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09)
낭선기환담-308화(309/600)
낭선기환담 – 2부 18화
통천수궁에서 온 천무선.
양휘와 황온은 화매봉에서 조금 떨어진 상서의 마을에 안착했다.
그곳에는 용마골에서 이주해온 소선들이 한창 자신들의 집을 짓고 농사와 약초를 재배하고 있었다.
소선이라도 수선의 길을 포기한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낳아 평범하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들도 그리 다르지 않은 자들이었고, 그렇기에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황온, 자네답지 않더군.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이면이라도 있었나?”
“그런 게 아닙니다.”
그 둘은 작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양휘는 평소답지 않았던 그를 나무랐다. 그의 심정이야 십분 이해를 한다지만 자신들은 통천수궁의 천무선.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일에까지 가져와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수계의 편.”
사사로운 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 친다면 천무선의 자격이 없다.
천무선은 수계의 평화를 위한 직위이며 그로인한 명예가 있는 자리.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 되네.”
“죄송합니다.”
황온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상황이 상황이었으나 자신의 잘못은 잘못이었고, 천무선의 귀감이라 할 수 있는 천무장은 같은 경지에 있는 상선이지만 그가 존경할 정도로 도량이 깊은 자였다.
“하면, 이제 이야기를 조금 들어 봐야겠네. 어째서 천 수선의 심기를 쑤시다 못해 헤집어 놨나.”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양휘가 보았던 황온은 무위가 출중하고 똘똘한 구석이 있는 무선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상서의 신선에게 그런 무례를 끼칠 자가 아니었다.
“사실 걸리는 게 조금 있습니다. 하여 의도적으로 그를 떠보았죠.”
“해서?”
“아직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조사를 진행해봐야 합니다.”
양휘도 조금 찝찝하기는 했다.
가문 하나를 박살낼 정도의 선충 떼라면 다른 지역에도 피해가 갔어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용마골에는 상선이 다섯이나 있었다.
한데도 속수무책으로 망해버렸으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허나.
‘누군가의 음모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가문을 멸문지화시켰다는 건 보통 원한이 아닐 테고 개개인이 아닌 가문 급의 이야기가 된다.
규모가 커지게 되면 그만큼 죽는 자도 많아지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선충떼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종하여 그랬을 수도 있지.’
수십만의 선충떼를 조종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제쳐두고서라도 말이다.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기있는 소선들은 용마골에서 도망쳐 온 이들이라고 합니다. 우선은 이곳에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게 어떠신지요.”
양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선 무도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선 무도전이 열린다는 것은 진품의 잔잔경정도가 세상에 나온다는 소리와 같네.”
천무선은 어느 누구도 소집에 늦 거나 불응할 수 없다.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결의 찬 대답.
양휘는 멸문지화 당한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며 수긍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우선은 이곳의 소선들부터.
그리고….
‘상서의 상선들도.’
캐다보면 뭐든 나올 것이다.
앞서 만난 자는 몰라도, 다른 둘은 본래 황씨세가의 상선이었으니!
* * *
“괜찮겠습니까. 저는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씨 세가의 대리 업무를 보고있던 천범은 문서를 살피다 내려놓았다.
“놈들이 죄를 지어 직접 심판을 내렸노라 말하라 이말이더냐.”
“저희가 죄를 지은 건 아니니까요.”
“글쎄.”
그건 하계에서의 일이다.
상계도 어느 정도 강자존의 법칙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지만….
‘난 아직 강자가 아니지.’
그리고 통천수궁에서 온 천무선 중 하나가 황온이다.
황씨 세가의 상선이었던 자.
그리고 동시에 황가의 장남.
그런 자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아무리 통천수궁의 천무선이라 한들, 혈연으로 이어져 있는 정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전에 내게 보인 행동을 보니 내 선택이 맞았다 확신하게 되는구나.”
천범은 생각했다.
그는 아마 자기 가문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취항으로 사씨 세가를 몰락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날 적대했을 리 없으니.’
적대한 것은 자신이 아닌, 상서였을지도 몰랐다.
황씨 세가가 선충떼에 당해 멸문했을 리 없다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아무튼 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예. 산군이 산군하셨을 테죠. 항상 그래오셨으니 이번에도 잘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웬일로 순순히 칭찬하자 범은 그녀에게 묘한 눈빛을 보냈다.
“왜 그리 보십니까.”
“너 답지 않아서. 네 얼굴을 뒤집어 쓴 첩자가 아닐까 고민 중이다.”
“싱거운 소릴 다 하십니다. 저도 칭찬할 때는 하는 여자인걸요?”
“그럼 조금 더 해봐.”
“싫습니다. 일이나 하시죠.”
“야박하긴.”
차락.
차라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잠시 방안을 가득 메웠다.
“으으윽.”
어느새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문서를 검토한 화란이 기지개를 폈다.
“근데 산군.”
“또 왜.”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취조 비슷한 걸 하면 어떡합니까?”
“다른 이들?”
“용마골에서 넘어온 소선이나….”
초찬과 탄고말.
그들에게 물으면 범이 말했던 것과는 이야기가 사뭇 다르지 않겠는가.
그리되면 천범의 거짓말이 들통날 테니 큰일이라면 큰일이었다.
“아… 그거.”
허나 범은 피식 웃고는 의자에 등허리를 묻었다.
“걱정할 것 없다. 어차피 그들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테니.”
* * *
이주 뒤.
“뭐 좀 알아낸 것 있나.”
숲이 우거진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양휘는 터벅터벅 돌아온 황온에게 인사를 건네듯 물었다.
허나 황온은 씁쓸한 발걸음과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씨 세가의 가주 대리를 맡고 있는 천 수선의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요 이주 동안 용마골에서 이주해 온 소선들 전부를 하나하나 찾아가 천범이 했던 이야기와 대조하여 꼬치꼬치 캐물었으나 얻어낸 게 없었다.
“이상하리마치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원래 기억이라는 것은 같은 일을 겪었어도 조금씩은 편차라는 게 있다.
저마다 느낀 감정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죽을 뻔 했을 정도로 그날의 일이 죽음의 공포로 다가왔다면 또 어떤 이는 그냥 놀란 정도였고 조금 힘든 정도였을 수도 있다.
한데 이주 동안 그가 만났던 소선들은 전부 이상하리마치 같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이야기뿐이었습니다.”
황온은 그 부분이 더 미심쩍었다.
“기억을 조작했다는 건가?”
“그랬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최면과 암시 등등 여러 법술을 이용해 기억을 지우거나 시술자에게 이로운 것을 심을 수도 있기는 하다.
“그 많은 수의 소선을?”
“그건….”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수가 많았다.
대략 팔십에 가까운 소선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건 상선이라도 어렵다.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정교한 작업을 단기간 내에 수십 명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많은 수의 소선들 기억을 조작하는 건 나라도 쉽게 하지 못할 일이지.”
향선이라도 꺼려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 이렇게 하지.”
양휘는 바위 위에서 내려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용마골에서 살아남은 상선 둘이 상서에 기거하고 있다더군.”
“알고 있습니다.”
황온은 이를 짓씹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황씨 세가를 버리고 다른 가문에 입적했으니 배신자나 다름없는 이들이라 생각할 터.
그 자존심 때문에 쉬운 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 천 수선이 뒤가 찝찝한 일을 행하여 소선들의 기억을 모두 조작해놓았대도 같은 상선의 머릿속까지 헤집어 놓지는 못했을 테지.”
“이미 그가 수를 써 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사씨 세가의 신선이 된 자들.
신용할 수 없다.
“하면 방법이 있는가?”
“그건….”
딱히 방도가 있지는 않았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네. 상선 무도전이 얼마 남지 않았어. 30년도 채 남지 않았으니 바삐 수궁으로 돌아가 잔잔경정도의 봉인을 지켜야 해.”
“알겠습니다. 그들을 찾아가본 뒤,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면 수궁으로 돌아가도록 하죠.”
* * *
오늘따라 탄고말은 기분이 좋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좋군. 역시 좋아!”
그의 앞에는 기이한 병풍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남루한 초가집 하나와 여러 글귀, 그리고 항아리 여러 개가 그려져 있는 조잡한 병풍이었다.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한없이 병풍을 보고 실실 웃음을 흘렸다.
“상선,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내게 말이냐?”
“예. 상선을 찾아뵙고 싶다 하셨습니다. 이것을 전하면 될 거라고….”
소선이 소매 속에서 둥그런 영패 하나를 건넸다.
봉황과 용이 뒤섞여 있는 천무패!
탄고말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허나 고민은 짧았다.
“들어오시게!”
그가 소리치자 대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두 사내가 내비쳤는데, 천무선 양휘와 황온이었다.
“오랜만입니다 탄 수선.”
“그러게 말이오, 황 수선. 이곳에서 만나 뵐 줄은 몰랐어요, 몰랐어.”
둘은 구면이었으나 이제와서는 이미 틀어진 인연이었다.
껄껄 웃으며 자리에 앉으라 권하자 방석에서 발이 돋아나 그들 앞에 자리했다.
“왜 오셨는지 알 것 같소. 요새 상서의 소선들에게 용마골의 일을 물으러 다니는 자가 있다 하더이다.”
“알고 계시다니 길게 끌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그대도 같습니까?”
“그렇소. 아쉽게도 탄모가 황 수선께 전할 이야기는 없는 듯하오. 먼 발걸음 하셨으니 술이나 한 잔 대접해드리는 게 좋겠수다.”
탄고말은 자신의 뒤에 자리한 병풍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옥경아. 이분들께 술 한 잔 따라 드리거라.”
그러자 병풍 속에서 웬 아리따운 선녀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던가.
무표정에 차가운 인상의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병풍 속에서 튀어나와 돌연 술잔을 따르니 퍽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껄껄껄! 내 얼마 전에 선물 받은 법보인데, 참으로 내 마음에 쏙 드오! 여러 술을 담고 있는 법보거든!”
게다가 그 술을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따라주니 어찌 맛나지 않을까. 자신의 도는 주도라 말할 정도로 애주가인 탄고말에게 이보다 좋은 법보는 또 없었다.
“저 여인은 괴뢰는 아닌 것 같고, 혹시 주령인 겁니까?”
이 병풍은 보통의 것이 아닌 법보의 일종이었는데, 안에는 검령과 비슷한 주령이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
쉽게 말해 법보에 혼이 깃든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영성이 생긴 것과는 조금 다르다.
주령이란 말 그대로 묶여버린 것.
누군가 인위적으로 혼을 법보에 묶어둔 것이다.
“그런 것 같더군. 아무튼 탄모는 더 할 말이 없으니 술 한 잔씩 마시고 그만 돌아들 가시게 껄껄껄!”
탄고말의 축객령에 황온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법보 누구에게 받으셨습니까.”
“알면 어쩌시려고 그러오?”
“저도 눈에 익었던 것이라서 말입니다. 분명 제가 알기로는 저희 가문의 창 보고에 있던 물건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소? 뭐 비슷한 게 세상에 여럿 있다 해도 신기할 건 없지.”
그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며 술맛 버렸다는 듯 혀를 찼다.
“손님 나가시니 뫼셔드려라. 멀리 못 가니 살펴 가시고.”
명백한 축객령에 황온은 씩씩거리며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후회할 것이오!”
분에 찬 그의 경고에 탄고말은 껄껄 웃으며 첨언했다.
“초찬에게 가도 다를 건 없을 거요. 그는 나보다 더한 걸 받아 한창 폐관 수련에 들어갔으니! 껄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