기 위함이야.”
“새바람이라니 무슨 말인가?”
잠시 침묵하던 천범은 이내 차분히 눈을 감으며 쓰게 웃어보였다.
“그건 보름 후에.”
후에 알게 될 것이니.
“우선, 술이라도 한 잔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