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10)
낭선기환담-309화(310/600)
낭선기환담 – 2부 19화
“젠장!!”
쾅!
두꺼운 소나무를 냅다 후려치자 가지에 앉아 있던 산새가 퍼드득 날아올랐다.
“이제 도리가 없군.”
“대장님!”
“자네 가문의 긴급한 요청으로 인해 없는 시간을 만들어 온 것이야. 얼마만큼이나 그대의 사정을 봐줘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황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말아쥔 주먹은 더 없이 단단했으나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대장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놈들은 필시 뇌물을 받았습니다.”
양휘도 눈과 귀가 있다.
탄고말 상선의 어투로 짐작컨대 그와 다른 상선도 다를 것 없을 거다.
“하지만 그게 뇌물인지 아닌지 확실히 할 증거가 없지.”
물증이 없다.
지레짐작만 가지고 수사에 착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말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졌다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야.’
소선의 기억을 조작하고 상선들을 구워삶았으며, 동시에 황씨 세가를 멸문시켰을지도 모를 사내다.
그의 추측들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이 올 것에 미리 대비하여 손을 써 놓았던 게 아니던가.
이게 정녕 승선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선이 벌인 일이라니.
심계가 얼마나 깊은 건지 모른다.
조금 의아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추측대로라면 그러하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데 의심만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무고한 자에게 피해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
통천수궁의 자랑.
수계를 보호하는 천무선의 이름이 깎여 내려갈 것이다.
“이제 더는 방도가 없네.”
어쨌거나 지금은 방도가 없다.
철저히 준비하여 계획한 일이라면 증거를 남기지 않았을 터.
“그리고 모든 게 우리의 오해일지도 모를 일이지.”
“대장!”
“아니라 할 수 있나?”
“…아닙니다!”
“어째서 아니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양휘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렇담 내가 건넬 말도 다르지 않겠군. 돌아가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천 수선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양휘는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 담판을 짓고 싶어 하는 듯 했다.
황온의 수는 몇 개 안 된다.
내기를 하는 것 정도일 터.
천무선은 갖가지 실전을 거쳐 전투에 능한 신선이다.
그들의 내기 방식은 대부분….
‘잔잔경정도.’
허나 그가 지닌 게 평범한 잔잔경정도는 아닐 것이다.
* * *
거문고 소리가 창밖을 뛰놀듯 나뒹굴다 연못을 밟고 지났다.
한참이나 주위를 맴돌며 귓가를 맴도니 참으로 흥에 겹다.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
가만히 거문고 켜는 소리를 듣던 천범이 물었다.
아름다운 궁장 차림을 입고 거문고를 켜고 있던 화란은 뭘 새삼스레 묻느냐는 듯 눈을 흘겼다.
‘하긴, 대강의 일이 끝났으니.’
사씨 세가의 가주 대리로서의 일을 일단락지은 후였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일을 범 대신에 처리한 것이 바로 화란이다.
상서는 작은 마을이지만 그렇다 해도 처리할 일이 적은 건 아니다.
소선들의 조세를 무엇으로 걷고, 어떤 사업을 추친하느냐에 따라 상서의 길이 달라진다.
윤택한 삶을 위하려면, 하계든 상계든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다.
그것 말고도 처리해야 할 자질구레한 것들을 화란이 대신해주니 천범은 마음 깊이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띠잉.
거문고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다.
연못에 잔잔한 파문이 일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산군.”
듣기 좋은 소리가 멈췄다.
편안히 눈을 감고 있던 그의 금안이 화란에게 쏠렸다.
“탄고말 상선의 거처에 천무선이 다녀갔다 합니다.”
천범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더냐.”
“걱정할 것 없다 전하라더군요.”
“그랬겠지.”
탄고말과 초찬에게는 이미 황씨 세가의 보고에서 가져온 법보 몇 개를 쥐어준 지 오래다.
가지고 있어봤자 자신에게는 쓸모 없는 것들로 그들의 입을 굳건히 할 수 있다면 이득이지 않던가.
‘그들은 이제 상서의 신선이니.’
계륵 같은 물건으로 상선의 호감을 살 수 있다면 당연한 이득이다.
“한데 저도 몰랐습니다. 단령금정에 그런 신통이 있었을 줄은요.”
“굳이 쓸데가 없었을 뿐이다.”
상선이 된 천범의 단령금정은 본래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해졌다.
그렇기에 금색으로 변하기도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신선의 몸이 되어 자연히 지니던 신통력들이 극에 다다랐다.
소선들의 기억을 조금 바꿔놓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내 말하지 않았더냐. 그리해봤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천범은 자신의 앞에 놓인 다과상에 손을 올리다 문득 탐화가 떠올랐다.
“탐화는 어디 있느냐.”
“걱정 마십시오. 그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으니 멀리 보냈어요.”
“그래, 잘했다.”
탐화는 황룡을 먹었다.
아직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했을 테니 그 피를 이은 황온이 본다면 눈치를 챌지도 모를 것이다.
애초에 충선이 수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천무선에게 보여 좋을 게 없다.
‘수계와 충계는 사이가 좋지 않고… 선계와도 좋지 않다던가.’
굳이 눈에 띄게 해서 좋을 게 없다.
“어디로 보냈는데?”
“서쪽으로 보냈습니다.”
“서쪽 어디?”
“그건 저도 모르죠.”
“…화란이 모르면 누가 알아?”
“전 그저 만두 하나를 멀리 던졌을 뿐이라 자세하게는 모릅니다.”
천범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짓으로 탐화를 보낸 거였어?”
“탐화가 좋아했습니다.”
“…탐화는 내 딸 같은 아이다. 너무 험하게 다루지 말아라.”
“산군께서 과보호하시는 겁니다. 탐화가 저보다 강한데 그 정도는 해주어야죠. 그리고 산책도 하는 겸 그리 하는 게 뭐가 나쁩니까.”
“그러니까 탐화를 너무 동네 똥개 마냥 취급하지 말라고….”
“그런 적 없습니다. 제 교육방침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세요.”
“아니 그게 무슨 교육방침인데!”
대체 어디가 교육이라는 건지 원.
검령이 되서 그런가… 가끔 보면 도통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모를 때가 있다.
‘아니, 원래 그러긴 했지.’
가만 생각해보니 단순한 창귀 시절에도, 화산파 장문인이었을 때도 엉뚱한 구석이 있기는 했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언젠가는 모르다가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천범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곁에 화란이 있는 것이 참 좋았다.
티격태격하기는 하다만, 그래도 무언가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마음이 편해진다고나 할까.
연인 같기도, 누이 같기도, 어미 같기도 한 신기한 여인이다.
“읏차.”
천범은 그녀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화란은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다 머리를 쓸어 넘겨주고는 거문고 위치를 틀어서 켜기 시작했다.
날도 좋고, 소리도 좋고 닿아있는 온기도 좋은 날.
거문고 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니 술 한 잔이 절로 떠올랐다.
술이나 한 잔 마셔볼까 하던 찰나.
띠잉.
거문고 소리가 멎었다.
“무슨 일이냐.”
화란이 옆을 흘기며 묻자 머뭇거리던 어린 소선이 외쳤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누군지 알 듯했다.
“란, 거문고를 켜.”
“….”
“괜찮으니 켜라.”
자리에서 일어난 천범은 바로 앉아 두 팔을 펼치고 다시 모아 고른 숨을 내뱉었다.
탁 트인 커다란 정자 안에는 거문고 켜는 화란과 그 옆에 정좌하고 있는 천범뿐이 없었다.
잠시 후.
그의 앞에는 이전에 보았던 양휘와 황온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사라도 할 법 한데, 황온과 천범은 그런 것 없이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바라본다기보다는 노려본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거문고 소리와 바람소리가 뒤섞여 오묘한 분위기가 갖추어졌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금세라도 끊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그때였다.
휘리릭.
툭.
황온이 품에서 커다란 족자 하나를 꺼내 범 앞에 던졌다.
바닥에 놓여진 족자는 둥근 모양이었고, 어디서 많이 본 형태였다.
잔잔경정도.
범이 지닌 것과는 조금 달랐다.
잔잔경정도 안에 쓰인 글자들이 모두 피로 쓰여져 있는 듯 기괴했다.
“천 상선. 저와 내기 하나 합시다.”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하는 말이 내기나 하자는 말이었다.
허나 범은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제가 할 이유가 있을까요.”
무슨 내기인지 몰라도 해줄 이유가 없다.
“내 승부에서 진다면 이것을 그대에게 내주겠소.”
황온은 자리에 털썩 앉아 품에서 투명한 구슬 하나를 꺼냈다.
“그게 무엇입니까.”
“불가에서는 여의주라 부르고 도가에서는 원옥이라 부르는 것이요.”
여의주(如意珠)!
용하면 당연히 용주.
여의주가 함께하는 게 당연하다시피 널리 알려져 있다.
단순한 원옥이 아니냐 할 수 있으나 용의 그것은 조금 다르다.
원옥과 여의주는 같으면서도 다르기 때문인데, 용만이 지닌 특성과 공법 탓에 그들은 원옥을 무기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그것을 이용해 신비한 신통력을 부리기도 한다.
‘용들도 아무나 여의주를 만들지는 못한다고 하던데.’
황씨 세가의 다른 상선들은 여의주가 없었다. 솔직히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탐화가 잡아먹어버렸지만, 그 위급한 상황에도 여의주를 쓰지는 않았으니 아마 없었을 것이다.
“여의주라….”
말로만 들었던 것을 직접 보니 신기하기는 했다. 생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것이 여의주 아니 던가.
지니고 있으면 요긴하게 쓸 곳이 있을 것이다.
정 쓰일 곳이 없다면 수봉외외정을 이루는 데 써도 좋지 않겠는가.
지녀서 나쁠 것은 없다.
허나 그 정도일 뿐이다.
“쉽게 볼 수 없는 물건이기는 하나, 제게 썩 필요한 것은 아니군요.”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다른 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갖고 싶어 하겠으나, 적어도 천범은 아니었다.
허나 예상했다는 듯 황온은 품에서 서책하나를 던져놓았다.
“잘 모르시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오. 여의주는 물론 상선이 쓸 곳을 찾기는 어렵지. 허나, 그대가 향선이 되었을 때도 같을까?”
“…무슨 말입니까.”
“상선에 오른 자라면 누구에게나 향선으로의 길은 열려 있소. 허나 아무나 갈 수 없는 것이 향선이지. 진정한 신선이라 하는 것은 바로 향선부터이라 하는 말이 괜히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뜻이라오.”
“요점만 간단히.”
“여의주가 있다면 향선이 되었을 때 그대의 원신을 제어할 수 있소. 그리하면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하여 수행이 더 진일보할 수 있다는 소리지.”
천범은 잠시 말이 없었다.
너무 앞서나간 이야기다.
아직 상선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거늘 벌써부터 향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시기상조이다.
‘허나….’
구미가 당겼다.
“그때가 되서 여의주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
천범은 잘 모르지만 여의주를 배양해낼 수 있는 용도 드물 뿐더러 그것을 내놓으려 하는 용은 더더욱 없다.
여의주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용에겐 더 없는 명예임과 동시에 자신의 잠재력을 알릴 수 있는 증거다.
여의주를 만들기만 하면 향선으로의 길이 절반은 이뤘다고 볼 수 있으니 그만큼 어렵고 대단한 성취다.
그러니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게 용족의 여의주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미친놈이 여의주를 내놓겠다 하겠는가.
-놈의 말은 사실이다. 용이 여의주를 내놓는 광경을 보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
-함정이겠군요.
-허나 참으로 매력적인 함정이지.
그는 고민했다.
범의 대도는 상선이 끝이던가?
아니다.
그는 원선을 넘어 그 이상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멀쩡한 듯 자리 잡은 사형들의 복수도 하고, 자신을 이곳에 불러온 무언가를 확인해야만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여의주가 생긴다면?
‘한결 수월해지겠지.’
듣기로 향선들은 원신의 제어를 위해 적게는 수천 년, 또는 수만 년을 허비하기도 한다고 했다.
원옥일 때는 몰라도 원신이 큰 상해를 입거나하면 자신에게도 어마어마한 화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무슨 내기인지 들어나 볼까요.”
황온은 입꼬리를 비틀고 자신의 검지를 단검으로 베었다.
스윽.
이내 떨어지는 핏방울이 잔잔경정도 안으로 떨어졌다.
톡.
후웅!!
세찬 바람이 퍼져나가고, 잔잔경정도에 떨어진 핏방울은 순식간에 형체를 갖춰 황온의 모습이 되었다.
“사내답게 한판 겨룹시다!!”
내기는 간단했다.
잔잔경정도로 승부를 가린다.
천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진다면?”
“심마를 걸고 내 물음에 답하시오.”
단순 명쾌하다.
심마를 걸고 묻는다면 천범은 거짓을 이야기할 수 없다.
“나쁠 것 없군.”
퍽 많은 것이 걸려 있으나 내기의 내용은 단순하기만 하니 오히려 더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천범도 사내다.
이런 승부는 싫지 않다.
톡.
천범의 피가 떨어졌다.
피를 탐하는 잔잔경정도는 기세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범의 분신이 솟아올랐다.
“잔잔경정도를 아시나.”
“알고 있습니다.”
“천 수선이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를 거요. 우린 이것을 잔잔혈정도라 부르고 있소. 천무선들이 입맛대로 개량해 놓은 게 바로 이거거든.”
잔잔혈정도는 천무선들에 의해 개량된 만큼의 신통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슥.
황온의 분신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내 범의 옆구리에서 튀어나와 주먹을 내지른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다.
역시 천무선은 천무선!
황 가주와는 사뭇 다르다.
쿠웅!!
가까스로 옆구리를 방어했다.
그러자 천범의 낯이 일그러졌다.
분신의 공격을 그의 분신이 막았을 터인데….
“그렇군. 그래서 피인가.”
황온의 공격을 막은 분신의 팔과 똑같이 그의 팔도 붉게 부어올랐다.
“조심하시오. 방심하다 픽 죽어버리는 약골들도 있으니!”
범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