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94)
낭선기환담-293화(294/600)
낭선기환담 – 2부 3화
몰려든 선충은 기백에 가까웠으나 사씨 세가의 활약으로 금세 정리됐다.
갑자기 나타난 선충은 부충이라는 벌레로 충계 근처에서는 흔하게 나타나는 놈이라고 한다.
번식기가 되려면 아직 한참인데도 나타나는 것이 신기하다고 소선들이 웅성거리는 걸 들었다.
그들도 의아한 듯했다.
‘선충이라도 뭐 별 거 없군.’
원옥을 지닌 것도 아니고 지성을 지니지도 않았다.
소선들도 상대할만한 선충이니 뭐가 있겠냐 싶기도 하다.
부충은 아마도 소선과 엇비슷한 느낌의 상계 생물이 아닐까 싶다.
“괜찮나.”
“못 볼 꼴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아니네.”
사하는 부충의 주홍색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상태다. 겉으로 봐도 썩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짐승처럼 주먹질하며 선충을 깨부술 때는 언제고 이리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을 보는 듯 했다.
그래도 역시 수계는 수계랄까.
이곳이 신수들의 영역이다 보니 몸 쓰는 걸 더 선호하는 모양이다.
‘근데 왜 탈형의 모습일까.’
그게 조금 의문이었다.
“사, 상선.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소선들 뒤에 숨어있던 황손이 언제 그랬냐는 듯 헐레벌떡 뛰쳐나와 안위를 걱정했다.
“황가의 소선들이 조금 다쳤더군.”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상선께서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황씨 세가의 소선들이 조금 다쳤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격하게 싸운 사가의 소선들은 한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경험의 차이로 보였다.
천범은 사가의 소선.
그 중에서도 사하 소선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자네의 신통이 대단하더군. 마치 작은 태양을 보는 듯 했네.”
“보잘 것 없는 재주일 뿐입니다.”
그녀는 겸양했으나 낯빛에 은근히 자부심이 묻어나 있었다.
“혹, 자네 가문에서 전해지는….”
“아닙니다. 제 독문공법입니다.”
“독문공법…?”
천범의 낯이 이지러졌다.
“예. 모자람이 많은 신통입니다. 조잡하기가 이를 데 없지요.”
고개 숙인 사하를 보는 천범의 낯이 조금 묘해졌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정도 공법을 독자적으로 만들다니 장차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지도 모를 재능이로군.”
“과분한 말씀입니다.”
천범은 빙긋 미소 지으며 뒷짐을 지었고 어딘가 불편한 얼굴을 한 황손이 슬쩍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그럼….”
결정을 내려달라는 소리다.
선충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다.
용마골로 갈지 상서로 갈지 이제는 결정할 때가 왔다.
천범은 흔쾌히 입을 열었다.
* * *
용마골(龍麻骨).
이름 그대로 용의 저린 뼈가 내려앉은 곳이라 전해지는 곳이었다.
하늘에서 보노라면 거대한 산맥이 용의 모습을 띠는 듯 신비로워 보였다.
그 중심에는 활기 띤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최심부에는 용마골 일대를 다스리는 황씨 세가의 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주님, 막내 공자님이 돌아오신 듯합니다.”
“음? 으음, 그러고 보니 비승 상선을 모시러 간다 했었나.”
“예.”
황씨 세가의 가주 황곤은 길게 자란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성공했다더냐?”
영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곁에 처음 보는 사내가 동행하고 있다 하니 성공하신 듯합니다.”
“오! 이것 참 축하할 일이군. 용마골에 새로운 상선이 자리잡게 됐으니 성대하게 잔치를 열어야겠어.”
뜻밖이라는 듯 놀란 황곤은 당장 하인들을 부르려 했다.
“가주님, 한데 곁에 사가의 계집 또한 함께였다고 합니다.”
“…뭐? 그 아이가 왜?”
“그것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크흠.”
황곤은 고민했다.
사가의 계집이 왜 철천지원수와도 같은 용마골에 함께 왔는지 의아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선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황씨 세가는 수계에 있는 수백 수천의 가문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은 변방의 가문 중 그나마 먹고 살 만한 위치에 있으나 황곤은 자신의 황씨 세가를 찬란한 명예로 빛나는 오대세가로 만들고픈 꿈이 있다.
‘오대세가가 되어 군림하기 위해서는 상선 하나가 아쉬울 때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일단 용마골에 왔다고 하니 주인으로서.
황씨 세가의 가주로서 극진히 환대해야 함이 마땅하다.
“나가봐야겠군.”
무슨 일인지 두 눈으로 확인함이 가장 빠르다.
황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줌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천범은 접선을 펼쳐 부채질했다.
용마골은 습기가 굉장한 곳이었다.
하계와는 달리 천지원기가 풍부해서 그런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천범과는 달리 황손은 물 만난 고기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의 얼굴이 반질반질했다.
하지만 용마골로 들어서는 황손의 표정은 얼굴과 달리 그리 좋지 못했다.
그의 뒤에는 가마에 탄 채로 부채를 부치는 상선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곁에는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상서의 계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귀찮게 됐군.’
한 시진 전.
천씨 성을 지닌 상선은 자신에게 이리 일러주었다.
‘내가 아는 것이 없어 결정을 제대로 할 수가 없으니 우선은 용마골이라는 곳으로 가 다른 이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은데 어떠한가.’
‘그 말씀은….’
‘천년이 지나 초겁을 받고나면 가문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대충 돌아가는 꼴을 보니 수계에서 낭선으로 홀로 돌아다녀서 좋을 게 없어 보이더군. 그러니 한 번 택할 때 제대로 따져보고 택해야 하겠지. 나름 신중한 성격이니 이해해주시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상선들도 초겁을 치르고 난 뒤에도 가문에 의탁하는 편이다.
수행에 필요한 선초와 관련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행에 가장 중요한 선기.
천지원기라고도 부르는 선기의 유무 때문이기도 했다.
선기가 부족한 곳에서는 선력을 쌓을 수 없으니 수행은커녕 법칙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더 좋은 가문에서 제의를 받지 않는 이상에야 눌러 앉는 편이다. 간간히 몇 가지 부탁만 들어 주면 편하게 수행할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고 낭선 짓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답이 나와 있는데 왜 저리 고민하는 것인지….’
상선보를 보고도 그저 조금 놀랄 뿐 욕심이 별로 없어 보였다.
다른 상선이었다면 눈에 불을 켜고 가지고 싶어 했을 보물이다.
비승한 수선이니 욕심이 남 다를 것인데도 그는 관심이 없었다.
알다가도 모를 신선이다.
‘하지만 이 상선만 있다면 상서를 집어삼키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그리하면 나도 형님처럼 아버님께서 무리해서라도 원결단(原結團)을 구해다 주실지 모를 일이지.’
원결단은 소선들에게는 꿈과 같은 선단 중 하나다.
원옥을 응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단이니 소생을 반복할 때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소선들은 눈에 불을 켜고라도 가지고 싶어 하는 물건이다.
소선들에게 소생은 죽음이나 다를 바가 없다. 죽음을 비껴갈 수 있는 방법은 상선이 되는 것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상서를 가지게 될 것이니, 응결에 성공한다면 형님같은 상선이 되어 네년을 기꺼이 첩실로 삼아주마.’
황손이 그런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씨 세가의 사하 소선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실 천범이 용마골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한 가닥 희망조차 저버렸다.
‘이분께서는 수계의 정세를 모른다.’
그것을 알기 위해 용마골로 온 것이다. 황손과 말다툼을 했을 때 상서보다는 용마골이 번화한 곳이라는 것을 이미 눈치챘다는 말이다.
그리 눈치가 빠른 신선이 용마골에서 몇몇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결과야 뻔할 뻔자였다.
‘망해가는 가문이라….’
틀린 소리는 아니다.
수만 년 전에는 수계의 오대세가에도 들 정도로 번창한 가문이 사씨 세가였으나 지금은 그저 몰락하여 잊혀가는 가문 중 하나일 뿐이다.
잦은 전투로 인해 사씨 세가의 가세가 기울어진 지 오래다.
지금 있는 소선들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으나 그래봤자 어차피 소선이다.
충계에서 흘러나오는 선충들 중에는 상선도 버거운 놈들이 간혹 튀어나오고는 한다.
그런 놈 하나만 튀어나와도 지금의 상서는 전멸이다. 그 때문에 몇 백 년 전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상선도 모두 죽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절박했다.
이번에 상선을 데려가지 못한다면 상서는 결국엔 선충의 기습을 막아내지 못해 그 명맥이 끊길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상선을 데려가야 했다.
‘하지만….’
그런 망해가는 가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 누가 사가에 몸담으려 하겠는가. 자신이라도 사가에 들어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반쯤은 포기했다.
자신에게는 상선에게 제시할 조건 같은 게 없다.
고개를 들어 상선을 보았다.
흑발에 금안.
‘점괘대로다.’
그녀에게는 상선을 놓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사 소선?”
“아, 네! 왜 그러십니까.”
“생각이 많나 보군.”
“죄송합니다. 용마골에 온 것이 오랜만이라….”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나?”
“예, 상서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이라… 예전에 오라버니의 손을 잡고 와본 기억이 있습니다.”
“형제가 있으셨군.”
“지금은 없습니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괜한 소릴 했군.”
“아닙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침묵을 깨고 천범이 입을 열었다.
“한데 자네의 독문공법이 꽤 대단하던데 다시 보여줄 수 있나?”
“아… 물론이지요.”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화기를 뿜어내 작은 구를 만들었다.
내부는 맹렬하게 회전하지만 외부는 더 없이 평온해보였다.
천범은 그것을 보고 확신했다.
‘태천외양신공과 흡사하다.’
조잡한 구석이 많은 화신통이다.
하지만 그 틀은 태천외양신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비슷한 공법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구성자체가 이렇게 비슷할 수는 없다.
‘그 자가 후인을 남겼을 리는 없고.’
자신에게 건네줬던 이유가 후인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천외양군이 한 말이다.
거짓은 없었을 터.
‘뭔지는 몰라도 연관이 있기는 한 거 같은데….’
독문공법이라 말하니 더 의아했다.
“어떻게 이런 신통을 만들어냈는지 알려줄 수 있나?”
자칫 무례한 질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소선이고 천범은 상선이다. 조금 무례를 범해서라도 그는 알고 싶었다.
사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뱉고는 답했다.
“사실 저도 모릅니다.”
“모르다니?”
천범의 미간이 좁혀졌다.
알려줄 수 없다도 아니고 모른다고 하니 말이 되질 않았다.
자신의 독문공법이라면서 어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천범의 심기가 불편해지니 사하 소선은 황급히 뒷말을 이었다.
“전생의 제가 남긴 것이라 저도 어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전생?”
“예, 무릇 소선들이 모두 그렇듯 저도 한 번 죽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