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07)
낭선기환담-306화(307/600)
낭선기환담 – 2부 16화
후두둑.
“완전히 망해버렸군.”
사내는 통천수궁에서 나온 통천무선이라는 직함을 지닌 무선(武仙)이다.
통천수궁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신선 중에서는 가장 밑바닥 직함이지만, 수계에서는 통천무선이라는 단어 하나가 지니는 무게는 대단했다.
“정말로 선충들로 인해 망한 것 같군.”
선충들의 사체와 함께 무너져내린 용마골은 이전의 신비로움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상선이 다섯 정도 있었다 들었는데….’
조사를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자네, 괜찮나?”
“…괜찮습니다.”
허나 내뱉는 말과는 달리 숨이 거칠고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사내는 이해했다.
그의 고향이 바로 용마골이었는데 어찌 이해하지 못하랴.
자신의 가문이 선충떼로 인해 망해 버렸으니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수도를 걷고 있기에.
수선하기에.
그리고 통천수궁의 통천무선이라는 그의 직함이 그를 짓누르고 있기에.
저리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이성을 놓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조금 더 알아봐야겠지만, 내 보기에는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이는군.”
선충떼에 습격을 당했다.
상선이 여럿 있었음에도 이리 당한 게 의아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용마골은 비교적 충계와 가까우니.
“자네 생각은 어때.”
“…용마골에 자리한 상선들 모두가 죽었을 리는 없습니다. 우선은 그들을 찾아 사건의 발단이 어찌 되는지부터 들어봐야 함이 옳지 않은지요.”
생존자가 있다면 찾아보고 당시의 상황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틀린 소리는 아니군. 하지만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네.”
“상선 무도전 때문이지요.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어디 있는지 아나?”
황씨 세가의 황온은 동쪽을 보았다.
“상서로 가보아야겠습니다.”
“상서? 그런 곳도 있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용마골이 당했다면 상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데 왜 가보려는 겐가.”
황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듯하다.
“그래 뭐… 그러세.”
일가가 멸족했는데 그 정도도 함께해주지 못하겠는가.
“한데 상서가 멀쩡하다면….”
황온은 그리 중얼거리며 있을 수 없다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 *
같은 시각.
상서의 화매봉은 반짝거렸다.
중의적인 표현이 아니다.
화매봉 주변에는 금색의 꽃잎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날카로움과 온유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듯한 수많은 꽃잎이 화매봉에 흩날리며 분분하였다.
금색 꽃잎이 흐드러지게 휘날리는 모습은 하늘 높이 떠오른 해 속에서 떨어지는 티끌 같아 아름 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절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상서의 신선.
천범이었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이 참… 화란 너와 쏙 빼닮아 아름답구나.”
천범은 화매봉 한켠에 서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꽃잎들을 보았다.
머리 위에 금색의 나무가 열린 것마냥 무수한 수의 금빛 꽃잎.
그건 화란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예, 감사하네요.”
천범은 마름침을 삼켰다.
아름답다 극찬했으나 그걸 답하는 화란의 음성은 냉랭했다.
그뿐이랴, 노려보는 눈초리는 날카롭기 짝이 없어 간담을 서늘케 했다.
천범과 화란은 화매봉 한켠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곁에는 사하까지 함께 있었다.
사하는 그 둘을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탐화가 준 금구슬을 받아 놓았는데, 화란이 나타나 그것을 쥐고 냅다 던져버리자 천범이 나타난 것이다.
금구슬은 범이 둔갑한 것이었고, 화란은 그를 보자마자 공격했다.
대뜸 싸우기 시작하니 사하로서는 도통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
“별일 아니니 신경쓰지 말게. 봐서 좋을 것도 없으니 들어가고.”
“네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버릇 없는 호랑이 볼기짝좀 때려 보려는 거니 사하 소선은 신경쓸 것 없습니다.”
“누가 누구 볼기를 때려?”
어이가 없다는 헛웃음을 지었다.
“뭘 그리 내외하십니까. 산군께서 어릴 적에는 제가 여기저기 때리며 혼도 내고 했잖습니까.”
천범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가 단순한 범이었을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크흠.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도통 기억 안 나는군.”
“그럼 제가 기억나게 해드려야죠.”
그때였다.
순간 금색 꽃잎이 삽시에 천범을 향해 쇄도했다.
단순한 꽃잎이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으나 저것은 꽃잎이며 동시에 검.
균천보화의 검이다.
꽃잎 하나하나가 모두 단단하고 날카로운 보검이니 조금만 스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네 주인을 죽일 셈이냐!”
“이리하면 기억 좀 나실까 싶어 하는 거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쿠웅, 콰아아앙!
슬쩍 피하니 단숨에 화매봉 한켠이 부서져 내렸다.
‘…맞으면 죽겠는데?’
그가 상선이 되고 당춘의 검을 화란이 받아들여 성취가 있었다.
균천보화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더 강해졌다.
균천보화는 곧 화란이고, 화란은 곧 천범의 본선법패다.
하계에 있을 때보다 더욱 강해졌음이 당연했다.
애초에 천범은 분합수결을 익힌 까닭에 분할된 열여덟 개의 화령이 하나가 되어 일반적인 상선보다 더 강력한 힘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니 그 여파는 화란도 같았다.
화란은 천범의 검으로써.
균천보화로써.
더욱 강력해졌다.
“근데 왜 날 공격하고 난리야!!”
억울해서 그만 큰소리가 나왔다.
“꺄악! 가문의 유서깊은 화매봉이!!”
사하는 멍하니 보던 것도 잠시, 화매봉 한켠이 무너져 내리자 기겁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 대만… 한 대만!”
“한 대 맞으면 죽는다고!”
진짜 죽지는 않겠지만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천범이라면 크게 다치지 않겠지만.
‘왜 이렇게 흥분했어!’
화란은 천범을 때리고 싶다는 이상한 집념을 품은 듯했다.
그래도 아직 이성은 남아 있는지 꽃잎 하나를 검으로 바꾸어 손에 들더니 곧장 달려들었다.
화매봉을 더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또한… 운명이겠지.”
“헛소리 마세요!”
카앙!!
화란이 올곧은 찌르기가 천범의 손에서 튕겨져 나갔다.
매화의 그것을 닮은 환검.
허나 그것만으로는 상선에 오른 천범의 옷깃도 스치지 못하리라.
“잊었더냐. 잔잔경정도의 승부에서도 옷깃 하나 건들지 못한 것을.”
후웅!
검풍은 화란의 심정을 대변하듯 난폭했으나 정교하지 않았다.
범은 한 끗 차이로 그녀의 검을 피하며 은근슬쩍 몸을 붙였다.
“하체가 부실하지 않더냐.”
어느새 뒤로 달라붙어 그녀의 허벅지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죽어!”
쇄액!
화란이 몸을 빼며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으나 범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죽으라고 하는 건 좀 심하지 않아?”
“어차피 안 죽잖아요! 안 죽으니까 한 번만 죽으세요!”
“그게 대체 뭔….”
헛소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화가 많이 났다는 건 알겠다.
붉어진 얼굴은 열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는 걸 대변했고, 그녀의 매서운 손속은 어떻게든 칼침을 쑤셔 넣어야겠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휘이잉.
돌연 바람이 바뀌었다.
그녀의 머리 위로 금색 꽃잎이 만발했고,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안 통한다니까.”
다른 이였다면 몰랐겠으나, 꽃잎은 하나하나의 검이다.
균천의 기운에 민감한 범은 꽃잎이 뿌리는 검로가 눈에 훤했다.
“저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답니다.”
그때였다.
순간 그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에 묶인 것처럼 말이다.
‘검진!’
하늘하늘 떨어져 내린 꽃잎은 어느새 지면에 촘촘하게 박혀 검진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휘이잉!!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어느새 화매봉 위에 올라있던 두 사람은 사라지고, 금색의 나무 곁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과 그 아래에 온몸이 묶여 있는 사내만이 남았다.
“환계로군.”
“단순한 환계는 아니죠. 그런 걸로 산군을 붙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검진을 뿌리로 한 환계였다.
범은 온몸이 금색의 나무 뿌리로 묶여 있었다.
눈앞의 거대한 금색 나무 앞에는 화란이 머리칼을 금색으로 물들인 채 요망한 낯으로 그를 내려봤다.
“옷 꼬라지는 왜 그런 게냐.”
화란의 머리색뿐만 아니라 옷의 양식 또한 바뀌어 있었는데, 얇은 천 하나만 덧댄 모습이라 번뇌가 들끓게 하는 차림새였다.
“각오하세요.”
“뭐, 뭘!”
왠지 모를 오한이 들었다.
* * *
“대체 뭐가 뭔지….”
사하는 혼란스러워했다.
이런저런 일들로 머리가 아팠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눈 앞에서 갑자기 천범과 그의 검령이라는 여인이 싸우더니 검진이 발동됨과 동시에 환계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짙은 운무와 함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안개가 걷힌 뒤에도 풀리지 않았다.
환계가 사라지고는 화를 내던 여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곁에 꼬옥 안겨 배시시 하며 웃고 있었기 때문.
‘뭐야….’
언제는 죽일듯 말듯 싸우더니 갑자기 저렇게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단 말이던가.
사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럴 수 있단 말일까.
“소란을 피웠군.”
“…아닙니다.”
화란은 어느새 연기로 변해 모습을 감췄고 천범은 머쓱한지 헛기침을 하며 뒷짐을 쥐었다.
“한적한 곳이야.”
방금 전까지 난리 친 장본인이 바로 천범과 화란이다.
하고픈 말이 많았던 사하였으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선충의 습격만 없다면 그렇죠.”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지 않나.”
모취항을 만들어낼 용마골의 황씨 세가는 이제 없다.
이전처럼 잦은 선충의 습격으로 피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선충의 습격이 있었다.
매순간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치루었고 악몽같은 나날들이 하루하루 그녀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것들 모두가 이제 없을 거라 생각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 또한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자네도 상서도.”
천범은 무너져 내린 화매봉 탓에 몰려든 소선들을 물렸다.
그리고는 직접 무너져 내린 화매봉을 다시 끌어 올려 복구시켰다.
그의 손에서 금색 물결이 흘러나오니 당연한 것처럼 암석들이 도로 올라와 원래대로 붙여졌다.
소선들 열댓 명이 붙어야 할 수 있는 일을 단번에 해내니 역시 상선은 상선이었다.
“이제 할 일이 많을 걸세.”
“잘 알고 있습니다.”
상서는 원래의 모습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그녀의 바람이고, 사씨 세가의 오랜 숙원이다.
용마골에서 가져온 재물들과 그의 힘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앞으로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이 한적한 곳도 제법 복작복작 해지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없는 백산을 융성케 한 것이 바로 천범이다.
못할 것 없다.
“가능할까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확신이 없어 보였다.
“가능하지. 내가 그리 할 것이니.”
우선은 그래.
“상선부터 되보는 게 어떠한가.”
사씨 세가의 가주 대리가 아닌.
진정한 가주.
그리하여 상선이 되고부터가 상서의, 그리고 사가의 시작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