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96)
낭선기환담-295화(296/600)
낭선기환담 – 2부 5화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어떠하느냐. 나쁠 것 없지.
사씨 세가.
아니, 사하 소선에게 걸리는 것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그도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황가에 들어가든 사가에 들어가든 솔직히 별로 상관이 없다.
‘어딜 가도 내가 잘하면 되니까.’
화란도 있고 탐화도 있다.
아직 나서지 않고 있는 봉 또한 그와 함께 있다.
어딜 가도 헤쳐 나갈 자신이 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탁!
황곤이 다시 한번 족자를 내려치자 탁자 위로 떠오른 분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 신체의 일부로 만든 분신이니 평소의 습관과 버릇들을 모두 담았다 봐도 무방합니다. 모조품이다 보니 그리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위를 정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지요.”
쿵!!
황곤와 천범의 분신이 서로 주먹을 맞부딪쳤다.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겨루는 환상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게 박진감이 넘쳐흘렀다.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니 역시 상계의 보물은 보물이다.
‘모조품이라지만 대단하군.’
자연히 진품은 대체 어느 정도로 대단한 물건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한데 황 가주.”
“예, 천 수선.”
“내기는 공평해야 하는 법이지요. 황 가주는 무엇을 거시렵니까?”
암묵적으로 천범이 진다면 그의 가문의 신선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황곤이 졌을 경우의 일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흠….”
황곤은 잠시 고민하다 옳거니 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상선께서 자신의 앞날을 거셨으니 저도 그에 합당한 것을 걸어야 도리라 할 수 있겠죠.”
그가 꺼낸 것은 새하얀 돌이었다.
새하얗지만 오묘한 빛이 새어나오는 신비해 보이는 돌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돌이기도 했다.
‘저건….’
그가 미간을 좁혔을 때. 옆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황가의 용뇌가 아닙니까!!”
용뇌!
용뇌라면 천범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지닌 것은 진정한 용의 뇌라 하기에는 모자람이 많다.
용의 핏줄을 지닌 이무기의 용뇌라 보면 타당할 것이다.
‘진짜 용뇌라….’
그가 지닌 용뇌만 해도 지금은 필요가 없지만 하계에서는 엄청난 가치와 효용성을 지녔었다.
진짜 용뇌도 아닌 것으로 톡톡히 덕을 보았으니 두말 하면 잔소리다.
그렇다면 진짜 용의 뇌는 어떨까.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 귀한 걸 꺼내실 줄이야.”
“제가 잘 몰라 하는 소리입니다만, 용뇌가 그리 대단한 물건입니까?”
“다, 당연하지요! 각종 선단이나 보물의 제련에도 쓰임은 물론, 잘만 제련한다면 그 안에 담긴 정수도….”
탄고말이 흥분해 설명하다 황곤의 눈치를 살폈다. 안에 담긴 정수라 함은 생전에 살아있던 용의 깨달음과 경험을 말하는 것일 터.
“안에 담긴 ‘진혈’ 또한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죠.”
‘황가는 수룡의 일족이었나.’
은연중 느끼고는 있었다.
해룡과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다 느꼈는데 아마 그 때문이었던 모양.
‘수룡이라….’
좋지 않은 놈이 떠올라버렸다.
‘지란위.’
해룡족의 선조라 불리우는 놈이다.
그놈은 원천강을 훔쳐간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을 터.
아마도 수계에서 지내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경우도 간과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때 일이고.’
지금은 내기에 집중함이 좋다.
“크흠, 한… 팔백 년 전이었나. 선계와의 전쟁 중에 전사한 황가의 일족 중 하나입니다.”
“선계와의 전쟁? 상계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그런 편입니다. 각자의 영역을 침범해서라도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피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계나 상계나 그리 큰 차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 듯 했다.
천범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곤은 용뇌를 내놓으면서 아까움에 손을 떨었다.
자신의 가계 중 한 상선이 전사하여 얻게 된 용뇌이다.
용뇌는 모든 수선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만큼 대단한 물건이지만 그리 쉽게 구할 수 있지 않다.
용뇌는 말 그대로 용의 뇌.
그것이 굳어서 변한 물건이다.
한데 어찌 수량이 풍족하겠는가.
천범이 자신을 걸었으니 황곤 또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면이 서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올라온 상선에게 질 만큼 내 수행의 깊이가 낮지도 않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수선들에게 잔잔경정도로 무위를 겨루는 것은 일종의 자존심 싸움.
“수선께서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수계에서는 선술보다는 무술을 더 으뜸으로 치고 있습니다. 태어나 지금까지 무도를 달려온 저를 상대로 내기를 결정하신 것은 조금 무모하셨습니다! 먼저 상선이 된 선배로서 이 승부는 천 수선께 깊은 배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파앙!!
황곤의 분신이 장을 뻗었다. 천범은 팔을 모아 장을 막았으나 뒤로 밀리는 것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직사각형의 긴 탁자 끝까지 뒤로 밀린 천범의 분신.
황곤의 분신은 위풍당당하게 한 손을 뒷짐 진 채로 다른 손은 어서 덤비라는 듯 까딱거렸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변한 분신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니 재미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분신이 밀리는 모습을 보니 묘하게 열이 받기 시작했다.
‘딱히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답답하군.’
자신의 분신이지만 잔잔경정도 안에서 태어난 녀석이라 그런지 어떻게 조종할 수가 없었다.
분신들이 움직이는 것은 머리카락을 통한 본체의 정보를 빼서 만든 것.
본체의 무력을 복사한 거다.
‘재밌어. 재미삼아 한 비무에 불 과하지만 분신에게 자신의 버릇 등이 남아 있어서 3자의 입장에서 관찰할 수 있다.’
수행에 도움이 되는 보물이다.
오히려 직접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이 더 그렇다.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분신은 자신의 단점을 명확히 볼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버릇 등을 잔잔경정도로 보고 고칠 수도 있으니 무도를 걷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수행은 없을 것이다.
‘무도를 걷는 이들을 무선(武仙)이라 하던가.’
소선들의 전투를 보고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수계에서는 강체술을 단련하는 자가 많은 모양이었다.
황곤의 분신은 황색 도포를 휘날렸고 순식간에 천범의 앞으로 다가와 주먹을 내질렀다.
파앙!
파공음이 터짐과 동시에 고개를 젖혀 피한 천범의 뺨이 살짝 찢어졌다. 그의 주먹은 황색 용의 비늘이 촘촘하게 돋아나 있었다.
“오오, 황 가주입니다. 천 수선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역시 황씨세가의 강체는 나무랄 곳이 없군요!”
“하하, 탄 수선. 아직 대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지켜봅시다. 끝날 때까지 승부는 끝난 것이 아니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겸양 떠는 말투와는 달리 황 가주의 낯빛은 이미 승자의 그것이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듯 잘 차오른 보름달처럼 만연했다.
“황 가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지요.”
천범이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그때였다.
촤악!!
“…음?”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찢겨지는 소리였다.
“아, 아닛!!”
“호오….”
탄고말은 기겁했고, 초찬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황 가주는….
“말도 안돼!!”
경악성을 내질렀다.
반대로 천범은 조소를 머금었다.
“말이 안될 것까지야 없지. 그렇지 않습니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황곤의 분신은 팔 한 짝이 찢겨져 검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사하 소선은 황씨 세가의 손님방에서 연신 서성이고 있었다.
웬만하면 황씨 세가에 발을 디디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찌할까.’
최우선적으로는 천씨 성을 지닌 그 상선을 어떻게든 모셔가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들. 건원해라는 말에 미꾸라지처럼 뒤로 뺄 때는 언제고.”
건원해를 벗어나자마자 이렇게 상선을 낚아채려고 하는 비열한 수를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본래 비승한 상선은 수계 내부에 마련된 등선진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지만 예외는 있다.
천범처럼 수계 인근 바깥으로 멋 대로 솟아나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는 가장 가까운 가문에서 그들을 데려가는 편이다.
처음, 수궁에서 그가 나타날 것이라 언질을 받았을 때도 다른 여타 가문들과 마찰을 빚었으나 건원해라는 말에 모두들 손을 빼냈었다.
상계에서 건원해는 그만큼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경외 그 자체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건원해로 갔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들은 셀 수도 없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상선을 데려간 것이 바로 사씨 세가이다.
한데 중간에서 낚아채가려 하니 사하는 화를 감출 수가 없었다.
황손이 떠들어댄 덕분에 오히려 자신의 인상만 나빠지지 않았던가.
‘말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서성이는 사하의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다른 상선이었다면 완전히 포기했을 것이다. 황씨 세가가 저렇게까지 나온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점괘대로 금안을 지닌 상선. 은연중 풍기는 기운 또한 화신통이야.’
사씨 세가는 망조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점괘대로라면 그가 가문의 영광을 되찾아줄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지닌 게 없다면 몸으로라도… 진정성이라도 보이는 게 좋아.”
매년 선충과의 전투에서 죽고, 소생하는 소선들이 부지기수다.
어제까지 절친한 친우였던 이들이 기억을 잃고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너무도 힘겹다.
이제 그만 보고 싶었다.
드르륵.
손님방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용마골의 산맥 아래가 그녀의 눈에 훤히 비추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용마골의 소선들은 활기찼다.
상서와는 다르다.
선충의 습격에 벌벌 떠는 이들도 없고 소생하여 윤회한 탓에 어린아이로 넘쳐나지도 않다.
아이들의 눈에는 총기가 엿보였고 낯빛에는 생기가 엿보였다.
사하는 그것이 부러웠다.
눈을 지그시 감은 그녀는 이내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때렸다.
짝!
“상선께 가자.”
구미가 당길 조건을 제시할 수는 없으나 간곡히 청한다면 마음이란 것은 형체가 없으니 어찌 변할지 모르는 것 아니던가.
“그렇게 하자.”
그때였다.
“뭘 그렇게 하자는 것이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사하의 눈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또 무슨 일입니까.”
황손이었다.
그는 사하의 물음에도 난간에 서서 용마골의 전경을 훑어 보았다.
“상서와는 다른 곳이지.”
“예의를 지켜주시지요.”
“우리도 어릴 적에는 꽤 친했었는데 말이야… 기억나지 않나?”
“전 모르는 일입니다.”
사하는 담담히 답했다.
이전의 자신은 황손과 사이가 좋았다고 한 적도 있으나 그것은 코흘리개 어렸을 적의 일이라 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현재.
지금을 살고 있는 자신이다.
담담한 그녀와는 반대로 황손은 아련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소선의 팔자가 그렇지. 모습은 그대로여도 기억을 잃어버리니까… 참 얄궂은 삶이지 않나.”
“그게 상계에서 태어난 자들이 받는 하늘의 상이자 벌일 뿐입니다.”
“그대는 그 벌을 더 많이 받았군.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었나 봐?”
이죽거리는 황손의 어투에 사하의 심기가 대번에 사나워졌다.
“말조심하세요, 황손. 난 사씨 세가의 가주를 대리하고 있습니다. 황가의 막내공자가 함부로 할 수 있는 평범한 소선이 아닙니다.”
으르렁거리며 경고하자 황손은 두 손을 하늘 위로 들며 능청을 떨었다.
“이거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가주 대리. 이리 보니 어릴 적에 가주 대리를 보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타고난 자질이 남달라 어릴 적부터 누구보다 앞장서서 무도를 나아가고 선충을 상대하여 웬만한 사내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은 게 바로 사하. 바로 지금의 가주 대리이지 않습니까.”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아미를 좁히며 되묻자 황손이 입가가 비틀렸다.
“그런 자질을 지니고도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어 상선이 되지 못한 처지인 가주 대리가 너무도 안타까워 드리는 말씀입니다. 누군들 알았겠습니까? 사씨 세가의 마지막 희망이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 원결단을 먹고도 상선이 되지 못해 가문의 장로들 실망이 이만저만이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사하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움켜쥔 주먹에서 핏물이 베어 나와 투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찾아왔냐 물었던가요? 그저 옛 인연이 생각나 얼굴 한번 보러 왔습니다. 이런, 몸이 많이 안 좋으신 듯하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가주 대리.
그리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황손이 사라진 자리를 죽일 듯 노려보던 사하는 입술을 강하게 베어물어 핏물이 흘렀다.
“그래, 그 장애를 고치기 위해서라도 나는 상선이 필요하다. 아니, 고치고 말 것이야!”
사하는 소매로 피를 닦고는 그가 있을 용채봉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