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19)
낭선기환담-318화(319/600)
낭선기환담 – 2부 28화
“빌어먹을 가선들에게 알려줄 이름 따위는 없다!”
“가선?”
“일반적으로는 가문의 신선이란 뜻이지만 이놈들이 말하는 건….”
거짓 가.
신선 선.
가문의 밑으로 기어 들어간 가짜 신선을 말하는 은어였다.
“웃기는 놈들이군. 남의 짐이나 훔치는 도적들이 무슨 낯짝으로 가문의 신선을 욕한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저들은 그렇지 않은 듯 핏발 선 눈으로 살기를 내뿜는다.
“쯧.”
더 이야기를 나눌 가치가 없다.
“범. 무조건 사로잡도록 해.”
“어째서냐.”
“이 하늘 아래는 곤씨 세가가 지배하는 여의천(餘意天)이야. 그리고 여의천의 운적은 꽤 유명해.”
“그리 유명한 자라면 손속에 사정을 볼 수가 없을 텐데 어찌 사로잡나.”
“아니, 우리는 저들을 죽여서는 안 돼. 사로잡고 다시 풀어줘야 해.”
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허나 사하는 더 없이 진지했다.
이유가 궁금했으나 그걸 물을 여유는 없을 듯하다.
“일단은… 뜻대로 하지.”
“고마워.”
“쫑알쫑알 말이 많구나! 목숨이 아깝다면 어서 내빼는 게 좋을 게야!”
운적 여인이 수결을 맺고, 사내가 입을 달싹이며 법문을 외우자 삽시에 검은 먹구름이 사방을 둘러쌌다.
사내와 여인이 흑운 속으로 사라지자 쇳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린가 하여 잠자코 있자 흑운에서 사내와 여인의 숫자가 수 배로 불어나 창을 내질렀다.
“죽어라!”
사방에서 찔러오는 창과 검.
천범의 손이 금색으로 물들었다.
카앙, 카앙!!
“범! 절대로 저들을 다치게 하지 마!”
“쯧. 알았다니까!”
까강! 까앙!!
금색 꽃잎.
균천보화로 물든 손으로 운적의 검과 창을 막아낸다.
“흡!”
카앙!
더불어 무기까지 박살내버리자 운적은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
스윽.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보검이 운적의 목에 드리웠다.
그러자 흑운 속에 숨어있던 여인이 튀어나와 그를 구하려 했으나.
“흣!”
어느새 그녀의 주위로는 금색의 꽃잎이 가득했다.
만연한 꽃잎은 꽃봉오리가 만개하듯 피어나 한 잎 한 잎이 날카로운 보검으로 변하여 겨누어졌다.
수천, 수만의 보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꿀꺽.
운적들은 검 하나하나에 담긴 기운과 그의 살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꼼짝할 수도 없도록 온몸을 겨누고 있으니 숨도 편히 쉴 수 없다.
“사하, 이제는 말해. 왜 내가 운적 무리를 해하면 안 되는지.”
범은 운적의 목에 검을 드리운 채 물었다. 어째서 이들을 죽이면 안 되는 것인지, 도적질이나 하며 신선의 명예를 실추하는 자들에게 어찌하여 해를 입히면 안 되는 것인지!
차분한 음성 속에 싹튼 그의 분노를 모를 리 없는 사하는 작게 안도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들이 여의천의 운적임과 동시에 곤씨 세가의 신선이기 때문이지.”
“…뭐?”
운적이라며 습격을 감행한 이들이.
곤씨 세가의 신선?
* * *
여의천의 곤씨 세가.
수계의 오대세가 중 하나로서 방대하고 커다란 땅을 다스리며 그에 따른 많은 상선과 향선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가문 중 하나이다.
곤씨 세가는 특유의 본신이 붕새이기 때문에 풍신통을 대성한 수선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어쨌거나 그러한 여의천의 궁궐 같은 대궐에 천범과 사하는 웬 소녀와 대좌하고 있었다.
“상서의 가주님과 그 가선… 흠.”
스물이 채 되어 보이지 않은 모습의 소녀는 붕새의 문양이 내걸린 궁장을 입고 있었는데, 천범과 사하를 평가하듯 세밀하게 그들을 살폈다.
“영애. 우리는 곤씨 세가의 신선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허나 우리 집안 소선들 몇이 상서 가선의 신통에 죽어나갔죠. 소선도 엄연히 저희 집안의 재산입니다.”
무릎 위에 올려둔 사하의 주먹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뭣 같군.’
화가 나는 건 천범도 마찬가지였다.
대충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여의천의 곤씨 세가의 영애.
곤사비(銀死秘)였다.
곤사비는 곤씨 세가의 직계 혈통으로 곤씨 세가의 금지옥엽이라, 하는 짓이 개망나니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악질이라 한다.
여의천에서는 곤사비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로, 악명이 수계 전역에 퍼져있어 웬만한 향선보다 더 유명하다.
그리고 그 악질 중의 악질이 요새 푹 빠진 일이 바로 운적이라고 한다.
하여.
‘가문의 상선에게 운적질을 하라 종용하고 그들이 다치거나 하면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라….’
기가차서 말도 안 나온다.
“생명의 무게를 한낱 가문의 재산으로 취급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오나 어쩌겠습니까. 이렇게라도 하여 죽은 그들의 넋이라도 달래주고 다음 생에서는 부디 편안한 삶을 살기를 빌어주어야지요.”
말은 청산유수다.
듣는 사람 속을 시커먼 숯덩이로 만들기에 아주 적절한 어투요, 애잔한 표정 연기다.
“죽은 소선의 수가 여섯. 상해를 입은 수가 열다섯. 도합 스물 하나의 저희 재산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니 상서의 사씨 세가는 적절한 위로금을 전달하셔야 함이 옳겠습니다.”
후우.
사하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순 날강도가 따로 없다.
소선 가지고도 이리 나오는데 만일 상선마저 죽였다면 도대체 어디 까지 불렀겠는가.
어찌 운적, 운적거리나 했더니 눈앞에 있는 년이 바로 운적 아니던가!
“허나 영애. 저희는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을 운적이라 말했으니….”
“글쎄요. 저희 가선은 제게 이르기를, 여의천의 하늘에 침투한 이들에게 흑운의 신통을 사용해 눈을 가리고 그들의 신분과 통행 사유를 전해 들으려 했으나 다짜고짜 공격받았다고 하더군요. 제 말이 틀립니까?”
“그건….”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딱 이 말이 아니던가.
곤사비의 말은 틀린 점은 없다.
그러나 맞다 하기도 애매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운적이니 죽임 당하기 전에 먼저 때려 눕혀야 했으니 정당방위이지 않던가.
사하는 억울하기 그지없었으나, 오대세가 중 하나인 곤씨 세가의 금지옥엽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그녀의 악명을 생각하면 더더욱!
“위로금은 어떻게….”
“본래는 곤가의 것을 해했으니 능히 일벌백계하여 엄히 다스려야 하나!”
곤사비는 씨익 미소 지으며 나긋나긋한 어조로 바꾸었다.
“상서의 가주와 무도전에 나가셔야 할 상선에게 그럴 수야 없지요. 하여, 매년 원근(原根) 열 냥이면 족합니다.”
원근(原根)?
그게 뭔가 싶어 사하를 쳐다보니 아연실색하고 있었다.
“워, 원근 열 냥이라니요! 열 돈이라도 쉽게 구할 수가 없는데 열 냥을 저희가 어찌 구한단 말입니까!”
“하면, 사 가주께서는 소선의 목숨이 원근보다 못하다는 말씀입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곤사비의 냉랭한 어조에 사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원근이 뭔데 그래.
전음으로 묻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답한다.
-원근은 근원의 뿌리라는 뜻으로 이곳의 선기. 그것이 자연적으로 뭉쳐져 나온 돌을 뜻해.
이를테면 원천강 같은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드는 원천강에 비해 지닌 선기는 적다.
허나 그것은 엄연한 천지일월의 기운이니, 값비싸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수계에서는 그 원근이라는 것이 화폐로 이용되는 편이다.
-열 냥이면 적은 거 아냐?
열 냥이면 손바닥도 안 되는 크기의 돌 열개라는 소리다.
그 정도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오대 세가나 그런 데면 몰라도 우리는 아니야. 당장에 내가 가지고 있는 원근 네 냥이 전부야.
천범의 낯이 찌푸려졌다.
‘거 소선들은 왜 그리 약해빠져서 한 방에 다 죽어버리고 난리람.’
뒷목을 긁적거렸으나 해결되는 일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눈앞의 곤사비가 영 꼴 보기 싫다.
생각해보면 다 이년 때문에 생겨난 일 아니던가.
가만히 있는 사람 가선 시켜서 덮쳐놓고 상해를 입혔으니 돈을 내라니.
뭐 이런 게 다 있냔 말이다.
그야말로 눈뜨고 코 베인 격이다.
‘도망은 안 되겠지.’
오대세가 중 하나인 곤씨 세가다.
도망쳐도 근 시일 내에 상서로 그들의 가선이 들이닥치거나 통천수궁의 무선들이 나타날 터.
딱히 방도가 없다.
“영애, 혹 값을 깎을 수는 없을까요? 지금 저희가 가문의 사정상 매 년 원근 열 냥은 불가능해요.”
“생명의 무게가 그렇습니다. 이리 무겁고 지엄하죠. 하여, 저는 그 무게를 통감하니 감히 삶의 값을 감면 해달라는 야속한 말 거두어주세요.”
말이 안 통한다.
가증스럽게 뱉어내는 말과 서글프다는 듯 지어내는 얼굴이 영 아니꼽다.
‘마음만 같았으면 콱.’
때려죽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속에 화딱지만 쌓인다.
사하와 곤사비는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만 주구장창 이어나갔다.
사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심이 짙어졌고, 애간장을 졸였다.
그런 반면 곤사비는 점점 표정이 풀어져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자신에게 쩔쩔매는 사하의 모습에 웃음을 꾹 참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지요. 하면, 이건 다르게 지불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곤사비가 묘안이 있다며 말했다.
“다르게 지불이라 함은….”
“제아무리 생명의 무게가 무겁다 한들, 상선에 달하지는 못하지요. 상계의 이치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아까와는 엇 다른 표현에 사하의 아미가 씰룩거린다.
허나 원근이 아닌, 다른 방도가 있다하니 꾹 참아냈다.
“저희 가선에게 듣자하니, 상서의 상선께서 무위가 그리 출중했다 하니 저희 곤씨 세가에 입적하신다면 없던 일로 해 드리죠.”
쿵!!
곤사비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려쳤다.
“말이… 조금 심하십니다, 영애.”
“제가요? 글쎄요. 그리 부당하지는 않은 듯한데. 그렇게 발끈하실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선택권을 여러 개 쥐어줬을 뿐인데요.”
곤사비는 기분 나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는 범을 바라봤다.
“천 수선이시라죠? 그대는 어떻습니까. 변방의 작은 가문에 귀의하는 것보다는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저희 곤씨 세가에 적을 두는 것이.”
그러자 사하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천 수선은 저희 상서의 사가에 없어서는 안 될 가선입니다. 게다가 이미 상서의 이름으로 무도전에 가입도 해 놓았고요.”
“그거야 바꾸면 될 일 아닙니까. 글자 하나 고쳐 쓰는 거야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악녀였다.
사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씨 세가는 하지 못하는 일을 곤가는 어렵지 않게 해낸다.
이게 바로 오대세가다.
여러 가문들로 인해 이루어진 통천수궁도 오대세가의 입김은 무시할 수 없다.
사하는 천범을 바라봤다.
다른 자였다면 떠났을 것이다.
허나 천범은 아니다.
상서가 그 어느 때보다 쇠락하고 망하였을 때 그가 나타났다.
단번에 손을 내밀었고, 그로 인해 상서는 살만한 곳이 됐다.
‘범은 배신하지 않아.’
이 상황을 타파는 그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
이제껏 도움은 수도 없이 받았다.
이제는 그 은혜의 대한 보답이자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함이 옳다.
그리하면 그가 한 고생이 헛수고처럼 보이지는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지.’
사하는 결심했다.
지금은 방도가 없으나 범과 자신이 무도전에 나가 높은 순위에 이른다면 원근 열 냥 정도는 어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이 거래도 다르게 바꿀 수 있을 터.
“영애.”
사하가 결단을 내리던 그때.
입꼬리를 끌어올린 그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좋아, 곤씨 세가의 가선이 되지.”
사하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