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2)
낭선기환담-31화(32/600)
낭선기환담 – 31화
온통 붉은 피부.
머리 위에 돋아난 두 개의 뿔.
그리고 구슬 보패를 사용하는 인물은 산군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삼귀가 대체 왜 이곳에….’
자신들을 귀수(鬼獸)라 부르며 도사들과 대척하는 집단.
십해만척귀 중 정점에 선 십귀(十鬼) 중 하나가 바로 삼귀(三鬼)다.
일귀부터 십귀까지.
총 열의 귀수들은 도사라면 치를 떨며 죽이려 하는 놈들이다. 한데 그런 귀수가 어찌 일월문의 영내산에 나타났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해가지 않는 것은 놈의 경지.
‘최소 영겁(靈劫)의 경지를 가지고 있을 놈이 어찌 영결(靈結)이지?’
하지만 아무리 경지가 낮아졌다 한들 삼귀는 삼귀. 본래 영겁 영수인 만큼, 수행이 낮아졌다 해도 동급의 비선 정도는 씹어 먹을 것이다.
‘도망쳐야 해.’
삼귀가 대체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도망치는 게 급선무다.
귀수는 대부분 도사에게 적대적이다.
그러니 놈은 영내산 안에 있는 도산들을 전부 죽일 터.
-산군 진정하십시오!
화란의 일갈에 산군이 발을 멈췄다.
너무 흥분했다.
뜻하지 않은 만남이기에 더 그랬다.
삼귀.
분명 위협적인 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도 통용될까.
자신은 인간이 아니다.
영수다.
그리고 삼귀의 본질 또한 영수.
산군의 적안이 번득였다.
눈앞에 있는 도사는 태산파 셋과 빙궁의 도사 한명. 자신에게 등을 보였으니 죽이는 건 간단하다.
그리고 만삼은 말했다.
태산의 도사들이 금장지태에 관한 사실을 함구하려 빙궁을 칠 것이라고.
‘나 또한 가만두지 않겠군.’
그의 적안이 차갑게 일렁였다.
손아귀에 어느새 구환도가 들렸다.
한발, 한발 내딛자 흠칫 몸을 떠는 도사들이 보였다.
“뭐….”
뒤를 슬쩍 돌아본 도선 하나가 눈을 치켜떴다. 그와 동시에.
구환도가 사선으로 그어졌다.
최악!
눈을 끔뻑거린 도사의 머리통이 빙그르르 허공에서 돌았다.
“네, 네놈!”
멍청한 낯으로 소리치는 도선 하나.
곧장 땅을 구르는 도선이 하나.
지면을 밟고 물러서는 도선이 하나.
누굴 죽일지는 간단했다.
촤아악!
“아아악!!”
또 하나의 머리통이 허공을 날았다.
죽인 이는 태산파의 도선들.
이제 남은 건 둘.
빙궁의 태찬과 태산의 고준.
그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경악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도선들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는 그때.
산군이 구환도를 내던졌다.
쇄애애액!
날카로운 소음이 대기를 갈랐다.
“어딜!”
고준 도사가 몸을 비틀었다.
가볍게 피했을 때.
산군은 수결을 맺었다.
“죽여라.”
음산한 음성에 구환도가 요동쳤다.
-끼에에에에에!
귀곡성이 터져 나오고, 갇혀있던 악귀들이 빠져나왔다.
“뭐, 뭣! 놔라!!”
“도사!!”
그때였다.
강력한 와류를 동반한 붉은 구슬이 나타났다. 그것은 이내 붉은 빛줄기로 변해 빛살을 일으키며 태찬을 가로 질렀다.
쉬이이익!
퍽!
태찬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나갔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이놈! 이노오오옴!!”
고준은 악귀들에게 씹어 먹히며 핏물을 토했다. 그 모습에 산군이 손을 휘적였다.
악귀들은 단숨에 놈을 집어 삼키고 구환도로 빨려 들어갔다.
“후-”
터벅터벅.
흙먼지가 걷히고 붉은 피부의 인영이 유유히 걸어왔다.
삼귀.
그의 눈동자가 산군을 훑었다.
이내 눈가를 좁혔다.
의구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산군은 그의 앞으로 달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호오. 뭐지?”
“영화에 있는 자로서 십해만척의 귀왕께 예를 갖춥니다.”
삼귀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십해만척의 귀왕.
“재밌는 놈이군.”
산군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귀수들은 모두 잔학하고 손속이 매서우나 그것은 도사에게 국한된다.
별일이 아니라면 같은 영수를 죽이는 일은 잘 없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무슨 일로 이곳에 들어온 거지?”
“…금장지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금장지태? 호오…. 그래서 그 금장지태는 어디 있더냐?”
산군은 조금 주저하다 고준의 옷가지에서 공정강을 꺼냈다. 그것을 건네자 삼귀의 낯에 미소가 떠오른다.
“맞군….”
그는 잠시 공정강을 만지작거렸다.
언뜻 탐욕이 그의 눈에 어른거렸으나 이내 공정강을 산군에게 던졌다.
“십해의 귀왕이 아랫 것의 보물을 가로챌 것 같더냐. 그런 무뢰배는 아니니 걱정 말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때 노인 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이전에 보았던 인물로, 산군을 이곳으로 데려온 만호 노인이었다.
만호 또한 그를 알아봤는지 눈을 치켜뜨며 놀라다가 표정을 감추고 삼귀에게 공정강을 건넸다.
“이것이 다더냐.”
“무, 물론입지요!”
삼귀는 그가 가져온 공정강을 다 들여다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군. 내 복충 한 마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속으로 뜨끔한 산군은 짐짓 모르는 척 안색을 굳히고는 물었다.
“하나 말씀드려도 되겠는지요.”
“말하라.”
“아직 환진의 영향권입니다. 빙궁의 도사들이 이곳에 있으니 먼저 빠져나감이 옳지 않을런지요.”
삼귀는 산군을 의아하게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나 삼귀가 고작 도선들을 두려워하겠느냐? 놈들의 피와 살을 씹고, 혼을 먹어치울 것이니라.”
흉흉한 안광을 발하며 말하는 삼귀의 모습에 산군은 고개를 주억였다.
“우리들의 적은 본디, 세상을 자신들의 것이라 여기는 도사들이지 않더냐. 응당 이리하는 것이 마땅하지!”
우리들이라….
그의 말대로 도사들은 영수를 쓰기 좋은 가축이나 자신들의 보패를 제련할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다.
어찌 보면 헤아릴 수 없는 그의 도사에 대한 집착과 분노는 당연했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그러나 그것이 산군에게도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산군은 인간이며 영수인 존재.
그에게 인간과 영수의 차이란 없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면 죽인다.
오직 그러한 개념만이 지난 100년간 그가 일깨운 이치였으니.
“가자, 일단 놈들을 정리하고 영내산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하니까 말이야.”
환무 속을 거침없이 나아가는 삼귀의 발걸음을 산군은 묵묵히 따랐다.
* * *
환진의 중심.
그곳에는 총 네 명의 도선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삿갓을 쓴 백련을 제외한 여선 셋으로 방궁의 도선들이었다.
“태 사형은 왜 보이지 않는 겁니까?”
여선 중 하나가 불안에 떨며 말했다.
“글쎄. 환진은 이미 우리 손에서 벗어났고 사형은 모습을 비추지 않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비장한 낯으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시시각각 조여드는 돌풍은 칼날처럼 그들의 옷자락을 찢고 있었다.
그것을 억지로 호신막으로 막아보고는 있으나 언제까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백련 사매! 무슨 방도가 없을까?”
“물을 것을 묻거라. 도계에 입문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사매가 어찌 알겠어.”
“그,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호신막이 깨질 때까지 버티다 죽을 것입니까? 연 사저도 딱히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방도가!”
연 사저라 불린 여인은 침묵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사형이 없어진 지금, 이곳에서 제일 경지가 높은 것은 연 사저였지만, 딱히 이렇다 할 방책은 없었다.
사형이 나타나 주길 바라고 있지만, 일이 이 지경까지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제 희망은 버려야 할 때였다.
“내가 그걸 왜 모르겠어. 마땅한 방도가 없으니 누군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 때야. 환진에 다른 도사들의 기척이 느껴졌었으니 그들과 합류한다면….”
그때였다.
여인 중 하나가 희색이 어린 낯으로 허공을 손짓하며 소리쳤다.
“사, 사저! 누군가 옵니다!”
“사형이 아닐까요?”
돌풍이 휘몰아치는 와중, 세 명의 인영이 바람의 장막 너머로 흔들렸다.
여선들의 낯이 밝게 피어났으나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사매들 피해!!”
콰가가가가각!!
지면을 깨부수며 날아오는 두 개의 붉은 구슬.
“꺄아아아악!!”
“사제!!”
다른 이들은 피했으나 한명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직격했다.
위치가 좋지 못했다.
그녀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류곡자의 와류에 휘말렸다.
이내 진득한 혈향이 내려앉았다.
툭, 투툭!
조각조각으로 흩어져 떨어져 내리는 살점은 인간이었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여선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누, 누구냐!”
호통을 치는 듯한 큰 목소리.
하지만 명백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삼귀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알아서 무얼 할까. 어차피 곧 내 뱃속으로 들어가게 될 텐데.”
“요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삼귀의 손가락이 움직임과 동시에 류곡자가 다시 한번 와류를 일으키며 그녀들에게 쇄도했다.
삼귀가 부리는 보구 류곡자.
그것을 어찌 도선들이 막겠는가.
앞서 죽어나간 이들처럼 그녀들 또한 삼귀의 패도에 지워질 것이다.
안타까웠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들을 도와줄 의(義)는 없다.
그리 한다면 당장 자신이 죽을 텐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그때였다.
삿갓을 둘러쓴 조그마한 도선이 허리춤에 걸린 검을 꺼내 들었다.
투명한 검신이 꼭 얼음으로 이루어진 것 같이 아름다웠다.
은은한 한기를 내뿜는 검을 들고 도선은 입을 달싹여 검을 지면에 꽂았다.
스아아아.
이내 지면이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쉼 없이 주술을 외우는 듯 입을 달싹이며 수결을 맺으니 지면에서 돌연 빙산이 솟구쳤다.
카가가가가가각!!
류곡자와 빙산이 부딪쳤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류곡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듯 했다.
“백련 사매!”
격렬한 접점에 광풍이 휘몰아쳤다.
새하얀 한기가 바람에 이지러졌다.
백련의 삿갓이 바람에 흩날려 벗기어지니, 새하얀 머리칼이 흐드러졌다.
백발, 그리고 눈동자는 벽안.
푸른 눈동자는 왠지 모르게 공허했으나 흔들림은 없었다.
“백발이라…. 아직까지 그 혈통이 끊기지 않았을 줄이야.”
삼귀가 그녀를 보며 조소했을 때.
산군은 경악성을 내지를 뻔했다.
‘초아가 왜…!’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백련이라 불리고 어째서 빙궁의 도사가 되었는지 의아했다.
분명 곤륜으로 갔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빙궁의 도사가 되었을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보다 애매해진 것은 지금 자신의 위치였다.
삼귀는 저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초아를 살려야….’
하지만 그 말은 삼귀와 적대해야 한다는 것과 진배없다.
“사매! 환진의 유지에 신경 써!”
“예, 사저!”
백련을 제외한 두 명의 여선이 수결을 맺고 지면에 두 손바닥을 짚었다.
그러자 환무가 더 짙어지고 주변 온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백련 또한 재빠르게 손을 놀리며 바닥을 짚었다.
그때였다.
그녀의 주위로 한기가 요동치더니 순간 새하얀 불꽃으로 화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불타올랐다.
백염은 이내 몸집을 부풀리고, 류곡자를 막아선 빙산이 타올랐다.
백색으로 타오르는 빙산.
그 위세에 맹렬히 부딪치던 류곡자도 그 힘을 잃어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