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92)
낭선기환담-291화 (2부)(292/600)
낭선기환담 – 2부 1화
어지러이 펼쳐진 절경.
그 사이사이로 피어난 운무와 솟아오른 기암괴석. 그것은 마치 고드름이 땅 위로 솟아오른 듯한 진풍경이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짙은 건원해(乾原海)를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데 일조하니 상계의 하늘 밑에서 비승한 신선.
천범의 입가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는 운무로 이루어진 기이한 곳 한가운데에 있어 무어가 무엇인줄 몰랐다.
다만 인계와는 차원이 다른 선기가 느껴지는 곳이라 찾아올 곳을 마땅히 찾아왔다라고 막연히 느낄 뿐이었다.
“혹, 불편한 곳이 있으신지요.”
천범이 묘한 낯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곁에 있던 소선이 물어왔다.
그녀는 선녀와 같은 아리따운 궁장과 날개옷을 입은 자였는데, 길게 이어진 소선의 행렬을 책임지는 사하(放荷)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십수 명으로 이루어진 소선 행렬에서 천범을 맞이한 자였다.
사하 소선은 그를 맞이하러 건원해까지 오게 되었다며 천범을 가마에 태우고 건원해를 벗어나는 중이다.
“불편한 곳은 없지만… 몇 가지 궁금한 것은 있네.”
건원해라는 곳이 구름으로 이루어진 바다와 같은 곳이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이제 막 등선에 오른 천범이니 궁금한 것은 태산처럼 많았다.
“무엇이든 답하겠나이다.”
천범은 자신을 소선이라 칭하는 그들을 보며 호기심을 풀어냈다.
“소선이란 무엇인가.”
그리 묻자 사하 소선은 잠시 큰 눈망울을 끔뻑였다.
사하는 상계로 비승한 신선을 맞이하는 것은 처음이라 이곳에서는 당연한 말을 궁금해 하니 얼이 빠졌다.
허나 이내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차분하게 답을 내놓았다.
“소선(蘇仙). 되살아나다, 또는 소생하다라는 뜻의 신선이라 그리 부르게 되었다 알고 있습니다.”
“되살아나다니. 다른 뜻이 있는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의 뜻입니다.”
천범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소선이라는 존재는 영원불변하지 않다라는 말.
‘그러고 보니….’
천범의 눈이 주위를 훑었다.
자신을 데리러 온 소선의 행렬에서는 구색을 맞추기 위함인지 선두에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부채를 든 아이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으나, 소선이라는 뜻을 알고 나자 다시금 새롭게 보였다.
‘소선은 나이를 먹는다.’
성장과 노화.
즉, 생자필멸(生者必滅)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라는 뜻이다.
상계는 신이 오르는 장소다.
필멸하는 자가 상계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소선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한다는 것이 그는 놀라웠다.
“죽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그녀의 대답은 오히려 더 답답함을 안겨다 주었다.
“마치 범인과도 같군.”
그러자 사하의 아미가 움찔했다.
“…소선은 신과 신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신(兒神)입니다. 신의 핏줄을 타고났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윤회를 몸속에 담은 것이 소선입니다.”
“윤회를 몸속에 담았다는 것은….”
“저희는 수명이 다하거나 생명이 위태로워졌을 때 다시금 아이로 돌아가 삶을 다시 시작합니다.”
사하의 낯은 무덤덤했다.
허나 천범은 그 담담함 속에서 씁쓸함을 엿볼 수 있었다.
허나 천범의 궁금증은 해소됐다.
그들은 신이나 신이 아닌 존재다.
어째서 상선인 자신의 아랫사람처럼 행동하는지 알게 되었다.
‘재밌군.’
새로운 지식이다.
상계로 올라온 천범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건원해.
그리고 소선.
다음은 또 무엇이 있을지 기대됐다.
참을 필요는 없었다.
천범은 사하 소선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고 그녀는 성심성의껏 답했다.
“건원해는 태초부터 존재한 구름의 바다입니다. 상계의 그 어떤 곳도 건원해를 초석으로 삼아 쌓아 올려진 것이나 다를 바 없지요.”
그녀는 건원해에 경외를 품었고, 또 두렵다는 듯 말했다.
왜 그러냐 묻자.
“건원해는 상계에 존재한 신선들이 마지막으로 향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 무서울 것 없는 원형신선. 원선들조차 건원해로 들어가 대부분 죽어버렸으니 당연히 두렵지요.”
“그리 위험한 장소였던 건가?”
원형신선.
원선들이 누구던가.
상계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자들이 바로 원선이다.
한데 그들조차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 건원해라니….
썩 와 닿지 않았다.
‘잘 모르겠는데.’
천범의 눈이 운무로 뒤덮인 건원해를 직시했다.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운무뿐이었다.
“대도를 위한 장소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건원해는 마지막 도를 이루기 위한 장소라고 합니다.”
“마지막 도?”
“먼 옛날, 모두에게 존경 받던 수선이 건원해로 들어갔고 후에 천지가 요동치며 새로운 하늘이 열렸다고 합니다. 상계에서는 그 하늘을 대라라고 하며 그가 대라 신선이 되었다 믿고 있습니다.”
대라신선!
천범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이후, 많은 신선들이 건원해로 들어갔으나….”
하늘이 열린 적은 없다.
‘진귀한 걸 들었군.’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허나 마음이 들뜨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천범의 눈이 다시금 건원해로 향했다.
짙은 운무가 피어오르는 바다.
일렁이는 안개와 출렁이는 운무는 이전과 달리 그의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하지만 이내 흥분을 감췄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범은 소선이 아니다.
철없는 아이도 아니다.
시간은 많다.
이것 말고도 그는 모르는 것이 많다.
아직은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차례.
한 가지에만 마음을 빼앗겨 있기에는 아쉬웠다.
상계는 넓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래알만큼이나 많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재밌다. 지금은 재미를 많이 느끼고 싶었다.
“고맙군. 재미난 이야기였네.”
“별 것 아닙니다.”
사하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다시금 앞을 보았다.
허나 천범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우린 어디로 가는 겐가.”
“동쪽으로 한 달 정도 가면 수계의 상서(祥瑞)가 나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온 소선이고 상선께서는 상서의 신선이 될 것입니다.”
등선에 오르기 전, 천범은 봉에게 상계에 대해 몇 가지 들었다.
상계는 다섯 가지의 계로 나뉘어져 있는 하늘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선계는 인간이 가는 곳.
그리고 수계는 영수가 가는 곳이다. 나머지는 자신의 대도에 맞는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붕마계, 사계, 충계 등등 말이다.
이곳 말고도 여러 계가 나뉘어져 있으나 크게는 이 다섯이다.
천범은 본래 영수이니, 수계의 존재들이 그를 맞이한 것이 당연했다.
‘상서의 신선이라….’
하계에서는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백산파의 시조가 바로 천범이다.
하계에서는 이름만 대도 알 정도로 유명하고 등선 이후로 금양대사라며 떠받들어지는 자가 그다.
허나 우화등선하여 상계의 신선이 되자 그 또한 수많은 신선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생각하니 조금 씁쓸했다.
“그래, 상서는 어떤 곳인가.”
자신이 무엇이 되었든, 향할 곳이 점지되어 있는 천범은 천범이다. 발 디딘 곳이 어디든 자신의 대도를 추구하며 나아간다면 벼랑 끝이던 하늘 위이던 가릴 필요 있으랴.
상서라는 곳도 그가 거쳐야 할 소담스러운 계단일 뿐이다.
“상서는 수계의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토지가 비옥하고 꽃과 들이 만개한 곳입니다. 한적한 곳이니 상선께서도 필시 마음에 드시겠지요.”
“그런가.”
천범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쪽으로 한 달.
상계의 중심이 바로 건원해다.
그 말은 지금 천범이 있는 곳은 건원해 초입에 불과한 곳일 터다.
‘남쪽의 상서.’
수계의 남쪽은 충계와 가깝다.
시계 방향 순으로 선계, 수계, 충계, 사계, 붕마계다.
‘충계와 접점은 없나 보군.’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지 접점이랄 것까지는 없는 모양이다.
한적하다고 하는 걸 보면 그렇다.
정세를 알지 못하여 속단할 수는 없으나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흠….”
천범은 제 손목에 감겨 있는 탐화를 바라봤다.
‘충계와 가깝다면 탐화를 데리고 한 번 가볼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지금은 오룡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탐화는 충이다.
탐화에게도 충계를 한 번 보여줄 의무가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여러 곳을 둘러보는 게 좋지.’
충계는 물론, 선계도 그렇다.
선계에는 천범의 제자인 연아가 있을 터. 지금은 여의치 않으나 후에는 그곳에도 들러 연아가 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천범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사하 소선에게 물었다.
“혹, 수계에 날 제외하고 다른 신선이 비승하지는 않았나?”
“송구합니다. 수계는 넓습니다. 상서와 가까운 곳이 아니라면 저희도 자세히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런가.”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는 낯이다.
사하는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아니, 그대가 송구할 일은 아니지.”
“혹, 무엇 때문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녀의 물음에 그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뗐다.
“오랜… 벗을 찾고 있네.”
하계에서도 찾지 못했다.
금환선향에서 보았던 이후.
천범은 그녀를 줄곧 찾고 있었다.
혹 먼저 등선에 오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으나 알 길은 없다.
그날 이후, 그녀는 줄곧 천범의 가슴에 얹힌 듯 남아 있다.
“용모와 그분의 성함을 일러주신 다면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연줄이 그리 길지는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비승하신 상선이라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빙긋 웃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사하는 덥석 잡아드는 그의 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너무 흥분했군. 사과하지.”
“아닙니다.”
사하의 낯빛이 붉어졌다.
천범은 그런 그녀의 낯을 보며 눈가를 가늘게 떴다.
‘묘하군.’
그리 생각한 천범은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었다.
사하라는 소선은 참 묘했다.
왜 그런지는 그도 잘 모른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친숙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부터 느끼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천범은 사하를 처음 봤다.
말 그대로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상계다.
그녀를 어디선가 보았을 리 없다.
한데도 묘하게 친숙함이 감도니 경계심이 곤두섰다.
수계의 소선이 전부 그런가했지만 곁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선들에게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
천범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털어버렸다.
천로를 열어 이곳까지 올라오게 된 지 대략 삼백 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천로 속에서 기운이 이끄는 대로 날아올랐다.
지치지 않을 리 없다.
상선이 되어 수면의 필요성이 없어진 천범이지만 피로감을 해소시키는 것에는 잠만큼 좋은 게 없다.
‘잠깐 눈 좀 붙일까.’
긴장을 놓을 수는 없으나 소선들은 하계의 태선과 지선 사이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소선이 떼로 덤벼도 천범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천범은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한달이 흘렀다.
웅성웅성.
가마가 흔들렸다.
“무슨 일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짜증스레 물으니 사하 역시 아미를 좁히고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랫것들의 일입니다. 상선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뭔가 싶어 슬쩍 보니 행렬의 앞을 황색 도포를 펄럭이는 자들이 막아 세우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는 어린 소선이 물러나고 사하 소선이 앞으로 나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곳은 상서의 관할 내입니다. 당신이 고개를 내밀 이유는 없을 텐데요.”
조곤조곤한 어조였으나 천범은 그 안에 숨긴 화를 느꼈다.
천범의 생각대로 그 둘은 초면이 아니었다.
사하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듯 눈초리가 사나워졌고, 사내는 그녀를 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이 어찌 상서의 관할이란 말입니까. 그 누가 건원해를 자신의 관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치상으로 보면 남쪽에 위치한 상서보다는 남서쪽에 위치한 저희 용마골이 더 가까우니 저기 계신 상선 분은 저희가 모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헛소리!”
사하 소선이 격분했다.
“건원해에 닿았다는 말에 꽁지 말고 도망가 놓고 이제와 말을 바꾸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와 깨달았으니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소.”
용마골의 황색 도포 사내는 담담히 말하며 천범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런 헛소리가 통하리라 보십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수줍게 돌아가시는 걸 권고 드리죠.”
으르렁거리며 말했으나 사내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 했다.
“말이 안 통하는군. 하면 이건 어떻습니까. 저희끼리는 답이 나오지 않으니 상선께 선택하라 하심이?”
“무슨….”
용마골의 소선은 그녀를 지나치고 천범의 가마로 다가와 포권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상선. 저는 용마골을 대표하는 황씨 세가의 차남 황손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