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36)
낭선기환담-335화(336/600)
낭선기환담 – 2부 45화
와아아아아아아아!!
객석의 함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저 상선은 어디 가문이래?”
“사씨라 적혀 있군.”
“사씨? 사씨가 어디야?”
“그게 뭐 중요한가!”
변방의 작은 가문이 대가문의 여식과 함께 맞수를 이루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리 뜨거워지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파도처럼 객석이 일렁인다.
손에 땀이 쥐어지고 엉덩이를 뗄 수밖에 없다.
왠지 모르게 한마음으로 불을 다루는 여인을 응원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실력의 차이가 있었다.
허나 그것에 굴하지 않고 비장의 한 수를 발휘하며 격전을 벌이니 어찌 흥분을 참지 않으랴.
“오오오!!”
또 한 번 객석이 들썩였다.
태양을 삼킨 화기린의 전신이 화염으로 불살라졌다.
그때 희미한 금빛이 어리니 하늘을 불태울 듯 거대한 화마가 덮쳐든다.
그야말로 태양의 찬란함과 같다.
팽가연에 비하여 더 없이 찬란하고도 정열적인 불꽃이다.
“설마….”
관중의 마음이 모두 같았다.
들어본 적도 없는 변방의 수선이 대가문인 팽가의 여식에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그와 동시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그들은 동시에 바라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은 소선이나 상선에 머물러 있는 자들.
같은 신선이라도 그 힘과 위치에 따라 격이 나뉜다.
영원불멸은 멀고도 험하나, 그렇다 해도 그들은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년을 살아가는 신선.
힘의 차이는 쉽게 메꾸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타고난 자질의 차이도.
그에 대한 절망과 하늘의 불공평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다.
그러니 내심 바랐다.
그러한 연유로 응원했다.
“히, 힘내라!!”
한 명이 그리하자 다른 이들도 저마다의 감정을 품고 소리쳤다.
“그래, 이겨버려라!”
“대가문 코를 납작하게 해줘!”
“이기면 내 색시가 돼라!”
“방금 그거 어느 미친놈이야!”
불협화음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그녀를 응원했다.
절실한 마음은 주변을 달라지게 하는 법. 사하는 자신도 모르게 많은 이의 응원을 받았다.
허나 경험의 차이를 기세만으로 메꾸기란 요원했다.
“아….”
고작 한 끗.
한 끗 차이로 화기린의 거체가 서서히 허물어졌다.
운해로 가라앉는 사하의 눈에 적뇌주랑 팽가연의 모습이 들어왔다.
붉은 털이 모조리 새까맣게 그을려 적뇌가 아닌 흑뇌가 되었다.
‘꼴좋네.’
이내 운해 속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연무장의 의자에서 눈을 뜬 사하는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한 끗.
정말로 한 끗 차이였다.
본신의 모습으로 태양을 삼키고 금화를 뒤집어쓰며 엎치락뒤치락 그녀와 몸싸움을 벌였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미숙함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여 패배했다.
태천외양신공의 태양의 불안정함.
그리고 그것을 삼킴으로서 일시적인 힘의 증폭을 꾀한 것까지는 좋았다.
저도 모르게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의외로 잘 되어서 팽가연을 몰아붙인 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
‘허나 미숙했어.’
증폭된 힘을 다루는 것이나, 본신의 모습으로 싸워본 경험이 미진하여 결과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기세의 흐름으로 밀고 나가 승기로 이루어낼 수도 있었지만 아직 그녀에게 거기까지는 무리였다.
사하는 아직도 의자에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있는 범을 보았다.
-내가 밝혀줄 것이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니.’
태양을 삼키고 뒤 없이 전심전력을 쏟아붓자 범의 금화가 피어났다.
그가 슬며시 심어둔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팽가연을 저리 몰아붙이지는 못했을 거다.
‘넌 아직도 상처 하나 없구나.’
지친 기색도.
옷깃 하나 그을린 자국이 없다.
그는 여전히 묵묵히 운해 속을 걸으며 다가오는 상대를 쓰러트렸다.
손닿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으나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가 멀었다.
멀고도 험한 산길 끝자락.
한 뼘밖에 되지 않는 그 길을 여유로히 걷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은 너무 긴장되고, 어렵고, 무서운 이 길을.
그는 너무도 쉽게 걸어간다.
그녀가 보여준 기억 속의 범은 항상 그러했다.
누가 보아도 위험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향하면서도 담담히 헤쳐 간다.
때론 슬퍼하고, 때론 기뻐하며 그럼에도 꿋꿋이 그 길을 걷는다.
그런 까닭으로 그녀는 그가 멀었다.
마음은 위축된다.
그를 향한 감정이 응어리져 가슴을 쑤신다.
강건하게 말아 쥔 주먹과는 달리, 가슴은 왜 이리 시큰거리는지.
‘나도 참 박복한 계집이구나.’
괜시리 코끝이 찡하다.
슬픈 마음은 없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돈다.
그리고 관객의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사 선자 대단했습니다!”
“아까웠다! 다음엔 더 잘할 거야!”
“사씨 세가 기억해주마!”
“네가 뭔데 기억한대! 사 선자 울지 마오! 내 마음이 더 애달프니!”
깔깔깔, 하하하 웃고 난리가 난다.
허나 대부분이 그녀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사하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객석을 바라보다 왈칵 울어버렸다.
“누가 내 색시를 울리는가!”
“옛끼 이놈아! 나오는 여인들마다 다 네 색시라 하더냐!”
“사 선자 울지 말게!”
“울지 마세요 사 선자!”
“울지 마시오 가주님!”
“그래, 울지 마라!”
장관이 따로 없다.
사하는 울다가 웃었다.
비록 패배했으나 인정받았다.
울다가 웃다가.
속도 없이 그리하며 객석을 향해 포권했다.
* * *
“보셨습니까.”
“예, 보았습니다. 그리운 이름이지 않습니까. 사가의 화기린이라….”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포권하는 그녀를 흥미롭다는 듯 보았다.
“역시 화기린의 핏줄입니다.”
곤가의 가주는 내심 아쉬운 듯 말했다. 그 또한 사하를 응원했으리라.
“그 용맹한 핏줄이 어디 가겠습니까. 상선이 된지 아직 백 년도 되지 않았다 하더이다. 저 정도 한 것으로도 대단하다 봐야겠지요.”
미가의 가주는 그녀를 칭찬했다.
“미 가주는 역시 정보가 빠르시군.”
“수계에 큰 공로를 세운 가문이 아닙니까. 당연히 관심이 가지요.”
그러자 다른 가주들의 기색이 언짢게 변했다.
더 말을 섞었다가는 옛일이 들춰질 것을 모두 예감했다.
말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다.
우, 곤, 교, 후, 미.
다섯 가문의 가주는 잠시 말없이 사하를 보았다.
허나 시선만 향해 있을 뿐, 모두 옛일을 떠올리는 듯 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한데 후 가주.”
“왜 그러십니까, 곤 가주.”
“저 상선은 그대 집안의 후손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아직 모르는 법이지요.”
“……….”
곤 가주는 말을 아꼈다.
다른 가문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때 객석이 다시 한번 들썩인다.
많은 상선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으나 단연 돋보이는 것은 한 사내다.
금색 불꽃을 다루며 아름다운 꽃 잎의 검을 흩날리는 사내.
“오만한 이름이로군.”
“하늘 천에 범할 범자인가.”
자못 오만한 이름이나, 그 이름을 쓰는 자의 실력이 남다르다.
본래 수선의 경합은 그리 빠른 시일 내로 결판이 나는 것이 아니다.
사흘 내리를 싸우기도 하고, 심하면 한 달을 서로 간본다.
그리하여 너무 길어지면 적당히 심판하여 승패를 가리기도 한다.
허나 천범은 다르다.
“빠르면 한식경. 늦어도 일각이나 반시진이 안 걸리는군.”
놀랍도록 빠른 속도,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허허, 전력을 내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상대가 무도 쪽으로 통달해 있으면 그에 맞춰 신통을 쓰지 않고 상대하고, 선술에 자신이 있으면 그 또한 선술로 상대한다.
힘을 아낄 때도 있고, 귀찮아하며 단번에 끝내버릴 때도 있다.
“노는 것 같군.”
잔잔경정도 속의 상선들 중, 유일하게 그 혼자 산보라도 하듯 여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막강한 우승 후보가 아닙니까. 아주 파죽지세에요.”
곤 가주가 칭찬했으나 미 가주는 언짢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아직 오대세가의 아이들과는 맞붙지도 않았습니다. 우승 후보를 거론하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나.”
곤 가주를 제외한 다른 가문의 가주들은 모두 동의했다.
아직 자식이 어려 출전하지 못한 곤가를 제외하고 다른 가문의 자제들은 모두 참가했기 때문이다.
“기다려 보십시오. 위치를 보아하니 제 막내아들 녀석이 저 상선과 만나게 될 듯하니.”
후씨 세가의 가주였다.
그의 말대로 위치를 보아하니 그 둘이 곧 만나게 될 듯하다.
객석도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오대세가 중 하나의 가문 자제와 파죽지세로 승리를 쌓는 변방의 가선.
둘의 싸움이 어찌될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시 뒤.
후 가주는 얼굴이 벌게졌다.
후가의 상선과 천범이 만나 몇 마디 말을 섞더니 일순에 결판이 났다.
범의 주먹 한 방에 방심하던 후가 놈이 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후 가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고 다른 가주들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리고 딱 그때였다.
픽.
“음?”
돌연 잔잔경정도의 연결이 끊겼다.
상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오대세가의 가주들 또한 눈을 흘겼다.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글쎄요.”
연무장 가운데에 있는 대천무장의 낯이 심상치 않다.
“무도전의 규칙을 바꿀 때부터 낌새가 이상하다 했더니 무슨 사달이 나도 날 모양인가 봅니다.”
허나 가주들은 여유 만만했는데, 이곳이 다름 아닌 회희궁이기 때문이다.
회희궁의 네 개의 신목과 바닥에 깔린 청석은 괜히 깔린 게 아니다.
침입자를 방비함은 물론, 삽시에 강력한 진법이 발동된다.
자그마치 시간의 법칙이 녹아있는 오계나시진(悟界時陣).
원선이라도 사계의 신목이 버티고, 선기를 머금은 청석으로 이루어진 법칙 진법을 벗어나기란 요원하다.
“무도전에 맞춰 이런 짓을 벌였으니… 붕계? 사계? 아니면 충계?”
“충계 놈들은 이런 번거로운 짓 하지 않는 거 알지 않나.”
“구린내가 펄펄 나는 걸 보니 전 사계 놈들이라 봅니다.”
“허허, 분위기 망치는 걸 보면 붕계 놈들 짓일지도 모르지요.”
하니 회희궁에서는 붕마계의 원선이 습격했다 해도 겁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회희궁의 연무장에는 오대세가의 가주 다섯과 수계의 향선 중에 가장 강한 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대천무장이 있다.
그리하니 걱정할 게 무엇이겠는가.
가주들이나 객석의 수선들도 별다른 긴장감이 없었다.
한창 재미나게 보던 경합을 볼 수 없게 되어 화가 날 뿐이었다.
“언제 다시 시작되는 거야?”
“뭐야, 뭔데!”
“경합을 다시 시작시켜주시오!!”
야유하는 소리가 커진다.
허나 그럼에도 대천무장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객석의 야유는 더 커져만 가고 있을 그때.
“헉!”
“아니….”
“대, 대천무장!!”
돌연 대천무장이 눈 감은 채 입가에 검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하던 이들은 이내 잔잔경정도에서 희뿌연 빛이 터져 나왔다.
“으악!”
“으아아아악!”
빛은 순식간에 사방을 잠식한다.
이내 연무장의 풍경이 변한다.
발밑이 첨벙거린다.
운해는 사라지고 새까만 먹물이 발밑에 자리해 있다.
하늘은 피를 머금은 듯 붉어졌다.
새까맣게 변한 바닷물의 수면 위로 피로 적은 듯한 글씨가 올라 온다.
[仙殺返]선살반.
신선 선에 죽일 살.
그리고 돌아올 반.
“선살이 도래한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