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5)
낭선기환담-34화(35/600)
낭선기환담 – 34화
“크으윽!”
가슴에 구환도가 꽂힌 채로 청염에 불타고 있는 삼귀. 하지만 그 위에 있는 산군은 자신의 가슴을 쥐고 힘겨워 하고 있었다.
‘힘을 너무 썼다.’
산군의 영력이 바닥나자마자 몸 안에 있던 봉악청화가 날뛰기 시작했다.
그의 몸속에 영력 한줌도 제대로 남지 않은 듯 했다.
-산군! 확실히 끝장을 내셔야 합니다!
-나도 안다!
힘겹게 내뱉으며 인상을 구겼다.
일시적이라곤 해도 영명(靈命)의 경지를 올린 놈이니 확실하게 끝을 내야 했다. 영명의 경지에 오르면 영수는 하나의 목숨을 더 가지게 된다. 이것은 은유적 표현이 아닌 사실이다.
환선 또한 그렇지만, 단전에 자리잡은 내단은 점점 위로 올라가 영명의 경지에 올랐을 때 머릿속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되면 몸뚱이가 불타버려도 머리만 움직여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크읏!”
산군의 몸 주위로 청염의 불길이 드문드문 치솟았다. 그럴수록 산군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리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젠장!”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구환도를 힘겹게 빼내고 단숨에 놈의 머리로 찔러 넣었다.
푹!
[커허어억!]놈의 머리통에 쑤셔넣은 구환도를 비틀어 단번에 반으로 쪼개버렸다.
그러니 붉은빛 하나가 그 사이로 튀어나왔다.
놈의 영각(靈覺)이었다.
[살려주게! 내가 이끌어야 할 귀수들이 오직 나만을 기다리고 있다!]“어쩌라고!”
최악!
그마저도 베어버리자 놈의 비명이 음울히 울려 퍼지다 사라졌다.
“후우!”
그제서야 산군은 안심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경하드립니다 산군. 도선이 환선을 잡은 셈이군요.
분명 대단한 일이었으나 그것을 기뻐할 여력이 되지는 못 했다.
-경하고 뭐고 지금 내 꼴 좀 봐라.
몸속에 천불이 들끓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쓰면 온몸이 봉악청화로 뒤덮여 삼귀의 몸뚱이마냥 불타오를 것이다.
중간 중간 몸 곳곳에서 청염이 치솟다 사그라드는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산군은 이를 악물었다.
‘난리 났네.’
다행이라면 삼귀가 오육초학을 전부 죽여버렸다는 것일까.
천만다행이었다.
놈이 오육초학을 전부 죽이지 않았다면 삼귀가 죽은 지금, 산군은 오육초학을 상대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투명한 검을 삼귀의 시체에서 빼낸 백련이 힐긋 산군을 돌아봤다.
방궁의 여선들은 난리통에 전부 죽어버린 듯했다.
그녀가 공격하지는 않을까 싶었으나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적었다.
주위에 시체들 투성이었으나, 살아 있는 것은 그 둘뿐이었으니.
산군은 그것을 바라보다 공정강에서 영초들과 단약을 꺼내 한입에 털어 넣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운기하여 봉악청화를 다스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반서당해 화염에 삼켜져 죽고 말 것이다.
지금은 그녀를 믿어볼 수밖에.
* * *
어느 이름 높은 산의 석실 안.
검은 광택의 비늘이 야광석에 의해 은은히 반짝거렸다.
그것은 층층이 이루어져 똬리를 틀고 있었다. 머리는 뱀의 그것과 닮아 있었으나 이마에 솟아있는 백색의 뿔을 본다면, 신수라 불리는 용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뱀의 형상을 한 영수가 살며시 눈을 뜨자 녹색의 안구가 흉흉히 빛났다.
[삼귀가 죽었구나.]팟!
번쩍이는 빛이 터짐과 동시에 거대한 형상의 뱀이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긴 머리를 늘어트린 사내가 발을 한 발 내딛자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단박에 석실 바깥으로 나선 사내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각양각색의 영수들을 보며 말했다.
“삼귀가 죽었다.”
[!]영수들은 모두 흠칫 놀랐다.
영겁의 경지에 있던 삼귀가 죽다니! 영겁의 영수는 수명이 다하는 것 말고는 죽는 일이 잘 없는 한 지역의 패자나 다름이 없었다.
헌데 그런 삼귀가 죽었다는 것은 그보다 더 강한 상대와의 전투 후, 전사를 뜻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삼귀를 뽑아야 하니 십해만척귀에게 백귀야행(百鬼夜行)을 시행할 것이라 전하라.”
[[존명!]]명을 받든 영수들이 뿔뿔이 사라지고, 먹먹히 하늘을 바라본 사내 또한 신형이 흐릿해지며 자취를 감추었다.
* * *
일월문의 영내산.
그 뒤로 꼬박 하루를 운기하며 영력을 회복했다.
이내 삼귀의 사체와 오육초학의 부산물들을 나눠가졌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삼귀의 뿔은 꼭 가지고 싶었지만, 산군은 그 대신 그가 수족처럼 부렸던 류곡자를 택했다.
뿔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보구가 더 탐이 났다.
류곡자의 힘은 삼귀가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히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 뒤.
백련이 경환패를 회수했을 때.
산군은 그것에 달라붙어 있는 지네들을 어렵지 않게 불러 모아 자신의 공정강에 집어넣고는 눈치를 봤다.
-뭘 그리 눈치를 보십니까.
-내가 무슨 눈치를 보았다 하더냐. 그저… 경환패를 가져가고 싶으니 그렇지.
-욕심만 많아서는…. 포기하십시오. 복충이라면 몰라도 경환패는 빙궁의 것이니 가져갈 수 없을 겁니다.
산군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으나 이내 잊어버렸다.
‘그래도 얻은 것이 많으니까. 만삼이가 잘 해주었다.’
품에서 공정강 몇 개를 꺼내 의식을 불어넣어 살펴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 속에는 꽤 많은 수의 공정강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삼귀에게 죽임을 당한 이들의 것이었다.
물론, 삼귀의 것도 있었다.
지금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으나, 금장지태는 물론, 삼귀의 공정강 속에도 꽤 풍족한 보물이 있으리라.
‘오육초학의 부산물까지 얻었으니 환진패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환진의 위력은 이번 일로 충분히 깨닫고 경험했다.
자신보다 강력한 신통을 지닌 도사라도 환진에 제대로 걸리면 상대하기 수월함은 물론, 여차할 때 환진에 가두고 도망갈 수도 있을 것이니 필히 도움이 되리라.
그의 입장 상.
환진패가 있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으니 말이다.
* * *
이틀 후.
영내산의 입구에 서 있는 일월문의 염 도사는 영내산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몇 명의 인원이 나타났다.
“크흠….”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돌아온 사람의 숫자가 적다.
빙궁은 두 사람. 태산파나 무당파, 그리고 아미파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그나마 여명종 도사들이 조금 많았다.
염 도사는 슬쩍 바라보다 빙궁의 도사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백련을 향해 물었으나 그는 말이 없었고, 그 옆에 여 도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오육초학이라…. 아직도 그런 영수가 남아 있을지는 몰랐습니다. 고초를 겪으셨군요. 연 도사.”
“아닙니다. 귀문에 폐를 끼친 것은 아닐까 염려 됩니다.”
“그럴 리가요. 원래 영내산을 개방하다 보면 생기는 일이지 않습니까. 이 또한 하늘의 뜻이겠지요.”
그들은 한동안 이런저런 담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연 도사는 당연, 역근환으로 둔갑한 산군이었다.
대부분의 도선들이 죽었는데 검선으로 살아남으면 당연 의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백련의 동의를 얻어 죽어버린 그녀로 둔갑한 것이었다. 빙궁이라면 일월문의 객으로 지내도 개의치 않을 테니 그 덕으로 사월제항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산군은 말없이 옆에 서 있는 백련을 바라보다 전송진 위에 섰다.
하지만 그때.
-삼귀는 네가 죽였나?
쥐 죽은 듯 엎드려 있던 금명지령이 돌연 산군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같은 일개 도사가 어찌 십해만척귀 중 삼귀를 죽였겠습니까.
화들짝 놀란 산군이 침착하게 전음을 보냈다.
-네놈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삼귀에게 죽을 줄 알았더니 용케 살아 돌아왔더군.
여 도사로 둔갑한 산군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어쩐지 그냥 내버려 뒀다 싶었더니 그런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었다.
-절 죽이기라도 할 것입니까?
영명의 경지를 지닌 금명지령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삼귀도 막바지에는 영명으로 경지를 올렸다지만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금명지령은 본래 영명이니 영화인 산군을 죽이는 것은 숨 쉬는 것보다 쉬울 터.
그러나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 내가 네놈을 죽여 무얼 할까.
-그럼….
-넌 내게 빚을 진 것이다. 그것은 삼귀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상관없겠지.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빌어먹을 복좌패를 가져오거라. 내 바람은 그것뿐이니.
‘미친.’
영명을 복수로 부리는 복좌패를 가지고 있는이라면 최소 환선이나, 태선의 경지를 지닌 선사(禪師)다.
그런 이가 지니고 있는 것을 고작해야 영화 영수가 어찌 가져올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여워 마라.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내 수명은 이제 고작해야 500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곳에 갇혀 지내서는 경지를 올릴 수 없다만, 이곳만 벗어난다면 영겁(靈劫)의 때를 맞이할 수 있으니 네놈한테도 그리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뭔 개코같은 소리야.’
-그리고 내 복좌패는 일월문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환선들이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 해도 전 영화. 인간으로 치면 도선입니다. 헌데 어찌 환선들이 관리하는 복좌패를 가져온단 말입니까!
-자세한 것은 알려줄 수 없다. 허나 네놈이 받아들인다면 영결에 오를 수 있는 비보의 단서들을 일러주마. 어떠냐, 하겠느냐?
‘비보라….’
비보라는 말에 산군의 낯이 묘해졌다. 영결에 오를 수 있는 비보를 받는다면 필시 도움이 될 것이다.
영화는 엉겁결에 도봉환을 얻어 손쉽게 수행을 올렸지만 영결에 오를 때도 그럴 것이라는 법은 없다.
아무리 수행에 도움이 되는 영약을 얻는다 해도 죽을 놈은 진수명화의 겁(劫)을 이겨내지 못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잠시 고민한 산군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금명지령의 도움이 없어도 저 혼자 힘으로 영결에 오를 수 있습니다. 거절하지요.
있다면 좋겠지만 굳이 금명지령의 도움이 없어도 그는 영결에 오를 수 있는 경위와 기연들을 알고 있다.
고작 그것으로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었다.
-부탁이다! 네가 거절한다면 난 삼귀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거절할 것인가? 십해만척의 귀수들이 네놈을 쫓을 것이다.
삼귀가 그리 됐으니 수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네놈을 죽이려 들겠지.
그리하면 자신이 새로운 삼귀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
설마 그것으로 협박을 할 줄이야.
산군은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백련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곤 전음을 날렸다.
-그래도 싫다면? 지금 당장 당신이 복수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일월문에게 알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달리 먹어줄 수 없겠나. 난 네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섭섭지 않게 대접함은 물론, 정 원한다면 피를 걸고 맹세하겠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영명의 영수.
이제 영겁을 바라보고 있으니 은혜를 입힌다면 퍽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험난한 산해에서 살아가는 이상, 높은 경지의 인맥이 있다면 나쁠 것이 전혀 없다.
-네가 내 복좌패만 가져온다면 영겁에 올라 너를 비호해줌은 물론, 이후에도 네 공을 잊지 않고 수행에 필요한 깨달음과 영약들을 챙겨주마!
거기에 우선 내가 숨겨둔 비보들로 단숨에 영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금명지령이라….’
산군은 묘한 낯으로 전음을 주고받다가 전송진 위에 올라탔다.