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25)
낭선기환담-324화(325/600)
낭선기환담 – 2부 34화
콰아아아아아앙!
하늘에 떠 있던 해가 떨어지면 바로 이렇게 되는 게 아닐까?
사하는 그리 생각했다.
“꺄아아악!”
범의 허리춤을 붙잡고 냅다 소리를 질러본다. 그는 우직하게 서 있으나 주변의 적들은 아니었다.
“살려…!”
비명조자 지르지 못하고 태천외양신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화아악!
퍼진 금색 화염은 삽시에 퍼져나가 일대를 불살랐다.
그를 위협하던 적들은 금화 속에서 검은 그을음으로 사라졌다.
그의 등을 껴안고 있던 사하는 슬쩍 한쪽 눈을 떴다.
“허….”
그녀의 눈에 비추었던 숲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죄다 타버리고 메마른 비척한 땅만이 존재했다.
사방에 존재하는 것은 메마른 땅과 그 위에 자리한 금색 화염.
사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전까지는 포근하고 따뜻하게만 보였던 범의 화염이다.
한데 지금 보이는 그의 금화는 맹렬하게 모든 걸 잡아먹고 지워버렸다.
밝게 빛나는 금화 탓에 깊은 새벽임에도 그와 그녀를 밝게 비췄다.
“용케도 살아남았군.”
서늘한 음성이다.
시리도록 차갑고 살기 짙은 그의 목소리에 사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범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저 멀리,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린 신선의 몸이 튕겨져 왔다.
턱!
“컥!”
범의 손아귀에 신선의 목이 잡혔다.
가까이서보니 그의 상태는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더 심했다.
팔다리는 새까맣게 타버려서 바스러져 있었고, 전신이 숯덩이가 되어 살아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본신으로 변할 힘도 없는 모양이다.
“사, 살려… 주시게.”
메마른 목소리였다.
음성을 내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목소리. 다 죽어가는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질 만도 하건만, 그는 관심 없다는 듯 원옥을 꺼내 부숴버렸다.
콰직.
깨어지는 원옥과 함께 신선의 단말마가 낮게 퍼졌다.
화르륵.
그마저도 금화로 다시 태워버린다.
잔혹하면서도 깔끔한 손속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련의 동작에서 사하는 그가 살아온 일부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무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세계에서 살아왔을 터.
그런 그가 조금 무섭기도 했으나 잠시뿐이다. 눈앞의 널찍한 등은 그녀를 지켜주는 가장 강하고, 듬직한 것이었으니.
그때 범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괜찮느냐.”
사하는 그가 덮어준 윗옷을 꼬옥 쥐며 답했다.
“괜찮아. 너는?”
“무탈하면 되었다.”
“넌 어떠냐고 물었잖아!”
기습으로 인한 상처는 이미 아물었지만 탈형의 모습이다.
본신이 어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아.”
“…그럼 됐어.”
입술을 삐죽거린 그녀는 괜히 성을 내며 윗옷을 건넸다.
“가져가.”
자신 탓에 웃통을 까고 있으니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허나 범은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더니 한마디했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그리 헐벗고 다니는 거 아니다.”
“뭐?”
순간 고개를 내린 사하는 후다닥 윗옷으로 가슴을 감췄다.
“봤어?”
그녀의 물음에 천범은 굳이 답하지 않고 공정강에서 여벌옷을 꺼내 던지고 자신도 갖춰 입었다.
“사하. 가문의 소선들을 챙겨라.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휩쓸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어, 어! 그래야겠어.”
여기저기 폭음이 들려온다.
격렬한 전투의 소음 중의 대부분은 뇌전의 날카로운 소리.
상황이 어찌될지는 모르겠으나, 우선은 사씨 가부터 챙기는 게 맞다.
“가자.”
신식은 깊게 퍼트린 범은 사하를 힐긋 보고는 하늘을 갈랐다.
금색 빛줄기로 단번에 날아가 거처로 도착해 주변을 살핀다.
“금천님!”
순이였다.
“무사한가.”
“순아 괜찮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으나 어디 다친 구석이 있지는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보다는…!”
사가의 소선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품에서 상선보를 꺼낸 사하는 곧장 화마를 내뿜으며 달려 나갔다.
‘잔당들이군.’
앞서 보았던 놈 가문의 소선들이다.
사하가 나타나자 부리나케 도망가지만 그 꼴을 두고 볼 그녀가 아니다.
부채를 휘두르자 적화에 휩싸인 화기린이 나타나 그들을 모조리 태워 죽여 버렸다.
‘저들이 원하는 건 뇌신이다.’
사가에서 뇌신통을 다룰 줄 아는 자는 천범뿐이다.
하니 어디선가 자신을 또 노릴 잔당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굳이 그들과 싸워줄 필요는 없다.
“우선….”
범은 새하얀 목검 열두 자루를 꺼내 지면에 꽂았다.
항보사인검이었다.
단숨에 우윳빛 기운이 솟아났다.
그가 수결을 맺자 솟아오른 항마의 기운이 형태를 갖추고 지면으로 스며들어 글자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화란.”
손아귀를 펼치자 은은한 금빛을 뿌리는 보검 한 자루가 나타난다.
범의 본선법패, 균천보화 화란이다.
백 자루로 분열시켜 꽃잎으로 만들고는 사방에 놓아 검진을 만들었다.
이내 천범의 반경 이백 장이 금빛으로 물들고 새하얀 안개로 짙어졌다.
범은 즉시 소선들에게 명했다.
“호법이 필요하다.”
“존명!”
사가의 소선들은 즉시 그를 중심으로 무릎 꿇으며 호법을 서기 시작했고 사하 또한 그의 등을 지켰다.
천범은 쉴 새 없이 입을 달싹이며 좌선했고, 그의 몸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며 금색 기운이 찬란했다.
잠시 후.
“금천님!”
진법 위에 좌선한 소선 하나가 소리쳤다. 그의 결계 안으로 누군가가 침투한 것이다.
모두들 긴장감이 곧추섰다.
그것은 사하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오직 천범은 차분했다.
“괜찮으니 대기해라.”
이내 그가 수결을 바꿨다.
그러자 사방에서 꽃향기가 물씬 풍기며 동시에 비명이 가득 찼다.
흠칫 놀란 사하가 동그란 눈으로 범을 올려봤다.
“궁금하더냐.”
범은 다시 수결을 바꾸고는 차분히 눈을 감았다.
“궁금하면 내 등에 손을 올려라.”
사하는 무엇에 홀린 듯 그의 등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그녀의 오감이 진법 자체와 연결되어 보이지 않아도 땅 위에 모든 것이 상세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발자국.’
처음 느껴지는 것은 진법 안으로 들어선 이들의 발자국이었다.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나 똑똑히 느껴졌다.
동쪽에 넷.
북서쪽에 다섯.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진법의 위력을 알았는지 속도는 느렸고 잔뜩 경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래 봤자.
“내 손바닥 안이지.”
다시 한번 수결을 바꾸자 진법 곳곳에 수놓아진 꽃잎이 떠올랐다.
떠오른 꽃잎은 하늘하늘 거리며 바람을 타고 다니다 침입자의 어깨에 떨어졌다.
“뭐야.”
어깨에 떨어졌던 꽃잎은 이내 스르르 떨어져 내렸다.
“웬 꽃잎이….”
의아해하며 꽃잎을 주우려 허리를 숙이자.
‘어라.’
그 자의 머리도 함께 떨어졌다.
“건 수선! 컥, 크어억!”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화란의 꽃잎 한 장은 수백 자루의 검과 같다.
그들이 이미 꽃잎을 보았다면.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꿀꺽.
사하는 순식간에 모조리 사라지는 적들의 기척에 소름이 돋았다.
진법의 눈에 자리했기에 더욱 선명하게 적들의 기운을 알 수 있었다.
소선도 있으나 상선도 있다.
아니, 있었다.
한데 그가 수결을 몇 번 바꾸자 꽃잎이 날아가 그들을 도륙했다.
수결을 바꾸지 않아도 되었다.
진법에 놓아진 꽃잎을 밟기라도 하면 다리부터 산산조각이 났으니.
“기척이 사라졌습니다.”
사가의 소선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범을 우러러 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진법을 구축하고 검진을 펼쳐내기란 쉽지 않다.
상선이라도 관련 비술을 익히지 않거나 보물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허나 그는 가능했다.
게다가 그 진법과 검진의 위력도 무시무시할 지경이니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서를 일으켜 세운 것만으로 금천이라 불리는데 눈앞에서 이런 무용까지 목격했으니, 존경심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무리도 아니다.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이대로 진을 유지하고 태세를 정비한다.”
“존명!!”
두 시진 뒤.
천범은 항보사인검과 화란을 거두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참아온 숨을 터트리자 그와 동시에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내리꼈다.
어느새 해가 중천이었다.
‘대충 마무리가 된 모양이군.’
신식을 퍼트려 살피자 이 근방에 전투가 지속적인 곳은 없었다.
피 냄새만 가득할 뿐이었다.
“거처를 다시 알아봐야 할 거다. 아니면 만들던가 해야겠지.”
이 주변은 거의 초토화가 되었다 봐도 무방하니 아마 막사를 짓거나 해야 할 것 같았다. 사하는 곧장 소선들을 시켜 적당한 거처가 있는 곳을 물색하게 했다.
혹시 모르니 홀로 다니는 것을 금하고 짝을 지어 다니게 했다.
범은 그들을 내버려두고 주변을 살피다 아는 얼굴이 보여 다가갔다.
“무탈하셨군요.”
“아아, 천 수선. 무사했구려.”
팽가의 호준성이었다.
그는 원기를 조금 상했는지 안색이 창백했는데,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닌 듯했다.
“다른 이들은 어떻습니까.”
“글쎄, 아직 저도 경황이 없어서 다른 이들이 어찌 됐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습니다. 허나… 그리 좋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범도 동의했다.
이곳은 그나마 기습을 막아낸 자들이 조금 보이지만, 다른 곳에 거처를 구한 자들도 이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야심한 새벽을 틈타 기습했으니 당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가문의 문장을 전혀 가리지도 않더군요.”
“굳이 가릴 필요 없다 생각했겠지요. 가문끼리의 다툼은 흔하니까.”
한 가문이 멸문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 신기할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다른 가문에게 승리하면 그걸 자랑스레 떠벌리는 자들도 여럿이라 하니 그제야 이해가 됐다.
“놈들은 아마 뇌신통을 빼앗으려 했을 겁니다. 실패한 놈들은 당연히 죽었을 것이고….”
문제는 성공한 놈들이다.
“제대로 다루지 못할 텐데요.”
“그래도 명분은 있지요.”
쯧. 입맛이 썼다.
그런 자들과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울화가 치민다.
허나 이곳의 생리가 그러하다.
멍청하면 당하고, 약해도 당한다.
현명하고 강해야만 당하지 않는다.
그런 강자존의 법칙은 이곳에도 만연하니 괜시리 입맛이 썼다.
‘이 또한 거쳐 가는 곳이지.’
불멸의 길이 어찌 그리 녹록하겠는가.
하계든 상계든 그러한 것을.
욕심을 버리지 못함이 당연하다.
하늘이 정한 수명을 거부하고 살아가길 택한 것 자체가 욕심.
그런 자들이 어찌 탐욕을 버릴 수 있겠는가.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다 똑같은 하늘 아래거늘.
“그럼 평안하십시오.”
“예, 몸이 성치 않아 그러니 급히 회복하고 다시 찾아뵙지요.”
범은 호준성에게 포권하고 다시 몸을 돌려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피 냄새가 즐비하다.
기습에 화가 풀리지 아니한 자.
동료의 죽음에 슬피 우는 자.
곧 죽어가고 있는 자.
다양한 모습들이 내비쳤다.
“큰일이 났더군. 자네는 무탈한가?”
귓가에 간지럽히는 듯한 노쇠한 노파의 음성.
범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무탈합니다. 교청 장로님.”
“교 장로면 되었네.”
교청은 범의 곁에 서 참상을 함께 바라보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어. 안타까운 일이기 그지없어.”
“그렇습니다. 뇌신통 하나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죽었지요.”
교청의 입가에 주름이 깊게 패였다.
“뇌신통 탓이라던가?”
“그게 아니고서야 이리 많은 자들이 눈이 뒤집혀 공격했겠습니까.”
범은 몸을 돌려 교청을 향했다.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음? 무슨 이유 말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다.
“그들이 아무 언질도 없이 이런 짓을 벌였을 리 없습니다.”
“영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교청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으나 범의 눈은 한없이 진지했다.
“천 수선의 말은 내가 언질을 줘서 이들을 싸우게 만들었다는 건가?”
“예.”
“내가 왜? 난 무도전에 출전하지도 않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교청은 교씨 세가의 장로.
게다가 향선. 향산신선이다.
그들의 싸움을 부추겨서 얻을 것이 하나 없다.
무례하다는 듯 교청이 노려보자 묘한 압박감이 범을 짓눌렀다.
강하진 않지만 은근한 압박이다.
하지만 서서히 강해진다.
하계에서 받았던 천칙의 압박이 떠오를 정도로 강력하다.
‘이게 향선인가.’
교청에게 뿜어지는 기운은 하나 없는데 이 정도 압박이다.
제대로 향선의 기운을 풀었다면 얼마만큼 강력할지 알 수 없었다.
“이유야 저도 모르지요. 허나 장로의 언질 말고는 저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뇌신통을 이용해 간이 전송진을 만드는 자는 교청이다.
“빼앗은 뇌신통으로 자신들을 받아들여줄 확신이 없다면 일을 벌이지도 않을 테죠.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들은 상선이고.
교청은 향선이다.
그녀가 싫다 하면 그들은 목숨 걸고 뇌신통을 빼앗아도 전송진을 이용할 수가 없다.
한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무언의 허락이 있었다는 것이겠지.’
자신의 머리로는 교청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성립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하하! 머리가 좀 돌아가는 상선은 오랜만인걸. 역시 비승 수선은 비승 수선이야. 대단해!”
교청은 박수를 짝짝 치고 마음에 든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자네 교가로 들어오지 않겠나? 똘똘한 게 딱 내 제자 삼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