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18)
낭선기환담-317화(318/600)
낭선기환담 – 2부 27화
맑게 개인 푸르른 하늘.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마차의 행렬 곁에는 화기린의 문장과 깃발을 내건 소선이 줄지어 구름을 타고 있었다.
“에휴.”
그 마차 안에는 당연히 천범과 사하가 자리하고 있었다.
“웬 한숨?”
반대편에 자리한 사하가 물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며칠 지나자 반말이 입에 붙은 듯하다.
역시 말에는 기이한 힘이 있어 경어를 쓸 때는 좁혀지지 않던 거리도, 말을 놓자마자 신기하게 좁혀졌다.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생기니 마치 오랜 친구를 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지껏 내게 말을 편히 한 자는 거의 없었지.’
해봤자 호리 정도일까.
장천과도 저리 말하지는 않았다.
천범은 피식 거리다 갸웃거리는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탐화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랬다.”
“아아, 큭큭.”
입을 가리고 웃는 모양새가 이전과는 달리 퍽 편해보였다.
“정다운 부녀사이 같던걸?”
“뭐, 끈끈한 사이기는 하지.”
그도 탐화는 딸처럼 생각한다.
이전과 달리 금제가 걸려 있지도 않는데 자신을 따라주니 어찌 이쁘지 않을까. 당연히 이뻐 보일 수밖에.
관계가 달라졌으니 탐화를 달래는 방법 또한 달라지게 된 것이다.
설마 여의주를 달라고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도 자신과 떨어지기 싫어하던 탐화를 생각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 만개한다.
“정말 아버지 같은 미소네.”
“딸이나 다름없으니까.”
“딸이라… 나도 그런 딸 있었으면 우리 가문도 걱정 없을 텐데.”
정말 부럽다는 듯 말한다.
‘내 진짜 딸은 뭘 하고 있으려나.’
처자식이 떠올랐으나 부질없는 짓.
더 생각해봤자 마음만 아플 뿐이다.
천범은 사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딸 낳으면 되잖아.”
“딸은 뭐 혼자 낳니?”
그러자 범의 낯이 묘해졌다.
딸은 혼자 낳는 게 아니긴 하다.
음과 양이 어찌 있던가.
조화가 되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내게 구애하는 것이냐?”
순수한 물음이었다.
허나 그 물음은 사하의 낯을 달아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 내가 언제! 미쳤나 봐 정말!”
“아니면 아니지 왜 소릴 지르고….”
“소리 안 지르게 생겼니? 차, 참나! 우, 웃겨 정말? 누가 너랑 아이 갖고 싶다고 했어? 착각도 자유야 정말!”
“귀 안 먹었다. 왜 그리 소리를 지르고 난리냐.”
“어, 어이가 없으니까 그렇지!”
사하는 홍시처럼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부채를 꺼내 부쳤다.
동그란 모양에 분홍 실로 화기린이 수놓아진 멋스러운 부채였다.
“그거 상선보구나. 사가에는 상선보가 없던 거 아니었나?”
“유품이야. 우리 어머님의.”
“어쩐지 기품이 넘친다 생각했다.”
언제 얼굴을 붉혔다는 듯 칭찬해 주니 희희 웃는다.
단순한 건지 순수한 건지.
“아, 혹시 말이야.”
“뭐 말이냐.”
“범, 네가 나와 아이를 갖고픈 것은 아니야?”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앙큼한 표정을 짓는다.
“왜… 그리 생각하지?”
“그게 그렇잖아? 나와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을 그리 돌려 말한 게 아닌가 했지.”
상선에 오르더니 뻔뻔함이 날이 갈수록 하늘로 치솟는다.
순박해 보이다가도 저리 여우처럼 행동할 때가 있어 신기하다.
“네가 정 그리 원한다면 사씨 세가의 대를 이어야 하는 몸으로서 나쁘지는 않다 생각해. 탐화께 하는 것을 보면 남편감으로도 아버지로도 흠 잡을 곳은 없는 듯 하니.”
새침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는 자태는 색기가 흘러넘친다.
“아서라, 그런 장난은 여인 입으로 함부로 치는 것이 아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파안대소하자 사하는 뾰로통한 얼굴로 다리를 꼬았다.
“통천수궁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한, 두 달이면 도착할 거야.”
“생각보다 빠르네.”
“통천수궁은 수계의 중앙에 위치하기도 하고… 근처까지 가는 건 전송진을 거치면 되니 금방 가지.”
사하는 마침 생각났다며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허공에 펼쳤다.
“이동할 동안은 마침 할 일도 없으니 이참에 다른 주요 가문들과 함께 이곳의 지리도 알려줄게.”
“꼭 알아야 되나.”
수계의 가문은 그 수만 해도 수백 개가 넘어간다.
그것들 전부를 어찌 외울까.
“알아서 나쁠 건 없으니 외워! 혹시라도 알아보지 못하고 실수하면 큰 실례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사하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난 문제를 일으켜도 내가 처리해.”
애초부터 문제를 잘 만들지 않기도 하지만 소란이 일어난다면 알아서 소란을 잠재우는 것도 천범이다.
“그러니 내게 이런 건 필요 없어.”
“범, 널 위해서 하는 일이야. 여러 가문을 적으로 만든다면 너나 나나 좋을 게 하나 없잖아?”
그건 그렇긴 하다.
귀찮아서 얼굴을 찌푸리던 범은 하는 수 없이 가장 거대한 가문을 정리한 글들을 조금 보았다.
“오대세가? 이들이 가장 유명한 가문인건가보네.”
“응, 수계의 오대세가는 우가, 교가, 곤가, 후가, 미가만 조심하면 돼.”
오대세가의 가문들은 하나같이 수만 년을 군림해온 이들이다.
그들 가문에서는 상선이 수십 수백이고 향선과 원선까지 적을 두고 있는 대단한 가문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잘못 걸리면 뼈도 추스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곳이니 사하는 절대로 우, 교, 곤, 후, 미.
이들의 성을 지닌 상선은 물론, 소선도 함부로 하지 말라 신신당부했다.
“소선까지?”
“오대세가의 자제들 중 소선이 있기도 하니까 조심해야지.”
어느 비승 수선이 오대세가의 소선임을 모르고 술에 취해 그를 상처 입힌 일이 있었다.
“미씨 세가였나 그랬을 거야.”
그 소선은 사실 미씨 세가의 자제였는데, 비승 수선에게 화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미가가 발칵 뒤집혀 수선을 찾아 수계 전체를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래서는, 그 수선은 당장에 미씨 세가에 잡혀 목이 잘렸지.”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등선했는데 소선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오대세가의 힘은 수계의 여타 가문들 몇 십을 모아도 어림없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돼.”
오대세가 중 미씨 가문이 조금 유별난 이유도 있으나, 다른 가문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한다.
천범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도전만 치르다가 오는 게 좋겠어.”
“그게 제일 최선이기는 하지….”
사하는 쓰게 웃었다.
눈앞의 사내는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사하는 아니었다.
‘네가 그러려고 해도 아마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지.’
무도전의 우승까지는 확답할 수 없으나 그 근처까지만 가도 상선은 무한한 영광과 함께 주목을 받는다.
자연스레 이목이 집중되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범의 말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항상 곁에 있어야….’
문제가 일어나도 어찌저찌 무마시킬 수 있을 터다.
걱정 없다는 듯 말하는 범이지만, 그는 놀랄만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고 대수롭지 않게 처리한다.
분명 대단한 수완이고 심계였으나 변방의 작은 지역에서는 그러해도 이제부터는 조금 어려운 일이다.
사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무탈한 여행길이 되기를.’
무도전의 성과가 없어도 그와 자신의 가문에게 아무런 해가 없기를.
그리고 그때였다.
덜컹!
마차가 흔들렸다.
“무슨 일이냐!”
“자,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주님!”
무슨 일인가 싶어 아미를 좁히던 사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일어났다.
“잠시 다녀올게.”
“나도 나가볼까.”
“아니, 범은 여기 있어.”
별일이겠냐 싶어 고개를 끄덕이니 사하가 마차 문을 열고 나갔다.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나간 지 한참이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게 걱정스러워진다.
“무슨 일이 났나.”
싶어 일어서려는 찰나.
쿠우웅!!
격한 굉음이 들려왔다.
“!”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하다.
천범이 곧장 밖으로 나서자 새까만 운무가 전역에 가득했다.
“무슨 일인가!”
별일 아니라 생각했건만 사방이 온통 흑운으로 가리어져 앞이 깜깜해 보이지가 않다.
지금 시각이 한창 어두운 밤이기는 하나 이 정도 일 리가 없다.
“우, 운적입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운적(雲城)?”
구름 운에 도둑 적.
“해적, 산적 그런 놈들이라는 거냐?”
“예! 맞습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뭔 놈의 도둑놈들이 구름 속에 숨어 도적질을 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다 막혔다.
“하긴, 말이 되기는 하네.”
해적과 산적이 왜 그런 이름이던가.
바다를 터로 삼아서 해적이고, 산을 터로 삼아서 산적이다.
그렇다면 구름을 터로 잡았다면 그게 바로 운적이지 않던가.
“이름 하나 기깔나네.”
천범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졌으나 마냥 웃을 일은 아니었다.
“모여라! 상선을, 가주를 지켜라!!”
사가의 소선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운적을 대비해 마차와 물품을 지켰다.
쿠우웅! 콰앙!
흑운 사이로 번쩍번쩍이는 적화를 보니 사하는 벌써 운적들과 마주해 전투를 치르고 있는 듯했다.
“흠….”
신식으로 둘러봤으나 사방에 드리운 흑운이 보통 법술이 아닌지 제대로 살필 수가 없다.
“일단은 흑운부터 걷어볼까.”
이 흑운 탓에 소선들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듯하니.
그는 곧장 수결을 맺고 자신의 손아귀를 펼쳤다.
그러자 자색 뇌전이 번쩍이며 갈라진 손바닥 안에서 수분법목이 나타났고, 뇌조의 형상이 튀어 올랐다.
쿠르르릉!!
우렛소리가 만연하자 마차를 지키던 소선들이 화들짝 놀랐다.
범은 입을 달싹여 뇌조를 수백 자루의 뇌창으로 만들었다.
“가라!”
불천불벽의 뇌창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쏘아져 흑운 속에 자리 잡았다.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느끼던 범이 순간 눈을 뜨며 손을 털었다.
콰지지지지직!!
콰자작!
사방에서 자색의 뇌우가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벼락 잔치가 벌어졌다.
“크아아악!”
“으악!!”
“피, 피해라!”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메아리쳤고 단번에 흑운이 사라졌다.
천범은 손을 휘저어 바람을 일으켜 불천불벽의 독기를 밀어내고 외쳤다.
“놈들을 잡아라.”
사가의 소선들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단번에 달려 나갔다.
적의 대부분은 천범의 뇌전에 당해 명을 달리한 지 오래였고, 남아 있는 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범은 그들에게 신경을 끄고 주변을 살폈다.
쿠웅!!
저 멀리 하늘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하!”
사하는 웬 사내과 여인 하나와 접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수세에 밀려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슬쩍 보니 저 둘이 운적의 우두머리인 듯하다.
‘둘 다 상선이로군.’
상선이 어찌 운적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쓰러트려야 할 적임이 진배없다.
스윽.
그의 신형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카앙!
“범!”
운적의 창을 막으며 사하의 곁으로 나타났다.
“괜찮나.”
“괜찮아.”
그녀의 손에는 어머니의 유품이라던 부채가 들려 있었다.
부채에 수놓아진 화기린 두 마리가 튀어나와 주변을 맴돌았다.
적색 불꽃으로 이루어진 화기린.
그것을 다루는 상선보인 듯하다.
그 위력은 화신통을 익히는 천범이 보아도 나쁠 것 없으나 그를 다루는 사하의 실력이 어색했다.
차라리 화신통을 다루는 솜씨는 사악이 더 나았다.
‘가르칠 게 많네.’
그러나 우선은.
“네놈들은 대체 뭐냐.”
상선임에도 불구하고 운적 노릇이나 하고 있는 놈들의 정체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