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49)
낭선기환담-348화(349/600)
낭선기환담 – 2부 58화
“우 무선.”
“예, 문무 관장.”
“문선과 무선은 원래 이런 식인가.”
“저도 문무 관장과 같이 어제 취임했기에 잘은 모릅니다만, 원래부터 문선과 무선의 사이는 좋지 않다고 들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한다.
이내 상황을 살피고 온 팽가연이 말하기를.
“문선의 진법과 환진을 이용하여 수행을 하려던 중 약간의 사고가 발생했던 모양입니다.”
“사고? 누가 다친 건가?”
“약간의 찰과상 정도입니다.”
환진을 파훼하는 훈련 도중 실수로 천무선 중 하나가 다쳤다고 한다.
그 때문에 기수가 높은 이들이 천문선에 항의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이쪽의 천무선은 양천무장이 이끄는 양무부대의 무선들입니다.”
“저쪽 문선은 양천문장이 이끄는 양문부대의 천문선이라는군요.”
부하들이 싸우는데 상관이라는 자는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양천무장과 양천문장은?”
우명은 지그시 어느 한쪽을 바라봤는데, 천문궁의 한켠 정자에서 양천무장과 문장이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있었다.
‘신경도 쓰지 않는군.’
오히려 바둑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우명이 묻자 천범은 잠시 고민하다 답을 내놓았다.
“인사는 해야겠지.”
자신보다 품계가 낮다고는 하나, 오랜 경력을 지닌 이들이다.
안면을 터 나쁠 게 없다.
“너희는 여기서 대기하거라.”
팽가연과 우명을 두고 홀로 정자로 휘적휘적 걸어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부임하게 된 문무관장 천범입니다.”
예를 갖췄으나 받는 이들의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하다.
자신보다 높은 품계의 상관이라 할 수 있는 문무관장이 인사했는데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만 휙 하고 돌리고는 다시 바둑에 열중한다.
“음? 아아 그러시군요. 한데 저희가 조금 바빠서 말입니다.”
“잠시면 끝나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문무관장.”
천범의 볼이 움찔거렸다.
“바둑에 두 분의 명운이라도 걸렸나 봅니다. 그리 열중하시는 걸 보면.”
“아암, 걸렸지요 걸렸어. 일 년 치 봉급이 걸려 있으니 말입니다. 껄껄!”
“자그마치 원근 한 냥씩 걸려 있으니 말입니다. 명운이라 할 수 있지요.”
원근 한 냥이라.
1년치 봉급이 내기로 걸려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라며 기분 좋게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부러 저러는 모양이다. 천범이 무난한 생활을 이어온 자도 아니고, 항시 생사결을 다투며 살아온 자가 아니던가.
고작 이 정도 눈치도 없었다면 진즉에 뒤통수 맞고 죽었을 것이다.
당장 바둑판을 뒤집어 엎어버릴까 순간 고민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부임 첫날이고, 저들이 저러는 이유는 대강 알 듯 했다.
‘경력도 없는 신출내기가 자신보다 품계가 높아졌으니 배알이 꼴린 게지.’
충분히 이해하는 바다.
입궁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놈이 품계가 높다 하여 감놔라 배놔라 하기 전에 기를 죽이려는 것이다.
이해한다. 천범이라도 십분 그런 마음을 지녔을 것이다.
허나.
‘상대 잘못 골랐다.’
그 꼴을 가만히 두고볼 천범이 아니다. 의도치 않게 문무관장이라는 큰 자리를 맡게 됐으나, 이왕 하는 것은 확실하게 해내는 것이 그다.
‘그냥 넘어가고 싶지만….’
기 싸움이라는 것은 초장에 휘잡아야 하는 거다.
지금 무시당함을 방관했다간 한도 끝도 없이 기어오를 터.
기선제압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허허, 사내대장부가 고작 그 작은 바둑판 안에 노니는 것을 명운에 빗대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릇이 너무 작은 것은 아니신지요.”
딱.
바둑돌을 강하게 내려놓은 사내는 덩치가 크고 얼굴의 반이 수염으로 뒤덮혀 있는 양천무장이었다.
“하! 그릇이 너무 작다라… 이거 간과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구만. 하면 말해보시오, 사내대장부의 그릇에 맞는 명운이 무엇이겠소.”
양천무장이 그리 묻자 범은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바둑판의 바둑돌이 꼿꼿하게 세워지더니 동전처럼 정자 안을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수염이 허리까지 오는 노인의 외양을 지닌 문장이 버럭 화를 냈다.
허나 범은 아랑곳 않았는데, 이내 정자 안에는 바둑돌로 이루어진 진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내대장부라면 째째하게 봉급으로 그러지 말고 제 목숨을 걸거나, 그와 같은 것을 거는 게 어떻습니까.”
목숨, 천범의 말에 양천문장과 무장의 눈빛이 급변한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사내가 어디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습니까. 다행히 여기는 우리뿐만 아닌 양천의 문무선들이 함께 있으니 그들 모두가 증인이지요.”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행되자 문 무선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거렸다.
“흥, 아무리 그래도 저희들 위치가 있는데 목숨을 취할 수는 없지요.”
“하면 문무관장 자리를 내놓죠.”
그러자 사천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흥미롭지 않을 수없다.
“…무슨 내기를 하실 겁니까.”
“별 것 아닙니다.”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정자 바닥에 놓여진 바둑돌이 녹아내린다.
서로 선이 이어져 순식간에 환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놀라운 수완이다.
이내 정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모여 있는 문무선들까지 뒤덮는 환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은근하게 자리한 안개가 깔린 광활한 대지.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곁에 구경하는 문무선들과 땅과 하늘뿐.
“내기 내용은 간단합니다. 문선과 무선의 극에 달해 있는 분들이 바로 양천 아니십니까. 하여, 두 분이서 저의 환진을 깨뜨리거나 아니면 절 때려눕히시는 데 성공한다면 내기는 두 분의 승리입니다.”
간단한 규칙이다.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정도다.
양천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다.
‘손해볼 게 없는 내기다.’
둘의 생각이 일치했다.
저리 자신만만한 게 의아하긴 했으나 그래봤자 상선이고, 그래봤자 이제 막 등선한 신출내기 신선이다.
그런 놈이 자신들을 상대로 문선의 특기와 무선의 특기 둘 다를 써서 내기를 걸어오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문무선들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여기서 승패에 승복하지 못하고 말을 번복한다면 문무관장의 궁내 생활은 바로 끝장이다.
자진해서 직책을 내려놓는다면 두말할 것도 없고.
그들에게는 손해볼 게 없는 내기다.
양천문장은 곰곰히 생각해보다 한 가지를 물었다.
“만약 우리가 진다면?”
“전 딱히 바라는 게 없습니다만… 그렇네요. 앞으로 제게 깍듯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직무에 관련된 지시는 확실히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고작 그겁니까. 너무 형평성이 안 맞는 듯한데….”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보는 눈이 많다. 이대로면 면이 서지 않는다.
“이리하지요. 우리가 진다면 일 년 치 봉급을 모두 드리고 그것에 더해 문무궁에서 일하는 부관과 하관들을 위해 상선보를 하나씩 지급하지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문무궁에서 일하는 숫자가 적다고는 하지만….”
얼추 열은 넘는다.
“그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만일 문무관장께서 승리하시면 문무궁의 소선들은 상선보를 팔아 원결단을 구하여 승선한다면 문무궁은 더 활기가 넘치겠지요.”
앞으로 천범이 문무관장의 직책을 수행하는 동안 쭉 함께할 이들이다.
그들의 수행이 높아진다면 천범으로서는 나쁠 게 하등 없다.
기똥찬 제안이다.
“물론, 그 모두가 문무관장이 이기셔야 가능한 부분입니다만.”
“가능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무르신다 하면 없던 일 해드리겠습니다.”
허나 지레 겁먹었다며 뒤에서 두고두고 놀림거리로 삼을 것이다.
범은 픽 웃었다.
“함께 덤비셔도 좋고, 따로 각개격파를 시도해도 좋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환진을 깨뜨리거나 절 쓰러뜨리거나 둘 중 하나만 해도 두 분의 승리입니다.”
“정말 후회 안 하겠소.”
“사내대장부가 혓바닥이 길어 무엇 할까요. 어서 덤비세요.”
킁!
콧김을 뱉은 양천무장이 자세를 잡으며 외쳤다.
“문장, 그대는 환진을 깨뜨리시오. 바둑돌로 만든 간이 환진이니 깨뜨리는 것 정도는 쉽겠지! 난 문무관장과 손을 섞어보겠소이다!”
“뭐 그렇게까지. 이 정도 환진이라면 눈을 감고도 파훼할 수 있소. 하여튼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가기는.”
그렇게, 양천장들과 문무관장의 기선제압 내기가 시작됐다.
* * *
“음? 나가셨다고.”
“예, 천문궁으로 시찰을 가셨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셨으니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되시긴 했습니다. 어찌… 연통을 넣어볼까요.”
문무궁에 찾아온 손님은 다름아닌 주천무장 양휘였다.
첫날이기도 하고, 대천무장이 간간히 들여다보라 하여 한 번 와본 것인데 벌써부터 시찰을 나갔을 줄은 몰랐다.
“아니다. 천문궁으로 시찰을 나셨다면 내가 가는 게 낫겠지. 알겠으니 일 보시게나.”
주천무장 양휘는 천문궁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제 곧 해가 중천이다.
시사라도 함께하며 수행상의 교류를 나누거나 수계의 정세에 대해 의논하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문무관장이 된 이유가 있을 터이니.’
그 이유를 은연중 들춰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렇게 천문궁으로 향하던 주천무장은 순간 이질적인 기의 흐름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환진?”
천문궁이니 환진이 펼쳐져 있는 것이야 이상할 게 없지만 뭔가 천문궁에서 자주 펼치던 양식과는 사뭇 달랐다.
“이리 직관적인 환진은 처음 보는군. 마치 용의 입과도 같아.”
아가리를 벌린 채로 먹잇감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진이다.
흥미로운 환진에 주천무장은 냉큼 그 안으로 들어섰다.
스으윽.
운무 속에 그의 신형이 삼켜졌다.
안으로 들어온 주천무장은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엔 조잡해보였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또 다르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가는 건 금하는 환진이었다.
“새로운 환진을 실험하는 건가. 이 정도 환진이라면 들어간 귀물의 재료값이 상당했겠는걸.”
바둑돌 몇 알이 전부였지만 주천무장이 알 리는 없었다.
“문무관장이 시찰한다 하니 신경을 쓴 건가. 하하, 그리 싫다 노래를 부르더니 그래도 상관 대우는 해주나 보는군.”
무언가를 단단히 오해한 주천무장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잠시 거닐자 무언가 쿵쿵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문무선들을 볼 수가 있었다.
모여 있는 문무선들은 모두들 입을 벌리고 경탄하며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자연스레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보이는 것은.
“하하하!! 그리 자신만만하시더니 고작 이 정도였습니까, 문무관장!”
살벌하게 허공에 주먹질해대는 양천무장과 머리 싸매고 환진을 파훼하려 애쓰는 양천문장이었다.
“이게 무슨….”
더 놀라운 것은.
“환계란 이런 거다. 상대를 속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이끄는 게 바로 환진이며 환계라 할 수 있다.”
문무선들 앞에서 양천문장과 무장의 상태를 함께 보며 실시간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천범이었다.
“더 궁금한 게 있는 자는 손들고 질문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