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
낭선기환담-2화(3/600)
낭선기환담 – 2화
언골마을.
엉덩이 같은 거대한 계곡이 있는 마을이라 엉덩마을에서 세월이 지나 언골마을이 된 적당한 마을이었다.
그곳에 범상치 않은 범 한 마리와, 그 범을 타고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백발의 꼬마가 유유히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털 빠지니 그만 잡아 당겨라!]산길이 험한 편이다.
하지만 고사리 같은 손이 뭐 이리 힘이 센 건지. 귀가 다 아플 지경이다.
“핫! 죄송해요!”
아이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황급히 사과하며 와락 목을 감싸 안는다.
[껴안지 마!]괜히 짜증이 났다.
“힝…. 그럼 떨어질 것 같은데….”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했다.
[내려라]“넷!”
의외로 말은 잘 듣는군.
영차영차 하며 산군의 몸에서 내려온 초아는 입안에 털이 들어갔는지 ‘풉푸웃!’ 입을 털며 연신 쓸어내렸다.
역시 마음에 안 드는군.
그러나 이마저도 이제는 끝이다. 만남은 짧고 헤어짐은 길다지만 산군은 둘 다 짧은 게 제일 좋아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고 더러웠다. 다시는 보지 말자꾸나.]백혈귀수와 어울려서 좋을 게 없다.
평생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다.
산삼 몇 뿌리를 건넸으니 그걸 팔거나 적당한 집에 주고 키워달라고 하면 키워주겠지.
산군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이런 꼬맹이를 맡아 키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자신은 백산의 산군.
마을 놈들이 곁눈질로만 봐도 기겁을 하고 오줌을 지릴 풍채를 가진 범 중의 범.
아이와 함께 있어봐야 좋을 게 없다.
그리 생각해 뒤를 돌자.
“앗! 서방님 어디가셔요!”
콱!
헐레벌떡 뛰어온 아이는 산군의 꼬리를 꽉 잡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동물의 꼬리를 잡는 것은 아주아주 못된 행동이다. 마음 같아서는 볼기짝을 때려주고 싶지만 그보다는 도망가는 게 먼저라 생각한다.
[나는 범이다. 마을 놈들이 날 보면 지레 겁을 집어먹고 혼비백산하며, 마을은 난리가 날 거다. 그러니 지금 가는 게 좋아.]“그, 그건 그렇지만! 색시를 두고 어딜 가시게요!”
[색시 아니다 임마.]색시는 얼어죽을.
“초야를 치뤘으니 초아는 서방님 색시에요!”
[넌 내 색시가 아냐! 애초에 범과 인간이 어떻게 혼인을 맺느냐! 그리고 자꾸 초야초야 거리는데 네 이름이랑 비슷해서 그러는 거야 뭐야! 초야에 ‘초’자도 모르는 것이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그래도! 초아는 산군님께 시집갔으니까 채, 책임을 지셔야 해요!”
이 자식이 누구 코를 꿸려고!
그리고 책임은 뭔 놈의 책임일까! 뭘하기라도 했다면 이처럼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난 그리 한가한 범이 아니다!]백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꾸 기어오르는 놈들도 밟아줘야 하는 바쁜 몸이다.
[그러니 이거 놔!]“아, 안돼요! 초아도 데려가세요!”
[이 자식이! 내가 산삼도 주지 않았더냐! 그거 가지고 잘 먹고 잘 살란 말이다!]이것이 은혜도 모르고!
그 산삼 몇 뿌리면 몇 년은 일 안 해도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한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이리 떼를 쓰다니.
“싫어요! 서방님 아니면 이깟 풀뿌리 필요없어요!”
손에 들고 있던 산삼을 바닥에 홱! 던져버리고 꼬리를 더 단단히 잡았다.
울먹울먹 하면서도 손아귀 힘은 뭐 이리 센지 역시 예삿 놈이 아니었다.
[…지아비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구나.]뜬금없이 너그러운 음성이 흘러 나오자 초아는 볼을 붉혔다.
“아니 또, 막 그렇지는….”
갑작스런 칭찬에 초아가 몸을 베베 꼬았다. 하지만 산군은 그 틈을 타 꼬리를 빼냈다.
“앗!! 너무해요!”
[지아비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만, 난 네 지아비가 아니다!]산군다운 백산의 모습은 아니었다.
어린애를 속이고는 의기양양한 꼴이 꼴값이었다.
“아 몰라! 초아 책임져!”
진짜 백혈귀수 맞는지 의심이 갔다.
피 뿌리는 귀신은 어디가고 이런 똥고집 꼬맹이가 있는 건지.
“여기서 도망가셔도 초아는 천호군에 혼자 오를 것이에요! 이리 두고 가셔도 소용없어요! 초야까지 치룬 색시를 버리면 천벌을 받을 것이에요!”
그 말이 맞다.
아무리 초아가 어리다지만 그녀는 백혈귀수의 피를 가진 몸.
남들보다 뛰어난 육체 능력은 백산의 정상을 보다 쉬이 오르게 해 줄 것이다.
“그, 그리고! 제 뱃속에는 이미….”
초아는 자신의 아랫배를 매만지며 눈을 반짝였다. 그러자 산군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얼이 빠진 듯 초아의 배를 바라봤다.
그때!
초아가 다시금 산군의 꼬리를 붙잡았다. 여간 영악한 꼬맹이가 아닐 수 없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꼬리 좀 놓아 보거라.]“시러여! 놓으면 서방님 초아 버리고 갈꼬자나!”
이년이 독심술을 익혔나….
[…크흠. 그러면 그… 마을에 가서 산삼이라도 팔아서 오너라.]“팔아?”
어째 말이 점점 짧아졌다.
[…그래. 혼수 하나 해오지 않는 색시와 어찌 같이 산단 말이냐. 그 산삼을 팔아서 뭐… 네 입을 옷이나 먹을 식량과 바꿔오너라.]“혼수!”
들어본 적 있는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뭘 상상했는지 뻔히 보였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멍청하게 웃는 꼴을 보니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산군은 제 말주변에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 마을에 가서 혼수를 해 오거라. 그래야 이 산군님 체면이 세워질 것 아니냐.]“응! 혼수 할게요! 저, 저도 참. 그런 당연한 걸 잊고 있었지 뭐에요.”
좋아, 좋아.
착한 아이구나.
[사람들이 날 보면 놀랄 터이니 이 근처에서 기다리마. 그러니 후딱 다녀 오거라.]“다녀올게! 어디가면 안돼요!”
초아는 바로 꼬리를 놓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산삼 세 뿌리를 품에 꼬옥 쥐고 팔을 흔들며 마을로 달려가다 철푸덕 넘어졌다.
“흐냑!”
어이구.
“…아팡.”
그래도 울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치맛자락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는 다시 팔을 흔들며 마을로 달려갔다.
[크흠….]뭔가 나쁜짓을 한 것처럼 마음이 좋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다 그러한 것을.
[원래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속은 놈이 잘못한 세상이고 멍청하면 당하는 세상이야. 게다가 생각해보면 나도 피해자라고? 가만히 있다가 꼬맹이한테 정조를 빼앗기게 생겼는데 안 그래?]그렇다.
산군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에게 인생경험을 시켜준 것이다.
세상은 험하고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것만 해도 초아는 값진 경험을 한 것일 테다. 게다가 산삼 세 뿌리면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을 테니 알아서 잘 살겠지. 애초에 백혈귀수의 운명을 지닌 아이니 혼자서도 잘만 살 거다.
그렇게 자위하자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크하하하! 집에 가서 낮잠이나 한잠 때려야지!]산군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백산으로 올라갔다.
* * *
같은 시각.
초아는 품에 안은 산삼뿌리를 들고 마을로 들어섰다.
목책도 없고 긴장감도 없는 마을이었기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초아는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바삐 일하고 있는 아낙네 하나의 치맛자락을 잡고 물었다.
“이거 어디다 팔아요?”
“잉? 엄마 깜짝이야!”
백발 벽안.
순간 귀신이 튀어나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나 원, 뭐 이런 귀신같은 것이… 이게 뭐야? 도라지…는 아니고. 뭐지? 애가 산삼을 들고 다닐 리는 없고, 이게 뭐니?”
산삼 같이 보이는데 코 묻은 꼬맹이가 그 귀한 걸 들고 다닐 리 없으니 도통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애초에 약초꾼이나 의원 아닌 일반인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아낙네가 도통 모르겠단 표정을 짓자 초아가 주먹을 허리춤에 올리고 당당히 말했다.
“산삼이야!”
“산삼? 정말?”
듣고 보니 묘하게 영험한 거 같기도 하고, 사람 같은 뿌리에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코끝이 찡하면서 상큼한 약향이 도는 것 같기도 하다.
산삼이라면 몇 십 년만 되어도 금자 한 냥은 될 테니 몇 년은 놀고먹어도 좋을 귀한 것이었다.
‘이런 꼬맹이가 설마 그런 귀한 걸 들고 다닐라고….’
어디 산삼이랑 비슷한 풀뿌리를 캐고는 착각하는 거겠지. 아낙네는 손에 쥐었던 산삼을 다시 초아에게 돌려주며 건너편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우리 마을에 있는 유일한 약방이니 저기 가서 물어보렴.”
“웅! 거마워!”
아낙네는 백발 벽안의 꼬마를 보며 참 묘하다 싶어 한참을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제 할 일을 했다.
외양이 비상하여 엮이고 싶은 마음이 일절 없었다.
약방으로 들어선 초아는 코끝을 때리는 약초 냄새에 인상을 구겼다.
“우엑.”
여러 약초들이 모여있고 탕약을 달이기도 하여 진한 약 냄새에 코 끝을 부여잡은 초아가 근처에서 탕약에 부채질을 하며 다리고 있는 노인 하나를 발견해 도도도 달려갔다.
“할부지, 이거 팔러왔어요!”
면식도 없는 꼬마가 갑자기 말을 걸며 친한 척 말을 걸자 노인의 주름이 깊게 파였다.
“네년은 누군데…허억!”
뭐라 한마디 해주려는 찰나.
노인은 순간 귀신이 찾아온 줄 알고 심장이 멎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녀가 건넨 산삼 세 뿌리에 노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걸 어디서 구했더냐!”
“서방님이 줬어!”
히죽히죽 웃으며 말하는 소녀의 모습은 조금 꼬질꼬질 했으나 입고 있는 옷은 새것으로 보이고 꽃신까지 신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보아 흔한 동네 꼬마는 아닌 듯했다.
‘어디 양반 댁 자식인가?’
그렇다 하기에는 어린년이 종으로 부리는 이도 없고. 잠시 빗자루처럼 긴 수염을 매만지던 약방 노인이 산삼을 받아들고 요리조리 살폈다.
“허어….”
두 뿌리는 족히 백년은 되어 보이고, 그 중 하나는 삼백년은 묵은 산삼이다. 안 그래도 부르는 게 값인데, 이리 오래 묵은 것이니 도술을 연마하는 도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살 것이었다.
“그래…. 이걸 팔러 왔다고?”
“응! 팔아서 혼수 해야 돼요.”
“혼수?”
“서방님이 이거 팔아서 혼수 해오랬어요!”
반말과 존대가 왔다 갔다 하는 여식의 말투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가져온 물품은 퍽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런 귀한 재료를 매입하기에 자신의 약방은 초라했고, 그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할 능력도 없었다.
백발 소녀가 꽤 멍청해 보여 꾀주머니를 낸다면 능히 산삼 세 뿌리를 꿀꺽 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 양반 자제에게 사기를 치는 거라면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명줄이 단박에 끊어질 수도 있는 노릇.
그러나 산삼 세 뿌리에 깃든 영험함이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에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얘야. 이 노부는 그것을 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저기 김부자 댁으로 가서 약방 최칠삼이 산삼이라 했다 말하고 그쪽에 팔아 보거라.”
“김부자?”
“그래, 이 좁은 마을에서 그래도 산삼을 살 정도로 부유한 집안은 김부자 댁밖에 없으니 말이다.”
초아는 다시 돌려받은 산삼을 받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럴게요, 고마워요!”
“끌끌, 그러려무나.”
백발의 소녀는 산삼을 품에 들고 다시 도도도 달려갔다.
노인은 그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쩝 다시다 다시 고개를 돌려 탕약에 부채질을 했다.
* * *
순식간에 다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온 산군은 돌아오는 길에 사냥한 사슴 뒷다리를 물어뜯으며 생각했다.
버려두고 올 때에야 거머리 같은 계집을 떼어내 속이 다 시원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 찜찜하기 짝이 없다.
[생각해보니 진짜 혼수 들고 여기로 쳐들어오면 어떡하지?]이사를 가야 하나.
생각하던 산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지. 백산의 산군이 그깟 꼬맹이 하나 때문에 이사를 갈 수는 없지.]거머리 같은 꼬마 하나 때문에 거처를 옮기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였다.
하지만 찜찜한 것은 사실.
게다가 인세에서 무척이나 귀한 산삼을 세 뿌리나 줬으니 심성이 고약한 놈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강도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차라리 산삼만 빼앗긴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입막음을 위한 죽임이라도 당한다면….
[아, 놔….]갑자기 입맛이 확 떨어진 산군이 사슴 뒷다리를 앞발로 퍽 때려 치웠다.
이 시대는 치안도 거지같고 범법 행위가 수시로 일어나는 무서운 시대였다. 그런데 그 귀한 것이 꼬마 손에 들려 있으니 정말 순식간에 죽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백혈귀수인데렇게 쉽게 죽을라고….]군대로도 죽이지 못하는 괴물이 되는 꼬맹이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까? 하지만 방금 전 멍청하게 넘어지던 초아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왜일까.
[씨부레…. 진짜 귀찮은 꼬맹이네.] [그 아이가 걱정되시는 겁니까?]동굴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음성, 하지만 산군은 듣는 둥 마는 둥 자리를 털고 일어나 누구에게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걱정되는 게 아니야. 산삼 세 뿌리는 너무 많이 준 거 같으니까 아까워서 되돌려 받으러 가는 거지. 아암, 고럼고럼.]그리 중얼거린 산군은 괜히 애꿎은 땅만 지르밟으며 터덜터덜 산길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