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15)
낭선기환담-314화(315/600)
낭선기환담 – 2부 24화
“넌 누구냐.”
새하얀 한기가 올라오는 얼어붙은 호수 위. 천범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완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전의 순수함은 찾아볼 수 없는 무정한 얼굴로 바뀌었다.
지금의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면 과연 네가 알까?”
이전과는 다르게 음성의 높낮이가 일정했다. 소년의 것이 아닌,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의 말투 같았다.
“글쎄, 다른 건 몰라도 극양상산의 불씨가 사라지고 난 후. 죽었어야 할 어린 소선 하나가 살아있다는 것 하나는 제대로 알고 있긴 하지.”
그 두 가지는 연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잠시 침묵이 그들의 곁을 맴돌았다.
의미모를 긴장감이 함께 감돌기 시작했을 때, 완형이 침묵을 깼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게 됐으니 더 감출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해.”
그리 말하며 완형은 천범이 있는 곳을 지나 얼어붙은 나무로 다가간다.
“이 아이는 그때 죽었다. 혼백은 이미 윤회의 굴레로 넘어갔기에 내가 잠시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지.”
그가 걷는 걸음걸이 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얼음이 녹아내린다.
서서히 소매가 불타오르고 전신이 불로 불타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었나.”
얼어붙은 나무에 손을 가져간다.
그러자 나무는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꽃봉오리가 굳게 닫힌 꽃잎이 만개하여 피어나듯 그렇게 피어났다.
“고맙다. 네 덕분에 다시 나의 이름을 찾게 됐으니.”
꽃처럼 만개한 나무 안에는 무언가의 뿔이 은은한 빛을 발하며 자리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보통의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마도 저것이 극양상산의 영내산이 아닐까 싶었다.
허나 추측은 추측이다.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다.
천범은 뒷짐 쥔 채로 그가 입을 열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내 이름은 사악(侯岳)이다.”
사악은 이제 전신이 불타고 있었다.
손에 쥔 뿔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는 대단히 만족스러워 했다.
“사씨인 건가.”
“그래, 사씨이지.”
상서의 사씨라면 사하와 연관이 있는 자일 수도 있다.
사씨의 선조격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궁금한 게 참 많았다.
“궁금한 게 많을 거다. 허나 잠시 기다려주겠나. 할 일이 많은 몸이라.”
스으윽.
손에 쥔 뿔이 그의 몸으로 들어가자 안광이 폭사되며 온몸에서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쿠우우우!
전신이 불타올라 사방을 밝힌다.
이내 불꽃이 만개하고 그 안에서 잘생긴 청년이 나타났다.
천범은 그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다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성품은 그리 악해 보이지 않았다.
“난 본래 이곳의 묶인 죄인이었다.”
“죄인?”
“아니, 죄인의 화신이라고 할까.”
천범의 미간이 좁혀졌다.
영산이라는 것은 본디, 신선이었던 자가 죄를 받아 갇히게 되는 형벌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오행영산 중 하나라 보는 극양상산 또한 그런 것 중 하나.
그러니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는 눈앞의 사악은 이전에 죄를 저질러 극양상산에 갇힌 존재라는 것이다.
‘화신이라 말하는 걸 보니….’
극양상산에 갇혔던 본래의 자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그 정수.
내산단이고도 부르는 영내산이 영성을 갖추어 저리 된 듯하다.
“참 큰일이었지. 선충떼가 들이닥쳐 이곳의 연기사들이 모두 내가 있는 방으로 피신했었다. 허나 틈을 파고든 놈들에게 모두 죽임 당했지.”
부글부글.
얼어붙었던 호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끓고 있었다.
사악은 펼쳐진 나무 밑동에 털썩 앉아 턱을 괬다.
“비극은 비극이었다. 겨우겨우 어린 소선의 몸으로 들어와 육신을 고쳤으나 한 번 이 방을 벗어나니 다시 들어올 수 없어 곤란하던 참이었지.”
소선의 몸을 치유하는데 힘을 써 버렸었고, 본체라 할 수 있는 뿔은 이곳에 있었던 터라 앞으로 몇 백 년간은 쭉 헛고생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 하늘이 도왔는지 천범이 나타난 것이다.
“솔직히 상선 나부랭이가 하면 뭘 할 수 있겠냐 싶어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네는 충분히 날 만족시켰어!”
사악은 더 없이 기뻐했다.
허나 감사의 인사는 없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퍽 오묘하게 흘러만 갔다.
부글부글.
애꿎은 호수는 용암으로 나타나고 거품이 터져 주변의 땅을 건드려 치익치익 하는 소리만 터져 나왔다.
“질문이 있다면 답해주지.”
범은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당신이 극양상산의 영내산이고 본래 이 산의 화신이라면, 당신이 사라지면 이 산은 어찌되는 거지?”
“평범한 영산으로 바뀌겠지. 내 혼이 뿔과 하나 되지 못한 동안에도 극양상산의 화기는 나타나지 않았으니.”
평범한 영산이라….
그리되는 게 당연하겠으나 그건 천범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난 극양상산의 화기가 필요하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그건 그렇다.
긴 세월동안 이곳에 갇혀 있었던 것도 억울한데, 본체는 죽어 사라지고 오랜 세월 티끌이 모여 화신이 된 자가 바로 눈앞의 사악이다.
천범 자신이라도 그리할 것이다.
“허나 날 도와준 자네의 부탁이라면 내 생각해볼 법 하지. 수선하는 자가 은원은 확실히 해야 하는 법 아니겠나. 괜한 심마의 원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야.”
이야기는 들어보겠다는 소리다.
천범은 곧장 이야기했다.
현 상서의 상황.
억울하게 당했던 선충의 습격.
그리고 극양상산의 필요성.
“그렇군. 못 도와줄 이유도 없지.”
“정말인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본체 또한 상서에 몸담았던 존재. 그 후손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데 못 본 척할 정도로 무정한 자는 아니다. 게다가 어차피 이곳에서 잠시 심신을 단련하고 기운을 갈무리할 시간 또한 필요했으니 어렵지 않지.”
사악은 인자한 낯으로 그 정도가 뭐 어렵겠냐는 듯 말했다.
“허나 대신 나도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저 봉인을 부순 자네라면 손쉽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지.”
그게 무어냐 물으려고 하니 가까이 와보라는 듯 손을 까딱인다.
범의 금안이 깊게 가라앉았다.
멈칫하던 그는 이내 사악의 바로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때였다.
타타탁!!
용암 속에서 새빨간 사슬이 나타나 천범의 몸을 구속한 것이다!
“…무슨 짓이냐.”
온몸이 붉은 사슬로 칭칭 감기자 강렬한 화기는 둘째 치고 몸을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사악은 그런 천범을 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이 아이를 그릇으로 선택한 이유는 보다 화신통에 높은 자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지. 허나….”
본래 지닌 것보다 좋은 무기가 있다면 바꾸는 것이 사내 아니던가.
기왕 다시 태어난 몸이니 더 좋은 그릇으로 갈아타야지.
“고마운 것은 고마운 거지만, 어찌할 도리가 있나. 눈앞에 더 좋은 게 있는데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사악이 곧장 손을 뻗었다.
천범의 머리로 말이다.
이내 그의 신형이 불분명해지며 오묘한 기운이 범을 향했다.
“좋은 육신이다. 강력한 화신통을 다루니 내 알차게 써주도록 하마!”
하하하하하!
사악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사방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오묘한 기운이 천범의 전신을 뒤덮었다.
사악은 단숨에 자신의 의식을 천범의 것으로 옮겼다.
‘단숨에 집어 삼켜주지.’
천범의 의식을 단숨에 집어삼켜 그의 육신을 차지할 셈이었다.
고작 상선에 한하는 자의 의식을 집어삼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방대한 허무의 공간 속.
사악의 의식은 문득 이상한 괴리감을 느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천범의 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며 주변을 살피던 그 순간.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터엉!
무언가의 반발력으로 인해 단숨에 사악의 의식이 튕겨져 나갔다.
“헉!!”
다시금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사악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천범에게 멀찍이 벗어났다.
“무슨 짓을 한 게냐!”
“아무것도. 그 알량한 의식으로 까불기에 손가락 좀 튕겨줬을 뿐이다.”
범이 검지를 튕기는 시늉을 하자 사악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까드드득!
“건방떨지 마라!”
화아아악!!
사악의 전신에서 맹렬한 불꽃이 요동쳤다.
그와 동시에 호수 밑바닥에서부터 붉은 용암이 끓어오르고 극양상산 전체가 붉게 달아오른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화기가 천범을 드리웠다.
“네 의식이 그리 강고하다고는 하나,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악은 불 그 자체가 되어 형체가 사라져버렸다.
[불을 잡을 수 있는 건 없다. 헛수고하지 말고 몸을 내놓아라!]화(火)란 그러하다.
손에 쥐면 잡히지 아니하니, 그 오묘함은 자연의 이치와 같다.
“허나 그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 바로 신선이지.”
쿠웅. 천범이 발을 굴렀다.
화르르르륵!
금색이 찬란한 불길이 발끝에서부터 치솟는다.
그것이 사방으로 치달았다.
[알량한 화신통으로 날 어쩔 수 있으리라 보는가!]“어찌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돌연 천범이 뿜어낸 금화는 만개한 연꽃처럼 퍼져나갔다.
사악의 붉은 불꽃을 잡아먹듯 밀어 내고 착실하게 힘을 불리고 있었다.
[무슨!!]사악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영락한 화신일 뿐이라도 상선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다.
자신의 화신통은 더더욱!
‘지금 보이는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금화와 적화가 한데 뒤섞여 맹렬하게 서로를 태우고 있을 때.
금빛 찬란한 금색 화염 속에서 완고한 손아귀가 적화를 붙잡았다.
“이리 나와 이 새끼야.”
콱!
“컥! 어, 어떻게 잡은 게야!!”
천범의 손은 금색 꽃잎이 가득 맺혀 있었다.
“잡히니까 잡지 어떻게 잡긴!”
불꽃에서 끄집어내자 다시 청년의 형상으로 돌아온다.
천범은 입꼬리를 씨익 끌어 올렸다.
“네가 죄인의 화신이라 하였으니 내 친히 단죄를 내려주어야겠다!”
“네, 네 이놈!!”
“뭐 이놈아!”
쾅!!
천범이 놈의 안면에 주먹을 내리꽂자 단박에 화염이 꺼져버렸다.
땅바닥에 처박힌 사악은 컥컥거리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더니.”
별것도 아닌 게 시끄럽게 굴었다.
쇄액!
땅바닥에 꽂혀 있던 사악은 어느새 붉은 빛줄기로 화해 날아갔다.
“네놈을 반드시 잊지 않으마!!”
도망가려던 그때.
주변을 불태우던 천범의 금화가 다시 놈을 덮쳤다.
금화는 채찍처럼 불어나 놈의 팔다리를 묶었다. 이내 금화는 사슬로 변하여 철컥거리며 사지를 봉했다.
“웃기는 놈이네. 누가 보내준대?”
“이, 이거 풀어라!!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넌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조금만 더 맞자.”
쾅! 쿵! 빠악!!
한동안 극양상산의 화산이 작게 폭 발하고 굉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 * *
사흘 뒤.
천범은 여기저기 얻어터진 몰골의 사악을 보며 이를 고소하게 웃었다.
죽일 수도 있었으나 그건 하책이다.
이러나저러나 놈은 극양상산의 내산단 자체였다.
이곳에 갇힌 신선의 화신이지만 관련된 기억은 하나도 없는 놈이다.
게다가 놈이 있어야 극양상산의 불씨가 꺼지지 않으니 필요했다.
“여기서 소선들 연기술이나 잘 가르치고 법기 생산 잘해라.”
“감히 내게 명령하지 마라!”
“그래? 그럼 제발 명령을 내려달라고 할때까지 구워 삶아줄까.”
천범은 사슬에 묶인 사악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고 그 아래 자신의 금화를 피워냈다.
“끄아악! 이 빌어먹을 화염은 대체 뭐냐! 어째서 화신 그 자체인 내가 뜨겁다 느껴지는 것이야 제기랄!!”
천범은 다시 한번 사흘 밤낮을 자신의 금화로 사악을 고문했다.
그러나 놈은 끈질겼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달 정도 틈틈이 놈을 고문하며 심신을 피로하게 했고, 그제야 제발 명령해 달라며 울고불고 머리를 숙이기에 금제란 금제는 전부 걸어 놈을 부하로 삼았다.
“소선들 보낼 테니 잘 가르쳐라. 네가 여기서 연기사들 하는 것도 대강 보고 그랬을 거 아냐.”
사씨 세가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최소 수천 년이다.
그동안 보아온 게 있을 테니 가르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게다.
“내가 어찌….”
“안 할거냐?”
“하겠소. 하면 될 거 아니오!”
“그래, 잘하거라. 소선들 괜히 괴롭히면 다시 찾아올 거니까 그리 알고.”
“젠장….”
“뭐야?”
“아무것도 아니오.”
빤히 사악을 바라보던 천범은 놈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쾅!
“왜! 왜 때리시오!”
“그냥 재수없어서.”
“내 이 치욕은 반드시… 크헉!”
사악이 가슴팍을 쥐고 쓰러졌다.
범에게 사특한 마음을 품었기에 금제가 발동된 모양이다.
“알아서 잘해. 응? 그러면 내가 금제를 풀어줄지도 모르잖아. 난 상서의 신선이고, 네 뿌리도 상서에 적을 둔 자였으니 말이야.”
본래 원하던 결과가 되지는 않았으나 이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극양상산은 부활했고, 노예로 부릴 연기사 하나도 만들었다.
오행영산의 내산단이 아쉽기는 했으나 수봉외외정은 급한 게 아니니 별로 상관은 없다.
애초에 화신에다 만들어둔 수봉외외정이 있으니 그걸 어찌 다르게 개량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조금 개량하여 사용하는 게 낫겠지.’
어쨌거나 극양상산의 부활로 상서에 조금 숨통이 트일 테니 나쁘지 않다.
‘그래 이거면 나쁘지 않지.’
놈은 의외로 여러 법술들을 알고 있었고 법기 제련에 관해서는 자신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부하로 부리면 앞으로 여러모로 쓰일 일이 많을 것이다.
‘상서도 걱정 없겠네.’
잃어버린 기술을 다시금 회복하게 됐으니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야 말로 지금의 상서에게 꼭 필요한 일이니.
“이제 사하만 나오면 되려나.”
온전히 상선이 되어 폐관을 마치고 나올 때 즈음이 된다면….
상선 무도전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