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32)
낭선기환담-331화(332/600)
낭선기환담 – 2부 41화
통천수궁에서 뻗어 나온 구름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하공에 솟아난 여러 첨탑에 걸쳐져 있다.
하공에는 동서남북으로 길게 만들어진 첨탑이 있었는데, 그게 통천수궁으로 이어진 탑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가문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었으나 사가는 모르고 있었다.
“와본 적이 있어야 알지.”
슬쩍 흘겨보자 뻔뻔하게 대답한다.
작게 한숨 쉰 천범이 지금이라도 가려고 하자 호준성이 그를 불렀다.
“같이 가시지요. 미리 소선을 시켜 준비했습니다.”
이리 반가울 수가.
점점 더 호준성이 좋아지는 천범이었다.
곁에는 팽가연도 함께였기에 껄끄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함께 첨탑으로 다가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공의 주민들과 선도전을 구경하러 몰려든 이들이었다.
즐길 거리가 많지 않으니 이런 성대한 대회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반신이나 다름없는 소선들은 하계의 범인보다 오래 살고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니 즐길 거리에 적극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닌 듯 많은 이들이 하공에 자리했다.
“그것 아십니까. 계단이란 본래 고행의 길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며 자신을 경계(戒)하고, 경계(界)를 나누며 단(段)을 쌓아 올린다.
“때문에 통천계단의 또 다른 이름이 생겨났지요.”
통천계단을 올라서는 팽가연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불천(不天).”
아닐 불에 하늘 천.
하늘이 아니라는 뜻.
“분수에 맞지 않는 자가 오르면 그곳은 하늘이 아니라는 게지요.”
의미심장한 말에 사하의 아미가 좁혀졌다. 호준성 또한 마찬가지.
자칫 잘못하면 듣는 이로 하여금 크게 불쾌할 수 있는 말이다.
팽가연이 어째서 저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았다.
천범은 픽 웃고는 답했다.
“그렇겠군. 분수에 맞지 않는 자가 오르면 저곳은 분명 지옥이겠지.”
뛰어난 자질과 재능을 지닌 자들이 모여 경합하는 자리다.
계단 위에 자리한 곳에 하늘이 있을지 지옥이 있을지는 모두 자기 하기 나름에 달린 것.
범 일행은 곧장 통천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그가 가는 길이 그의 대도이니.
* * *
상계 어딘가.
물기가 다분한 동굴 어딘가에 호수 위에는 수많은 붉은 실들이 서로 엉켜져 있었다.
그곳에는 기묘한 방울을 손으로 흔들고 쉴 새 없이 입을 달싹이며 주술을 외우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흰 천으로 자신을 감싼 채로 방울을 흔들며 호수 위의 붉은 실을 발로 밟고 선이 고운 춤을 보였다.
짤랑.
수많은 붉은 선 위에서 춤사위를 보인 그녀가 다시 한번 방울을 흔들자 풍경이 바뀌었다.
동굴 안이 아닌, 금색으로 빛나는 하늘 아래였다.
눈부신 하늘 아래 펼쳐진 춤사위.
돌연 붉은 실 하나가 끊어진 거문고 같은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단숨에 풍경은 다시금 동굴로 바뀌고 여인의 낯이 씁쓸하게 변했다.
끊어진 붉은 실은 검은색으로 변해 칠흑 같은 호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끊어진 붉은 실은 두 번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 * *
이름하야 상선 무도전.
무도전이라는 이름 답게 각종 법기나 보물은 사용할 수 없는 게 무도전의 기본적인 상식이다.
오로지 상선의 무도.
무술과 관련된 공법만 가능하다.
예를 들면 천범이 익히고 있는 균천보화 또한 이에 해당된다.
법기임과 동시에 그의 신체나 다름없기에 관련 공법으로 취급된다.
수계는 대부분의 신선들이 강체술을 익히며 선술보다는 무술을 더 위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마 유약한 인간과는 다른 신수가 본신이기 때문일 터.
어쨌거나 통천 수궁에 입장한 범은 가자마자 예선전을 치렀다.
워낙 많은 수의 가문의 신선들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통천 수궁이 넓다 한들, 세 자리가 넘어가는 가문의 가솔들과 식솔들을 모조리 책임질 공간은 없었다.
그렇기에 빠르게 예선전을 치러 십수 명을 가려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만에 867명이라는 숫자의 신선들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1차적으로 이루어진 예선전에서 절반. 그리고 2차로 이어질 예선전에서 그 절반이 탈락된다.
총 217개의 가문이 살아남았다.
그 중에는 천범도 사하도 있었다.
“무도전에 오면 잔잔경정도 진품으로 경합한다기에 기대했더니….”
예선전은 모조품으로 치러졌다.
당연히 천범은 가볍게 승리했고 사하는 조금 위태위태했지만 그래도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잔잔경정도 진품은 수계 내에서도 알아주는 보물이야. 예선전을 치르는 데 내놓을 정도로 가벼운 물건이 아니라는 소리지.”
“뭐 구천월보라도 돼?”
“구천월보… 흠… 글쎄. 그 정도가 되는 보물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만큼 가벼운 물건은 아니야.”
“그렇게 큰 차이가 있나?”
“있지. 애초에 잔잔경정도의 진품을 경합에 사용하는 건 얼마 안 됐어.”
“그게 무슨 소리냐.”
“원래 잔잔경정도는 대라에서 내려온 보물이라 신통만큼이나 그 의미도 엄청나. 여러 전쟁이 있을 때마다 잔잔경정도로 수계의 위기를 여러 차례 극복하기도 했다 하니까.”
그런 대단한 물건이었다니.
범은 새삼 놀랐다.
“한데 그걸로 왜 이런 경합을 하는 거야?”
“보다 뛰어난 상선을 가려 뽑고 그들을 수행시켜 향선으로 만드는 게 수계를 위한 일이니까.”
하긴, 수계는 넓다.
수계에 자리한 상선만 수천, 수만이고 어쩌면 그보다 많을지 모른다.
은거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니.
그리고 그런 이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향선으로 만든다면 수계는 더욱 견고해지니 당연한 선택이다.
뛰어난 신선을 보유한 것만으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고, 각자의 가문의 일 때문에 다투어도 수계가 위험에 처하면 결국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으니.
“일단 오늘은 쉬도록 해. 연달아 예선전을 치르느라 힘들었잖아. 앞으로 사흘 뒤에 다시 무도전을 치를 테니.”
나가려는 사하를 붙잡은 범은 다시금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왜?”
“네 주공법의 근간을 알고 싶다.”
“갑자기?”
“이제는 때가 되기도 하였고, 지금이 아니면 늦을 것 같구나.”
지금이 아니면 적당한 때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마침 본선을 치르기까지 사흘.
적당한 시간이다.
“때가 되었다니? 내 주 공법은 사씨 세가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거다. 널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네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모른다. 허나 아마도 이건 나보다 네게 갔어야 했을 공법이었겠지.”
툭툭.
쿵!
후우우웅!!
단숨에 그녀의 어깨와 등에 점혈을 놓고 장을 뻗었다.
천범의 기파에 방 안의 장식품이 대번에 날려가고 창문과 대문이 붕새처럼 날갯짓을 해댔다.
퍼덕이는 문들은 다시금 범이 기운을 흩뿌리자 시간이 되감기듯 되돌아와 삐걱대며 닫혔다.
“난 하계에서 천락의 업을 짊어진 이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죄인이라 했으나 이제 보니 아닌 것 같더구나.”
사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내게는 스승이라 불러도 좋을 분이지. 비록 제자를 키우지 않는다 하여 스승이 되지 못했으나 나에게는 은자나 다름없는 분이지.”
그의 이름은 기.
“네 선조쯤 되는 분 같다.”
수계에 화기린 가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씨 세가뿐이니.
이전에 그러해야 했으나, 이제 와서 전하는 것이 후회될 뿐이다.
“태천외양신공이다. 네가 이것을 어찌 사용할지는 너 하기에 달렸겠지.”
태천외양신공은 1성부터 12성까지.
천범도 아직 6성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난해한 공법이다.
이것의 구결을 모두 전하니.
그의 유지를 이어나가길 바라노라.
천범은 그녀의 등에 손을 얹은 채, 구결의 흐름을 전수했다.
그대로 단숨에 두 시진이 흘렀다.
사하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몸 안에 원옥 말고도 화정을 만드는 과정에 달해있는 거다.
이제 더 해줄 것은 없다.
범은 천천히 손을 거두어들였다.
사하는 아직도 홀로 구결을 곱씹고 있는지 쉴 새 없이 중얼거렸고 눈 또한 반개하고 있었다.
범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지금 그녀를 방해해 봤자 좋을 게 없고, 예선전도 끝났으니 통천수궁을 잠시 돌아다녀볼 참이다.
이곳은 통천수궁 내에서도 동쪽에 자리한 별궁이다. 수궁에 방문한 자들에게 내주는 곳으로 가문 단위에게 내어주는 별궁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만 걸음을 거닐면 옆에는 다른 가문의 신선이 있다.
허나 굳이 친해질 필요는 없다.
서로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뿐더러 언제 경합에서 패하여 고향으로 되돌아갈지 모르니, 친분을 쌓아 봤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범은 별궁 내에서 공동으로 쓰이는 정원을 찾았다.
정원에서 산보하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 계셨군.”
그때 반가운 얼굴이 다가왔다.
“또 뵙는군요.”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궁에서 다시 보니 반갑군요.”
범과 악수한 사내는 이전에 상서에서도 보았던 천무장 양휘였다.
“멀리서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딱히 응원이 필요하진 않으셨지만요.”
범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에 말대로 예선전의 신선들은 범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계에서 비승한 신선들은 대부분 강체술을 익히지 않은 자들이 많다.
그리고 고향이 수계인 자들이라 해도 범의 강체에는 어쩌지 못했다.
균천보화와 각종 비술로 단련된 몸이었고, 더군다나 분합수결을 극성으로 이루어 신선이 된 몸이다.
웬만한 동격의 신선들은 아예 그의 상대가 되지도 못했다.
‘분합수결은 대체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있으려나.’
천무선이 되어 각종 경전을 살펴볼 위치가 된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데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단순히 저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 오신 것 아닌 듯합니다.”
천무장이라는 직위가 그리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무도전이 한창일 때는 더더욱.
“아닙니다. 아무리 무도전이 한창이어도 이 정도 시간은 있습니다. 저도 어딘가의 아들이고, 가장이니까요.”
“아, 그렇군요.”
양씨 가문의 아들이 양휘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고 가문이 있으니 시간을 내주는 모양이다.
짬을 내서 잠시 찾아온 것이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다음에 뵙지요.”
“아참.”
양휘는 팔찌 하나를 건넸다.
“이거 때문에 찾아왔는데 저도 참, 나이를 먹었는지 깜빡하는군요.”
금테로 장식되고 주변에 기이한 보석이 박혀 있는 팔찌였다.
범은 보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 눈에 봐도 보통 물건은 아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본선에 진출하면 잔잔경정도 진품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때 출전자의 의식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그 팔찌는 의식의 부재를 채워주고….”
한마디로 부작용 방지 팔찌였다.
“그렇군요. 잔잔경정도가 그리 위험한 물건입니까?”
“하하, 모든 물건은 어찌 사용하기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까. 근간은 모두 이롭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요. 이건 그 노파심일 뿐입니다.”
천범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안 차면 어찌됩니까.”
“음… 글쎄요. 전장에서 잔잔경정도에 의식이 빨려간 자들은 그때 전부 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 저도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섬뜩한 소리를 저리 밝게 말한다.
범이 영 껄끄러워하자 양휘가 하하 웃으며 멀어졌다.
“요는, 팔찌를 잘 차고 있으면 된다는 소리지요. 애초에 팔찌가 없으면 출전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는 묘한 낯으로 다시 경고했다.
“본선이 시작되는 건 사흘 뒤. 수궁의 아침은 빠르고, 더 빠른 것은 신선의 머리라는 말이 있지요.”
의미심장한 말이다.
양휘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작별을 고했다.
“상선 무도전에서 차출하는 천무선은 서른입니다. 천 수선이 제 밑에서 일할 수도 있겠군요.”
“그때가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
양휘는 알겠노라 답하며 사라졌다.
홀로 남은 천범은 그가 건네준 팔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출전이 불가능하다라….”
수궁의 아침은 빠르고, 신선의 머리는 더욱 빠르다.
그 말뜻을 모를 리 없다.
“훔쳐갈 수도 있다는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