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90)
낭선기환담-289화(290/600)
낭선기환담 – 289화
오조도의 뿌옇게 서려있는 운무 안.
백산파 제자들이 염불을 외우듯 집중하고 있는 곳을 지나면 산 중턱의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서 이 친구야. 천 년간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겐가.”
“뭐 별 것 없었네. 여기저기를 낭선처럼 떠돌아 다녔을 뿐이지.”
계곡의 물줄기가 제멋대로 휘저으며 흘러 다니듯 그도 그러했다.
천범은 곁에 앉아 있는 초아와 요호를 바라보며 뭉뚱그려 말했다.
지난 천 년.
천범은 그리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발길 닿는 대로 나아가 눈으로 보고, 때로는 그곳에 누워 쉬는 생활을 지속했다.
간간히 초아와 요호의 수행을 도와주기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백 년. 저곳에서 백 년.”
그런 생활을 지속했을 뿐이다.
“허허, 자네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겠어 그래. 내 귓가에 들려오는 소문에는 곡공삼각주에도 들어갔었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천범은 고개를 주억였다.
“자네는 가지 말게. 혹여나 뭔가 있을까 하고 갔지만 뭐 없더군.”
곡공삼각주가 검령도 때문에 만들어진 현상은 아닐까 의심했었으나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원래 그러한 곳이었다.
저계 도사들에게는 기연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많았으나, 천범에게 필요한 보물들은 없었다.
다만 그곳에도 퍽 아름다운 공간은 있었기에 초아와 함께 그곳을 둘러보며 좋은 추억을 만들었을 뿐이다.
“산해를 두루하여 돌아다닌 것은 역시 이 오조도를 찾기 위해서였나요?”
소망의 물음이었다.
“반반이지.”
간단한 답변에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전부 고개를 끄덕거렸다.
등선에 오른다면 이제 인계.
즉, 하계에 올 일이 무엇 있을까.
그러니 인계 곳곳을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미련을 털어내는 것이다.
덤으로 오조도 같은 공간이 안정되어 있는 장소도 찾을 겸 말이다.
“본래 나는 역마살이 낀 팔자였네. 태생부터 낭선에 어울렸다고 할까.
어쨌거나 내 부인들도 좋아했고 나도 충분히 만족한 세월이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을 뿐이네.”
천범은 술잔을 채워주는 초아의 낯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천 년.
그가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는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세월이다.
허나 이제는 돌이켜 보니 그야말로 눈 깜짝할 세월처럼 느껴져 색다른 감회가 마음을 울렸다.
영원 육사.
그리고 이제는 등선에 오를 그에게 천 년이란 세월은 범인들이 겪는 10년의 세월과 크게 다르지 않아졌다.
자신은 변함이 없는데도 주변이 달라지고 바뀌는 것은 모호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것들 대부분은 범인들이 세운 나라에 대한 발전에 관한 것이었다.
세월에 따른 문명의 발전.
그것은 현대인의 삶을 알고 있는 그에게 퍽 가까이 와 닿는 부분이었다.
물론 자기들끼리 공멸하여 먼지로 사라지는 나라들도 많이 있었다.
천범은 그러한 나라를 수도 없이 보았고 수도 없이 잊어버렸다.
부인들과 낭선 생활을 하며 인연이 닿은 자들 중에서는 범인들의 왕족 또한 있었고 그들에게 인심 쓰듯 몇 가지 수행법과 신통을 알려주기도 했었지만 그들은 너무도 쉽게 사라졌다.
범인의 짧은 생을 안타깝게 여기기도 했으나 그들의 삶이 짧은 것은 자손들이 채워나갔기에 천범에게는 또 다른 깨달음을 채워주기도 했다.
“속세에서는 자네를 양청대사라 부르며 찬양하기도 한다더군.”
그러자 초아가 입가를 가리고 풋 웃음을 터트렸다.
“뭘 했기에 그리 불리게 된 건가?”
“크흠….”
뭣 모르고 까부는 범인들이 있어 호통 좀 치고 훈계를 한 일이 있었다.
그 뒤로 배움을 청하는 범인들이 몇몇 찾아오기에 어여삐 여겨 몇 가지를 알려주고 떠났더니 가르침을 받은 놈 중 하나가 대성하여 자신의 스승은 양청대사라 이야기하여 이상하게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본래 소문의 뼈대에는 살이 붙기 마련이고, 천범의 겉모습과 은연중 흘러나오는 존재감. 그리고 범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해진 놈의 스승이라는 위치 때문에 그들이 좋아할 신비로운 신선의 상으로 제격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에 와서는 천지신명보다 양청대사의 기도빨이 잘 받는다며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해를 보고 기도를 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빌어먹을 놈.’
천범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행복한 일화 중 하나였다.
“양청대사님을 몰라뵙습니다 풉.”
소망이 그를 놀리려 시동을 걸었다.
장천 놈은 그 소문은 또 어디서 듣고 와서 저리 말하는 건지 원.
“소망아.”
“예, 오라버니.”
“그 입, 다물거라.”
허나 소망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듯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소녀, 그럴 수는 없겠사옵니다.”
“다물라면 좀 다물거라.”
“양청대사님의 극진한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그럴 수 없나이다.”
빠직.
웃는 낯으로 말하던 천범의 술잔에 균열이 생겼다.
그녀와 의남매를 맺기로 한 지도 수백 년이 흘러서인지 원래 성정이 그러해서인지 자꾸 놀려먹으려 하는 게 화란과 다를 게 없다.
“이놈이 또 까부는구나.”
천범이 손가락을 튕기자 소망이 들고 있던 술잔의 술이 용오름처럼 솟아올랐다.
술은 이내 용의 형상으로 변하여 소망의 얼굴로 들이닥쳤다.
허나 그녀는 익숙한 듯 고개를 꺾어 단번에 피해내고는 소맷자락에서 부채를 꺼내 펼쳐 용을 받아냈다.
용은 새하얀 접선 안으로 들어가 먹물로 그린 듯 수놓아져 버렸다.
그 군더더기 없는 솜씨에 모여 있던 지선들은 감탄사를 터트렸고, 소망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지난 천 년간 수행이 게으르셨던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오라버니.”
어조는 나긋나긋하였으나 표정은 금세라도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아 사람 열 받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장난기가 다분하여 천범의 화를 돋구었으나 그는 의외로 여유로웠다.
“네 오라비가 누구라 생각하더냐.”
“네?”
“네 오라비는 천범이다 소망아.”
그때였다.
소망이 접선을 펼쳐 봉인해놓은 용이 돌연 꿈틀거리며 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꺄악!”
검은 먹물로 변하였던 용은 이내 부채를 찢고 나와 그야말로 한 마리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하늘 위에 긴 몸을 띄우고 두툼한 뿔과 수염을 지닌 투명한 용.
그 용의 위엄은 실제하는 것처럼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냈다.
어찌 한 잔의 술로 저런 신통을 부릴 수가 있단 말인가.
역시 명불허전.
천범은 천범이었다.
“치사하십니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습니까?”
“시작은 네가 먼저 했다.”
천범은 어깨를 으쓱였고, 소망은 어찌 이리 속이 좁냐고 비아냥거렸으나 그럴 때마다 용의 기운은 더 강해지기만 했다.
이내 하늘에서 용과 접전을 펼치 게 된 소망은 나름 선방하였으나 천범이 튕겨낸 검은 실 한 가닥에 의해 몸이 묶여 온몸이 술독에 빠진 듯 흥건히 젖게 되었다.
“허허… 술 좀 그만 마시라 했거늘.”
쯧쯧.
혀를 찬 천범은 용을 다시 한 모금 술로 변하게 하여 술잔에 받아 달빛에 비추고는 기분 좋게 마셨다.
“술 맛이 아주 좋군.”
장천과 촉만.
다른 지선들은 소리죽여 웃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었던 천범과는 썩 다른 가벼운 풍모와 누이와 투닥거리는 모습이 한결 편한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아와 요호는 못 말리겠다는 듯 눈치주고 길길이 날뛰려 하는 소망을 다독이며 데려갔다.
천범은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이곳에 모인 지선들, 또는 지인들을 불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는 사월랑의 수장이 된 금명지령 또한 있었으며, 인연이 있는 자들은 속속들이 모이고 있어 반가운 얼굴을 익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천 년이 지나 세월 앞에 사라져 버린 인연 또한 많았으나, 새롭게 이어질 인연 또한 적지 않았다.
“운모 왔느냐.”
그 중에는 운모 또한 있었다.
이제는 백산파의 2대 장문이라 불리는 운모였다.
천 년이 흘러 운모의 모습 또한 많이 바뀌었다. 청년이었던 그는 중년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으며 태선 중경의 경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여인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천유였고, 다른 한명은 피윤이라는 이름의 백산파 제자였다.
인연이라는 게 어찌 저리 알 수 없는지 둘은 장문 자리를 두고 다투며 서로 싸우기만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눈이 맞아 혼인하게 되었다.
“보기 좋구나.”
다른 놈팽이라면 몰라도 운모라면 믿음직하기에 둘의 혼례를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영겁에 한 발 거치고 있는 터라 조금의 기연과 시간만 주어진다면 금세 영겁으로 올라설 듯했다.
천우와 비교해도 극히 빠른 수행이고 수명이 많은 영수 특유의 느긋함 또한 없어 더욱 그랬다.
그 또한 천범의 애정이 있기에 저리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운모… 아니지. 이제는 장문이라 불러야겠지.”
“아, 아닙니다. 그냥 편히 운모라 불러주십시오.”
“아니지. 강산이 지엄하고 법도가 엄연한데 그럴 수야 있나.”
어깨를 두들기며 옅게 미소 지었다.
“내가 널 어찌 내 적전제자로 받아들인 것인지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냐.”
“제 피에 흐르는 혹웅(或熊) 때문이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혹웅.
고선의 사대 영족 중 하나인 혹웅족의 피를 이은 혼아가 바로 운모다.
애초에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큰 이유 중 하나는 그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그랬었다. 혹웅족은 모습을 내비추지 않기로 유명한 영족이지. 하여 난 너를 빌미로 그들과 연을 맺어 천로의 길을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혹웅족의 신물을 빌리고자 하였다.”
환망 또한 그 신물의 힘을 빌어 등선하였다고 알고 있다.
혹웅족의 신물은 신비한 힘을 담고 있어 온갖 미지가 범람하는 천로의 길을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신물이라고 들었다.
천로는 하늘로의 길.
그 길 중간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본래는 혹웅족의 신물을 얻고자 하였다.
“지금이라도 명하신다면 혹웅족을 찾아내 등선을 돕겠습니다.”
이제는 장인과 사위의 사이가 아니던가. 운모에게 천범은 사부이자, 장인어른이니 그리하지 못할 게 없다.
“됐다. 네가 네 몸속에 흐르는 그 피를 경멸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안다. 내 제자가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킬 만큼 그리 모진 놈은 아니다.”
“하지만….”
“본래라면 억지로라도 시켰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됐다.”
“없어졌다는 건….”
천범은 말없이 웃어보였다.
그는 등선을 앞두고 많은 자들을 만나며 때로는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가르침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이 지났다.
“서방님.”
천범은 오조도의 오조산 정상에 뒷짐을 지고 하늘 아래 광경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분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분이라니 누굴 말하는 게냐.”
“저를 구해준 적 있던 호리라는 분을 줄곧 찾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그의 낯에 그늘이 조금 드리웠다. 그녀의 말대로 지난 천 년간 틈틈이 호리와 홍연을 수소문 했으나 단서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금환선향 또한 몇 해 전,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으나 딱히 이렇다 할 흔적은 찾지 못했다.
그쯤 되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새기며 손을 놓아버렸다.
“그놈은 전생의 기억을 찾은 듯하니… 제 인생을 찾으러 갔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영원에 오른 호리가 어딘가에서 객사했을 리도 없으니 먼저 등선에 올랐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말고는 없지 않은가.
“원체 나처럼 목숨 줄 하나는 질긴 놈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천범은 그리 말하며 초아의 뺨에 손을 가져가며 쓰다듬었다.
“난 그보다 네가 걱정이구나.”
“어째서요?”
“하루가 닳도록 거머리처럼 들러붙던 부인이니 당연히 걱정이 되지요.”
“거머리라니 너무 하세요!”
가슴팍을 두들긴 초아의 투정을 받아낸 천범은 쓰게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토닥토닥 안아주며 등을 두들기며 나지막이 물었다.
“내가 없어도 괜찮겠느냐.”
잔잔한 호수에 나뭇잎이 내려앉아 파문이 이는 듯한 물음이었다.
그 속에 담긴 뜻을 모를 리 없는 초아는 안긴 채로 어깨를 떨었다.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허리를 꼬옥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산 너머 숨어 있는 해처럼.
그녀는 한참을 그리 있었다.
범은 그녀를 안아주며 기다렸다.
산 너머로 숨은 해는 언제이고 기다리면 다시 떠오르는 법이니.
“제가 답을 하여야 서방님의 등선이 편안하시겠지요.”
초아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애써 미소 지었다.
“이전에 서방님과 했던 대화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처음 첫날밤을 치렀던 때를 말입니다.”
“기억한다. 우화등선하여 평생가약을 맺자 하였지.”
그리운 추억이다.
초아는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해처럼 활짝 웃었다.
“저도 곧 갈 것이니 괜찮습니다.”
많은 감정이 일었다.
확신을 가지고 답하는 말이 아니다.
마음의 짐을 덜어내 주려 하는 말임을 천범은 모르지 않았다.
“그러하느냐.”
“예.”
그럼에도 그는 별말 하지 않고 초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답했다.
“그래. 꼭 따라오거라.”
떠오르는 해가 중천에 걸려 밝은 빛을 뿌렸다.
천범은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미소 지어주고는 멀거니 하늘을 보았다.
후우웅.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이내 그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천범은 하늘로 떠오르며 은은한 금빛으로 세상을 밝히기 시작했다.
천범은 조용히 두 팔을 벌렸다.
그가 뿜어내는 금광과 함께 오조도는 천 리 밖까지 별처럼 반짝이는 천지원기의 입자들이 만연했다.
휘이잉.
천범의 손짓에 오조도 근방을 가리던 운무가 삽시에 사라졌다.
운무가 걷히자 오조도의 이변에 조용히 숨어 있던 도사들이 하나둘 나타나 금빛으로 찬란한 그를 보았다.
둥! 둥! 등!
북소리가 천지를 울리고 마른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오조도에서 제자들의 법문을 외우는 소리가 바람처럼 자유로이 흘러나가기 시작한다.
등선의 때를 목도하는 도사들은 모두 맞추기라도 한 듯 감격에 겨워 땅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콰르릉 콰릉!!
천둥번개가 먹구름 사이에서 번득이고 우렛소리를 내뿜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북 소리는 더 강하게 울려 퍼졌고, 천범의 모습은 점점 거대한 금광으로 변해갔다.
그의 등에는 곧 날개가 돋아났고, 머리에는 뿔이 나타났으며 전신은 털이 돋아났다.
그의 본신의 모습.
쌍각부호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의 울음소리가 천 리 밖.
만 리 밖까지 울려 퍼지니 온 하늘이 전부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등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