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93)
낭선기환담-292화(293/600)
낭선기환담 – 2부 2화
천범은 무표정한 낯으로 황손을 바라봤다. 용마골은 뭐고 황씨 세가는 또 무엇인지 그는 잘 모른다.
허나 그렇다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천범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상계로 비승한 상허신선이다.
현 상황을 언뜻 보는 것만으로 대강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수계도 뭐 별 거 없군.’
흥미가 팍 식었다.
신선들 또한 씨족사회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로 인한 권력다툼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없다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이런 짓거리를 할 리가 없다.
“사씨 세가와는 달리 황씨 세가가 이끄는 용마골에 오신다면 아무것도 없는 상서에서 지내는 것보다 배는 나을 것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입만으로 떠들 생각은 없습니다.”
황손은 그리 말하며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보였다.
목함은 거북문양이 새겨져 있는 고급품으로 보였는데, 꽤 오래된 떡갈나무로 만든 듯했다.
딸칵.
목함이 열리자 그 안에는 보드라워 보이는 손수건이 들어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손수건이었다.
붉은 실로 의미모를 문양의 자수가 박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범은 한눈에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상선보(上仙寶)입니다.”
“!!”
천범은 의미를 몰랐으나 사하 소선이 경악하는 것을 보니 나름 대단한 물건인 모양이다.
“난 상계는 무지하여 아직 이 보물의 가치를 모르네. 황가의 자제께서 내게 상선보의 가치를 일러 주겠나.”
“물론입니다 상선!”
황손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와 반대로 사하의 낯빛은 먹구름이 낀 듯 그늘이 드리웠다.
“상선보는 말 그대로의 뜻입니다. 상선의 보물이란 뜻으로 상선이 자주 사용하는 보물을 일컫는 말이지요.”
뜻은 간단하다.
상선의 보물.
즉, 상선 급이 사용할 만한 힘을 지닌 보물이라는 뜻이다.
“오래된 고보이기에 이름까지는 알 수 없으나 감정한 결과 고등품의 상선보로 감정된 보물입니다. 같은 상선의 공격은 물론… 향선의 일격도 한 번쯤은 막아줄 만한 보물이지요!”
천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 대단한 보물을 내게 주겠다는 것인가?”
“물론이지요!”
황손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천범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하를 흘겨보았다.
“몇 가지 물어도 되겠나.”
“성심성의껏 답하겠습니다.”
“잠깐 자네들 하는 것을 보니 그대들은 가문에 소속된 소선이고, 나를 데려감으로써 어떠한 이득이 있기에 그리 하는 것이겠지?”
“물론입니다. 자신의 가문에 상선이 하나 늘어나는 것으로 다른 가문과의 다툼을 방지할 수 있고, 외세의 침략에서도 굳건해지니 당연히 모셔오는 것이 저희에게는 큰 이득입니다.”
“흠… 그렇겠군.”
하계가 문파를 개파하는 것으로 수도자들이 집단 구성원이 되는 식이었다면, 이곳에서는 가문이 그 축을 이루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비승 신선을 자신의 가문 신선으로 만들어 각 가문끼리의 다툼을 방지하고 외세에 방비한다라….’
천범은 재밌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물론 이것뿐만 아니라 상선의 수행에 도움이 될 조력 또한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상서의 사가와는 달리 저희 황가는 다른 상선 분들도 많으니 깨달음을 나눌 기회도 많지요.”
“호오….”
그 말인즉슨, 사하 소선이 있는 상서의 사씨 가문에는 상선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렷다.
황손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 거무죽죽해지는 사하의 낯을 힐끗이며 쉴새없이 말을 내뱉었다.
“게다가 상서는 충계와도 가까워 잦은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혹 사하 소선이 그런 사실을 말했습니까?”
“처음 듣는 소리로군.”
사하의 낯빛이 새하얗게 변했다.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황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뼉을 딱 치며 차갑게 비웃었다.
“잦은 전투로 인해 황폐화된 곳이 대부분이라 볼 것도 없지요. 그런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봤자 별다른 조력도 받지 못할 겁니다. 시시때때로 들이닥치는 선충들로 인해 대도를 이루기도 전에 놈들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수행에 방해될 것이 뻔한 곳으로 가실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황손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앞뒤가 잘 맞아떨어졌고 대화를 통해 용마골의 장점과 상서의 단점을 부각시켜 비교하고 무엇이 더 이득인지 철저히 각인시켰다.
황손과 달리 사하는 말이 없었다.
주변에 자리한 상서의 소선들 또한 낯빛이 어두워졌다.
천범은 팔짱을 끼웠다.
“그렇다는데 어찌 생각하시나.”
사하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올 게 왔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하 소선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황손이 이죽이며 대신 말했다.
“상선께서는 아직 수계의 정세를 잘 모르시니 그 점을 이용해 상서로 모셔가려 했을 겁니다. 뻔하죠. 다 망해버린 가문에 어느 신선이 입적하려 하겠습니까. 가세가 기운 가문에 있어봤자 개고생만 하게 될 텐데요.”
“다 망하다니요! 언사가 조금 심하신 듯합니다. 저희 사씨 세가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망해가는 중이었죠.”
꾸욱.
사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망해가는 건 사실인 듯 했다.
그녀는 이내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상선,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던 건은 죄송합니다. 허나 상서를 걸고 맹세컨대 거짓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가?”
“예. 상서는 선충들이 자주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소선 선에서 알아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충이 나타나는 것은 상선이 계실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 대부분이라 상선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굳이 말씀드리지 않은 이유는 상선께 드린 말을 지킬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손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비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고민하던 천범은 황손이 들고 있는 목함 속 상선보를 보았다.
“사 소선.”
“예.”
“황가는 날 위해 작은 성의를 준비했는데, 사가는 그런 것 없는가?”
“저, 저희는… 상선보와 같은 보물을 드릴 여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가문보다 상선에게 성심성의껏. 아니,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하! 모든 것을 바치다니… 혹 몸이라도 바치겠다는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 사씨 세가가 바칠 만한 것은 그것뿐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하핫!”
황손의 비아냥에도 사하의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다.
천범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곤란하군.’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황가로 가기도 뭔가가 영 껄끄럽고 그렇다고 사가로 가기도 애매했다.
솔직히 수계의 정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지금 결정을 내려서 딱히 좋을 게 없어 보인다.
‘무지하기 때문이지.’
그는 아직 수계를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할 수 없다.
황가와 사가 말고도 다른 더 좋은 가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낭선으로 떠도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가문에 소속된다는 소리는 그 가문에 속하게 된다는 소리다.
얽히게 되어 붙잡힌다는 소리.
그런 것이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신선이 되었으나 상계의 신선들이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천범은 사하 소선이 이끄는 대로 따라왔을 뿐이다.
한데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가 꼭 어느 가문이든 들어가야만 하는가?”
그리 묻자 사하와 황손이 눈을 끔뻑거리다 답했다.
“다, 당연하지요.”
“어째서 당연하지?”
천범에게는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인 듯했다.
“상선은 하계에서 비승하신 수선이십니다. 하면 당연히 초겁(初劫)을 치르셔야 하는데 낭선의 몸으로 어찌 초겁을 치르실 수 있겠습니까.”
“초겁?”
“예. 비승 수선들이 상계에 오르고 천년 후에 천겁을 치르게 됩니다. 그것을 초겁이라 하는데 혼자서의 힘으로는 견딜 수가 없는 강력한 천겁이라 비승 수선들은 대개 가문의 도움을 받아 천겁을 함께 이겨냅니다. 홀로 초겁을 받으면 백이면 백 죽게 되니까요.”
“….”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다.
“아마도 상선께서 계셨던 하계는 상계의 이야기가 적었던 모양입니다.”
“하계가 꼭 여러 개라도 되는 듯한 말투로군.”
“물론이지요. 제가 알고 있는 하계만 해도 수 개가 넘습니다.”
“…그렇군.”
몰랐던 사실이다.
“그렇다면 상계도 여러 개인가?”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아무튼 그 초겁이라는 것을 견디려면 가문의 힘이 필요하기에 낭선으로 다닐 수는 없다는 말이군.”
“그렇지요. 초겁만 한 번 견디면 그 이후의 천겁은 시기와 운에 따라 달라지기에 천운에 달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손과 사하는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모를 줄은 몰랐다는 듯 놀라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천범은 머쓱해 헛기침을 했다.
“그럼….”
황손이 은근히 물었다.
이제는 결정을 해달라는 뜻이다.
‘가문에 들어갈 수밖에 없겠군.’
어쨌거나 당금의 이야기로 가문에 들어가는 것은 필수 조건이 되었다.
초겁을 치룬 이후에야 어찌되든 상관이 없지만 그 전까지는 가문에 몸을 담고 있어야 했다.
‘천년.’
지금으로부터 천년 이후에 찾아올 초겁을 준비해야만 했다.
‘여러 조건들을 보노라면 황씨 세가로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다.’
천범은 사하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난….”
천범이 입을 뗀 순간.
웨에에에에엥!!
사방에서 벌레소리가 요동쳤다.
“헛, 선충입니다!”
“이 시기에 선충 떼라니….”
선충은 거대한 솥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딱정벌레 비슷한 모습이었다.
웽웽 떼로 날아드는 모습을 보노라면 꼭 가마솥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소선들이 웅성웅성거렸다.
황손의 눈은 화등잔만 하게 변해 주춤거렸고 사하는 귀찮은 놈들을 바라보듯 흘겨봤다.
매우 상반된 반응이었다.
황손은 선충을 두려워하는 듯 보였고 사하는 경멸하는 것 같았다.
“뭣하고 있느냐! 놈들이 온다! 태세를 정비하고 전열을 가다듬어라!”
사씨 세가의 소선 행렬은 언제 당황했냐는 듯 하늘하늘한 도포 위에 갑주를 꺼내 입고 무장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무기를 하나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모두 무투를 선호하는 듯 주먹을 쿵쿵 부딪쳤다.
소선이라도 신은 신인 걸까.
주먹을 부딪칠 때마다 강철을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캉캉 울렸다.
그것은 사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고 선충에게 곧장 달려 나갔다.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콰앙!! 그녀의 주먹이 냅다 선충에게 꽂혔다.
촤악! 단단한 각갑이 부서지고 그 속에서 주먹을 꺼내자 선충의 주홍빛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여리여리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짐승 같은 움직임이었다.
‘영수의 핏줄을 받았으니….’
짐승이 맞기는 했다.
그녀를 출두로 사씨의 소선들도 우악스럽게 선충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어서 저 벌레 놈들을 치워버려라!”
황손은 소선들 뒤에 숨어 명령했다.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겁먹은 생쥐 같은 꼴이다.
그의 명령에 황씨 세가의 소선들도 선충과 전투를 시작했다.
강체술을 주로 익힌 것인지 보물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몸으로 맞서 싸웠다.
‘신기하군.’
저리 박투로 싸울 것이라면 본신으로 돌아가 싸우는 것이 더 좋을 것인데 저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주먹에 의미모를 비늘이 조금 돋아 있는 것뿐이었다.
강체술의 영향인 듯 했다.
‘권갑인가.’
어느새 사하의 손에는 작은 권갑이 착용되어 있었다.
그녀의 권갑이 불을 뿜으며 선충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권갑에서 뿜어진 불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휘몰아쳤다.
그녀의 불꽃은 이내 하나로 둥글게 모여 눈부신 빛을 뿜었다.
“조잡하지만….”
그건 마치 작은 태양과도 같았다.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