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43)
낭선기환담-342화(343/600)
낭선기환담 – 2부 52화
“이놈, 거서 뭣 하느냐.”
화들짝 눈을 뜨며 놀랐다.
눈앞에는 소년의 모습으로 자리한 봉황의 분혼.
봉이 근엄하게 서 있었다.
무엇하느냐라는 말에 멀거니 두 손을 내려다보다 답했다.
“떠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계곡의 시냇물 위에 떠 있는 낙엽처럼 그저 떠내려갔다.
모적도 모른 채, 그 끝도 모른 채 그저 하염없이 떠내려갔다.
허나 그것으로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존재하며 물길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그저 좋았다.
강렬한 유혹에만 매료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편안한 그 물길에 몸을 담는 것 또한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리 생각했을 때 깨달았다.
‘난 죽는 중이었구나.’
계곡물에 떠내려가는 낙엽의 끝이 어찌될지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그것은 죽음이고, 윤회의 전조니라.
이내 깨달으니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 포근하고 평안한 그것이 죽음의 길이라니 말이다.
죽음이란 대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봤으나 알 수 없었다.
“여기는.”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온 세상이 금빛이다.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발밑에는 그가 만든 태화가 가득하고 작은 화정들이 떠올라 있다.
태화만등, 그 자체의 풍경이다.
‘허나 썩어가고 있구나.’
실시간으로 썩어가고 있다.
독이나 다름없는 검은 무언가로 인하여.
아마도 붕마의 기운이리라.
붕마기는 야금야금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며 꽃을 시들게 한다.
그 꽃이 모두 시들었을 때 어찌될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편하더냐.”
인자한 어조다.
한없이 부드러운 어조다.
허나 그 속에 꾸짖음이 담겼음을 모르지 않다.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그는 부끄러웠다.
죽음이라는 것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저 흘러가버리고 싶어 했다.
그것이 너무 편안하고 아늑하여 그저 흐르는 대로 있고 싶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도 모른 채 그저 그러고 싶어 했다.
“생과 사 또한 어느 한 길일 뿐. 그 길에도 끝은 존재한다. 넌 어느 길을 가고 싶은 것이냐.”
생과 사.
그 또한 대도를 향하는 자에게는 그저 또 다른 길일 뿐이다.
허나 수선한다하여 모든 길을 걷지는 않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는 게 바로 수선이다.
수선의 시작과 끝은 다른 이가 정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그러니 봉은 물었다.
넌 어느 길을 가고픈 거냐고.
“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기다릴 사람도 있다.
찾아야 할 인연도 많다.
“하면 왜 그리 서 있느냐.”
어느새 봉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 또한 네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 걸어라. 끝없이 걷고 걷는 것만이 바로 대도의 기본이니.”
연기로 사라진 봉은 봉황의 깃으로 변해 날아오른다.
금빛의 하늘이 푸르게 변한다.
청량하다.
눈이 맑게 갠 듯하다.
썩어가던 태화들이 다시금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까맣게 썩어가던 주변이 금색으로 찬란히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알았다.
봉이 무엇을 하였는지.
“후우.”
울컥 치솟는 가슴을 가라앉힌다.
[네 불꽃이 지금은 금빛을 내고 있으나 태초에 무슨 색을 띠었는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속단할 게 없으니 슬퍼할 것도 없다.]범은 두 눈을 감았다.
자신의 상처는 자신이 잘 안다.
쉽게 아물 수 없는 상처다.
죽음으로 몰고 간 일격이다.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허나 그것을 회복한 것이 봉이다.
그리고 응명천충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남긴 세 개의 구기자 열매.
그것과 자신의 융전가단.
수봉외외정으로 이룬 내산단.
그것을 어루 품은 봉은 범을 회복시키고 하나의 것으로 만들어 탄한여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게 어떠한 의미인지 모르지 않다.
‘속단할 게 없으니 슬퍼할 것도 없다라.’
허나 그렇기에 더 미안하고 감사할 뿐이다.
그는 죽지 않았으나 잠시간 만날 수 없을 듯하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꽤 무리한 짓을 벌였으니 어쩔 수가 없다.
하고픈 말이야 많았으나 그는 모든 것을 하나로 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화답하듯 그에게로 푸른 화산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콰앙!!
화산의 폭발음과 함께였다.
“범!!”
사하가 그를 반겼다.
토끼눈이 된 채다.
슬퍼할지 기뻐할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범은 그저 쓰게 웃어주었다.
그도 그럴 게 그를 반기는 건 사하뿐만이 아니었다.
호준성 또한 그를 반겼다.
“하늘의 총애라도 받으시나 봅니다. 천 수선.”
범은 답하지 않고 자신의 몸속을 관조했다.
‘미쳤군.’
미쳤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다.
그의 몸은 완전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상처가 치료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선기 자체도 회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주변의 천지원기를 끌어당긴다.’
범이 쉽게 하지 못했던 일이다.
충분한 진법과 귀물을 소모하더라도 쉽게 쌓지 못했던 선기다.
한데 지금은 물밀듯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범 자신조차 무서워질 정도로.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응명천충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구기자 열매.
이것에 담긴 묘리를 봉이 다른 것들과 뒤섞어 주었기 때문이다.
범은 느낄 수 있었다.
세 개가 하나였던 구기자 열매는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들 모두가 소모되고 다른 것에 영향을 끼쳐 자신이 살아난 것이다.
‘결국 너희들이 날 살렸구나.’
아이들의 생명은 사라졌으나 이제는 서로 다른 묘리의 신통들이 하나로 이어져 버리고 그것을 한데 묶었다.
범의 곁에 탄한여산이 작은 화산의 모습으로 내려왔다.
푸른 화산.
이제 이것이 그 모두이다.
범이 할 수 없었던 것을 봉이 대신 이루어주고 잠들었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본신을 찾는 것도 마다하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것이니.
탄한여산은 봉 자체가 되었을 거다.
법기임과 동시에 봉이고, 수봉외외 정과 융전가단, 그리고 응명천충의 묘리를 한데 묶어 놓은 것이다.
물론 그 탓에 앞으로 봉이 현신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거다.
한동안은 말이다.
허나 괜찮다.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니.
‘그러하니 이제 걱정할 게 없다.’
탄한여산이 있으면 그는 선기를 선력으로 치환하는 것조차 간편하다.
‘주변에 선기가 많지는 않지만.’
이것이면 충분하다.
후우우웅-
두 쌍의 날개에 푸른 바람이 깃든다.
청풍은 능숙하게 엇갈려 신기하게 맞물렸다.
그러자 범이 날개를 한 번 펄럭였다.
후웅.
공허한 바람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직도 등이 욱신거립니다. 호되게 당했으니 저도 돌려드려야겠지요.”
호준성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빠르다.’
상상 이상의 속도다.
그가 등 뒤를 점거한 것도 말하기 전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
이게 진정한 영화비.
허나 호준성은 의연하게 답했다.
“그리할 수 있다면 해보시지요.”
수결을 맺자 건곤권 수백 개가 분열하여 날아들었다.
허나 범은 콧방귀를 끼며 푸른 바람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하늘 위로 향하여 두 쌍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의 날개에는 청풍이 가득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범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외쳤다.
“영화비가 가진 벽력청풍(霹靂靑風)의 맛을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벽력청풍!
그 말을 들은 호준성은 고작 상선 따위가 쓸 수 있는 신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영화비는 단순한 둔보가 아니다.
연자보라는 것은 그 신비함을 이루 말할 수 없는 천연의 보물.
곤가의 영화비가 유명한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벽력청풍을 다루는 데 있다.
“쯧.”
반신반의했으나 저 말을 한 이가 단순한 상선이 아닌 천범이다.
호준성은 그를 높게 평가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정답이었다.
후우우우우우웅!!
쩌적, 쩌저적!
“큭!”
범이 날개를 펄럭이자, 푸른 바람이 번개처럼 일대를 누볐다.
날카로운 벽력청풍이 주변을 찢어 버리고 부숴버린다.
호준성은 급히 사행극산으로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그의 사행극산도 벽력청풍에 결계에 균열이 일어난다.
가히 무시무시한 신통이다.
‘상선이 어찌 저 신통을….’
죽다 살아나 그런 것일까?
알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한 가지 알 수 있던 것은 범의 선력은 아직도 충만하다는 것이다.
판도가 바뀐다.
말 그대로 범의 바람이 무언가를 바꾸기 시작하고 있다.
호준성은 내심 마음이 들뜨면서도 그것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벽력청풍은 살쾡이처럼 주변을 모조리 박살내며 호준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제는 청풍이 아니라 태풍이자 폭풍이 되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를 잡아먹을 궁리를 하는 듯하다.
“그리 나온다면 방도가 있지.”
그는 단도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 피를 냈다.
정혈을 사행극산에 뿌리자 극산이 온몸을 떨기 시작한다.
빙그르르 작은 삼각형의 모습으로 주변을 맴도는 사행극산.
그것의 결계가 방대한 원형을 그리며 부풀어 오른다.
그와 동시에 호준성은 자신의 소맷자락을 찢어버리고 손목부터 팔뚝까지 피로 글자를 적어 넣으며 쉼없이 입을 달싹였다.
이내 불경을 외우는 듯 사방에 낮게 그의 목소리가 깔리었고, 모습이 흉측한 몰골로 변했다.
하나의 머리에 세 개의 얼굴을 지닌 삼면귀선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이 그리 바뀌자 몸 전체가 새까만 마귀의 형상으로 바뀌었고, 네 개의 극산은 등 뒤로 돌아가 선회했다.
이마에는 흉측한 뿔이 돋고 이빨은 짐승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자라나 악신이 현현했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흉포해진 기운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진득하게 풍기는 붕마기는 모든 걸 집어 삼킬 듯 사방으로 뻗쳤다.
쿵!
거대해진 모습으로 합장한다.
그러자 세 개의 입이 동시에 여러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그 목소리가 각각 달랐다.
소년과 청년 그리고 노인의 것이 한꺼번에 들렸고, 동시에 다른 주문을 외우는 게 아닌가!
범 또한 그 괴이한 신통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사방으로 퍼진 붕마기 속에 놈의 건곤권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이 벽력청풍에 휘감긴다.
이내 분열하여 난리가 난다.
주변을 오염시키는 독처럼 회풍에 스며들자 벽력청풍의 힘이 조금씩이지만 거듭해서 감소되는 것이다.
그리고 회풍 속으로 빠져들고 사방으로 수백 개의 건곤권이 날아드니 쉽게 움직일 수조차 없다.
호준성의 입가가 비틀린다.
이대로라면 벽력청풍이 오히려 천범을 위협하고 말리라.
“하.”
허나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천범이 아니다.
탁!
거세게 합장한 범이 입을 달싹이며 전신에서 눈부신 빛을 발산한다.
그러자 푸르게 변한 탄한여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가라!”
쿠웅!
손가락을 튕겨 선결을 불어 넣으니 쾅! 소리와 함께 탄한여산에서 봉악청화가 발산되었다.
화아아아!!
순식간에 사방에 불바다가 된다.
회풍은 청염을 받아들여 한층 뜨거운 봉악청화를 더 키우기 시작한다.
“크으으윽!”
호준성이 안색을 찌푸리며 울컥 검은 피를 토한다.
봉악청화가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니 사행극산의 결계라 할지라도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무엇이든 태워 정화하는 불꽃이다.
그런 불바다 한가운데에 있으니 극산이라도 점차 빛을 잃어가고, 결계는 신기하게 태워지기 시작한다.
‘설마 이 청화는….’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게 아니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이 불바다를 정리해야 한다.
다시금 수결을 맺으며 삼면의 입으로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허나 호준성의 여섯 개로 불어난 눈은 보았다.
자신을 노리는 창끝.
그리고 그것을 지닌 범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